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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틱, 티딕.

         

         “…….”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무심코 라이터 점화기 부분을 더듬던 존이 자신의 동요와 긴장을 자각하자마자 다급히 손장난을 끊었다.

         

         안 된다. 안 돼. 아직 자리를 무사히 떠나 카지노를 빠져나간 것도 아닐진대, 의심을 살만한 수상한 언사나 태도를 내보여서는 위험하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우연히’ 유명인사인 노인의 권유를 타서 거액을 따낸 행운아여야 하지, 주인 몰래 지갑을 털은 씹새끼가 되었다간…… 씁,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50억이라는 거금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는 속삭임이 귀를 간지럽혔으니.

         

         당장 4억을 땄다고 해도 여기서 자신의 몫은 20%. 끽해야 8천만.

         이만해도 십수 년은 놀고먹기만 해도 되는 돈이 틀림없지만, 이 짓거리도 연기력이랑 손기술이 받쳐줄 때나 가능한 법이다. 게다가 후처리를 담당해줄 뒷배가 없는 상태에서는 시도조차 못하고.

         

         특히나 블랙 칩을 자기 키보다도 더 크게 쌓아 놨으면서 ‘애매한 잔돈’이라고 표현하는 정신나간 여자라면 보통 양지로든 음지로든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단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따로 연줄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저런 무지막지한 일대일 대결 요청 따위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도망가는 게 맞다.

         

         분명 웃고 있는데 웃음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저 위험한 표정 좀 봐라.

         저런 슈퍼 리치가 고작 1억 좀 넘게 잃었다고 열 받을 리는 만무하니, 보나마나 승부 그 자체에서 진 것에 대한 분풀이가 분명한데….

         

         ‘…씨발, 크게 실수했군. 이리 될 가능성을 경계했으면 중간에 몇 판 못 이기는 척 져 주었어야 했는데!’

         

         바짝바짝 말라가는 입안을 의식해 억지로 침을 삼켰다.

         자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테이블 구도만 슬쩍 살피고 최대한 빨리빨리 따려던 게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줄이야.

         

         아무리 따져봐도 장난질이 걸리기 전에 도망가는 게 맞다. 상식적으론 그게 정답이지만.

         

         “쓰읍…….”

         

         ……하지만 그럼 저기 있는 50억, 50억은 어쩌고?? 50억의 2할이면 10억. 아니지, 협의한 것과 상황이 달라졌으니 재협상만 잘 한다치면 12억이나 15억까지도 수당으로 챙길 수 있을지도.

         

         뉘 집 애이름도 아닌 액수가 코앞에서 아른거리니 후각이 마비되다 못해 가슴이 울렁거릴 수준의 돈 냄새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만 같았다.

         

         “저기…… 그래서. 다음 게임, 안 하실 건가요?”

         “….”

         

         역시 애초부터 호위 드로이드까지 대기시켜 놓고 느긋하게 놀던 소녀라 그런가? 아랫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더러운 부르주아 새끼들…이라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런 인간들의 변덕이 아니면 사실 여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터.

         

         저 멀리서 복도에서, 망할 동업자가 다급하게 ‘당장 수락하지 않고 뭐 해!’라는 뜻으로 보내는 수신호를 확인하고 결심을 굳혔다.

         

         그래, 시발 어차피 저지른 거. 아직껏 눈치를 못 챘다면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하자.

         이번에는 교과서대로 작은 판에서는 져주고, 진짜 중요한 승부처에서만 승리를 가져가는 걸로.

         숨겨진 뚜렷한 우위(Edge)를 보유한 상황에 굴러들어온 일생일대의 기회를 걷어차버릴 순 없지 않은가?

         

         드르륵…!

         

         “이거… 도박꾼 된 입장에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주셔서 대답이 좀 늦었습니다. ……긴장해서 그런데, 잠시 화장실만 다녀와도 괜찮겠습니까? 아, 가능하다면 새로운 게임인 만큼 카드 덱도 교체해서 하면 좋겠습니다만.”

         

         “…네, 뭐. 편하신 대로 하시죠.”

         

         존이 양손의 땀을 닦는 것처럼 바지에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분별한 올인으로 인해 여태 상금 정산과 정리를 돕던 딜러는 그제야 칩에 일부 플레잉 카드가 긁힌 걸 보고 아차 싶었는지 전용 쓰레기통에 쓸어 담았고.

         

         “그럼 10분간의 휴게 후에, 플레이어 아나스타샤님과 플레이어 존의 2인 헤이븐 홀덤을 진행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추가로 참가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테이블을 완전히 다시 세팅하기 시작한 직원과 억대 무제한(No-Limit) 맞대결(Head to Head) 성사에 재밌는 구경을 하게 되었다며 좋아하는 손님들의 소란을 뒤로한 채, 남자는 최대한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앞선 대결로 시선이 꽤 쏠렸던 탓에 끈덕지게 쫓는 사람이 한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과연 격식 차리는 하이 플로어라 그런지, 따라와서 어떻게 해보려는 미친 인간은 아무래도 없는 모양이었다.

