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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떠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건 우리는 무사히 호숫가의 오두막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몇주 만에 보는 걸까.

        ​

        내가 손수 지은 투박한 이 오두막이 이제는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오두막 근처의 흙바닥은 여전히 나와 실비아가 함께한 훈련의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

        ​

        “돌아왔네…”

        ​

        ​

        ​

        거목이 된 녹색의 여인이 내려다보는 이 자그마한 호숫가엔 여전히 한 줌의 마기도 없었다.

        ​

        나는 조금 전까지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편안한 호흡을 한숨에 섞어 내쉬었다.

        ​

        바늘로 폐를 찌르는 듯한 흉통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

        ​

        ​

        “수고했어, 고마워 피아.”

        ​

        “… 응,”

        ​

        ​

        ​

        피아는 쭈뼛거리며 내 눈을 피했다.

        ​

        실비아는 그런 피아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

        ​

        ​

        “실비아도… 고생 많았어.”

        ​

        “그래.”

        ​

        ​

        ​

        실비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한껏 치켜 올라간 그녀의 눈썹은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

        눈앞에서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성과 입을 맞추는 것이 기분 좋은 광경일 리는 없겠지.

        ​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내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

        오늘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동료를 추모하고,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간 사악한 적을 해치운 기념비적인 날이니까.

        ​

        ​

        ​

        “… 후,”

        ​

        ​

        ​

        나는 조심스럽게 앨리스 누나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뉘어 놓았다.

        ​

        새삼 다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

        그녀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귓가에서 맴돌았다.

        ​

        ​

        ​

        “몰랐어… 전혀, 생각도 못 해봤어.”

        ​

        ​

        ​

        앨리스 누나가 나를 좋아했다니.

        ​

        이 숲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언젠가 그녀와 부부가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가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

        그냥 호감 있는 소꿉친구.

        ​

        내가 그녀를 그렇게 여겼듯이, 그녀 역시 나를 그렇게 여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

        ​

        ​

        “… 그냥… 백작님께서 나를 아끼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

        ​

        ​

        당연히, 우리의 약혼도 그저 가까운 집안끼리의 정략결혼인 줄로만 알았다.

        ​

        하지만, 그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게 만든 앨리스 누나의 가냘픈 목소리가 내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지고 있었다.

        ​

        그녀의 마지막 희미한 숨소리 하나까지도 귓바퀴를 빠져나가지 못한 채 머릿속을 맴돌았다.

        ​

        ​

        ​

        ‘사랑해 애쉬…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

        ​

        ​

        ​

        앨리스 누나의 그 마지막 고백이 너무나 애틋해서,

        ​

        그리고 지금의 나로는 결코 받아줄 수 없는 마음이었기에, 

        ​

        그런 그녀의 사랑이 너무나 가냘프고 연약해서 자꾸만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

        ​

        ​

        “고생했어… 앨리스 누나…”

        ​

        ​

        ​

        나는 마지막으로 앨리스 누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

        ​

        ​

        “… 후우.”

        ​

        ​

        ​

        나는 천천히 앨리스 누나를 둔 채 몸을 일으켰다.

        ​

        그와 동시에 마리아 누나는 앨리스 누나의 시신 옆에 꿇어앉은 채 그녀의 양손을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아 놓았다.

        ​

        죽은 이가 관에 누운 채 할법한 그 동작을 보자, 새삼스럽게 눈시울이 달아오른다.

        ​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소매로 눈가를 쓱쓱 훓고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

        나와 눈이 마주친 실비아는 지그시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

        계속 보기 불편했을 텐데도 끝까지 참아준 실비아에게 한번 눈웃음을 지어준 후, 나는 내 옆에서 앨리스 누나를 들여다보고 있던 마리아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

        ​

        ​

        “누나.”

        ​

        “… 응, 왜 그래?”

        ​

        ​

        ​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

        끔찍할 만큼 쓰라린 텁텁함이 입안에 번져나가는 것 같았다.

        ​

        마리아 누나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말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

        정말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런데도 나는 말해야만 한다.

        ​

        마리아 누나 역시, 그녀의 가족이니까.

        ​

        나는 눈을 감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

        ​

        “라일라에게… 인사하러 가자.”

        ​

        ​

        ​

        ​

        ​

        ​

        ​

        ​

        ​

        ​

        *

        “… 라일라는 어땠어? 많이 귀여웠니?”

        ​

        ​

        ​

        내가 손수 깎았던 라일라의 비석을 매만지며, 마리아 누나는 그렇게 물었다.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랬겠지, 아가였을 때도 그렇게 귀여웠으니까…”

        ​

        “자라면 골드필드 영지에서 가장 예쁜 여자였을 거야.”

