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아마 인간이 살 수 있는 땅 중에서 가장 최악의 지역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에, 살인적인 일교차.
그리고 물과 식량을 구하기 힘든 환경까지.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초인이라도 사막은 쉬이 넘어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초인이 될지언정 자연의 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인간에 불과할 뿐이니.
그렇기에 사막을 건너려면 제아무리 뛰어난 기사나 무림인이라도 식량과 물은 필수적으로 챙겨야 했다.
최소한 물이라도 가득 채운 채로 움직이라도 해야 겨우 사막을 건널 수 있을 터.
하지만 도망자인 우리에게 그런 여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우리의 도주 경로에서 사막은 차선책이었으니.
적들에게 걸리지만 않았다면 우리의 탈출 경로는 산맥을 다시 타고 넘어가 청해성으로 복귀하는 쪽이었겠지.
“은공, 저희 식량과 물이…”
“나도 알아.”
“저놈들을 전부 죽여라!”
“늙은 놈들이 발만 날래서는!”
뒤에서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마교놈들 목소리를 들으니까 참 기분이 좋네.
상황만 괜찮으면 그냥 들이박아 버렸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도망쳐야 할 시간이었다. 맘루크들을 상대하느라 체력소모도 큰 상황이었으니까.
우리의 열 배 가까이 되는 인원 상대로 싸우다간 지쳐 쓰러지든, 벽력탄에 맞게 될 게 뻔했으니.
“이보게, 후배! 저 망할 놈들을 떼어낼 방법 없나?”
“벽력탄이 있으면 모를까, 지금은 힘듭니다. 차라리 모래폭풍이 불어오길 바라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일단 내가 하나 챙기긴 했다네!”
“그래도 이걸로 도박 정도는 해볼 법하겠군요.”
그건 또 언제 챙겼대.
나는 장무곡 선배가 품에서 꺼낸 벽력탄을 손에 쥐곤 우리를 쫒는 마인들을 돌아보았다.
죽일 듯이 우리를 쫒아오는 마인들. 선두에 선 늙은 마인과 눈이 마주치자 놈이 소리를 질렀다.
“헛된 도주를 한다고 너희가 살 것 같으냐!”
“질긴 놈들.”
하긴, 질긴 놈들이니까 3번이나 중원을 침공하는 거겠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나는 고개를 돌려 무림의 노고수들과 목경이의 상태를 살폈다.
“선배님들, 얼마나 더 싸우실 수 있으십니까?”
“끙, 그리 오래는 못 싸운다네.”
“다른 건 몰라도 싸운 후에는 사막을 건널 힘도 없어질 걸세.”
“싸우는 건 힘들겠군요.”
그럼 저 마교 놈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정면 대결을 해봐야 잘 쳐줘도 양패구상인 상황인데?
하다못해 오아시스라도 발견한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나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니 사막의 지형을 이용한 따돌리기나 역습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운에 기대야 한다는 뜻.
이럴 줄 알았으면 사막 지도라도 미리 외워두는 건데.
“자네, 그래서 뭔가 뾰족한 수라도 생각해냈나!”
“장 선배. 그렇게 쉽게 나올 거였으면 저흰 뛰는 게 아니라 걷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구만!”
이 사람은 그렇게 싸워댔는데도 여전히 펄펄하네.
그래도 다른 노고수들은 좀 지친 기색이 눈에 띄는데.
나나 목경이야 아직 팔팔한 나이니까 괜찮지만, 강호의 대선배들은 이 지긋지긋한 추격전을 오래 이어 나가기 힘들어 보였다.
화경 이상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느릴지언정 노화가 오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애초에 사막 자체가 극한 환경이라 체력을 많이 앗아가기도 하고.
그러니 타개책이 필요한데, 정말 괜찮은 거 없나?
그렇게 고민하며 사막을 질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돌연 발이 푹 빠지는 느낌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모래의 감촉이 아닌, 진흙에 가까운 감촉.
유빙인가!
“유레카!”
“자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유빙입니다 유빙!”
유빙.
얼마 안 되는 사막의 습기가 모여 모래 아래 진흙을 만들어내는 형상.
위험한 현상이지만, 무림인에게는 그다지 위험한 현상은 아니었다.
무림인들의 경공은 경지에 이르면 발자국조차 제대로 남지 않을 정도로 빠르니까.
초상비니 답설무흔이니 하는 식으로 아예 경공의 경지를 나누어 놓을 정도로 경공에 진심인 인간들이 무림인이라는 족속이었으니, 모래를 밟아야 일어나는 현상을 겪을 일은 적을 터였다.
…그래도 천산 바로 아래 구역이니 저 치들이 모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 겐가?”
“그게 말입니다…”
나는 돌연 멈추어 섰다. 갑작스러운 내 돌발행동에 일행이 당황했을 즈음, 나는 휘청이며 몸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내 몸이 허리까지 쑥 들어갔다.
