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7

       전투는 시간 싸움이다.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적의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이득의 차이로 스노우볼을 굴려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다. 우화한 적과의 전투라면 더더욱 섬세해야 한다. 

       

       이쪽이 승화급 전력이 있다지만, 상대는 무려 여신에게 빌려온 우화 능력이다. 저 『톱니바퀴 : 동결』이 어떤 효과인지 미지수인 지금, 내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복잡할 것 없이 크게 나누자면 공격과 방어.

       

       상대방이 뭔가 개짓거리를 하기 전에 목을 날려버리는 것과.

       

       상대의 능력을 받아내고, 무슨 효과인지 분석한 뒤에 카운터를 치는 것.

       

       과연 저 여신의 우화는 공격적일까, 수비적일까. 혹시 디버프를 뿌리는 계열일까? 아니면 통렬한 반격을 날리는 부류의 능력일까.

       

       쩌적쩌적. 흡사 푸르른 얼음 같은 결정이, 지금도 공간의 결을 따라서 뻗어나가고 있다. 나는 그 시각적 비주얼로부터 지독한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은 지금도 간다.

       

       나는 그 갈림길에서⋯⋯.

       

       “야, 저거 무슨 능력이냐?”

       

       “왜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까부터 아는 척 있는 대로 하고 있잖아.”

       

       알 것 같은 악신쨩한테 묻는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그녀는 흔쾌히 대답해 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 두 번 정도는 튕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순순하다.

       

       “정확히는 몰라. 내 기억은 완전하지 않으니까.”

       

       “어휴.”

       

       “⋯⋯93% 돌려주고 말하든가! 하튼, 여신은 현상 유지를 원해. ‘영원히 고요하기를’. 그것만큼은 분명해. 그래서 능력들도 하나같이 늘어지고 재미없었던 걸로 기억해.”

       

       “영원히 고요하기를, 인가⋯⋯.”

       

       여신의 우화는 이걸로 두 개째 보았다. 일전에 세션에서 타라가 사용했던 『톱니바퀴 : 항상성』과, 지금 눈앞에서 발동 중인 『톱니바퀴 : 동결』.

       

       항상성은 넓은 범위에 무제한적인 치유와 보호를 제공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게임에서 나오는 광역 버프 겸 힐링으로 받아들였지만, 현상 유지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하면⋯⋯ 피시전자의 상태를 시전 시점으로 되돌리는 효과였을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회복(回復), 이전의 상태로 돌이키는 힘.

       

       그렇다면 대사제가 시전 중인 『톱니바퀴 : 동결』도, 저 얼음덩어리로 사람을 패는 형태보다는, 무언가를 굳혀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는 형태일 확률이 높다고 보았다.

       

       방어적일 가능성이 높다면.

       

       그럼 지금 패야 한다. 가드를 완전히 굳히기 전에. 나는 화력 투사를 결심했다.

       

       “가라, 악신쨩! 가서 패!”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명령하지 마!”

       

       악신쨩은 대지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으득, 으드드득. 

       

       악신쨩은 돌진 도중에 양팔에 돋은 용린을 거칠게 뽑았다. 붉은 피가 흐르고, 그녀에게는 단단하고 사용하기 편한 암기가 한가득 생겼다. 그리고.

       

       촤자자자작-!

       

       쾌속의 묘리를 담은 투척술로 비늘을 흩뿌려낸다. 무협 세션에서 희영현을 연기할 적에 넣어 둔 정보를 알차게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어윽!”

       

       “크아악!”

       

       성서나 메이스 따위를 들고 길을 막아서던 사제들은, 몸 곳곳에 비늘이 박혀 비명을 지른다. 인간 방어선이 흔들린다.

       

       몇몇 비늘은 대사제의 급소를 노리고 쏘아졌으나.

       

       “『여신을 지키는 세 마리의 개』.”

       

       금빛의 커다란 방패가 나타나 비늘을 받아냈다. 타라가 세션에서 사용하던 신성 마법이다. 분명 코스트가 상당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멀쩡한가.

       

       나는 그 뒤로 영창을 시작하며 마력을 거미줄처럼 뻗었다. 그러나 대사제 주변으로는 마력이 도저히 나아가지를 않는다. 얼어버린 물줄기처럼 굳어버린다.

       

       광범위 마력 동결⋯⋯ 그게 『톱니바퀴 : 동결』의 효과인가?

