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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

        사막.

        ​

        아마 인간이 살 수 있는 땅 중에서 가장 최악의 지역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

        ​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에, 살인적인 일교차.

        ​

        그리고 물과 식량을 구하기 힘든 환경까지.

        ​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초인이라도 사막은 쉬이 넘어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초인이 될지언정 자연의 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인간에 불과할 뿐이니.

        ​

        그렇기에 사막을 건너려면 제아무리 뛰어난 기사나 무림인이라도 식량과 물은 필수적으로 챙겨야 했다.

        ​

        최소한 물이라도 가득 채운 채로 움직이라도 해야 겨우 사막을 건널 수 있을 터.

        ​

        하지만 도망자인 우리에게 그런 여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

        애초에 우리의 도주 경로에서 사막은 차선책이었으니. 

        ​

        적들에게 걸리지만 않았다면 우리의 탈출 경로는 산맥을 다시 타고 넘어가 청해성으로 복귀하는 쪽이었겠지.

        ​

        “은공, 저희 식량과 물이…”

        ​

        “나도 알아.”

        ​

        “저놈들을 전부 죽여라!”

       

        “늙은 놈들이 발만 날래서는!”

       

        뒤에서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마교놈들 목소리를 들으니까 참 기분이 좋네. 

        ​

        상황만 괜찮으면 그냥 들이박아 버렸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도망쳐야 할 시간이었다. 맘루크들을 상대하느라 체력소모도 큰 상황이었으니까.

        ​

        우리의 열 배 가까이 되는 인원 상대로 싸우다간 지쳐 쓰러지든, 벽력탄에 맞게 될 게 뻔했으니.

        ​

        “이보게, 후배! 저 망할 놈들을 떼어낼 방법 없나?”

        ​

        “벽력탄이 있으면 모를까, 지금은 힘듭니다. 차라리 모래폭풍이 불어오길 바라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

        “일단 내가 하나 챙기긴 했다네!”

        ​

        “그래도 이걸로 도박 정도는 해볼 법하겠군요.”

        ​

        그건 또 언제 챙겼대.

        ​

        나는 장무곡 선배가 품에서 꺼낸 벽력탄을 손에 쥐곤 우리를 쫒는 마인들을 돌아보았다. 

        ​

        죽일 듯이 우리를 쫒아오는 마인들. 선두에 선 늙은 마인과 눈이 마주치자 놈이 소리를 질렀다.

        ​

        “헛된 도주를 한다고 너희가 살 것 같으냐!”

       

        “질긴 놈들.”

        ​

        하긴, 질긴 놈들이니까 3번이나 중원을 침공하는 거겠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나는 고개를 돌려 무림의 노고수들과 목경이의 상태를 살폈다.

        ​

        “선배님들, 얼마나 더 싸우실 수 있으십니까?”

        ​

        “끙, 그리 오래는 못 싸운다네.”

        ​

        “다른 건 몰라도 싸운 후에는 사막을 건널 힘도 없어질 걸세.”

        ​

        “싸우는 건 힘들겠군요.”

        ​

        그럼 저 마교 놈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

        정면 대결을 해봐야 잘 쳐줘도 양패구상인 상황인데?

        ​

        하다못해 오아시스라도 발견한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나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

        그러니 사막의 지형을 이용한 따돌리기나 역습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운에 기대야 한다는 뜻. 

        ​

        이럴 줄 알았으면 사막 지도라도 미리 외워두는 건데.

        ​

        “자네, 그래서 뭔가 뾰족한 수라도 생각해냈나!”

        ​

        “장 선배. 그렇게 쉽게 나올 거였으면 저흰 뛰는 게 아니라 걷고 있었을 겁니다.”

        ​

        “그렇구만!”

        ​

        이 사람은 그렇게 싸워댔는데도 여전히 펄펄하네.

        ​

        그래도 다른 노고수들은 좀 지친 기색이 눈에 띄는데.

        ​

        나나 목경이야 아직 팔팔한 나이니까 괜찮지만, 강호의 대선배들은 이 지긋지긋한 추격전을 오래 이어 나가기 힘들어 보였다.

        ​

        화경 이상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느릴지언정 노화가 오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애초에 사막 자체가 극한 환경이라 체력을 많이 앗아가기도 하고.

        ​

        그러니 타개책이 필요한데, 정말 괜찮은 거 없나?

        ​

        그렇게 고민하며 사막을 질주하고 있을 때였다.

        ​

        나는 돌연 발이 푹 빠지는 느낌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모래의 감촉이 아닌, 진흙에 가까운 감촉.

        ​

        유빙인가!

        ​

        “유레카!”

        ​

        “자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

        “유빙입니다 유빙!”

        ​

        유빙. 

        ​

        얼마 안 되는 사막의 습기가 모여 모래 아래 진흙을 만들어내는 형상. 

        ​

        위험한 현상이지만, 무림인에게는 그다지 위험한 현상은 아니었다. 

        ​

        무림인들의 경공은 경지에 이르면 발자국조차 제대로 남지 않을 정도로 빠르니까.

        ​

        초상비니 답설무흔이니 하는 식으로 아예 경공의 경지를 나누어 놓을 정도로 경공에 진심인 인간들이 무림인이라는 족속이었으니, 모래를 밟아야 일어나는 현상을 겪을 일은 적을 터였다.

        ​

        …그래도 천산 바로 아래 구역이니 저 치들이 모를 것 같지는 않지만.

        ​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 겐가?”

        ​

        “그게 말입니다…”

        ​

        나는 돌연 멈추어 섰다. 갑작스러운 내 돌발행동에 일행이 당황했을 즈음, 나는 휘청이며 몸에 힘을 실었다. 

