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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화룡무인의 세상에 달이 피어나고 현실의 세상이 새벽의 침묵을 새기고 있을 시간.

       

       설아는 여느 때처럼 화산의 부지 한 곳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최근 그녀의 일상은 화룡무인에서 시작해 화룡무인에서 끝을 맺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충 밥을 입 안에 쑤셔 넣은 후 게임에 접속해 무의 이치를 수련하다 잠에 빠지는 나날.

       

       누가 본다면 정신병원에 박아버릴 듯한 일상이었지만 설아는 여기에 그 어느 때보다 만족하고 있었다.

       

       무의 이치에 관해 배우고 있는 지금 설아는 자신이 바라던 목표에 다가서고 있단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어릴 적 방문 바깥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 졌던 때에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무협소설.

       

       그 어떤 시련조차도 자신의 무를 가지고서 해쳐나가던 무인에 대한 동경.

       

       그를 직접 이루기 위해 들어오게 된 화룡무인의 세계.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던 나날.

       

       점점 작아지는 목표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영상으로 만들어내며 자존감을 채우던 와중에 마주하게 된 그녀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고 있는 존재.

       

       무언가에 홀린 듯 따라가게 된 그 사람의 발자취.

       

       그 끝에 배우게 된 무의 이치.

       

       설아는 화령의 아래에 들어와 화산에서 무를 수학하게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영상 편집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가 영상을 만드는 데에 빠지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직접 이상을 실현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니.

       

       저 먼 곳이지만 이상으로 향하는 길을 알게 된 지금은 영상을 편집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검을 휘두르던 중에 흘러 들어온 미혹이 그녀의 동작을 흐린 것이다.

       

       아직 미숙해서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을 해도 모자랄 마당에 다른 생각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설아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줍다 쭈구려 앉은 그 자세에서 그대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화령님의 영상 편집자 자리라니.

       

       그건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설아에게 화령이란 이상이자 동경이었다.

       

       꿈이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을 하게 만드는 지표였고,

       

       설아의 꿈이 마냥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의 영상 편집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다.

       

       이를 어찌 놓치겠는가.

       

       물론 그 자리를 얻게 되면 무를 수련하는 것에 지장이 생길 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 이상이 그려내는 광경을 내 손으로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다는 거잖아.

       

       화령님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단 거라고.

       

       지금까지는 한 사람의 팬으로써 조용히 편집을 했지만 이젠 화령님의 이름을 내세우고 공식적으로 사람들에게 모든 걸 보여줄 수 있는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며 빈손으로 주먹을 꼭 쥐던 설아였지만 이윽고 다른 생각이 들자 다시 축 늘어져 버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화령님이 날 뽑아줬을 때의 이야기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이 지원을 했다는데 나 같은 방구석 아마추어가 합격할 리가 없잖아.

       

       거기다 무의 수련을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최근에 화령님이 방송하신 건 편집하지도 못했고.

       

       이럴 줄 알았으면 화룡무인에 접속하는 걸 좀 줄일 걸.

       

       편집을 하는 데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일 걸.

       

       “뭐해요?”

       

       뒤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설아가 앞으로 나자빠지자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요. 놀래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몸을 일으킨 설아는 입을 가린 채 웃고 있는 여성을 보게 됐다.

       

       백주. 얼마 전 화령님께서 새롭게 데려온 신령.

       

       “무슨 일이신가요?”

       “고민이 많아 보이기에 상담이라도 해드릴까 했죠.”

       “당신께서요?”

       “이래 봬도 신령이랍니다! 예전에는 인간분들의 고민을 풀어주는 게 제 일이었죠!”

       

       확실히 산신령이라고 하면 그런 이미지가 있지.

       

       산에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도와주거나, 착한 사람이 고민에 빠지면 그걸 해결해 주거나 하는 거 말야.

       

       예전에는 설아도 산신령이라 하면 그런 존재라 생각했지만 바루와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환상이 빠르게 깨질 수밖에 없었다.

       

       바루는 분명 대단하고 신비한 존재였지만 평소에는 태양 아래에 늘어져서 잠이나 자는 여우일 뿐이었으니까.

       

       그를 보고 있다 보면 신령에게 환상을 가질 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말씀해주시겠어요? 도움을 드릴 수 있을 지도 몰라요.”

       

       백주가 웃으며 설아에게 말을 걸었지만 설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라서요.”

       

       애초에 상담을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기도 하고.

       

       설아의 답을 들은 백주는 입술을 두드리며 가만 설아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요. 무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도와드릴 수 있었을 텐데.”

       “백주님께서요?”

       

       이분은 무공도 다룰 줄 아는 건가?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아뇨. 저는 못하죠. 도술에 대한 물음이라면 바로 알려드리겠지만.”

       “그럼.”

       “당윤옥님께 말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당윤옥?

       

       백주가 친한 듯이 말을 하는 걸 보면 이 신령하고 같이 왔던 노인을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이라면 분명 무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지.

       

       화령이 노인을 데리고 온 날.

       

       노인을 보게 된 설아는 노인이 드높은 경지에 이르른 무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설아가 도달한 경지가 부족해 추측하는 것조차 버겁지만 그럼에도 알 수 이었다.

