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7

     외조부, 발자크 렘부르 군터로부터 말 한 필을 빌려 달리는 중.

     렘버리 캠프를 지나 도로가 없는 평야를 달리며, 나는 힘차게 앞으로 달리는 말의 상태에 속으로 한숨이 다 나왔다.

     

     ‘의미부여라는 게 하기 나름이지만, 이거 누가봐도 노골적이지 않나?’

     병든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어린 망아지도 아니다.

     오히려 나이는 나이대로 먹은 말로, 앞으로 몇 년 뒤에는 달리는 것도 힘겨워 누워있다가 가버릴 것 같은 그런 고령의 말을 빌려줬다.

     ‘생색내겠다는 거지.’

     본인이 가장 아끼는 준마라면서 온갖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정말로 급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했다면 당장 군마로 써도 이상하지 않을 최고급 말을 빌려줬을 것이다.

     아깝겠지.

     본인은 살아남을 걸 생각하고 있고, 나는 말과 함께 죽을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을 테니까.

     이 말도 나름 고급 품종이기는 하지만, 이미 새끼를 다 낳고 더 이상 임신도 할 수 없는 암말이다.

     

     닭으로 치면 더 이상 산란을 할 수 없는 상태.

     그나마 말이라서 이렇게 타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이 효용가치가 있어서 그렇지, 이마저도 없었으면 운명은 하나 뿐이리라.

     알을 낳지 못하는 암탉의 운명은 모가지가 꺾이는 것 뿐.

     이 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지로 몰리는 길에 초대받았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고삐를 쥔 내 지시에 따라 평야를 달리고 있다.

     “워, 워.”

     적당한 위치에서 고삐를 잡아당기자, 말이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춘다.

     푸르륵.

     혹시나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냐고 묻는 듯한 말의 눈빛에, 나는 바로 안장에서 내려 입과 등에 설치된 각종 마구들을 벗겨냈다.

     “곧 나를 죽이러 사람들이 올 거다. 알아서 도망치도록.”

     말과 함께, 그 의사를 담은 마나로 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다.

     “아니면 다시 영지로 돌아가도 되고.”

     

     푸르르.

     말은 화들짝 놀라며 눈치를 봤지만, 곧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자신이 달려온 길을 따라 달렸다.

     “하긴. 야생으로 가는 것도 무리지.”

     평생을 마구간에서 자란 말이다.

     갑자기 야생으로 가라는 것도 무리.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장소로 달려가는 것도 무리.

     그렇다고 처음 보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것도 무리.

     결국 말은 자신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걸 선택했다.

     

     그게 보통이고, 그게 평균이다.

     동물에게는 귀소본능이 있어, 돌아갈 장소가 어지간히 쓰레기가 아닌 이상 자신이 머무를 장소로 돌아가는 게 기본이다.

     그것을 우리는 ‘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노스트럼이라는 곳은 나의 집인가?

     글쎄.

     지금 저기, 말과 교차하듯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자들에게는 집이라고 할 수 있어도, 나의 집은 저기 제국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장소-

     협곡이다.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빨리 도착했군.”

     “……그레이 지브롤터.”

     마갑까지 채워놓은 말을 타고 달려온 기사들이 나를 향해 살기를 풀풀 날린다.

     “부단장님을 죽인 원수. 지금, 이 자리에서 갚겠다.”

     “이제는 제국 암살자인 척도 안 하려고?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는데?”

     

     시간은 아마 저녁 5시 즈음 되었을까.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있기는 하지만, 햇살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서 적당히 노을이 평야를 밝히고 있다.

     “늦은 밤도 아니고 이 시간에 습격을 하다니. 어디보자. 얼추…50명인가. 그새 또 늘었군.”

     “건방진 자. 왕국 제1 기사단을 앞에 두고도 그런 여유가 나오나?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거지?”

     “글쎄. 적어도 그대들이 나를 지브롤터 영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만은 알 것 같은데.”

     

     내가 말을 타고 나오자마자 바로 허겁지겁 무기를 챙겨서 튀어나온 이유.

     “아버지께 일러바칠까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지, 안 그런가?”

     “…….”

     “황금여명 기사단이 그레이와 누아르를 암살하려고 했다. 그 소식을 직접 전하기 전에, 설령 전해진다고 하더라도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나?”

     “모든 게 너 때문이다.”

     “하.”