        ​

        그리고, 내 몸이 허리까지 쑥 들어갔다.

        ​

        “제, 젠장!”

        ​

        어색하게나마 국어책 읽기로 내가 갑자기 빠진 것을 본 마인들과 별동대가 동시에 멈추어 섰다. 

        ​

        내가 갑자기 땅에 파묻히는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일 테니까.

        ​

        물론 내가 의도한 현상이었다.

        ​

        아무리 유빙이라도 사람 몸이 이렇게 빠지긴 쉽지 않지.

        ​

        하지만 발바닥에 오러를 모아 터트려 땅을 파고, 오러로 몸을 아래로 눌러 천근추 비스무리하게 활용하면 이런 기이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은공!”

        ​

        “저 색목인 놈이 있는 곳 주변은 접근하지 마라!”

        ​

        당혹스럽겠지.

        ​

        갑자기 사람이 허리까지 푹 빠져버렸으니까.

        ​

        “젠장! 사, 살려줘!”

        ​

        “…”

        ​

        아니 왜.

        ​

        호응해 줘야지.

        ​

        “은공,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티가 납니다…”

        ​

        목경이의 통렬한 지적에 나는 혀를 찼다. 

        ​

        내 연기력이 이리 모자랐단 말인가.

        ​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교놈들이 거리를 좁히자, 곧장 모래 속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자연스럽게 내 몸에 붙은 모래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

        “다시 튀자.”

        ​

        “…예.”

        ​

        늦은 반응이 뼈아프다. 우리는 다시 도주를 시작했다.

        ​

        ———————- 

        ​

        “양 장로님! 이대로 계속 추격전을 벌이면 뒤가 없습니다!”

       

        추적 반나절째.

        ​

        슬슬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드는 시간. 

        ​

        마인들은 지독한 근성으로 계속해서 윌리엄 일행을 추격하고 있었다.

        ​

        이미 그들도 사막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깊게 들어온 상태. 이대로가면 그들도 멀쩡하게 돌아가기는 힘들지만, 그들의 눈에 켜진 분노와 증오는 이 무모한 추격을 계속하게끔 만들었다.

        ​

        “그럼 이대로 놓치란 말이냐!”

        ​

        양상곤 장로는 신경질을 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기행을 벌인 색목인의 행동에 주춤하긴 했지만, 추격에는 큰 영향이 없는 상황. 

        ​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숨통이 트일 테니!’

        ​

        하늘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하늘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적어도 양 장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

        “염마! 독마! 그대들도 뭔가 좀 해보시오!”

        ​

        “우리도 사막에선 힘을 쓰기는 쉽지 않소!”

       

        “이런 곳에선 염공을 필요 이상으로 썼다간 바싹 말라죽어버린다!”

        ​

        ‘이런 쓸모없는 놈들! 도대체 왜 따라온 건지!’

        ​

        하필이면 남은 게 사막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든 독마와 염마라니. 양 장로는 기막힌 불운에 짜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색목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

        ‘검강을 뒤통수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게 달려가다니!’

        ​

        그들이 무림맹의 별동대와 가까워진 건 벌써 세 번째.

        ​

         그때마다 저 기이한 색목인은 뒤통수의 쏟아내는 공세를 몸으로 유유히 받아내고 도망쳤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처음 뒤통수에 검강을 내리꽂은 양 장로도 순간 멍해질 정도의 광경. 

        ​

        ‘도대체 대가리가 뭘로 만들어진 게야?’

        ​

        아무리 호신강기가 있다고 해도 머리로 검강을 받아내는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멀쩡한 것인가.

        ​

        양 장로는 그 시점에서 양 옆의 사대마인들이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는 이유를 체감했다.

        ​

        “양 장로, 그래서 이제 어쩔 거요!”

        ​

        “이대로 계속 따라갈 생각이오!”

        ​

        “정녕 방법이 그것밖에 없소?”

        ​

        “새로운 방법을 짜는 동안 놈들이 도망갈 거요!”

        ​

        모로가든 일단 거리는 좁혀야 한다. 당장은 초절정고수인 사대 마인 둘과 장로를 빼면 저들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힘드니, 이대로 인내심 싸움을 걸어 힘을 빼놓는 게 최선이었다.

        ​

        ‘놈들이 지치는 순간, 벽력탄으로 일소한다!’

        ​

        제대로만 던진다면 저 가증스러운 정파 놈들이 육편이 되어 모래 위를 뒹굴게 되리라.

        ​

        “거리를 최대한 좁혀라! 벽력탄으로 놈들의 발을 묶을 테니!”

        ​

        ‘믿을 건 벽력탄뿐!’

        ​

        그때였다. 

        ​

        ‘고지대!’

        ​

        별동대는 모래 언덕이라 부를만한 지형이 나타나자 경공을 극성으로 펼쳐 언덕을 넘어갔다.

        ​

        그리고, 윌리엄이 검을 뽑아 들었다.

        ​

        “조심하십시오!”

        ​

        윌리엄이 불을 붙인 벽력탄을 언덕의 꼭대기에 깊숙이 박아놓고 경공을 펼쳐 거리를 벌렸다.

        ​

        윌리엄이 거리를 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폭음과 함께 언덕이 무너지며 모래가 사방으로 튀며 잠깐 연막을 만들었다.

        ​

        “잔재주를 부리기는!”

        ​

        ‘시간을 끌려는 속셈인가!’

        ​

        마교와 별동대의 거리는 그렇게까지 멀지 않은 상황. 마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모래 연막을 뚫고 달려 나갔다. 

        ​

        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모래 언덕 위에 오른 마인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노고수들이었다.

        ​

        “우릴 귀찮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

        별동대의 역습과 함께 사막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DMD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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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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