        ​

        ​

        ​

        누나는 죽었지만, 정령으로 부활했다.

        ​

        나는 죽어가지만, 아직 살아있다.

        ​

        세 남매 중 가장 어린아이인 라일라만이 완전히 죽어, 차가운 흙 속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어째선지 무척이나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걸까.

        ​

        마기의 영향을 막아주기 위해 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실비아는 쥐고 있던 손에 살짝 더 힘을 주었다.

        ​

        나 역시 떨리는 손끝에 힘을 주어 실비아의 손을 꽉 붙들었다.

        ​

        마리아 누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이상한 기분이네, 내가 마지막으로 본 라일라의 모습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가였는데… 이렇게 누워있다니.”

        ​

        “… 그렇… 지.”

        ​

        ​

        ​

        마리아 누나는 천천히 비석에서 손을 떼었다.

        ​

        ​

        ​

        “고생했네. 우리 남동생.”

        ​

        “… 내가?”

        ​

        “비석을 깎으면서… 마음도 깎여나갔을 게 훤히 보이는걸…”

        ​

        “아…”

        ​

        ​

        ​

        마리아 누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

        그리고는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어딘가 씁쓸하면서도 무척이나 서글픈 희미한 미소였다.

        ​

        ​

        ​

        “라일라도 그랬지만, 너도 내 기억 속에선 어리기만 한 꼬맹이였는데… 이렇게 의젓하게 자라났잖아… 죽었는데도 말이야…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야.”

        ​

        “… 나도 누나를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뻤어.”

        ​

        ​

        ​

        마리아 누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

        그리고는 천천히, 무언가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

        ​

        “애쉬.”

        ​

        “… 응?”

        ​

        “골드필드로 돌아갈 거지?”

        ​

        “… 응, 앨리스 누나를 고향에 묻어주고 싶어. 라일라의 유해도… 부모님 곁에 두고 싶고…”

        ​

        “실비아랑 신혼 생활도 하고?”

        ​

        “… 응,”

        ​

        “좋네…”

        ​

        ​

        ​

        나는 고개를 돌려 실비아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

        ​

        “물론 아직 저주는 풀리지 않았지만…”

        ​

        “마기의 영향이 남은 탓이야. 마왕도 죽었으니 호숫가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곧 나을 거야.”

        ​

        ​

        ​

        마리아 누나는 시원스레 대답해 주었다.

        ​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더니 다시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

        ​

        ​

        “애쉬.”

        ​

        “응,”

        ​

        “나는 여기 남을 거야.”

        ​

        “응…?”

        ​

        “나는 너를 따라가지 않고 여기 남을 생각이야. 애쉬.”

        ​

        ​

        ​

        그녀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

        ​

        ​

        “어째서…? 고향에 가고 싶지 않아? 부모님도…”

        ​

        “먼저 죽은 불효녀로서 부모님을 뵐 낯이 없거든.”

        ​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

        ​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숲이야.”

        ​

        “뭐?”

        ​

        ​

        ​

        마리아 누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그녀의 시선은 녹색의 여인이 박힌 호숫가를 향하고 있었다.

        ​

        ​

        ​

        “이 누운 나무 숲은 원래 그녀의 지배 아래 있었다며,”

        ​

        “녹색의 여인을… 말하는 거야?”

        ​

        “응, 녹색의 여인. 이 숲의 대 정령. 나도 정령이 되어보니 알겠어. 마기가 이렇게 들끓게 된 건 마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숲을 관리하는 정령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는걸.”

        ​

        “… 그래서, 누나가 녹색의 여인을 대신하려고?”

        ​

        “응, 어째선지 이게 내 역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

        ​

        ​

        마리아 누나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

        무언가 정령만이 알 수 있는 특별한 감각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었다.

        ​

        내가 정령 술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초연한 태도가 너무나 단호하게 보였기 때문일까.

        ​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녹색의 여인이 맡고 있던 위치를 책임지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왜지?”

        ​

        ​

        ​

        마리아 누나의 깜짝 발언에 넋이 나간 나를 대신해, 실비아는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

        ​

        ​

        “왜, 마리아 네가 그래야 하는 거야? 다른 정령이 하면 안 돼?”

        ​

        “실비아.”

        ​

        “그야, 애쉬와 너는 가족이지만, 내게도 마리아 너는 소중한 친구야. 나도 너와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고… 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

        ​

        “… 하하, 우리 같이 지내면 맨날 싸우잖아. 기억 안 나?”

        ​

        “마리아, 장난치지 마.”

        ​

        “그것 봐, 또 화내고 있네.”

        ​

        ​

        ​

        마리아 누나는 빙그레 웃더니 천천히 감은 눈을 떴다.

