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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어떻게 하면 클라이스가 더 빨리 전계마도 지식을 습득할까.

       ​

       그런 고민을 하던 에테르가 떠올린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

       “시험 친다.”

       “…또요?”

       “불만 있어?”

       “아, 아뇨.”

       ​

       조곤조곤한 말투. 그러나 연구의 피로가 쌓인 건지 짜증이 살짝 섞여 있다.

       ​

       에테르는 눈가를 비비며 클라이스가 보던 책을 빼앗았다.

       ​

       “닷새 만에 어디까지 할 수 있게 되었나 보자.”

       ​

       시험이라고는 해도 단순한 문답 형식이었다.

       ​

       에테르가 클라이스의 노예였을 시절의 클라이스는 이런 문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는 순전히 에테르가 그녀를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

       틀릴 때마다 자잘한 정신 공격이 들어왔지만 감내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

       문제는, 시험 치는 횟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

       하루에 다섯 번은 고사하고, 어느 날은 열 번 넘게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클라이스는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

       아버지에게 교육받던 시절로 회귀한 것만 같았다.

       ​

       “전자기 방정식의 직관적인 의미.”

       ​

       에테르가 책을 넘기지도 않고 물었다. 클라이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시작했다.

       ​

       “전하는 자기장을 만든다. 자석은 홀극으로 존재할 수 없다….”

       ​

       어느 세계로 치면 대학교 1학년 수준의 교육과정.

       ​

       에테르, 혹은 ‘에테르’에겐 한없이 쉬운 내용이었지만 처음 공부하는 클라이스에게는 생소한 것투성이였다.

       ​

       심지어 클라이스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에테르가 쓴 책으로 강제 독학을 밟고 있었다.

       ​

       그래서일까?

       ​

       쉽다고 생각하던 내용이라도 체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자기장이 바뀌면 전기장이 만들어진다. 전기장이 바뀌면…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왜 말꼬리를 올려.”

       ​

       또 시작된 멘탈 공격.

       ​

       자잘한 핀잔이었지만 이미 극한까지 내몰린 클라이스에게는 혀가 바싹 마르는 수준의 질책이었다.

       ​

       “어, 어…….”

       ​

       동공이 흔들린다.

       ​

       여기서 말하지 못하면 큰일이 난다.

       ​

       무려 먹을 걸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이것 말고 뭔가 더 있었는데….”

       “그래.”

       “아…. 전류가 흘러도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

       겨우 맥스웰 방정식의 함의를 읊어낸 클라이스. 비록 엄밀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치고는 만족스러운 성취였다.

       ​

       아직 미숙했지만 상관없었다. 전자기론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했다.

       ​

       에테르는 봉투에서 방울토마토를 꺼냈다.

       ​

       “나쁘지 않군.”

       ​

       토마토를 건네받자 곧바로 입에 털어 넣는 클라이스.

       ​

       새콤달콤한 식감과 톡톡 튀는 과즙에 혼이 쏙 나가버린다.

       ​

       평소 굳은 얼굴로 돌아다니던 클라이스도 이때만큼은 소확행을 누리며 사춘기 소녀처럼 헤실거리게 된다.

       ​

       남은 과즙을 음미하며 입맛을 다시던 클라이스가 은근히 재촉했다.

       ​

       “더, 더 없나요?”

       “문제 몇 개 더 낼 거다.”

       ​

       그 뒤로 난이도가 높아졌지만 클라이스는 최선을 다해 답했다.

       ​

       막상 처음 할 때가 긴장돼서 어려운 것이지, 한 번 불이 붙으니 금방금방 대답하고 토마토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

       백여 개 가까이 싸 왔던 방울토마토가 거의 절반으로 사라질 때까지 문답은 계속되었다.

       ​

       “이대로라면 본 연구까지 금방이겠군.”

       ​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사실. 클라이스는 원래 인간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천재였다.

       ​

       일반물리학 수준은 물론이요, 전자기론의 핵심 챕터를 닷새 만에 주파하는 것부터가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

       다른 인간이었더라면 제시간에 여기까지 도달하지도 못했을 터.

       ​

       곧 초전도 연구 조수로 써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에테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하루 쉬고 내일부터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아…….”