         

         …비교적 다행이다. 이건 현장에서 걸리면 진짜 빼도 박도 못하고 좆 될 수도 있는 작당 모의인만큼 인기척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으니까.

         

         덜컹… 잘그락!

         

         가장 안 쪽 구석진 곳.

         이미 선객이 이용 중이라 잠긴 문의 바로 옆 칸으로 들어간 존이 변기 뚜껑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확 풀려서 그런지 담배나 술 생각이 간절했지만… 전자는 정상적인 물건이 없었고, 후자는 아직 중요한 게임이 남아서 차마 입에 대기 어려웠으니.

         

         “이 병신이…! 봉(Sitting Target)이 50억을 들고 왔으면 냅다 받아야지, 거기서 왜 망설여서 열기가 식게 만들어? 도박판에서 대가리 박는 인간만큼 요리하기 쉬운 것도 없다고 말한 게 본인이면서!”

         

         “……상대가 바보 멍청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내 몫이고. 댁이라도 거기 앉아서 그 인간들 눈초리에, 드로이드 스캐너까지 몇 시간 동안 견디다 보면 먼저 정신이 나갔을 걸?”

         

         저린 어깨와 다리 주무르는데 기운을 보태 주지 못할망정, 멀리서 액수만 보고 눈 돌아간 주제에 쓴 소리부터 늘어놓는 건너편 사람.

         딴 주머니 챙기느라 바쁜 잘나신 카지노 매니저를 향해 존이 침을 탁 뱉었다.

         

         물론 그가 보안실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래도 저렇게 조바심이 넘쳐서야 원.

         

         “그렇게 걱정이 많은 인간이 왜 하필 딜러를 안 끌어들여서 이 고생을 시켜? 덱 컨트롤만 됐어도 이 지랄은 안 났어.”

         

         존의 불만사항을 다름이 아니었다.

         사기 도박에서 필수적인 건 역시 타짜, 하지만 딜러만 매수할 수 있어도 도박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나 부담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법.

         

         그도 가능하면 홍채 카메라나, 핸드 트릭처럼 붙잡힐 가능성이 높은 수단까지 써가며 이기고 싶지 않았다. 정정당당이라는 되도 않는 가치에 의거해서 꺼낸 말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느껴져서.

         

         “씹…. 이 카지노가 전문 딜러를 육성할 만큼 역사가 깊냐? 소개받은 전문 인력 고용해서 쓰는 처지에, 어느 테이블에서 게임할 지도 모르는데 그런 식으로 하나 둘 더 끌어들이다가 새나가면 그대로 끝장이야 끝!!

         

         게다가 단골인 영감이나 그 여자도 그런 방식의 사기엔 이골이 났을 걸?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딜러가 의심을 대신 받아줘서 작업하기 편한 거야. ……그리고, 여차하면 거기서 또 뽑아 쓰면 되지 않나?”

         

         ……투둑!

         

         발치 언저리에 난 칸막이의 빈틈을 통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가 여러 개 던져졌다.

         조용히, 랑데부 카지노에서 전속 계약을 맺어서 납품 받는 인증 카드 팩들을 주워 든 존이 포장을 뜯었다.

         

         매니저의 말마따나 일단 뽑아 쓴 소모품은 이후의 게임을 위해서라도 보충해야 하니까.

         

         스르륵 하고. 별다른 소음도 없이 그의 손바닥과 팔뚝 안쪽이 세로로 열렸고.

         본래는 이물질이 들어가면 안 되는 개인 약병이나 호신용 블레이드를 보관하는, 속 빈 동공형(Hollow) 의수 내부가 열리자 거기엔 무수히 많은 카드들이 종류별로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각 플레이어들의 핸드에 따라 대응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자칫 타짜가 고꾸라질 가능성이 있는 고비에서 휘두르기 위한 보험.

         

         가령…… 아까 마지막 쇼다운 직전에 급하게 J페어를 꺼내서 포 카드를 완성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뒤졌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막판 리버에서 K 하이 풀 하우스 완성이라니, 무슨 별자리 아래에서 태어났길래 생으로 치는데도 그렇게 카드가 잘 붙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썅. 그 많은 사람들 모두한테서 안 보이게 시야각도 맞춰야지. 테이블 도합 4장이 안 넘어가게 해야지. 한 번 쓰고 나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덱 교체도 유도해야지. 심지어 드로이드까지 있는 상황에서 없는 카드 만들어내는 게 쉬운 줄 알아? 그것들 기종에 따라서는 녹화 프레임이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 있는데!”

