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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다이튼은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바닷가에서는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자신이 대체 뭐라고 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너무 떨려서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것은 바로 예르나의 표정들.

     

    놀란 표정, 난처한 표정, 그리고 이내 부끄러워하는 표정.

    하나같이 머릿속에 마치 사진처럼 선명히 남은 기억들이다.

     

    ——–

     

    그렇게 더웠던 한 낮에 비해, 밤의 바닷가는 시원했다.

    노을 때문에 내리쬐는 몽환적인 조명과, 주변엔 사람도 별로 없어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그곳으로 자신과 예르나를 데려온 루크는 잠깐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자릴 비워주었다.

    고백을 하기엔 그야말로 최고의 장소와 시간이었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예르나,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들어봐.”

    “응?”

     

    그녀는 순진하게 웃으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최대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사실은 네가 좋아.”

    “……응?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예르나는 한껏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혹시나 이번에도 자신이 ‘오해’를 하지 않았나 해서.

     

    “그게 무슨 소리야? 나를 좋아한다니? 혹시 나를 상관으로써 좋아한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냐. 당연히 여자로써……. 좋아한다는 말이야.”

     

    그러나 다이튼은 담담하게 예르나에게 대답했다.

     

    “그, 잘 이해가 안되는데…….”

     

    예르나가 당황으로 허둥거리고 있을 때, 다이튼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간직하던 말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러브레터에 담다가 포기한 문장들, 마침내 마음을 구체화했음에도 도저히 전할 용기가 나지 않아 미루고 미뤘던 말들을.

    다이튼은 예르나의 자색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사실은 처음 루크 숲에 배정받았던 그 순간부터 네 생각만 했어. 그래서 네가 있는 루크 숲에 남을 수 있게 죽도록 노력한거야.”

    그 말을 듣고보니 다이튼은 루크 숲에서 훈련을 할 때에도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흐뭇하게 지켜보던 자신이 바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니? 

    “그…….”

    예르나는 다이튼의 진지한 눈빛이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자조적인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너한테는 정말로 많이 어울리지 않을 거야. 인간인 네 기준으로는 나이도 많은 편이고……. 난 싸움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해. 요리도 못하고……. 게다가 지금은 오른팔에 화상도 심해서 징그럽고 보기 흉하잖아.”

     

    아무리봐도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부분들의 집합이다.

    반면 다이튼은 어떤가?

     

    “하지만 넌 어리고 앞날이 밝아. 너는 요리도 잘하고, 몸도 좋으니까 나 말고도 다른 여자를 만날 기회가 많을 텐데…….”

     

    그녀의 말에 다이튼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몸도, 사실은 네가 좋아해줬으면 해서 운동한 거였고, 요리도 네가 좋아해줬으면 해서 배웠어. 나는 네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그리고 넌 나한테는 충분히 멋진 여자야. 그러면 나랑 사귀어줄 수 있겠어?”

    다이튼은 결연한 표정만큼이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에 반해, 예르나의 표정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그, 그랬어……?”

     

    예르나는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고개를 내렸다.

    엘프 특유의 길쭉한 귀는 이미 새빨개져서 밑으로 축 처진 상태다.

    하지만 좀체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예르나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한 다이튼은 예르나의 반응 하나하나에 가슴을 졸이다 문득 루크가 자리를 비운 방향을 흘깃거리는 예르나의 시선을 알아차렸다.

     

    “혹시 루크 때문에 고민하는 거야?”

    “…….”

     

    예르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루크와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많은 정이 들어, 이미 루크와 함께 사는 삶외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은 루크의 보호자라는 관계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다이튼은 23살. 그런데 10살짜리 딸이 생긴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이튼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난 너를 위해서라면 루크의 보호자도 되어줄 수 있어.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노력할 수 있어. 정말이야.”

    “뭐?”

     

    예르나는 깜짝 놀라며 묻는다.

     

    “그, 그게 정말이야?”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어. 아니, 오히려 바라던 바야. 예르나.”

    “……?”

     

    한 발 늦게 다이튼의 말을 이해한 예르나는 숨을 들이켰다.

     

    “……!”

