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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이 무슨…!”

       “이미 결계 안에 있었다는 건가…!”

       

       황실 기사단은 즉시 검을 뽑아 들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제길. 완전히 포위됐군.”

       

       상황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가고일, 싸이클롭스 같은 기본 체급이 강한 마물들부터 덩치는 작지만 머릿수로 승부하는 변종 리자드맨이나 머드맨 같은 마물들이 빼곡히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더 문제는 놈들이 죄다 마기를 두르고 있다는 거지.’

       

       그냥 싸워도 빡센 놈들 여럿이 마기까지 두르고 있으니, 아무리 황실 기사단이라고 해도 단칼에 베어 넘기기는 힘들 터.

       

       ‘서포트를 잘 해줘야겠군.’

       

       나는 품에 안긴 아르를 내려다보았고, 동시에 아르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나와 아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자, 아르야.”

       “쀼웃!”

       

       아르는 단숨에 내 어깨로 팟, 뛰어올라 섰고.

       나는 스킬 공유 셋팅을 파이어 브레이슬릿의 강화 효과를 받을 수 있는 화염계 마법 셋팅으로 맞추었다. 

       

       내 시야가 닿는 곳은 내가 직접, 내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은 아르가 지원 사격을 날려 줄 것이다. 

       

       웬만하면 내가 페이크 영창을 하겠지만, 상황이 급박하다면 그냥 아르가 따로 마법을 쓰게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상황이 급박할수록 황실 기사단 측이 내 쪽을 신경쓸 여유도 없어질 거기도 하고…. 어차피 이번 지부에서 마왕을 상대할 때 아르의 정체를 밝힐 예정이니까.’

       

       설사 누가 이상하게 여긴다 하더라도 대충 얼버무리고 빨리 마왕 잡으러 가야 된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아아압!”

       

       레키온은 방금 결계를 한 방에 깨부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사그라들지 않은 신성력을 두른 채 망설임 없이 전방으로 뛰어들었다. 

       

       “하앗!”

       

       데보라와 실비아도 레키온의 양옆으로 흩어져 전선을 구축했다. 

       그리고 나머지 영역을 황실 기사단이 맡았다. 

       

       순식간에 형성된 전선은, 가운데에 나와 아르를 둔 채 원형으로 빈틈 없이 둘러싼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 귀족 대우구만. 역시 마법사야. 판타지 세계관 전통의 접대 직업!’

       

       용사와 황실 기사단에게 호위를 받는 마법사라니.

       이런 대우를 과연 누가, 어디에서 또 받아 보겠는가. 

       

       이럴 땐 괜히 단검 들고 설치는 것보다 얌전히 가운데에서 아르와 함께 마법을 쓰는 데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낫다. 

       

       “파이어 레인!”

       

       화염 마법을 보조해 주는 파이어 브레이슬릿에서 붉은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하늘에서 불덩이들이 생성되었다.

       

       ‘유물의 특수 효과를 발동하면 메테오 스웜 같은 것도 쓸 수 있긴 하지만, 이건 지금 쓰기엔 아깝지.’

       

       원래 순수 내 마력만 가지고 소환했다면 삼십여 개에 그쳤을 불덩이들은, 이드밀라의 유물인 파이어 블레이슬릿의 효과 덕에 거의 백여 개에 달할 정도로 불어났다.

       

       그리고.

       파바바박!

       

       불덩이들은 레키온과 데보라, 실비아가 있는 방향의 마물들 머리 위에 내리꽂혔다.

       

       “나이스, 레온 씨!”

       

       굵직한 놈들에게는 아쉽게도 큰 효과가 있진 않았지만, 파이어 레인은 애초에 그런 놈들을 주 타깃으로 한 마법이 아니다. 

       

       “푸에엑!”

       “푸억.”

       “츠으으….”

       

       물량을 담당하고 있던 자잘한 마물들은 불덩이를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놈들 역시 마기를 두르고 있긴 했지만, 저 정도 체급의 마물들은 내 광역 마법으로도 충분히 마크할 수 있다.

       

       ‘좋아. 그럼 이번엔 아르 차례다.’