     이제는 아예 만악의 근원을 내게로 돌린다.

     “내가?”

     “얌전히 수호가문의 위세를 누려왔다면-”

     “헛소리.”

     귀가 썩을 것 같은 말에, 나는 바로 기사의 말을 차단했다.

     “노스트럼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우리 가문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해야한다는 거지?”

     “…….”

     “지브롤터가 쌓아온 공은 모두 지브롤터의 것이다. 왕국이 지브롤터에게 준 것은 의무밖에 없었어. 세금을 보내지 않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반대로 묻지. 제국 최전방을 상대로 중앙에서 세금을 보내지 않으면 그게 나라인가?”

     나는 지팡이를 수평으로 들어, 나를 원으로 포위하고 있는 기사들을 쭉 가리켰다.

     “이 중에 지브롤터 협곡에서 제국군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자는 손을 들어라. 그 자는 살려주겠다.”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아무도 없군. 당연하겠지. 황금여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수도에서는 영애들을 희롱하고, 지방에서는 귀족들이 상납하는 여자들을 가지고 노느라 바쁘신 양반들이, 실제 전쟁을 체험해보기라도 하셨나 몰라.”

     이곳에 전쟁을 경험해본 이는 아무도 없다.

     최소한 지난 30년 내, 제국과 실제로 사상자가 발생했던 전투는 1명 단위 소규모 국지전까지 포함해도 전부 지브롤터에서 발생했다.

     “한 가지 물어보도록 하지. 이건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진짜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제국과 전쟁이 나면 지브롤터는 누구 편을 들 것 같나?”

     “하…!”

     황금여명의 기사가 코웃음을 친다.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대답해봐. 정확하게. 네 생각을 말해보라고.”

     “왕국의 백작이 당연히 왕국의 편을 들어야지!”

     “…그래, 그게 왕국 평균이지.”

     왕국 평균 중에서도 머리가 안 좋은 의미로 순수한 이들의 생각이다.

     “장남은 제국 황녀의 짝이 되었고, 제국과 가장 많은 교류를 하고 있고, 심지어 영지 내 통화량으로 따지면 지류화폐인 탈러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지브롤터가?”

     “지브롤터는 노스트럼의 가문이다!”

     “……그래. 그랬지.”

     나는 지팡이를 양손으로 붙잡은 다음, 가볍게 반대로 비틀었다.

     딸칵.

     “너희같은 자들이 나라의 중심에 수십년 동안 앉아있었으니, 그 지경이 되는 게 당연해.”

     저들은 바보인가. 바보다.

     그렇기에 망했고, 앞으로도 망할 예정이다.

     영웅만능주의의 아래에서 언제나 영웅들이 해줄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았고, 나라를 지켜야 할 영웅이 국가를 배신하는 매국노가 될 거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설마 그러겠어.

     무능왕이 술을 퍼마시고 경룡장에 난입한 것처럼, 크림슨 지브롤터가 제국편에 설 수도 있는데도 저들은 그런 가능성을 그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명목으로 일축한다.

     “좋아. 그러면 나를 죽이러 오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내가 지브롤터를 제국파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당연한 소리를!”

     “아버지를 현혹하고, 협곡의 수호자 크림슨 지브롤터의 눈과 귀를 가리게 하여 제국의 편으로 세뇌되도록 만든 쓰레기이기 때문에 죽이려고 하는 것이야. 맞지?”

     “알고 있다면, 얌전히 죽어라!”

     기사 하나가 달려온다.

     거리가 제법 되어, 말을 타고 달려오며 손에 든 검을 정확히 내게로 겨누며 지나가며 베려고 마나까지 정제한다.

     “얌전히 죽어라, 인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저 창에 찔려 죽기라도 하겠지.

     “아쉽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냥, 이게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인다면.

     “지금은, 옆에 아무도 없거든.”

     

     * * *

     그 시각.

     “저기, 황녀님.”

     “응, 왜?”

     “걱정되시면, 지금이라도 따라가시는 건…?”

     누아르는 정말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창 밖을 바라보는 아스타시아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가리켰다.

     

     “네.”

     “누아르. 너는 형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예.”

     솔직히, 잘 모른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제 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스타시아 황녀님일 겁니다.”

     “…음, 흠흠.”

     누아르는 그저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지만, 아스타시아는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뭐, 그건 맞을 거야. 그레이가 다른 사람에게는 속내를 그다지 드러내지 않는 편이니까.”