        ​

        그리고는 똑바로 나와 실비아의 눈을 번갈아 가며 맞추었다.

        ​

        ​

        ​

        “둘 다 나를 봐. 똑바로 서서.”

        ​

        “…?”

        ​

        “나는 마리아가 아니야.”

        ​

        “뭐?”

        ​

        ​

        ​

        마리아 누나는 화들짝 놀라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

        ​

        ​

        “나는 그저 마리아의 기억을 가진 정령일 뿐이야.”

        ​

        “아니, 누나는 분명…!”

        ​

        “애쉬. 물론 나도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와 함께한 추억을 평생 잊지 않을 테지만… 음…”

        ​

        ​

        ​

        마리아 누나는 잠시 주저하더니, 이내 곧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

        ​

        ​

        “나는 사람이 아니야. 결코 두 번 다시 사람이 될 수 없어. 결국 아예 다른 존재라고.”

        ​

        “… 사람인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해. 너는 내 친구 마리아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렇게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는 둥 이상한 생각할 필요 없어.”

        ​

        ​

        ​

        실비아는 마리아 누나의 말에 반박했다.

        ​

        나 역시 실비아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마리아 누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

        ​

        “애쉬, 그 목걸이 꺼내 봐.”

        ​

        “… 어?”

        ​

        “목걸이 말이야. 나를 정령으로 만든 그 목걸이.”

        ​

        ​

        ​

        나는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말 리스의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

        앨리스 누나가 구해온 말리스의 상징적인 유물.

        ​

        죽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는 전설을 듣고, 이 여정에서 누군가 죽을 경우를 대비해 앨리스 누나가 힘겹게 구해온 물건.

        ​

        이 신비한 유물은 죽은 앨리스 누나를 살려내진 못했지만, 마리아 누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

        마리아 누나의 마법이 마왕을 무찌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떠올려보면, 우리의 여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앨리스 누나의 손끝에서부터 이루어졌음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

        목걸이는 여전히 푸른 빛을 훤히 내뿜고 있었다.

        ​

        ​

        ​

        “이 목걸이 이상하지 않아?”

        ​

        “… 뭐가?”

        ​

        “봐도 모르겠어?”

        ​

        “…?”

        ​

        ​

        ​

        실비아는 말했다.

        ​

        ​

        ​

        “마리아… 몇번이나 말하지만 그렇게 괴롭히지 말고 그냥 말하라니까… 그리고 이것 봐, 이런 못된 버릇까지 전부 마리아 너잖아.”

        ​

        “후후, 알았어. 그냥 말할게.”

        ​

        ​

        ​

        마리아 누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

        ​

        ​

        “이 목걸이. 일회용이야. 한번 사용하면 안에 영혼을 가두고 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어. 즉, 이 목걸이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은 한명뿐인 거야… 뭐, 정령으로 만든 게 살린 거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 이해가 안 돼… 누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

        “아, 애쉬… 이 바보 같으니,”

        ​

        ​

        ​

        마리아 누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

        ​

        “말 리스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야.”

        ​

        “…?”

        ​

        “생각해 봐. 그 사람도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거야. 헤어지기 싫은 인연이 있었을 거야. 부정하고 싶은 죽음이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말리스는 사용하지 않았어. 왜 그럴까?”

        ​

        “…”

        ​

        ​

        ​

        이번엔 짓궂게 괴롭히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마리아 누나는 곧장 답을 전해주었다.

        ​

        ​

        ​

        “이걸 사용해봤자, 그건 그 사람의 기억을 가진 정령일 뿐, 그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일 거야.”

        ​

        “…”

        ​

        “애쉬, 나는 네 마리아 누나가 아니야. 실제로, 이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만약 애쉬 네가 내게 같이 골드필드 영지로 가자고 명령을 내린다면, 나는 따를 수밖에 없겠지.”

        ​

        “상관없어, 그럼…”

        ​

        “하지만, 너는 그런 나를 마리아 누나라고 인정할 수 있어?”

        ​

        “당연히 가…!”

        ​

        ​

        ​

        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

        내 명령에 충실히 움직이는 마리아 누나.

        ​

        그럼, 나는 마리아 누나를 꼭두각시처럼 이용하던 발더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

        마리아 누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그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그리고는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

        ​

        ​

        “나를 여전히 네 누나로, 네 친구로 봐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럼 더더욱 나를 여기 있게 해줘. 이게 내 선택이니까.”

        ​

        “… 하,”

        ​

        ​

        ​

        실비아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

        ​

        ​

        “그래, 알았어.”