       ​

       방울토마토를 잔뜩 먹어 배불러진 클라이스에게 현자타임이 찾아왔다.

       ​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면 포상으로 먹을 걸 받는다는 점에서 견주가 강아지 훈련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

       죽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자신이 개도 아니고.

       ​

       하지만 이것이 미음을 먹는 것 외에 유일하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클라이스는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했다.

       ​

       ​

       **

       ​

       ​

       클라이스를 가르치는 일은 계속되었다.

       ​

       ‘에테르’는 그다지 좋은 선생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직접 알려주려 하질 않는다.

       ​

       굳이 분류하자면 대학원식 방임 교육이었다.

       ​

       아니, 이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배우는 건 혼자서 다 하고 에테르는 평가만 했으니 말이다.

       ​

       그런 반쪽짜리 교육은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

       “후우….”

       ​

       클라이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스크롤을 깎았다.

       ​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정도로 고된 과정.

       ​

       이것도 에테르가 시킨 것이다. 배운 전기소자의 특성을 살려 고온에서도 작동하는 스크롤을 만들어 보아라. 그런 명령이었다.

       ​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이걸 시키는지는 모른다.

       ​

       그러나 에테르가 자신을 연구 조수로 써먹기 위해 이런 일을 시키고 있다는 것쯤은 단번에 유추할 수 있었다.

       ​

       클라이스도 에테르를 처음 노예로 들였을 때 이런 과정을 거쳤다. 자신도 시간이 없었으니 최소한으로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스스로 공부해서 내 연구에 도움이 되어라…. 그런 식이었다.

       ​

       막상 반대 입장이 되어서 해 보니까 죽을 맛이었다. 어떻게 된 게 실제 대학원 시절보다 더 힘들었다.

       ​

       “나갔다 온다.”

       “…….”

       “대답.”

       “…다녀오세요.”

       ​

       끝까지 ‘주인님’이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최후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

       에테르도 이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따로 지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

       “으흐흐흐!”

       ​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

       “길라흐.”

       ​

       팔이 갈고리로 되어 있는 은발의 하이엘프. ‘교월’의 길라흐가 실실 쪼개며 옆으로 성큼 다가왔다.

       ​

       “오랜만입니다! 흐하하!”

       “여전히 좆같은 웃음소리구나. 아침 댓바람부터 기분이 잡쳐.”

       “그렇게 독설을 퍼부으시면 속상합니다. 흐흐흐!”

       ​

       웬일로 먼저 시비를 털지 않는다.

       ​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

       “뭔 기분이 그리 좋으실까.”

       “제 뒤를 보십시오. 흐흐흐흐흐!”

       ​

       길라흐가 쥔 사슬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웬 인족 노예가 하나 있었다.

       ​

       “저도 노예를 하나 들였습니다. 하하하하!”

       ​

       노예의 모습을 확인한 에테르는 곧바로 시선을 내렸다. 노예 면상보다는 갈고리손으로 어떻게 쇠사슬을 쥐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까닭이다.

       ​

       “병신인 손으로 잘도 사슬을 쥐는군.”

       “음? 그런 쪽이 관심이십니까? 재미없군요.”

       “본관도 네놈 취미에 동조해 줄 생각은 없다.”

       “그러지 말고 제 장난감이나 한 번 보시지요. 이거 진짜 상등품입니다!”

       ​

       길라흐가 슬쩍 옆으로 비켰다. 그러자 절등한 외모를 지닌 여자가 이를 꽉 깨문 채로 에테르를 쏘아보았다.

       ​

       “…이번엔 또 무슨 모욕을 주려고!”

       ​

       여자가 언성을 높여 말했다.

       ​

       홍옥처럼 반짝이는 눈에선 절망과 오기가 동시에 보였다. 에테르는 그녀를 보다 유심히 관찰했다.

       ​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

       아마 쓸데없는 추측이겠지. 세상에 금발적안은 수도 없이 많다.

       ​

       에테르가 피식 웃으며 가던 길이나 마저 가려던 찰나.

       

       

       길라흐가 앞을 막아섰다.

       ​

       “어디 특별한 점 없으신가요?”

       “뭐.”

       “이 노예 말입니다! 당신 노예와는 달리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느냐고요.”

