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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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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과 하늘이 뒤집혀 어그러지고, 시간이 멈춘 듯 당황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석상처럼 여기저기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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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거꾸로 흐르고, 땅에 떨어지려던 돌은 나비처럼 허공을 유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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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다 뭐야..?”
   “흑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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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된 세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건, 노아와 제스, 아이리스 셋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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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은 괴이하기 짝이 없는 주변 모습에 잠시 당황하다 이내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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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때가 아니야 -, 리안.. 리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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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말에 아이리스와 제스 또한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들어서려던 천막은 지우개로 지운 듯 깔끔하게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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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천막 통째로 소멸한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훅 치밀어 올랐지만,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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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게 엉망으로 뒤섞였어. 제국군과 수인의 주둔지도 뒤섞였다는 건 -… 리안이 있던 천막이 다른 곳으로 이동된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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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왜 이런 괴이한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오로지 리안에 대한 안위만이 꽉 차 제대로 된 생각을 이어가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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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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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으읏, 아무런 냄새도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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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으로 물든 세계는 아무런 냄새도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울려 퍼지는 건 세 사람의 다급한 숨소리와 혼잣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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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엉망으로 얽혀있는 천막들과 텐트들을 스쳐 지나가며 리안이 있을 천막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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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그들이 찾던 천막은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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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렉이나 버그라도 걸린 것처럼 여러 개가 겹친 채 존재하는 천막들과 달리 리안이 머무르던 천막은 너무나 깔끔한 모습으로 널찍한 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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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방을 눈앞에 둔 것처럼 저릿한 불안감이 스며들어왔지만, 그보다 더 진한 공포와 절망을 알기에 세 사람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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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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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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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 안에는 워터 마법을 쓴 것처럼 투명한 물이 허공에 떠올라 꿀렁거리고 있었다. 천막 안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투명한 물속에는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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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오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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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와 아이리스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투명한 물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제스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손톱을 세워 물 덩어리를 슬라임 베어내듯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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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의 손이 울렁이는 물에 닿는 순간, 고요히 떠 있던 물이 먹이를 집어삼키는 슬라임처럼 늘어나 세 사람을 집어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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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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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 안에는 조용한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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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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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읏…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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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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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성채보다도 훨씬 높은 구조물들이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서져 폐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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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에게 낯설기만 한 구조물, 고층 빌딩들은 뼈대만 남아 삐걱거리고 있었디. 건물의 뼈대 사이로 바람이 불 때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소리를 냈다. 창문은 모두 깨져 있었고, 그 안에는 먼지와 잔해가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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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는 차량이 뒤엉켜 녹슬고 파괴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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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등은 전기를 잃은 채 검게 꺼져 있었고, 길가에 늘어선 가로등도 대부분 부러져 있었다. 길거리는 잡초와 덩굴로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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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이곳이 자신이 알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이라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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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포에 질리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아이리스는 침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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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를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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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이한 상황에 휘말렸다는 공포보다 더 큰 공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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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읏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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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우그러진 철마차(자동차) 사이를 지나 그나마 멀쩡한 길가로 들어선 순간,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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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휙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배낭을 맨 낯선 남자가 느슨한 웃음을 지은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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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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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영혼을 인지할 수 있게 된 아이리스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낯선 남자가 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빠르게 달려 그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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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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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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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아이리스의 몸이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자의 몸을 가볍게 통과했다. 아이리스는 몇 번이고 허우적거리며 리안의 품에 안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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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 이러다 지각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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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으로 추정되는 남자 또한 아이리스를 인지하지 못하는지 그저 제 갈 길을 나아갈 뿐이었다. 아이리스는 아찔한 불안감에 파르르 떨리는 다리로 비틀거리며 리안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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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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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아동학대, 학교폭력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분들은 다음화로 넘겨주세요! 