       

       마법사를 죽이려고 작정을 한 능력이다. 방어 성능만 놓고 보면 로데루스의 마력 물질화보다 우위다. 하지만 약점은 있다. 그것도 두 개나.

       

       하나, 동결 범위는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쩌적거리면서 새파란 나뭇가지를 뻗어가고 있지만,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다.

       

       둘, 동결 범위 바깥에서는 얼마든지 마법을 쏠 수 있다.

       

       대사제의 작전은 간단하다. 동결 범위가 공간 전체를 집어삼킬 때까지 신성 마법으로 버티기. 그렇다면 이쪽은 때려서 부수면 이긴다. 

       

       마탑주의 힘을 쓰면 간단하지만.

       

       “⋯⋯지울까?”

       

       “조금만 시간을 줘요. 정보를 캐내고 싶어서.”

       

       유나데스빔에 맞으면 루팅할 정보가 싹 날아가니까, 일단은 힘을 빌리지 않고 요리해 보기로 했다.

       

       표적을 바꾼다. 대사제가 아닌, 제단에 머리를 조아리던 일반 사제들로.

       

       “『흔들리는 마음』,『정신 장악』, 『마리오네트』.”

       

       교묘한 마력이 사제들의 정신방벽에 구멍을 뚫고 넘어 들어간다. 그리고 안쪽에서 맥동하는 정신을 꽉 붙잡아, 갈고리를 걸어버린다.

       

       팽. 하고, 단단히 고정된 느낌. 손끝을 까닥여 힘을 주면, 꽉 감긴 낚싯대처럼 팽팽하게 이어진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통로는 제대로 이어졌다.

       

       고블린 잡던 시절과는 다르다. 유나 덕분에 뇌의 가용 용량도 늘어났고, 유리 구출 작전을 통해 한 발짝 나아갔다.

       

       악성 정보를 주입한 뒤에.

       

       “신앙을 부르짖으며 움직여라. 너희 거짓 선지자를 죽여, 너희들의 회개와 믿음을 보여라!”

       

       꽈악. 명령과 함께 주먹을 쥐어 단번에 휘어잡는다.

       

       키이잉-!

       

       “으, 으그아아아아-!!”

       

       “머리가, 머리가 아파⋯⋯ 이단, 내가 이단이라고⋯⋯?!”

       

       사제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흐트러졌다가, 하나둘 눈을 까뒤집고 이성을 잃는다. 악신쨩의 비늘을 맞아 팔다리가 다친 놈들도 전부.

       

       그들에게는 여신이 준엄하게 꾸짖는 환상을 보여주었다. 어째서 가짜 여신을 따라 섬겼느냐며 슬퍼하고, 너희들의 영혼은 이제 구원받지 못하여 지옥에 떨어질 것이나.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겠다는 환상을.

       

       그들은 구원받기 위해서 대사제를 죽이려 달려들었다.

       

       “회개, 회개하겠습니다 여신니이이임! 나는 저 가짜한테 속았을 뿐이에요!”

       

       “난 이단이 아니야, 나는 이단이 아니야아악!!”

       

       맹목적인 살의에 휩쓸린 인간은, 인간보다도 짐승에 가깝게 보인다. 어떻게든 한 점의 상처라도 입히기 위해, 좀비처럼 온몸을 써서 돌격한다.

       

       대사제의 보호막을 마구 때리고, 무기가 없으면 손톱이 부러져라 할퀴어댄다. 그렇게 든든한 증원군을 붙여주자 악신쨩이 성질을 부렸다.

       

       “아이씨, 미마! 이새끼들 거추장스럽다고!”

       

       “세뇌⋯⋯ 환상 마법사? 믿음이 저 대지처럼 굳건하고 흔들림이 없었다면, 고작 환상 마법에 휘둘리지는 않았을 텐데요. 실망입니다 여러분.”

       

       대사제의 눈길에 스산함이 스친다.

       

       나도, 악신쨩도 대사제로부터 공격의 전조를 읽었다. 

       

       “『여신의 창』!”

       

       금빛 가루가 모여들어 황금의 창 세 자루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나한테 두 발, 악신쨩에게 한 발 쏘아졌다.

       

       쐐애애액──!

       

       “『텍스쳐 재조립』, 『홀로그램 : 분신』!”

       

       나는 채프를 뿌렸다. 환상으로 시각-청각적 위치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버리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환상들을 쏟아낸다.