“제, 젠장!”
어색하게나마 국어책 읽기로 내가 갑자기 빠진 것을 본 마인들과 별동대가 동시에 멈추어 섰다.
내가 갑자기 땅에 파묻히는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일 테니까.
물론 내가 의도한 현상이었다.
아무리 유빙이라도 사람 몸이 이렇게 빠지긴 쉽지 않지.
하지만 발바닥에 오러를 모아 터트려 땅을 파고, 오러로 몸을 아래로 눌러 천근추 비스무리하게 활용하면 이런 기이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은공!”
“저 색목인 놈이 있는 곳 주변은 접근하지 마라!”
당혹스럽겠지.
갑자기 사람이 허리까지 푹 빠져버렸으니까.
“젠장! 사, 살려줘!”
“…”
아니 왜.
호응해 줘야지.
“은공,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티가 납니다…”
목경이의 통렬한 지적에 나는 혀를 찼다.
내 연기력이 이리 모자랐단 말인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교놈들이 거리를 좁히자, 곧장 모래 속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자연스럽게 내 몸에 붙은 모래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다시 튀자.”
“…예.”
늦은 반응이 뼈아프다. 우리는 다시 도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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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장로님! 이대로 계속 추격전을 벌이면 뒤가 없습니다!”
추적 반나절째.
슬슬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드는 시간.
마인들은 지독한 근성으로 계속해서 윌리엄 일행을 추격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도 사막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깊게 들어온 상태. 이대로가면 그들도 멀쩡하게 돌아가기는 힘들지만, 그들의 눈에 켜진 분노와 증오는 이 무모한 추격을 계속하게끔 만들었다.
“그럼 이대로 놓치란 말이냐!”
양상곤 장로는 신경질을 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기행을 벌인 색목인의 행동에 주춤하긴 했지만, 추격에는 큰 영향이 없는 상황.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숨통이 트일 테니!’
하늘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하늘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적어도 양 장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염마! 독마! 그대들도 뭔가 좀 해보시오!”
“우리도 사막에선 힘을 쓰기는 쉽지 않소!”
“이런 곳에선 염공을 필요 이상으로 썼다간 바싹 말라죽어버린다!”
‘이런 쓸모없는 놈들! 도대체 왜 따라온 건지!’
하필이면 남은 게 사막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든 독마와 염마라니. 양 장로는 기막힌 불운에 짜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색목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검강을 뒤통수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게 달려가다니!’
그들이 무림맹의 별동대와 가까워진 건 벌써 세 번째.
그때마다 저 기이한 색목인은 뒤통수의 쏟아내는 공세를 몸으로 유유히 받아내고 도망쳤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뒤통수에 검강을 내리꽂은 양 장로도 순간 멍해질 정도의 광경.
‘도대체 대가리가 뭘로 만들어진 게야?’
아무리 호신강기가 있다고 해도 머리로 검강을 받아내는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멀쩡한 것인가.
양 장로는 그 시점에서 양 옆의 사대마인들이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는 이유를 체감했다.
“양 장로, 그래서 이제 어쩔 거요!”
“이대로 계속 따라갈 생각이오!”
“정녕 방법이 그것밖에 없소?”
“새로운 방법을 짜는 동안 놈들이 도망갈 거요!”
모로가든 일단 거리는 좁혀야 한다. 당장은 초절정고수인 사대 마인 둘과 장로를 빼면 저들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힘드니, 이대로 인내심 싸움을 걸어 힘을 빼놓는 게 최선이었다.
‘놈들이 지치는 순간, 벽력탄으로 일소한다!’
제대로만 던진다면 저 가증스러운 정파 놈들이 육편이 되어 모래 위를 뒹굴게 되리라.
“거리를 최대한 좁혀라! 벽력탄으로 놈들의 발을 묶을 테니!”
‘믿을 건 벽력탄뿐!’
그때였다.
‘고지대!’
별동대는 모래 언덕이라 부를만한 지형이 나타나자 경공을 극성으로 펼쳐 언덕을 넘어갔다.
그리고, 윌리엄이 검을 뽑아 들었다.
“조심하십시오!”
윌리엄이 불을 붙인 벽력탄을 언덕의 꼭대기에 깊숙이 박아놓고 경공을 펼쳐 거리를 벌렸다.
윌리엄이 거리를 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폭음과 함께 언덕이 무너지며 모래가 사방으로 튀며 잠깐 연막을 만들었다.
“잔재주를 부리기는!”
‘시간을 끌려는 속셈인가!’
마교와 별동대의 거리는 그렇게까지 멀지 않은 상황. 마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모래 연막을 뚫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모래 언덕 위에 오른 마인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노고수들이었다.
“우릴 귀찮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별동대의 역습과 함께 사막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DMD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