다음화 작가의 말에 요약된 내용을 적어두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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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간, 아이리스와 달리 꽤 멀쩡한 장소에서 눈을 뜬 노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리스와 다른 점은 눈앞에 있는 리안이 아주 작은 어린아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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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무릎에 겨우 닿을까 싶은 정도로 작은 모습을 한 리안은 제대로 먹지 못한 듯 깡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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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그런 리안이 안쓰러워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리안은 멍하니 구석에 앉아 망가지다 못해 너덜거리는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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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그런 리안의 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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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도대체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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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으로 물들어 어그러진 세상, 기이한 액체 속에 둥둥 떠 있던 리안의 모습, 낯선 어린아이의 몸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리안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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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웠으며 이해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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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도 해보고자 검을 뽑아 휘둘러봤지만, 마치 귀신의 일부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을 통과했다. 거기다 마력조차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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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마른 리안의 곁을 떠나 무작정 걸어보기까지 했지만,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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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과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현실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애써 그런 감정을 털어내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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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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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걱거리는 낡아빠진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술에 잔뜩 취한 듯한 남자가 호통을 치며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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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마른 아이들과 달리 두툼한 살집을 가진 남자는 매섭게 눈을 빛내며 조금 전까지 조용히 놀던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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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해! 어!? 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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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리안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들었지만, 남자는 그녀를 보지 못하는 듯 그저 씩씩거리며 화를 죽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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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냐? 어?!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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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비틀거리며 바짝 긴장한 아이에게 다가갔다. 노아가 표정을 험악하게 구기며 검을 휘둘러보지만, 무력하게 통과할 뿐이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며 해결되지 못한 분노를 참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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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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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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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등 뒤에 있던 리안이 뛰쳐나와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덜덜 떨리는 몸이 꼴사납게 아이를 걷어차려는 다리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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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 뭐야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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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혀가 꼬였는지 어눌한 말을 몇 번 잇더니 이내 리안을 발로 찼다. 제대로 먹지 못해 바짝 마른 아이에게 성인 남자의 발길질은 칼질만큼 위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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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켁,케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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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을 뒹군 리안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남자가 씩씩거리며 그런 리안을 몇 번이고 발로 찼다. 아이들은 저 발길질이 자신에게 돌아올 게 무서워 그저 무릎에 얼굴을 박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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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진짜. 또 시체 치울 일 있어? 제발 적당히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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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을 진하게 한 여성이 문가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남자에게 한 소리 하자, 남자가 고개를 휙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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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여자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드는지 풀어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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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새끼들이 날 무시하는데 내가 어째? 어? 권위를 보여줘야지. 이것들이 먹여주고 재워줬는데도 은혜를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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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몸을 웅크린 채 숨을 헐떡이는 리안의 곁에 앉아 입술에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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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왜, 왜 리안이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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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리안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기에,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그저 리안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연극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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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그녀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한 무대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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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경우든 그녀가 무력하게 리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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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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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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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이를 세우며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양아치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다른 두 사람이 그랬듯 허무하게 공격이 양아치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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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죽지 그러냐? 너한테 낭비되는 산소가 아깝지도 않아?”
   “나였으면 벌써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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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날 선 손톱이 낄낄거리는 남자의 가슴팍을 지나 툭 튀어나왔지만,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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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귀를 축 늘어뜨리며 한쪽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핏물이 흘러내리고, 볼이 퉁퉁 부어올랐음에도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낯선 모습을 한 리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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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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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어딘가 고장 나기라도 한 것처럼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전혀 상처받거나, 분노한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양아치들은 모욕이라도 들은 것처럼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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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들이 자신을 기절할 때까지 때리든, 부모를 싸잡아 욕설하든, 그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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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싹할 정도로 기이한 모습에 양아치들은 주춤하며 결국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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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너덜거리는 리안의 곁에 쭈그려 앉아 뚝뚝 눈물을 흘렸다. 지독한 무력감에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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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늗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3