       

       윌리를 찾아서 메타로 공격을 피해내는 사이, 악신쨩은 세뇌된 사제들을 방패막이 삼아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거추장스럽다고 헬멧 안 쓰고 다니면 위험하단다. 봐봐, 세뇌된 친구들 있으니까 알차게 쓰잖아!”

       

       “⋯⋯시끄러워!”

       

       마력이 안 통하니 물리적으로 쳐야 한다. 하지만 물리적인 데미지는 신성 방패로 막아낸다. 내가 적탑이나 금탑이었더라면 암석 개틀링건 같은 걸로 데미지를 누적했겠지만.

       

       가진 게 환상 마법뿐이니까, 우회로를 어떻게든 찾을 수밖엔.

       

       ===============================================================

       

       단서는 조금 전에 보았다. 악신쨩이 비늘을 던졌을 때, 사제는 방패를 소환해서 막았다. 비늘은 『동결』의 대상 외였다. 

       

       악신쨩이 정보로 만들어진 생명체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틈새가 보인다.

       

       악성 정보를 홀로그램에 꾹 눌러 담아 물질화한다. 쉽게 부스러지는 새까만 단검, 하지만 맞으면 환상 마법이 다이렉트로 꽂히는.

       

       말하자면 단검 모양 스크롤. 여러 개.

       

       나는 사방에 정보-단검을 뿌렸다. 그리고 세뇌된 사제들을 조종해서 단검을 쥐게 하고, 돌격시켰다. 그러면서 외쳤다.

       

       “희영현! 만천화우다!”

       

       “⋯⋯또 어떻게든 꼼수를 찾았구나, 너-!”

       

       악신쨩은 신나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대사제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환상 마법사가 아니었나⋯⋯? 아니, 자탑과 금탑, 두 가지 학파를 동시에 공부한 건가요? 그런 문어발식 공부로는, 경지에 이를 수 없을 텐데⋯⋯?!”

       

       착각했다. 녀석은 이 정보-단검이 금탑의 형성 마법이라고 이해해 버렸다. 그럴 만도 하다. 물리력을 가지는 환상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을 테니까.

       

       자탑과 아카데미에서만 틀어박힌 보람이 있다. 내 이름과 능력이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아, 십중팔구는 이렇게 찌를 수 있다.

       

       열 명의 지배당한 사제가 달려들어 찌른다. 대사제는 온갖 신성 마법으로 떨쳐내고 피해를 입혔지만, 목숨을 내버리며 달려드는 인간을 단번에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

       

       공격 능력이 약한 신성 마법이라면 더더욱.

       

       그 틈바구니에서, 악신쨩은 심호흡과 함께 춤을 추었다. 바닥에 떨어진 정보-단검을 발로 차 허공에 띄우고 손으로 잡는다. 그리고 회전을 가미해서 던진다.

       

       방패에 튕겨 나간 부러진 단검을 점프해서 잡고, 실시간으로 수복해서 다시 던진다. 몸이 연신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단검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그 기예를 어찌 춤이라고 부르지 않을쏘냐. 만천화우라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훌륭한 투척술이다.

       

       그리고.

       

       “큿──?! 우읍⋯⋯.”

       

       사각으로부터 날아 온 단검 날이 대사제의 뺨을 긋고 지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악성 정보는 스며든다. 대사제의 눈이 핑 돌고, 입을 틀어막은 채로 헛구역질을 시작한다.

       

       먹혔다.

       

       롤러코스터를 동시에 열 번 태우는 멀미를 담았다. 커다란 병 속에 자신을 넣고 마구 흔드는 것 같은 느낌이겠지.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흔들리면, 단검을 막아내기란 더욱 쉽지 않아진다. 기세는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천천히 녹여서 잡는다.

       

       “그래도 생각보다 효과는 약한가⋯⋯?”

       

       “너, 나는⋯⋯! 열심히! 던지고 있는데! 너도 뭐 좀⋯⋯ 더, 해 봐!”

       

       “너만 열심히 하면 잡겠다! 내가 뒤에서 혹시 모를 증원을 막고 있을 테니까, 힘내서 사냥하자고. 파이팅!”

       

       “야-!!”

       

       대사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자신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나? 그랬겠지. 여신의 우화까지 썼으니까. 반면에 우리들은 우화의 우자도 꺼내지 않았다.