       

       대충 상대에 맞춰서 라이트닝 체인 같은 걸 쓰면….

       

       “쀼—.”

       “블리자드… 필드!?”

       

       아니, 블리자드 필드를 여기서 쓰네.

       

       일반 블리자드보다 더 강력한, 빙결계 광역 마법 중에선 거의 최고위급 마법인데….

       

       후우우우욱!

       

       “쀼우우웃!”

       

       아르가 블리자드 필드를 발동하자마자 한파가 마물들을 덮쳤고.

       황실 기사단 쪽에 있던 마물들의 동작이 삽시간에 굳었다. 

       

       파츠츠츠츳—

       

       변종 리자드맨 같은 자잘한 마물들은 그대로 완전히 얼음덩어리가 되었고, 거대한 마물들은 몸에 두른 마기를 이용해 최대한 저항하려 했다.

       

       쩌저적, 쩌저적!

       

       얼었던 신체에서 쩌적 소리가 나며 가까스로 동작이 이어지는 듯했으나.

       

       “하아아압!”

       “틈을 놓치지 마라!”

       

       황실 기사단은 이미 놈들에게 도약한 뒤였다. 

       

       촤아아악!

       

       ‘와…. 뭔데? 개 멋있네.’

       

       슬쩍 뒤를 돌아본 나는 황실 기사단의 합동 공격에 입을 떡 벌렸다. 

       

       블리자드 필드가 덮쳐 오는 걸 보고 황급히 커다란 날개로 자신을 감쌌던 가고일.

       

       ‘가고일은 저렇게 방어 태세에 돌입하면 피해 감소 50퍼센트라는 사기 버프가 생기지.’

       

       하지만 커트 브륀은 가고일의 날개가 겹쳐진 부분이 약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검끝에 마나를 담아 약점 한가운데를 찌른 후 몸을 반 바퀴 틀며 위로 휙 그었고.

       

       그로 인해 생긴 균열을 놓치지 않은 소대원들의 검격이 차례로 날개를 도륙냈다. 

       

       촤아아악! 촤악!

       

       언뜻 아무렇게나 벤 것처럼 보이는, 서로 다른 각도에서 차례로 지나간 검격.

       

       하지만 그 검격들은 마치 잘 짜여진 매듭처럼, 마지막 순간에는 완벽하게 가고일의 방어벽을 벗겨 냈고.

       

       맨 처음 가고일의 방어벽에 균열을 만들었던 커트 브륀의 검끝은, 수미상관을 이루듯 첫 공격과 같은 경로로 날아가 가고일의 심장에 꽂혔다. 

       

       ‘진짜 간지 X되네.’

       

       황실 기사단의 ‘소대’ 개념은 일반 기사단의 분대 및 소대 개념과 조금 다르다.

       

       물론 일반 기사단의 소대도 평소에 역할 분담을 하고, 기본적인 전술 전략을 소대장의 지휘 하에 구사하는 건 맞다. 

       

       ‘하지만 황실 기사단의 소대는 단순한 소대 이상으로 끈끈하고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지.’

       

       다른 소대처럼 인사 이동이 활발하지도 않고, 거의 한 번 발령된 소대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최소 십 년 이상은 활동을 하게 된다. 

       

       게다가 다른 기사단처럼 여러 소대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한 소대 자체가 기사단급의 무력을 갖춘 소수정예이다 보니 그들끼리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전술 전략, 그리고 합동 공격을 펼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걸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실용성과 낭만을 전부 챙긴 연계를 보고 나니 그간 레키온의 화려한 신성력 연출에 가려져 있던 ‘황실’ 기사단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차,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레키온 쪽에 지원 사격을 해 줘야….

       

       “흐아아압!”

       

       촤아아아아악!

       

       …어. 혹시 필요 없나?

       

       일부러 레키온이 있는 쪽은 내가 지원하고 황실 기사단이 있는 쪽은 아르가 지원해서 밸런스를 좀 맞추려고 한 건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레키온은 혼자서 엄청난 힘으로 마물들을 쓸어 버리고 있었다. 

       

       촤아악!

       촤악!