     

    자신이 루크의 보호자가 되는 것을 바란다는 것은, 자신과 ‘결혼’을 하는 것을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들어오던 프로포즈?

    다이튼이 말을 끝맺는 순간, 일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완벽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자주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천천히 다가가 입을 맞추…….

     

    “잠깐, 다이튼.”

    “…….”

     

    ……지 못했다.

    자신의 입술을 가로막은 무언가의 탓이다.

     

    바로 예르나의 오른손 검지손가락.

     

    다이튼은 이내 그것이 거절의 의미라고 생각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다이튼은 자신의 입술로 전해지는 화상으로 인해 울퉁불퉁한 손가락의 감촉에 참담한 심정마저 느꼈다.

    마치 그 화상이 그렇게 자신을 갈라놓은 것 같아서.

     

    하지만 예르나는 부끄럽게 다이튼의 시선을 피하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나 이런 건 완전히 처음이니까……. 천천히, 하나씩 하자.”

    “하나……씩?”

    “응, 그러니까…….”

     

    예르나는 당황하는 다이튼에게 화상이 없는 왼 손을 건네며 말했다.

     

    “손부터…….”

    “……아, 알겠어! 미안!”

     

    ————

     

     

    루크는 자신의 공책에 마법 수식을 주르륵 적어내리며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바로 검은 화염에 대한 연구다.

     

    주 계산은 머릿속에서 암산으로 처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으로 노트에 적어가며 보조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일식, 빛을 잡아먹는 어둠.

    검은 화염과 어둠.

     

    수수께끼 같은 흑마법과 그 아티팩트의 작동방식…….

    어느정도 이해는 했다.

    하지만…….

     

    ‘역시 마력시가 없으면 어려운가.’

     

    “하아.”

    루크는 계산과 아이디어 메모가 가득한 노트 몇 권을 내려다보며 답답한 심정을 담아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직접 계산을 돕기 위해 개발한 문자나 기호들을 총 동원해 최대한 그 길이를 단축한 결과임에도 이만한 분량이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이만한 노력을 들이부었다면, 일반적으로 자신은 원하던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도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 했다.

     

    검은 화염에 대한 실험적인 이론은 대부분 정리가 끝났지만, 자신의 마법적 계산을 보조하는 마력시가 없으니 역시 검토가 쉽지 않다.

     

    결국 마력시를 하루빨리 회복시키는 것이 최선.

     

    “답답하군.”

     

    루크는 안대를 쓰다듬으며 그 너머에 있을 마력시가 회복되기를 소망했다.

     

    오래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서클이 안정화 된 이후, 하루가 다르게 서서히 통증이 줄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느껴지고 있으니까.

     

    ‘이제 며칠 안 남았어.’

     

    며칠 뒤면 이제 자신은 연구를 속행해 검은 화염에 대한 검증된 완전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그리하면 어쩌면, 예르나의 화상을 낫게 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방법이 없다.

     

    결국 루크는 테이블 위에 노트를 던져 놓고는 소파 위에 누워버렸다.

    냉기가 인챈트되어 푹신하면서도 시원한 소파는 그냥 엎드려만 있어도 나른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대로 자버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미 파이리스는 옆에서 자고 있었고 말이다.

     

    “음먕……. 히히, 아직 더 먹을 수 있어…….”

     

    파이리스는 또다시 꿈틀대며 자세를 바꾸었다.

    잠꼬대로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꿈에서 무언가 맛있는 거라도 먹는 모양이다.

    루크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대체 꿈에서 무엇을 먹는 것인지 궁금하군.’

     

    나중에 깨어나면 물어볼까 생각하고 있을 때쯤, 예르나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루, 언니 왔어!”

    “아, 언니. 오셨어요?”

    “……응!”

     

    예르나는 루크의 대답에 감동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 둘이 있을 때는 가끔 ‘언니’라고 불러주겠다고 하던 루크다.

    이게 집에 들어올 때마다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모른다.

    ‘언니’라는 호칭만큼 루크와 많이 가까워 진 것 같아서.

     

    반면 루크는 그저 자신의 ‘어린아이’ 모습이 그만큼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적어도 예르나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혼절하지 않을 정도로는 말이다.