       

       경지의 차이가 있으니까 이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봐라. 나는 그까짓 우화 없어도 세다.

       

       그 멋있는 필살기, 그거 굳이 없어도 된다!

       

       “⋯⋯어떻게, 우화도 쓰지 않고. 젠장, 여신은⋯⋯ 역시 쓸모가 없습니다!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어. 망가진 여신의 힘이 부족하다면, 그분의 힘을──!!”

       

       대사제는 금접시를 집어 들었다. 잔에 담긴 여왕의 정보-액체가 찰랑인다. 그 모습을 보고 악신쨩은 기겁을 했다.

       

       “마시지마아아아앗──!!”

       

       쭈우우욱.

       

       벌컥거리며 들이켰다.

       

       비록 악신쨩에게는 수치심 공격이 치명타로 들어갔지만, 저건 의미 없는 발악이다. 여왕의 잔여물을 체내에 들인다고 갑자기 승화가 찍히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현할 리가 없다.

       

       오히려 기존 자아와의 충돌로 폐인이 됐으면 됐지. 나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대사제가 맛이 가고 나면, 천천히 머리를 뒤적여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

       

       “젠장, 막았어야지 미마!!”

       

       “뭐⋯⋯? 아니, 저거 마신다고 무슨 일이 터지지는.”

       

       “여신이 내 잔향을 알아차렸을 거라고! 나는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어 있을 테니까, 지우려고 할 거야!”

       

       알아차려? 그리고, 지워?

       

       찰칵.

       

       찰칵찰칵.

       

       등골이 오싹해진다. 척수에 냉매를 한가득 때려 부은 것 같이 소름이 끼쳤다. 어디냐. 어디서 뭐가 일어나고 있지?

       

       하늘이다.

       

       우리가 무언가 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하늘이 보였다. 이곳은 분명 지하 시설일 텐데, 눈치채고 보니 우리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신벌』이다!”

       

       그리고 저 창공으로부터 빛의 기둥이 내려왔다. 대사제의 머리 위로.

       

       콰아아아아아──!!

       

       천장과 지면이 녹으면서 가열된 공기에 의해 후폭풍이 밀려든다. 나는 강풍에 밀려났고, 체중이 가벼운 마탑주와 악신쨩은 허공에 붕 떠버렸다.

       

       “으, 으와앗?!”

       

       “막으랬지, 내가 막으랬지?!”

       

       “제기랄, 그러면 진작에 말하든가 인마-!! 마탑주님 저 잡아요!”

       

       우선 옆에 있는 마탑주를 꼭 끌어안고, 강풍에 날아가는 악신쨩의 발목을 점프해서 잡았다. 지하실 전체를 비출 정도의 광채가 이어진다.

       

       신성력은 공격력이 낮다고 생각했고, 그건 사실이지만.

       

       태양빛도 모으고 모으면 강철을 녹일 수 있듯이, 압도적인 밀도와 질량의 신성력은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빛 속에서 대사제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그런데도, 대사제는 진작에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빛의 기둥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의 조각은 이 세상에 가루도 남기지 않겠다는 마냥.

       

       다행히도 악신쨩은 표적이 아닌 모양이다. 이쪽으로도 저 무식한 포격이 쏘아질 기미는 안 보인다. 제법 가까이 있었는데도 인식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는 아예 ‘그것’ 덩어리가 있는데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승계우화의 범위 내에서 직접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야만 볼 수 있는 건가? 여신은 범위를 아주 좁게 설정해 두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그때, 뇌리에 무모한 아이디어가 스쳤다.

       

       『신벌』을 여신이 내린 것이라면, 저 빛의 기둥은 여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터다. 만약 저 기둥을 타고 올라가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면⋯⋯?

       

       나는 악신쨩을 무게추 삼아 유나에게 붙여두고, 강풍을 이겨내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미마 너 뭐 해?!”

       

       “⋯⋯이대로 아무것도 못 건지고 가면 아깝잖아!”

       

       뒤에서 유나가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 하지 마. 위험해! 다, 다칠 거야!”

       

       좀 다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신이 ‘그것’과 명백하게 적대하는 모습을 봐 버렸다.

       

       자기를 열심히 뒷담을 까도 신성력을 내려주던 자애로운 존재가, 탐지망에 ‘그것’이 살짝 걸렸다고 이런 무식한 포격을 쐈다.