        ​

        “실비아…”

        ​

        “역시 실비아는 이해해 줄 거라고 알고 있었어.‘

        ​

        ​

        ​

        실비아는 마리아 누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

        ​

        “얜 원래 이랬어. 애쉬. 넌 아카데미에서 마리아가 어떤 애였는지 모르겠지만, 늘 이런 식이었지. 혼자 남들보다 멀리까지 생각하고, 생각나면 그대로 움직이고, 고집은 더럽게 센…”

        ​

        “웃기시네, 고집은 네가 더 세. 실비아.”

        ​

        “어차피 정했으면, 할거잖아.”

        ​

        “히히, 맞아. 이왕 정령이 된 거, 짱 한번 먹어봐야지.”

        ​

        “… 하, 진짜.”

        ​

        ​

        ​

        마리아 누나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

        ​

        ​

        “나는 여기서 라일라가 누운 자리를 지키고 있을게.”

        ​

        “…”

        ​

        “그러니까, 애쉬. 부모님께… 잘 말해줘. 알았지?”

        ​

        ​

        ​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

        ​

        ​

        “… 알았어.”

        ​

        ​

        ​

        ​

        ​

        ​

        ​

        ​

        ​

        ​

        *

        나와 실비아, 그리고 마리아 누나는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

        나는 마리아 누나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천에 앨리스 누나를 정성스럽게 감쌌고, 실비아는 구덩이를 팠다.

        ​

        어차피, 골드필드 영지에 돌아갈 때, 시신을 함께 가져갈 것이기에 그리 깊게 파지 않은 구덩이 속에 조심스럽게 앨리스 누나를 뉘이고 흙을 덮었다.

        ​

        이로써 마왕이 사라진 첫날의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

        이제서야 참을 수 없는 피로가 온몸을 감쌌다.

        ​

        실비아 역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고되고 힘들 것이다.

        ​

        나와 실비아가 호숫가에서 가볍게 몸을 씻는 동안, 마리아 누나는 피아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나와 실비아 단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촉촉하게 젖은 실비아의 머리카락이 반짝거렸다.

        ​

        나는 내 옆에 선 실비아의 팔을 얽듯이 감싸며 그의 손을 쥐었다.

        ​

        실비아도 말없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

        이대로, 잠들 것만 같다.

        ​

        이대로 그녀의 품속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

        분명 실비아도 그럴 것이다.

        ​

        우리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 손을 마주 잡은 채 천천히 오두막으로 걸어 들어갔다.

        ​

        발걸음마다 끼익 거리는 나무의 소리마저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

        ​

        천천히 문을 열고, 그리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 그 순간.

        ​

        ​

        ​

        “엇… !”

        ​

        ​

        ​

        실비아는 순식간에 내 멱살을 잡고 밀어 넘어트렸다.

        ​

        ​

        ​

        “크윽!”

        ​

        “… 후우.”

        ​

        “시, 실비아? 이게 무슨…”

        ​

        “닥쳐.”

        ​

        “… 실비아?”

        ​

        ​

        ​

        창을 내지 않아 어두운 오두막 속에 실비아의 눈이 기이하게 번뜩거렸다.

        ​

        욕망과 질투, 그리고 한계까지 틀어막은 색욕이 꿈틀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향해 빛을 뿜어냈다.

        ​

        실비아는 그 억센 손으로 내 턱을 움켜쥐더니 엄지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천천히 훓었다.

        ​

        ​

        ​

        “…이건 내거야.”

        ​

        “알지… 나는 실비아 거야.”

        ​

        “그런데… 앨리스에 피아…”

        ​

        ​

        ​

        맙소사.

        ​

        ​

        ​

        “실비아… 잠, 잠깐, 우리 오늘 막…”

        ​

        “닥치라니까.”

        ​

        “기다려 봐… 나 진짜 너무 피곤한데…”

        ​

        “못 기다려.”

        ​

        ​

        ​

        실비아는 나를 번쩍 들어 이불 위에 내동댕이쳤다.

        ​

        오랜 시간 오두막 속에서 방치된 이불에서 곰팡내가 나는 꿉꿉한 먼지가 크게 일어났다.

        ​

        ​

        ​

        “이젠 안 기다릴 거야.”

        ​

        ​

        ​

        한쌍의 빨간 불빛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

        내 시야를 그 새빨간 두 점이 가득 채웠다.

        ​

        그와 동시에 축축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입술을 덮었다.

        ​

        옷 속으로 거친 손가락이 훅 파고 들었다.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독자분께서 1600 + 500 코인을 후원해주셨습니다.

    처음 받아보는 거금이라 깜짝 놀랐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모자란 작품에 모자란 작가이지만, 독자 여러분들 께서 조금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 너무 기쁠 것 같습니다.

    다음화는 19회차입니다.

    다음화 보기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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