       “연구 중에 방해하면 다져버리겠다고 누누이 말씀을 드렸을 텐데 말이야.”

       ​

       으름장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싸우면 진다.

       ​

       길라흐는 전열 특화였고, 에테르는 직접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

       두 사천 모두 이를 알고 있었기에 농이 섞인 악담으로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

       무시하고 다시 지나가려던 참에, 여자가 에테르에게 말을 걸었다.

       ​

       “너도……너도 마수냐.”

       ​

       당연한 거 아닌가?

       ​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에테르는 대답조차 주지 않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

       길라흐가 여자의 허벅지에 갈고리를 꽂아넣기 전까지는 말이다.

       ​

       “하, 으, 하아아악…!”

       ​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처럼 정제되지 못한 비명이 복도를 메웠다.

       ​

       초승처럼 생긴 오른쪽 갈고리가 정확히 왼쪽 허벅지를 관통했다. 다리를 부여잡은 여자는 중심을 잃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

       그 탓에 상처가 대각으로 찢어지며 피를 철철 흘리기 시작했다.

       ​

       “누가 제 허가도 없이 다른 이와 말을 섞으라고 했죠?”

       ​

       길라흐는 낄낄 웃으며 대못처럼 깊게 박아 넣었던 갈고리를 빼냈다. 질 나쁜 선혈이 사방으로 낭자하게 흩어졌다.

       ​

       바닥이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

       여자는 다리를 움켜쥐며 길라흐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았다.

       ​

       “쓰레기 새끼…….”

       “말할 기운이 남아있나 봐요?”

       ​

       곧바로 2격, 3격이 이어졌다. 반대쪽 다리도 관통당하자 여자는 죽을 듯이 울부짖었다.

       ​

       길라흐는 오른쪽 낫으로 여자의 옷자락을 붙잡고 질질 끌었다. 두 다리의 피가 스키드 마크를 그리며 복도를 장식했다.

       ​

       여자의 눈은 죽은 동태처럼 흐리멍덩했다.

       ​

       길라흐가 혀를 쯧쯧 차대며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지껄였다.

       ​

       “이야, 이래도 정령을 안 꺼내나요? 정말로 독하군요.”

       ​

       이대로 두었다간 누가 봐도 과다출혈로 죽을 수 있는 상태였기에, 길라흐는 왼쪽 갈고리를 쳐들어 상처가 난 부위에 쑤셔 박았다.

       ​

       기절했던 여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피가래를 토해냈다.

       ​

       “하, 앗……. 아악…! 그, 만……. 제발…!”

       ​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행색과는 다르게, 왼쪽 갈고리가 들어갔다 나온 다리는 점점 아물었다.

       ​

       그믐에 해당하는 식(式).

       ​

       고속 치유.

       ​

       길라흐의 오른쪽 갈고리가 대상을 상처 입히는 갈고리라면, 왼쪽은 거꾸로 치료를 담당하는 갈고리였으니.

       ​

       치유 과정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다소 수반하기는 하지만, 상처는 말끔하게 낫기 때문에 포로 고문용으로 안성맞춤인 기술이었다.

       ​

       여자를 바닥에 동댕이친 길라흐가 삿되게 웃었다.

       ​

       “그래요, 이 정도는 버텨 주어야 가지고 놀 맛이 나죠.”

       “저질이군.”

       “이게 뭐가 저질인가요? 과거 인간들이 했던 짓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데! 흐하하하하!”

       ​

       마왕군이 포로를 대하는 방법은 대개 이러했다.

       ​

       잔인하게 고문하며 타인의 고통을 음미한다. 그러다가 못 쓸 정도로 망가지면 버리고 다음 것을 취한다.

       ​

       당장 아카샤나 로즈마리가 예전에 철병팔진에서 클라이스를 복날 개 패듯이 패고 난 뒤 끌고 갔던 것도 이와 비슷했다.

       ​

       그 자리에 있었던 자들 중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타락한 마수란 본디 그런 성정을 가지니까.

       ​

       “불쾌하다.”

       ​

       하지만 어디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

       “아무런 성과도 없는 고문을 하니 저질이라고 말하는 거다. 방금 네놈의 행동이 우리 종족에게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지?”

       ​

       마왕군에서도 이것을 아니꼽게 보는 자가 한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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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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