         

         누군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물리적으로 날아가는 건 자기 모가지인데,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며 그가 이를 악물었다.

         

         가뜩이나 취미도 고상한 분들이라 그런지, 연초 모양 각성제조차 못 피우게 만들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지원 담당이라는 인간이 속 편한 소리나 하고 있으니….

         

         “어허. 그런 일이 절대 안 일어나게, 설령 발생해도 너만은 안 죽게 보안팀은 대부분 다 한 발 걸치게 만들었잖나? 설마 그런 잔걱정을 하느라 50억을 포기하겠단 소리는 아니겠지…?”

         

         어이구야. 생각 이상으로 존의 스트레스가 위험한 수준까지 차오른 걸 감지한 매니저가 방법을 바꿔, 무작정 윽박지르기보단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구한 기술자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 짓이…. 아니, 자금을 운용하시던 사장님이 벌써 이 주가 넘도록 연락이 단절된 만큼 오늘이 마지막 장사가 될 수도 있는데 저걸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자… 충분히 쉬었으면 얼른 저 년까지만 털자고. 성형 수술은 물론이고, 한동안 숨어 지낼 호텔까지 다 미리 예약해 놨으니까.”

         

         다른 말이 더 나오기 전에 이어진 변명과도 같은 설득에 존이 마지못해 동의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적어도 그런 부분을 따로 책임져주지 않았다면 진즉 20% 분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재협상에 나섰을 것이다. 매번 건수가 생길 때마다 협업하는 게 아니라.

         

         “후우…… 좋아. 그럼 그 보라색 약이라도 진작 쓰지, 왜 여태까지 밍기적거려? 적어도 판단력 흐릿하게 취한 상태로는 만들어줘야 내가 좀 더 대범하게 플레이하지.”

         

         “쯧. 알프레드는 상업구에서 유명한 대부업체 사장이고, 사샤는 그 데일리 브루웍스 사장의 외동딸인데 그런 마약 반응을 못 알아채겠나? 이제 둘만 남았으니 서비스 음료라고 슬쩍 보낼 테니까 재촉하지 말고. 안 그래도 저번에 작업 친 남자도 어디 기업 사람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마당이니 신중하게 하는 셈이다.”

         

         옅게 탄 마약 음료수로 정신도 흐릿하게 만들고, 무의식적으로 재방문 의사도 높인다.

         뻔한 수작이었으나 생각보다 흥겨운 카지노의 분위기나 여운 덕택에 걸린 적은 드문… 거의 없다시피 한 비법이 되시겠다.

         

         하여간 후방에서 나름 증거 인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반복된 약속을 들은 존이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의수도 부드럽게 작동하고, 안구 카메라도 멀쩡하다.

         남은 건 이제 그 무서운 소녀의 50억을 쟁취해내는 것…… 뿐…?

         

         “…잠깐, 그 50억을 쾌척한 소녀와 무표정한 남자는 털어도 후환이 없는 건 맞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정작 테이블에 있던 네 손님 중 두 명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듣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한 박자 늦게 빠져나올 매니저에게 되물었으나.

         

         “자꾸 이상한 걱정 말고! 입국 사무소의 아는 친구한테 슬쩍 사진을 주면서 물어봤는데 소녀는 몇 달 전만해도 거주지 항목을 가정 하숙집으로 써넣던 떠돌이니 어디서 복권이라도 당첨된 게 틀림없고. 남자도 얼마 전에 임플란트 오작동 때문에 치료받으러 들어온 환자더군.”

         

         “그럼… 다행이지만.”

         

         별로 병약해 보이지는 않던 남자와 아까워하는 기색조차 없던 소녀를 떠올리며 존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더 깊게 고민하길 그만뒀다.

         

         지금은 일단 나가서 무사히 카드치는 데에만 온신경을 쏟아도 모자란 상황이니까.

         

         

         

         – ……이건 아쉽군요. –

         

         쏴아아—….

         그렇게 결심을 마친 남자가 손과 얼굴 언저리에 물기를 남기기위해 수도꼭지를 틀자마자.

         주인의 명령에 따라 화장실 바깥 벽면에 손을 대고 내부 진동을 감청하던 한 케어봇은 녹음 품질이 나빠 증거가 불분명하다며 한탄했고.

         

         “…돌입 준비, 신호하면 메인 매니저와 산하 보안팀부터 우선적으로 체포하도록.”

         

         반대편 벽에서 똑같이 감청을 진행하던 무표정한 남자는 비싼 임플란트를 이용해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VIP의 시중을 드는 일도 막바지라는 안도와 함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기, 미친듯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퇴근 못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다음화로 마무리 예정입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지나가시는 길에 댓글 남겨주시고, 추천 눌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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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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