     

    ‘좋아, 이 정도라면 여차할 때 어린아이 흉내도 써먹을 수 있겠군…….’

     

    사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법사의 특성상, 상대가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지어내는 것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가끔은 날카롭게 의표를 찌른 질문을 못 들은 척 행동을 보여야 할 때나, 거짓으로 상대에게 자신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때에는 말이다.

     

    그런 때에 어린아이의 흉내가 능숙하다면 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더욱 넓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천진난만함을 가장하여 타인에게 간단히 호감을 살 수도 있겠지.

    대부분의 성인들은 아이들의 모습에 약하니까.

     

    그것은 특히 이 시대에서 많이 느낀 부분이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이 확실한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세상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었으니.

    그런데 완벽히 어린아이의 흉내까지 낼 수 있다면, 그 호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단순한 핑계거리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행동의 가짓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다름이 없다.

    최소한 예르나는 이 말투를 굉장히 좋아하고 있으니까.

    당장의 쓸모는 있는 셈이다.

     

    루크는 예르나의 표정을 보고선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데이트는 즐거우셨나요?”

     

    예르나는 루크의 단어선정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으음……. 응. 재미있었어.”

    “어딜 가셨는데요? 이 짐은 다 뭐죠?”

    “아, 그거 말이지!”

     

    예르나는 그대로 쇼핑백에서 하얀 색의 무언가를 꺼내들어 그것을 자신의 몸에 대면서 말했다.

     

    “루크, 이번에 너랑 비슷한 옷으로 하나 샀어! 어때?”

    “그, 그건……? 어째서 저와 같은 옷을?”

    “응, 이걸 입고 같이 다니면, 누구든 우리를 가족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리고, 검은 장갑이랑도 되게 잘 어울리더라구!”

    “아.”

     

    검은 장갑, 그것은 그녀가 화상을 숨기기 위해 외출을 할 때 자주 착용하는 가죽장갑이었다.

    루크는 그녀가 그런 옷을 골랐던 이유가 오른손의 화상을 숨기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어? 왜 그래? 별로 안 어울리니? 다이튼은 분명 괜찮다고 했는데…….”

     

    예르나의 당혹스럽다는 반응에, 루크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내며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굉장히 좋아 보여요…….”

     

    루크는 예르나의 오른 손에 새겨진 낙인, 검은 화염으로 일어난 화상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예르나가 입은 저 화상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다.

    자신이 시설의 이상한 낌새에 너무나 안일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그리고 서드에게서 시설에 대해 말을 듣고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다못해, 자신이 예르나를 더욱 빨리 찾아낼 수 있었다면, 그녀는 그토록 심한 화상을 입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 화상은 루크에겐 일종의 죄책감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화상을 낫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한가지.

    검은 화염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 뿐이다.

     

    루크는 테이블 위에 던져뒀던 공책을 집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마력시가 없어서 할 수 없다고?

    제대로 된 관측장비 없이는 마법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자신은 대체 언제부터 스스로 한계를 걸어 놓고, 절대로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나?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명히 생각하는 것이라도, 시도는 계속되어야한다.

    그 마음가짐 덕분에 최종적으로 용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일컬어지던 이계의 마왕까지 토벌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헌데 그것조차 못한다고 포기해버리면, 어찌 자신을 대마법사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크의 모습에 당황한 예르나가 묻는다.

     

    “어? 루크, 갑자기 어디가?”

    “공부하러 가요. 언니, 당분간 저를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으응, 그래……. 공부 열심히 해.”

    “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말 없이 하루 휴재를 해버려서 죄송합니다.

    작가가 ㄹㅇ 찐 아싸다보니 고백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해서 글이 진짜 너무나 안 써져서 전부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제시간에 업로드하지도 못했네요.

    그래도 쓰다보면 될 줄 알았는데 하루동안 안되네요….

    진짜 그냥 맥거핀으로 남겨두고 짜쟌~ 아무튼 사귐 ㅅㄱ로 넘어가버릴까, 싶었지만….
    역시 그러긴 좀….

    그리고 이건 제 최선입니다.

    하….

    현탐오네…

    쟤들 그냥 헤어지면 좋겠다….(물론 농담)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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