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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아리아는 시녀들을 동원해 올리비아를 찾도록 했다.

         

       “백발 벽안이고, 내 또래의 여자아이야. 이름은 올리비아고.”

        “그러니까, 열 살이란 말씀이시죠?”

       “……응.”

         

       그 말을 한 뒤 시녀들은 곧바로 아리아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섰다. 그들이 보기엔 하루 종일 침대에서만 뒹굴거리던 황녀가 처음으로 또래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었으니까.

         

       ‘……많이 약해졌구나.’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제 몸은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한 번 잃어버린 마력까지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아마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겠지.’

         

       수천 개의 세계선을 한 번에 넘어온 대가는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영혼이 크게 손상되었고, 진리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편린만 남았구나.’

         

       얕게 떨리는 손 끝에, 한 줌의 마력이 모였다.

         

       츠츳…….

         

       자그마한 황금빛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작고 아담했다.

         

       앞으로 제대로 된 마법은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꾸욱.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까운가?]

         

       황제의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일평생 쌓아온 모든 것을 잃었지 않느냐.]

         

       황녀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깝지 않다.

         

       아리아는 기어이 웃음을 품었다. 슬픈 웃음도 아니었고, 안타까운 미소도 아니었다. 성공했다는 기쁨과 두근거림이 오롯이 담긴 미소였다.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다. 작금의 풍경이 한낱 미몽에 불과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어.’

         

       황제에게 전해들었다. 마신의 불멸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숙주를 선정하는지. 만약 자신이 힘을 온전히 가지고 이 세계로 떨어졌다면, 올리비아가 만들어낸 완벽한 결말에 누를 끼쳤을지도 모른다.

         

       때론 상실이, 성공했다는 증표가 되어주는 법이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해도 괜찮다. 올리비아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그 외에도 끝도 없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심장 안에서 울컥거리는 것들이 솟아올랐다.

         

       “……다행이다.”

         

       아리아는 양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감정들이, 일제히 눈에서 쏟아져나왔다. 참으려고 했지만, 도무지 참아지지 않았다.

         

       “끄윽.”

         

       성공했다. 7년간 뒤를 돌아보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끄으윽……끄으읏…….”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이렇게라도 사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리아는 너무나도 감사했다.

         

         

       *****

         

         

       “황녀 전하! 찾았습니다!”

         

       그 소식이 들려온 건 이 세계에 떨어지고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아리아는 곧바로 황궁 바깥으로 나갔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마차를 타고 사흘 동안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것은 제국 외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초보 모험가들과 그들을 등쳐먹는 왈패들. 그 외에도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모인 도시였다.

         

       그나마 외곽은 제대로 된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지만, 치안은 절대로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리아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체 썩는 악취. 그 악취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행인들.

         

       이런 곳에서 올리비아를 찾았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

         

       사방이 부랑자요, 범죄자였다. 아리아가 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 때였다. 누군가 발을 질질 끌면서 아리아에게 다가왔다.

         

       “의뢰인이쇼?”

         

       입에서 끔찍한 악취가 풍긴다. 하지만 아리아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대신, 시녀에게 넘겨받았던 증표를 꺼냈다. 얼굴이 검버섯으로 가득한 늙은 거지는 한참동안 증표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어려 보이는데……호위는 있수? 우리같이 못 배운 놈들은 귀족 나리고 뭐고 대우해줄 줄 몰라서 말이오.”

       

        아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보호용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그렇다면 말이 되지.”

         

       거지는 끌끌 웃으며 길을 안내했다. 거지가 등을 돌리기 무섭게, 구석에 처박혀 있던 부랑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사라진다. 처음부터 모두가 한통속이었을 것이다.

         

       아리아는 말없이 그를 뒤따랐다.

         

       “도착했소.”

         

       습기가 가득 찬 어느 이름모를 지하실.

         

       축축한 물기 사이에 곰팡이가 가득하고, 문신으로 가득한 왈패들이 문지기로 서 있는 철장 한 가운데.

         

       “아…….”

         

       한 소녀가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은 새하얀 머리칼. 반쯤 풀린 눈 사이로 보이는 푸른 동공.

         

       올리비아였다.

         

       “저 정도 미색이면 못해도 만 골드는…….”

         

       흠칫, 스치는 살기에 노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셔야…….”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노인은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

         

       처음에는 할 짓 없이 돌아다니는 귀족 아가씨인줄 알았으나, 그 푸른 눈에 담긴 것은 그런 하찮은 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올리비아에게 무슨 짓을 했지?”

         

       피부를 저며내듯 서늘한 음색.

         

       그 시린 망막에 비치는 감정은, 살의 뿐이었다.

         

       꿀꺽.

         

       노인의 목에는 어느새 날카로운 단도가 겨눠져 있었다. 문을 지키고 있어야 할 왈패들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언제부터?

         

       겉보기에는 별 볼일 없게 생겼어도, 그들의 실력은 평범한 왈패가 아니었다.

         

       도둑 길드에서 직접 관리하는 곳이니만큼, 엄선된 실력자들만 관리직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당장 노인 자신만 하더라도, 평범한 기사 둘 셋 정도는 가볍게 암살할 수 있는 실력자였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자들은 아예 격이 달랐다.

         

       “전하의 물음에 답하라.”

       

       마치 판결하듯 고하는 말에, 노인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긴장을 느꼈다.

         

       ……전하?

