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7

       아니지아니지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다.

        

       아무리 황제가 말을 저렇게 해도 나는 그 말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없다. 왜냐하면 황제는 이미 원작에서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사람이니까.

        

       ‘세계정복’을 꿈꾸던 악역이 그렇게 쉽게 자기 권력을 놓아버릴 수 있을까?

        

       ‘내 아래서 모두가 평등하면 그만’이라는 말을 하던 사람이 자기 권력을 쪼개서 평민들한테 나눠준다고? 아직 복지정책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고, 그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평민들한테? 그게 현실성 있는 소리인가?

        

       저 황제가 직접 그렇게 말하니 어째서인지 진짜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내가 봤던 문서 중에서 복지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용이 있긴 했지만!

        

       나는 절대로 믿지 않을 거다!

        

       “……그래서, 정말로 성당을 치겠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황제 폐하의 말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베라티의 증언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소리야?”

        

       “베라티는 알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요.”

        

       법국 바로 옆에 있는 벨부르 왕국의 가장 큰 성당이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지. 그곳은 법국 기준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다. 주요 성지 중 한 곳이기도 했고, 일종의 전진기지이기도 했으니까.

        

       원작에서는 소피아가 소속되었던 곳이다.

        

       “뭐, 너라면 최악의 사태도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만…….”

        

       앨리스는 침대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얌전히 있어 달라고 부탁하던 아버지의 말은 무시할 생각이라는 소리지?”

        

       나는 그 건물에서 나오기 직전에 황제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황제는 벨부르 왕국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그런 짓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었다.

        

       ……분명 뭔가 꾸미고 있으니 그런 말을 한 거겠지. 황제가 벨부르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정말로 와야 할 이유’가 아니라면 황제가 직접 여기까지 와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황제가 말해준 그 계획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정작 ‘지금’ 황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듣지 못했는데, 아무튼 뭔가 꿍꿍이가 있으니 말을 돌렸을 거라는 것 정도는 나도 떠올릴 수 있는 의심이었다.

        

       “명령은 아니었으니까요.”

        

       “명령이었어도 안 따랐을 거 아니야.”

        

       내 말에 앨리스는 머리를 감싸 쥐며 그렇게 말했다.

        

       “…….”

        

       그리고 잠깐 침묵하다가,

        

       “아무리 네가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앨리스는 그렇게 머리를 감싸 쥔 채 말했다.

        

       “그 사건 때문에 샤를로트가 보일 반응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어? 다른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너는 기억할 거 아니야.”

        

       “…….”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을 잃을 차례였다.

        

       샤를로트는…… 분명 화내겠지. 어쩌면 원작에서 왕도가 포격 당한 직후에 앨리스에게 보였던 반응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다. 기껏 친해진 소피아도 있다. 다른 애들이야 자기 나라도 아니고 내가 무슨 생각이 있으니 그런 일을 벌였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두 사람에겐 자기 조국의 일부가 파괴된 거니까.

        

       “……좋아.”

        

       앨리스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막아도 너는 어떻게든 빠져나가서 사건을 일으키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그때 내가 옆에 있는 쪽이 더 마음이 놓일 거야.”

        

       “황녀님.”

        

       내 말에 앨리스는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았다.

        

       “앨리스라고 불러. 너는 꼭 날 설득해야 할 때만 그렇게 부르더라. 야, 솔직히 말해서, 너나 나나 똑같은 황녀잖아. 어느 쪽만 더 중요할 거라는 생각은 좀 이상하지 않아?”

        

       어린 시절이었다면 내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으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앨리스였지만, 이제는 그 말이 먹히기에는 너무 자라버린 모양이었다.

        

       “내가 이렇게 마음먹은 이상, 네가 어떤 식으로 나가도 무조건 따라갈 테니까 날 설득할 생각은 하지 마.”

        

       앨리스는 딱 잘라 그렇게 말했다.

        

       “제가 일을 끝마치고 나면—”

        

       “끝마치고 나면? 어차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거고, 나는 그 사건을 기억도 하지 못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소리야?”

        

       앨리스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여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시선이었다.

        

       “헛소리 하지 마. 네가 여기저기서 뭔가 펑펑 터뜨리고 다니는 동안 불안할 나는 어쩌라고. 아니면, 지금 이 순간조차 없던 시간으로 만들 생각이야? 우리가 아버지를 찾아 떠나기 전으로 되돌려서, 이 상황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면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 아냐. 안 그래?”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앨리스는 씩 웃었다.

