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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6

   EP.206

     

   “정말로 아무것도 없군요……”

   “이게 도대체……”

   “후우… 젠장.”

     

   남궁천호와 박조철.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오지훈이라는 이름의 붉은 머리 남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의 예상대로 우리가 경복궁까지 가는 동안에는 그 어떤 위협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라면 화신들이 말했던 김시인의 도플갱어가 길목에서 발견되었던 것이지만 놈들의 보잘것없는 무위는 우리에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거의 다 왔네요.”

     

   나의 말에 세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각자의 성향은 달랐지만 이번만큼은 한마음 한뜻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진짜야? 진짜 아무것도 없다고?”

   “……이런 시발. 우리는 그동안 뭘 피해서 숨어 있었던 거지?”

     

   어렵지 않게 도착한 경복궁의 입구는 그들의 상상하던 위협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훤하기만 했다.

     

   반파된 광화문과 다 쓰러져 가는 성벽.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니 적막만이 감돌던 그곳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웅- 우웅-

     

   잔해라고 표현해도 좋을 건축물에서 희미한 마력이 새어 나왔다.

   화신들은 모를 수 있었지만 성좌인 나는 이것이 김시인을 봉인한 성좌의 ‘격’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다들 따라오세요.”

     

   나는 무너진 광화문을 지나, 기둥이 꺾여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은 궁 내부로 거침없이 진입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특유의 마력이 짙어진다.

     

   “후욱… 조금 숨쉬기가 어려워진 것 같은데 저만 그렇습니까?”

     

   나의 뒤를 따라오던 남궁천호가 불편함을 느낀 듯 운을 띄우자 박조철과 오지훈도 동의하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들이 느낀 것도 ‘불편함’ 정도의 감각이었지 마력에 짓눌리는 수준의 압박감은 아닌 것 같았다.

     

   ‘뭐, 당연한가.’

     

   내가 마법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봉인’이라는 것은 마법을 펼친 시전자가 관리를 해주지 않는 이상, 점차 그 벽이 얇아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얼마나 견고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성좌라는 거친 물살에 둑을 아무리 높게 쌓아 봐야 결국에는 어딘가 생긴 작은 균열 하나에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우웅-!

     

   그리고 지금 나의 눈앞, 언젠가 이 나라의 왕이 앉았을 용상 위에 푸른색의 마력 덩어리가 빛을 발하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시, 시인 씨?”

   “젠장. 더 빨리 왔어야 했어… 죄송합니다. 금방 꺼내드리겠습니다.”

     

   김시인이 봉인된 마력구를 발견한 오지훈이 검을 뽑으며 용상이 있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지만 그 봉인은 성좌들의 합작품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지훈이 일정 거리 이상을 다가오지 못하도록 제지를 가했다.

     

   파지직!

     

   “으극…!”

     

   주변에 흐르던 마력이 발작하듯 뒤틀리며 허공을 할퀴었다.

   그 영향으로 오지훈의 어깨에 작은 상처가 생겨났고 당황한 그는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한 채,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저 정도의 충격으로 물러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제대로 된 상처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샌님의 엄살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피가 터져 나온 것도 아닌, 그저 옷가지가 찢어졌을 뿐인데 헐레벌떡 돌아온 남자의 행동은 산전수전 다 겪은 나에게 소소한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여기에서 기다려.”

     

   나는 그들을 뒤로 물린 채, 반쯤 공중에 떠 있는 푸른 구체로 다가갔다.

     

   따끔하다.

   이계 성좌들의 격이 묻은 마력이 나의 피부를 긁으니 불쾌한 감각이 나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한 걸음을 더 내디디는 순간, 오지훈이 다가갔을 때 일었던 것보다 더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나를 덮쳤다.

     

   파지지직!!!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바늘로 피부를 쿡쿡 쑤시는 듯한 알싸한 고통이 동반되었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고통들에 비하자면 이건 모래알 하나가 신발 속에 들어온 불편함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봉인에 근접할수록 마력의 파도는 점점 더 거칠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마력을 너무 자극했던 것일까?

     

   거칠어진 마력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낌새가 없던 허공에 작은 스파크가 튀며 자그마한 포탈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씁. 귀찮게 어떤 새끼가 봉인을 건드리는 거야.

     

   포탈을 통해 등장한 존재는 당황스럽게도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와 짧은 백색 머리를 가진 남자아이.

   펑퍼짐한 도복 바지 위를 천 따위로 가볍게 두른 녀석은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법한 그리스 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신이라……’

     

   감히 신을 흉내 내는 필멸자.

   김시인의 봉인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그는 이윽고 고개를 들며 그 오만한 눈빛으로 좌중을 쓸었다.

     

   -너냐?

     

   그가 짜증이 물씬 느껴지는 말투로 말을 뱉었다.

     

   나의 뒤에 있던 세 사람은 갑작스러운 성좌의 등장에 이미 온몸이 얼어붙은 듯,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며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두려워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란 결국 머리와 몸에 각인된 기억에서 나타난 일종의 환각과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내 뒤의 세 사람은 그 하찮은 트라우마 때문에 이 성좌가 포탈을 강제로 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약해졌어.’