         

       두뇌가 미친듯이 회전한다. 눈 앞에서 살기를 뿜어내는 존재가 제국의 황녀였다는 사실을 도출해내기 무섭게, 날카로운 단도가 살갗을 얕게 파고든다.

         

       “부, 분명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

       “저, 정말입니다! 원래 미색이 저 정도로 빼어나면 몸에 가벼운 상처 하나만 있더라도 가격이…….”

       “…….”

       “대, 대들기에 몇 대 패기는 했지만……!”

         

       뚜둑.

         

       “꺼, 꺼어억…….”

         

       그 순간, 노인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목이 꺾여버린 것이다.

         

       아리아는 그런 밤까마귀들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깥에 외출했던 그 순간부터, 이들이 따라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열쇠를 집어, 철장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올리비아의, 숨소리가 가늘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바닥에서, 올리비아는 피를 흘리고 있다. 혈향이 자욱했다.

         

       “어어…….”

         

       그만큼 아리아의 손바닥이 끈적해졌다.

         

       멍 투성이다.

         

       세계가 자신과 멀어지는 것만 같다. 귀가 멍해지고, 걸음을 내딛기가 어렵다.

         

       “어……. 어어어어……. 아아…….”

         

       미친듯이 떨리는 손을 억지로 부여잡고, 간절히 올리비아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새하얗게 질려 있는 것으로 모자라, 차갑다.

         

       아직 숨은 쉬고 있지만, 그 뿐이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리아의 턱이 떨렸다. 얼마나 과거로 와버렸는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것은 올리비아의 ‘처음’이었다.

         

       뒷골목 지하실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그녀에게 예정된 결말이었던 것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올리비아의 0회차.

         

       그것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폐가 망가져 있습니다.”

         

       밤까마귀가 올리비아의 입가를 보며 말했다.

         

       “폐 뿐만이 아닙니다. 뼈와 장기도……망가져 있습니다.”

       “……망가져?”

       “네. 쉼없이 구타당했던 모양입니다.”

       “아직……아직 살아 있잖아.”

        “……예.”

       

       살아만 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였다. 밤까마귀는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정신력으로 생을 연명시키고 있습니다.”

       “포, 포션. 나……나한테 포션이 있어.”

       

        아리아의 품에서 새빨간 포션이 튀어나왔다. 밤까마귀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재생하는 도중에 쇼크로 죽어버릴 것이다.

         

       설령 황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엘릭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올리비아는 너무 어렸고, 너무 여렸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사제를 찾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아니야.”

         

       아리아는 천천히 자신의 몸이 기우는 것을 느낀다.

         

       쨍……!

         

       깨진 유리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간다.

         

       이렇게 끝난 것인가?

         

       세계선을 넘어 처음에 도달했는데도, 도와주는 것조차 할 수 없단 말인가?

         

       “황녀, 전하.”

       “…….”

       “황녀 전하……? 옥체가 상하셨습니다. 속히 궁으로 되돌아가셔서…….”

         

       아리아는 말 없이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이대로 되돌아가야.

         

       ……되돌아가?

         

       두근, 아리아의 심장이 뛰었다. 그녀는 발발 떨리는 손으로 올리비아의 손을 붙잡은 다음 맥을 짚었다.

         

       아직 뛰고 있다.

         

       살아, 있다.

         

       당장이라도 끊길 것처럼 희미했지만, 아직은 살아 있다.

         

       아리아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올리비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희미하게 뜨여 있는 벽안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일 뿐.

         

       올리비아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었다. 다른 이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 오직 자신만이, 시도할 수 있는 방법.

         

       “…….”

         

       올리비아의 회귀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었다.

         

       빛의 여신의 축복이었는지, 또다른 악신의 저주였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나였구나…….’

         

       나였다고, 아리아는 생각했다.

         

       아리아는 거친 숨을 들이키며 올리비아를 끌어안았다.

         

       이제 영원히 만지지 못할 것을 알기에, 닿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으로 욕심을 부려보는 것이다.

         

       미안해.

         

       이런 짓을 해서 미안해.

         

       너를 이렇게 허무히 떠나보낼 수 없는 내 욕심이니까.

         

       전부 다 내 잘못이니까.

         

       그러니 죽지 말아줘.

         

       “끄으…….”

         

       이제는 흐느낌보다는 경련에 가까웠다.

         

       가까스로 틀어막은 입에서 다시금 막아 놓은 감정이 터져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내 잘못이었다.

         

       네 고통의 시작도, 끝도.

         

       전부 나로 인해 비롯된 일이었다.

         

       아리아는 다시금 터지려드는 울음을 억지로 짓눌렀다.

         

       “……잘가.”

       

       그리고 여태껏 쌓아왔던 모든 것을, 올리비아의 심장에 새겨 넣었다.

         

       오성을, 재능을, 통찰을.

         

       그리고 회귀(回歸)라는 마법을.

         

       츠츠츠츳……!

         

       올리비아의 몸이 황금빛에 잠겨들수록, 아리아의 몸은 무거워져만 갔다.

         

       고개를 들기가 버겁다.

         

       아리아는 마지막으로, 올리비아의 벽안을 응시했다. 입술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저지를 모든 짓은, 다 내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그러니까,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언제나, 악역은 자신이었다.

         

       “……황……!”

         

       옆에서 밤까마귀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아는 올리비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시간이.

         

       숨소리가.

         

       눈의 향기에 파묻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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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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