        

       “사실은 별로 돌리고 싶지 않은 거지? 큰 사건, 어쩔 수 없이 돌려야 할 실수라면 돌리겠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네가 지워지는 게 싫은 거잖아. 아니면 무섭거나. 그게 그건가?”

        

       앨리스의 그 말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와 함께했던 기억이 혼자만의 추억이 되는 게 싫은 거잖아. 그래서 지금도 상황을 되돌리지 않고 나를 말로 설득하고 있는 거고.”

        

       “…….”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둘게.”

        

       앨리스는 허리를 펴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 손은 허리에, 한 손은 가슴에 올리고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는 실로 위풍당당해 보였다.

        

       아주 어린 시절, 아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이던 어린 앨리스처럼.

        

       하지만—

        

       “나는 황녀이면서, 너의 자매이기도 해. 그러니 내가 도울 수 있는 한 너를 돕겠어. 네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렇게 보여도 나도 한 실력 하는 사람이니까.”

        

       —그때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면서도, 지금 그 말을 하는 앨리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

        

       “괜찮으시겠습니까?”

        

       실비아와 앨리스가 건물에서 나간 뒤 데미안과 황제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기척이 멀어져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데미안은 황제에게 물었다.

        

       “아, 내 권력에 대한 것 말이냐?”

        

       데미안의 질문에 황제가 되물었다. 데미안은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황제는 그게 침묵이 긍정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뜻은, 어느 정도는 가능성 없는 일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세상을 뒤엎는 일이니, 내 권력으로 세상을 장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겠지.”

        

       황제는 혼잣말하듯 말했다.

        

       “하지만 말이다, 데미안.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어느 순간이라도 너의 목을 확실하게 칠 수 있는 인간이, 너의 일생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혐오스럽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겠느냐?”

        

       “…….”

        

       데미안은 생각에 잠긴 듯 침묵했지만, 황제는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나의 목표는 그대로다. 나는 이 세상을 손에 넣고 싶다. 그러니 내가 실비아에게 한 말은 일종의 타협점이지. 실비아가 나를 뚫어져라 계속 보고 있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 중 하나.”

        

       황제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타협점이라는 것은 그저 타협점일 뿐이지. 그리고 그 타협점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상대에게 내보이는 타협점과 내가 나에게 내보이는 타협점.”

        

       “그렇다면, 실비아에게 하신 말씀은 전부 거짓이었다는 뜻입니까?”

        

       “완전한 거짓은 아니지. 나는 실제로 계획했으니까. 나의 총명한 딸이 그 계획이 진짜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계획이 ‘진짜’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 이건 타협점이다. 나의 계획이 실패하면 두 번째로 선택해 내 딸의 선택지를 막을 타협점.”

        

       “하지만…… 실비아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조용히 있겠습니까?”

        

       “조용히 있으면 곤란하지.”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건물 안에 있던 유일한 조명인 램프의 불을 껐다.

        

       창문을 널빤지로 막아두긴 했지만, 그 널빤지 끄트머리로 희미하게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어차피 실비아는 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것이다. 의심 많은 아이니까. 적어도 그 아이가 성당을 칠 계획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 다행이구나.”

        

       그리고 황제는 그 희미한 빛에 비친 건물의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그 뒤를 몇 걸음의 거리를 두고 데미안이 천천히 따라 올라갔다.

        

       “치려는 곳이 법국의 건물이라 다행이군.”

        

       황제는 2층 방문을 열었다.

        

       바깥으로 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완벽하게 막힌 창문 때문에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워야 했겠지만, 그 2층에는 아주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마력석이 몇 개 정도 있어서,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방안 벽에는 수많은 지도와 그 지도에 그려진 붉은 선들과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테이블에도 역시 지도가 어지러이 펼쳐지고, 그 위에는 여러 색의 핀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데미안이 수집한 법국의 정보들이었다.

        

       “만약 실비아가 내 생각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면, 반드시 이 일을 막으려고 했겠지.”

        

       황제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딸은 총명하지만, 그 총명함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 실비아는 그 ‘경험’을 아직 해보지 못한 모양이구나.”

        

       황제는 테이블로 다가가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은 채 지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 그리고, 아마도 미래로부터의 협력자도 있는 모양이고. 아직 승리할 방법은 남아있다. 계획의 순서는 조금 바뀌었지만, 어쩌면 이쪽이 더 효과적일지 모르겠군. 이런 빈틈을 지적해준 실비아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어.”

        

       희미한 불빛에 비친 황제— 아서 팬그리폰의 얼굴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