     

   이 꼬맹이는 층을 내려오느라 어마어마한 마력을 허비한 상태였다.

   물론 힘이 줄어들었다고 15층 너머에 거주하는 성좌가 약해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15층에 거주하는 화신들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상태라는 것이다.

     

   -봉인에 손을 댄 게 너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나의 싸늘한 반응에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찡그려진다.

   김시인의 봉인에 들어 있던 녀석의 마력이 흩어지는가 싶더니 그의 몸속으로 빠르게 흡수됐다.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하는 녀석의 힘.

   실제로 키도 조금 자란 것을 보니 나의 무덤덤한 반응 때문에 봉인에 들어 있던 자신의 마력을 급하게 회수한 모양인 것 같았다.

     

   “고작 그거 믿고 혼자 내려온 거냐?”

     

   하지만 나는 녀석의 변화에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짜증이 일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 고작 이딴 잡 성좌 따위에게 패배한 이 세계의 나에게 실망을 하던 나는 녀석을 보며 조용히 검을 뽑았다.

     

   -크큭. 허세가 대단하시군. 고작 화신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마력이 아닐 텐……

     

   나와 눈을 마주한 채 나불거리던 성좌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도중에 끊긴 이후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 말. 그리고 뒤이어 나온 것은 자신감이나 허세 따위가 아닌 진심 어린 당황이었다.

     

   -너, 너너! 네가 어떻게! 봉인이 깨진 흔적 따위는 없는데!?

     

   내가 김시인이라는 것을 알아본 성좌가 뒷걸음질 치며 말을 더듬는다.

     

   “너, 이명이 뭐냐? 나를 꽤 열심히 보던 놈일 것 같은…”

   -젠장!

     

   타앙!

     

   나의 말이 끝나기 전에 놈은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포탈로 몸을 날렸다.

   찰나의 순간. 하지만 그것을 놓치기에는 약화된 성좌와 나의 격차가 너무나도 컸다.

     

   스걱.

     

   “예의가 없네. 사람 말은 끝까지 듣고 가야지.”

     

   나는 검을 들어 놈의 다리를 베었다.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놈의 움직임보다 나의 검이 반박자 빨랐던 덕분.

     

   -크아악!

     

   하지만 꽤 깊게 베었음에도 놈의 다리는 절단되지 않았다.

   요란하게 바닥을 구른 놈이 몸을 일으키며 전투 자세를 취한다. 급하게 주먹을 드는 것을 보니 권법가인 모양이었다.

     

   -젠장, 젠장! 왜!

   “도마뱀이냐? 분명 자른 느낌이 있었는데 왜 안 잘렸지?

   -죽어어어!!!

     

   놈이 손을 뒤로 가져갔다가 앞으로 뻗으며 초식을 펼친다.

   거대한 마력의 기파가 터져 나오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나는 그저 검을 들어 놈의 공격을 흘릴 뿐이었다.

     

   쿠콰콰쾅-!!!

     

   나의 검신을 타고 미끄러진 기파가 좌측으로 틀어지며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궁의 기둥들을 파괴했다.

     

   흔들리기 시작하는 건축물. 아쉬운 말이지만 경복궁은 더 이상의 충격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쿠구구구-!

     

   천장과 건물을 지지하던 땅이 요동치며 굉음을 일으켰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던 세 사람에게 빠져나가라는 의미로 가볍게 턱짓을 했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건물 밖으로 몸을 피신했다.

     

   -크으으…윽! 크아아아!!!

     

   내가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동안 꼬마의 신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팔다리에 자라나기 시작하는 거친 털.

   머리가 길어지는가 싶더니 등을 모조리 덮었고 작디작은 몸집이 점차 비대해지며 거대한 짐승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크르르…

   “그게 네 본 모습이냐?”

     

   괴물 이리의 형태.

   이전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진 녀석은 붉은 안광을 빛내며 먹이를 탐하는 하얀 짐승의 이빨을 보란 듯이 드러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놈이 움직였다. 인간 형태였을 때와는 달리 우아함도 유연함도 없었지만 그 민첩함과 파괴력만큼은 확실히 한 단계 상승했다.

     

   하지만.

     

   쿠구구-!

     

   건물이 무너지며 수많은 잔해가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사천현무신공 四川玄武神功

   추뢰신법 追雷身法

     

   나는 신법을 펼쳐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든 잔해를 회피했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잔해는 공기의 흐름과 몸의 감각으로 피했고 그 와중에 날아오는 놈의 앞발을 보며 앞으로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서걱!

     

   검을 들어 달려드는 놈의 앞발을 잘랐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의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지체하지 않고 한 걸음 더 전진했다.

     

   파파팟!

     

   나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놈이 몸부림치며 뒤로 급하게 거리를 벌린다.

   하지만 나와 놈의 거리는 좀처럼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놈이 발버둥 칠수록 나는 조금 더 놈의 몸을 옥죄었고 시간이 멈춘 듯한 그 공간에서 놈은 이내 체념한 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스릉.

     

   늑대가 된 놈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너지는 건물.

     

   쓰러진 적.

     

   나는 옆으로 서서히 기울어지는 늑대를 힐끗 바라본 후, 곧장 봉인된 구체 속의 김시인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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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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