       

       그 사실이 내게 희망을 품게 한다. 여신에 대해 파악하면, ‘그것’과 대항하는 데 이용할 수 있겠다고. 내 머리에서 ‘그것’을 완전히 적출해버리는 것도 꿈이 아니리라고. 

       

       그러면!

       

       그 순간 나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상한 거 건드릴 필요 없이, 유나랑 유리랑 행복하게 천년만년 살기만 하면 된다!

       

       빛기둥 앞까지 왔다.

       

       승계우화는 시전자인 대사제가 죽어서 해제된 상태고, 빛기둥은 점차 굵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여러 각도로 체크해 본 결과, 이 빛기둥에는 감지 기능이 없다.

       

       무턱대고 손 넣었다가 내 정수리로 두 번째 빔이 쏘아질 일은 없다는 거다.

       

       나는 심호흡 한 번 하고, 그 열량 덩어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앗, 뜨⋯⋯.”

       

       지지지지직. 옷이 타서 사라지고 살갗이 서서히 녹았다. 그래, 예상대로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다. 대사제는 순식간에 녹인 광선이 내게는 퍽 따뜻하게 군다.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소리고, 실시간으로 불타는 손이 아파 죽겠다.

       

       마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기둥을 타고 저 하늘로 뻗는다. 거세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

       

       뇌를 혹사한다. 마력을 삼중으로 꼬아 돌파력을 올리고, 신성력 기둥의 취약점을 파악해 최단 루트를 골라 타고 오른다. 입자 하나 단위로 연산해 파고든다.

       

       되고 있다. 어떻게든⋯⋯ 되고 있다!

       

       신체를 좀 더 깊숙이 박아 넣는다. 팔뚝, 그리고 어깨까지 깊이. 

       

       “끄으으윽⋯⋯.”

       

       지지지지직. 고기 익는 냄새가 사방에 퍼지고, 살갗이 타들어가 내부 근육의 결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닿았다.

       

       ■■■■■■■⋯⋯.

       

       복잡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암호화된 정보 덩어리가 있다. 윤곽을 채 더듬을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하다. 전체를 읽어 들이려면 10년은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일부만. 가장, 취약한 부분만 떼서 분석한다. 내게 비밀을 보여라. 뭐든 좋으니, 내가 당신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힌트를 다오.

       

       [세■■■■■구 ■■률 ■■%]

       

       조금만 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줘.

       

       [세■■■화■구 손■률 2■%⋯⋯]

       

       조금만, 앞으로 조금만 더──

       

       ===============================================================

       

       “켁!”

       

       패앵. 내 후드가 잡아당겨졌다. 목이 졸리면서 뒤로 끌려, 나는 빛의 기둥으로부터 벗어나 나동그라졌다.

       

       올려다보니 악신쨩이었다. 팔짱을 끼고 발을 구르고 있다. 왜 방해했냐고 표정으로 물어보니, 악신쨩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하나 접으면서, 내 팔을 가리켰다.

       

       참혹한 몰골이다. 언뜻 뼈도 보인다. 조금 더 넣고 있었으면 왼팔 샌즈가 될 뻔했다.

       

       그리고 또 하나를 접으면서, 내 옆을 가리켰다.

       

       “⋯⋯⋯⋯.”

       

       소리도 없이 울고 있는 유나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 말랬는데도 굳이 팔을 해 먹으니까, 슬프고 억울해서 단단히 삐진 것 같았다.

       

       지금 즉시 달래줘야 할 텐데, 경황이 없었다. 나는 방금 얻은 정보 무더기들을 조립하느라 뇌 전체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심상찮은 단어를 보았다. 낙관으로 넘기기에는 무서운 단어다. 여신으로부터 읽어낸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세■■정화■구 손상률 24%⋯⋯]

       

       [경고 : 손상률이 30%를 넘어서면 관리자 정화 단계를 이행합니다.]

       

       손상률과 정화.

       

       어쩌면 나는, 어떠한 재앙의 전조를 읽어내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가 자작자작 내리는 토요일입니다. 이런 날에는 해물파전 하나에다가 막걸리를 떠놓고 쭈욱 들이키면, 그만한 행복이 또 없지요.
    제가 수속성에 약점이 찔린다는 건 여전합니다마는, 다행히도 본격적으로 몸이 눅눅해지기 전에 연재를 완료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마이 프렌즈. 혹여 나갈 일 있으면 미끄러움 조심하시고, 월요일날 또 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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