       

       ‘저건…. 홀리 블레이드 3단계…?’

       

       그냥 ‘신성력이 담긴 검’을 넘어서서, 이제는 신성력 그 자체로 검신의 형태를 이루어 더 넓은 범위의 적을 베어 버릴 수 있는 단계.

       

       ‘스토리 전개 상 아직 저걸 쓸 수 있는 단계가 아닐 텐데…?’

       

       그간 하무트교를 토벌한 것까지 고려하더라도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성장이었다. 

       

       ‘아. 설마 지금까지 여기로 진격해 오면서 신성력 스탯이 대폭 오른 건가?’

       

       자이언트 앤트부터 시작해, 우리는 며칠 동안 하무트교가 시간을 끌기 위해서 마기를 잔뜩 주입해 놓은 마물들을 싹 쓸어 가면서 전진했다. 

       

       ‘정말 거의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 버렸지.’

       

       솔직히 이건 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거 아닌가 싶은 곳까지도, 그리고 이 정도면 파메라 기사단이 파견 나와서 충분히 막겠다 싶을 정도로 소규모라도, 레키온은 꼼꼼히 토벌을 하고 지나가는 것을 택했다.

       

       ‘하무트조차도 이렇게까지 레키온이 꼼꼼하게 제거하고 오리라곤 생각 못 했을걸.’

       

       이 정도면 오히려 하무트가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튼.

       

       ‘사실 마물 경험치 자체는 그렇게 막 폭렙을 할 정도로 들어오진 않았어.’

       

       나랑 아르도 레키온과 함께 마물을 잡으며 소소하게 레벨업을 했지만, 통곡의 레벨인 79는 아직 돌파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키온이 가진 「신성력」 스탯은 다르지.’

       

       신성력 스탯은 ‘마기’를 가진 대상을 처치할수록 잘 오르는 스탯.

       

       그리고 오는 길에 처치한 마물들은 전부 하무트교가 주입한 마기를 품고 있었다. 

       

       ‘그걸 싸그리 싹싹 긁어모아 죄다 토벌했으니, 신성력 스탯이 저렇게 폭발적으로 오를 만도 하지.’

       

       게다가 레키온은 아르의 멘탈 케어를 받은 이후로 몸놀림도 훨씬 가벼워졌고, 체감상 용맹함도 배가 된 느낌이었다. 

       

       “뭐, 뭐야. 레키온 너, 또 강해졌어?”

       

       옆에서 진지하게 싸우던 데보라조차도 어이가 없어 잠시 검을 멈출 정도.

       

       결국 앞쪽은 나의 지원 사격을 거의 받지 않고도 레키온이 혼자 3인분 이상을 한 덕에 쓸려 나갔고.

       

       뒤쪽은 아르의 마법 폭격과 황실 기사단의 현란한 호흡으로 마무리되었다. 

       

       “후우….”

       

       레키온은 신성력에 의해 바스라진 마물들의 잔해를 내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아르를 바라보았다. 

       

       “아르야, 삼촌 어땠어? 잘 싸웠니?”

       

       아르도 간만에 신나게 마법 폭격을 하고 난 뒤라, 레키온을 따라 작은 손등으로 이마를 닦는 시늉을 했다.

       

       “쀼우웃!”

       “완전 멋있었다네요.”

       “정말? 하하핫! 아르도 고생했어. 아까 블리자드 필드? 그거 엄청 멋있었….”

       

       그렇게 말하던 레키온은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일순 침묵이 감돌았다.

       

       “……?”

       “……?”

       

       나와 실비아, 데보라, 그리고 장본룡인 아르도 눈알을 데룩 굴리며 슥 눈치를 보았고, 황실 기사단은 고개를 갸웃했다. 

       

       레키온은 곧바로 외쳤다.

       

       “…는데 레온 님이 그걸 제때 쓰도록 브리핑해 준 아르도 고생했지. 암, 그렇고말고. 하하하하하!!”

       “…….”

       “…….”

       “자, 얼른 갑시다! 이번 결계만 봐도 놈들이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레키온은 그렇게 말하고 어느새 모습이 드러난 지부를 향해 먼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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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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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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