     “그래서 여쭤보는 겁니다. 그…위험하지는 않겠습니까?”

     “위험하겠지.”

     “그렇다면….”

     “적이.”

     아스타시아의 말에 누아르는 절로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적이 위험하다고요…?”

     “응.”

     “아무리 형이라도, 상대는 어디까지 할지 모르는 자들인데.”

     “하지만 그레이는 어디까지 할지 정확하게 선을 정하고 나갔는 걸.”

     아스타시아는 자신과 누아르를 번갈아 가리켰다.

     “너도 그렇지만, 나도 여기 두고 갔잖아. 너는 동생이지만 남자고, 자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쳐.”

     “…흠흠. 제가 형에게 짐이 되지 않을만큼 인정받았다는 말씀이십니까?”

     “…비슷하긴 해. 하여튼, 만일 그레이가 정말로 걱정되었다면 자기 곁에 데리고 갔을 거잖아?”

     “그런 겁니까? 오히려 여기가 더 안전한 것 같은데.”

     “적으로부터 지킨다는 점에 있어서는 여기가 제일 낫긴 하지. 하지만…그레이의 목적은 달라.

     아스타시아는 카스테라를 잘라내던 빵칼을 가볍게 위로 들었다.

     “그레이는 말이야,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으면…갑자기 목은 왜 붙잡는 거니?”

     “아, 그게. 그….”

     “왜?”

     “…모르시는 겁니까? 그럼, 저 말 하면….”

     “뭔데. 말해봐. 응?”

     아스타시아는 빵칼의 끝을 검지 위에 수직으로 올리며 옅게 웃었다.

     “괜찮아. 그레이한테 말 안 할게.”

     “황녀님. 황녀님은 형이랑 무척 닮은 거 아십니까?”

     “고마워.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제가 웬즈데이 관한 거 말 안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윽!”

     씨익.

     “비밀로 할게. 알겠지?”

     “…하아.”

     누아르는 우물쭈물거리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제가 7살에 납치를 당했을 때, 제가 기지를 발휘하여 암살자를 죽이고 도망쳐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거 사실….”

     “아, 그거 들었는데?”

     “네?”

     “13살에 만났을 때 이미 들었는걸.”

     “…….”

     누아르는 어딘가 배신당한 것 같은 얼굴로 입을 떡 벌렸으나, 아스타시아는 잘라낸 카스테라 한 조각을 칼로 푹 찌른 채 가볍게 베어물었다.

     “그러면 말하기 더 편하겠다. 그레이는 말이야, 주변 사람들 눈치를 엄ㅡ청 많이 보는 사람이거든?”

     “…형이요?”

     “그래. 계속 말하지만, 그래서 우리를 여기에 두고 간 거야.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지만, 혹시나 누군가가 자신을 습격이라도 한다면….”

     서걱.

     “그레이 말이야, 가족한테는 그다지 자기 모습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거든. 그럴 때.”

     “그럴 때….”

     

     서걱.

     “누구나,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모습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이잖아? 이해해. 나도 그럴 때가 있긴 하거든. 아, 혹시나 모르니까 하나 알려줄게. 그레이 있잖아. 사람을 그거…할 때.”

     아스타시아는 자신의 오른쪽 입꼬리를 검지로 톡톡 건드렸다.

     “여기, 살짝 올라간다?”

     “…그거.”

     “응, 맞아.”

     “…….”

     누아르의 머릿속,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그 때.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때의 형은 분명-

     * * *

     서걱.

     인간이든 말이든 금속이든.

     “후.”

     오러를 이용해 베는 감각은, 언제나 생경하다.

     “역시.”

     익숙한 감각이 낫다.

     “썰고 베는 건 제국식 블레이드가 더 낫다니까.”

     “저, 저…! 우욱…!”

     

     말과 함께, 말에 타고 있던 기사가 몸이 분리된다.

     “후ㅡ하.”

     하늘은 어둡고, 비는 내리지 않지만 공기는 습하다.

     “자, 다음.”

     지팡이 안에서 꺼낸 칼날에 오러를 담아, 베기에 가장 알맞은 외날을 빚어낸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단칼에 모가지를 잘라주지.”

     소드마스터.

     인간도살자.

     “자비롭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누아르 친형
    레타르 오빠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