필요한 장면이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한편에 전부 몰아넣기…다음화 보기

땅과 하늘이 뒤집혀 어그러지고, 시간이 멈춘 듯 당황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석상처럼 여기저기 굳어있었다.

물이 거꾸로 흐르고, 땅에 떨어지려던 돌은 나비처럼 허공을 유영했다.

“이게 다 뭐야..?”

“흑마법…?”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된 세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건, 노아와 제스, 아이리스 셋이 유일했다.

세 사람은 괴이하기 짝이 없는 주변 모습에 잠시 당황하다 이내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야 -, 리안.. 리안은!”

“…!”

노아의 말에 아이리스와 제스 또한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들어서려던 천막은 지우개로 지운 듯 깔끔하게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리안이 천막 통째로 소멸한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훅 치밀어 올랐지만,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모든 게 엉망으로 뒤섞였어. 제국군과 수인의 주둔지도 뒤섞였다는 건 -… 리안이 있던 천막이 다른 곳으로 이동된 걸지도 몰라.’

어째서, 왜 이런 괴이한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오로지 리안에 대한 안위만이 꽉 차 제대로 된 생각을 이어가기 힘들었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킁킁…으읏, 아무런 냄새도 안 나..!”

흑백으로 물든 세계는 아무런 냄새도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울려 퍼지는 건 세 사람의 다급한 숨소리와 혼잣말뿐이었다.

그들은 엉망으로 얽혀있는 천막들과 텐트들을 스쳐 지나가며 리안이 있을 천막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그들이 찾던 천막은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치 렉이나 버그라도 걸린 것처럼 여러 개가 겹친 채 존재하는 천막들과 달리 리안이 머무르던 천막은 너무나 깔끔한 모습으로 널찍한 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왕의 방을 눈앞에 둔 것처럼 저릿한 불안감이 스며들어왔지만, 그보다 더 진한 공포와 절망을 알기에 세 사람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우웅.

“…!”

“….!!”

“…!”

천막 안에는 워터 마법을 쓴 것처럼 투명한 물이 허공에 떠올라 꿀렁거리고 있었다. 천막 안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투명한 물속에는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리안!”

“오빠아!”

노아와 아이리스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투명한 물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제스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손톱을 세워 물 덩어리를 슬라임 베어내듯 공격했다.

세 사람의 손이 울렁이는 물에 닿는 순간, 고요히 떠 있던 물이 먹이를 집어삼키는 슬라임처럼 늘어나 세 사람을 집어삼켜 버렸다.

우웅..

천막 안에는 조용한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

“으읏…여긴?”

아이리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성채보다도 훨씬 높은 구조물들이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서져 폐허였다.

아이리스에게 낯설기만 한 구조물, 고층 빌딩들은 뼈대만 남아 삐걱거리고 있었디. 건물의 뼈대 사이로 바람이 불 때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소리를 냈다. 창문은 모두 깨져 있었고, 그 안에는 먼지와 잔해가 쌓여 있었다.

거리에는 차량이 뒤엉켜 녹슬고 파괴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신호등은 전기를 잃은 채 검게 꺼져 있었고, 길가에 늘어선 가로등도 대부분 부러져 있었다. 길거리는 잡초와 덩굴로 엉망이었다.

아이리스는 이곳이 자신이 알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이라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포에 질리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아이리스는 침착했다.

‘오빠를 찾아야 해.’

괴이한 상황에 휘말렸다는 공포보다 더 큰 공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읏차!”

“…!”

그녀가 우그러진 철마차(자동차) 사이를 지나 그나마 멀쩡한 길가로 들어선 순간,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휙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배낭을 맨 낯선 남자가 느슨한 웃음을 지은 채 서 있었다.

“리안!”

리안의 영혼을 인지할 수 있게 된 아이리스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낯선 남자가 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빠르게 달려 그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후웅.

“…?!”

마치 아이리스의 몸이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자의 몸을 가볍게 통과했다. 아이리스는 몇 번이고 허우적거리며 리안의 품에 안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으아.. 이러다 지각하겠네!”

리안으로 추정되는 남자 또한 아이리스를 인지하지 못하는지 그저 제 갈 길을 나아갈 뿐이었다. 아이리스는 아찔한 불안감에 파르르 떨리는 다리로 비틀거리며 리안의 뒤를 쫓았다.