       

       노인이 지금 그녀를 가르치는 학영충과 대등하거나, 어쩌면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화령님께서는 노인을 소개하며 무의 이치를 가르쳐 줄 새로운 교사라 이야기를 했지만 그 딱딱하고도 진중한 표정은 아무리 보아도 교사의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 화산에 있는 유저 중 그 누구도 노인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질 못했으니.

       

       그는 단순히 설아의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 은인의 부탁을 들어줘야한다면서 굳이 여기에 오더니. 적응할 생각은 없고 평소처럼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요.”

       

       그러니 자신이라도 당윤옥이 이 곳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백주의 말에 설아는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 사람 날 걱정한 게 아니라 그 노인을 돕기 위해 날 이용하려던 거구나.

       

       정상적인 신령이라 생각했던 거 취소야.

       

       “지금도 그래요. 화산을 둘러보기는커녕 혼자서 무공 수련이나 하고 있으니 원!”

       “무공 수련을 하고 계시다고요? 어디에서요?”

       

       설아는 현실보다 화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사람이다.

       

       누군가가 무공 수련을 하고 있었다면 그녀가 몰랐을 리가 없다.

       

       “화산 중턱에 혼자 틀어박혀 있어요.”

       

       아. 애초에 화산파의 부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련을 하고 계신 거구나.

       

       “지금은 경지를 붙잡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나 뭐라나. 분명 그 인간은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게 아니면 평생 외톨이일거에요.”

       

       연이어진 백주의 말에 설아의 웃음이 굳었다.

       

       백주야 노인에 대한 투정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 말은 설아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무의 경지를 쫓겠다며 바깥과의 소통을 거부해버린 방구석 외톨이.

       

       설아의 인생을 설명하는 단어이지 않은가.

       

       “그래요.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거에요.”

       “저기. 백주님?”

       “나설님. 같이 갑시다!”

       “네?”

       

       갑작스레 진행된 이야기에 설아가 당혹을 표하는 것보다 백주가 도술을 사용하는 것이 빨랐다.

       

       어느새 꺼낸 것인지 모를 나무봉을 백주가 흔든 순간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말라비틀어진 숲의 한 가운데에 떨어진 설아는 근방에서 내기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무공을 펼치고 있기에 이 정도로 위압적인 내기가 느껴지는 걸까.

       

       “이 사람은 잠도 없다니까요.”

       

       백주는 내기에 압도되어 있는 설아를 데리고서 숲의 안 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공터와 그 한 가운데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설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노인이 심호흡을 하다 몸을 움직인다.

       

       내딛는 걸음은 하늘 위를 거니는 것만 같고.

       

       내지르는 주먹은 바로 앞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만마에 닿을 때까지 뻣어나가는 듯 하다.

       

       움직임은 끊김없이 부드러우나 더할 나위 없이 강맹하기도 하니.

       

       그 무엇도 저 권의 앞에서는 버티지 못하리라.

       

       멍하니 노인이 움직이던 것을 바라보던 설아는 먼 옛날에 보았던 천마신권의 구절을 떠올렸다.

       

       무협의 세상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게임을 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무공의 구절은 비밀이 아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여러 무공의 구절은 그만큼이나 얻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빠른 속도로 화룡무인을 하는 유저들에게 퍼져 나갔다.

       

       천마신교의 무공들도 그 중에 하나였다.

       

       여러 무협지 속에서 천마신공은 절대자의 무공이었으니 화룡무인의 세상에 뛰어든 이들이 어찌 천마신공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신공을 익히면 자신도 절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은 이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허나 그 믿음은 보답 받지 못했다.

       

       천마신공은 약했다.

       

       보정을 이용해 천마신공을 펼쳐봐야 다른 무공의 열화판이 될 뿐.

       

       유저들이 상상하던 신공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러 연구 끝에 유저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천마신공은 애초부터 유저가 쓸 수 있게 만들어진 무공이 아니라고.

       

       밸런스를 위해 신교의 NPC들만이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된 무공이라고.

       

       설아도 그리 생각을 했기에 천마신공을 다루는 것을 연습하다 포기했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노인이 천마신공을 연마하는 모습을 본 설아는 자신이 잘못된 수련법을 택했기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천마신공의 이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본질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것이 낳는 결과만을 보았기에.

       

       천마신공을 다룰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퍼즐이 끼워 맞춰 지는듯한 느낌에 설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화령님은 유저임에도 불구하고 천마신공을 잘만 다루지 않던가.

       

       그렇다면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천마신공의 이치를 배울 수 있다면 나도 천마신공을 다룰 수 있는 걸까?

       

       화령님이 그랬던 것처럼 하늘을 부술 수 있는 건가?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내게 목표를 만들어 주었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모두의 위에 설 수 있는 걸까?

       

       “만날 화산에 틀어박혀 있던 녀석이 갑자기 어디 갔나 했더니 무가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었더냐.”

       

       설아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령은 여느 때처럼 무표정한 눈으로 설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아. 그대에게 물을 것이 있다.”

       “네.”

       “그대가 내게 메일을 보낸 박설아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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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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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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