***

(**주의 아동학대, 학교폭력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분들은 다음화로 넘겨주세요! 다음화 작가의 말에 요약된 내용을 적어두겠습니다! **)
(**주의 아동학대, 학교폭력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분들은 다음화로 넘겨주세요! 다음화 작가의 말에 요약된 내용을 적어두겠습니다! **)

같은 시간, 아이리스와 달리 꽤 멀쩡한 장소에서 눈을 뜬 노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리스와 다른 점은 눈앞에 있는 리안이 아주 작은 어린아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녀의 무릎에 겨우 닿을까 싶은 정도로 작은 모습을 한 리안은 제대로 먹지 못한 듯 깡말라 있었다.

노아는 그런 리안이 안쓰러워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리안은 멍하니 구석에 앉아 망가지다 못해 너덜거리는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노아는 그런 리안의 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여긴 도대체 어디지?’

흑백으로 물들어 어그러진 세상, 기이한 액체 속에 둥둥 떠 있던 리안의 모습, 낯선 어린아이의 몸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리안의 영혼.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웠으며 이해하기 힘들었다.

뭐라도 해보고자 검을 뽑아 휘둘러봤지만, 마치 귀신의 일부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을 통과했다. 거기다 마력조차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깡마른 리안의 곁을 떠나 무작정 걸어보기까지 했지만,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과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현실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애써 그런 감정을 털어내던 그때.

“조용히 하지 못해!”

삐걱거리는 낡아빠진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술에 잔뜩 취한 듯한 남자가 호통을 치며 들어섰다.

깡마른 아이들과 달리 두툼한 살집을 가진 남자는 매섭게 눈을 빛내며 조금 전까지 조용히 놀던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해! 어!? 죽고 싶어!”

노아는 리안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들었지만, 남자는 그녀를 보지 못하는 듯 그저 씩씩거리며 화를 죽이지 않았다.

“너냐? 어?! 너야?!”

남자는 비틀거리며 바짝 긴장한 아이에게 다가갔다. 노아가 표정을 험악하게 구기며 검을 휘둘러보지만, 무력하게 통과할 뿐이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며 해결되지 못한 분노를 참고 있을 때.

타닷!

“…!”

그녀의 등 뒤에 있던 리안이 뛰쳐나와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덜덜 떨리는 몸이 꼴사납게 아이를 걷어차려는 다리를 붙잡았다.

“이익! 뭐야 이 새끼가!?”

남자는 혀가 꼬였는지 어눌한 말을 몇 번 잇더니 이내 리안을 발로 찼다. 제대로 먹지 못해 바짝 마른 아이에게 성인 남자의 발길질은 칼질만큼 위협적이었다.

“켁,케헥..”

바닥을 뒹군 리안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남자가 씩씩거리며 그런 리안을 몇 번이고 발로 찼다. 아이들은 저 발길질이 자신에게 돌아올 게 무서워 그저 무릎에 얼굴을 박고 눈을 감았다.

“아, 진짜. 또 시체 치울 일 있어? 제발 적당히 좀 해.”

화장을 진하게 한 여성이 문가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남자에게 한 소리 하자, 남자가 고개를 휙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여자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드는지 풀어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저 새끼들이 날 무시하는데 내가 어째? 어? 권위를 보여줘야지. 이것들이 먹여주고 재워줬는데도 은혜를 모르고…”

노아는 몸을 웅크린 채 숨을 헐떡이는 리안의 곁에 앉아 입술에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왜, 왜 리안이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 거야?”

그녀는 리안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기에,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그저 리안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연극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녀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한 무대일지도 몰랐다.

어떤 경우든 그녀가 무력하게 리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

“으르릉…”

​제스는 이를 세우며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양아치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다른 두 사람이 그랬듯 허무하게 공격이 양아치를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죽지 그러냐? 너한테 낭비되는 산소가 아깝지도 않아?”

“나였으면 벌써 뛰어내렸다.”

제스의 날 선 손톱이 낄낄거리는 남자의 가슴팍을 지나 툭 튀어나왔지만,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제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귀를 축 늘어뜨리며 한쪽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핏물이 흘러내리고, 볼이 퉁퉁 부어올랐음에도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낯선 모습을 한 리안이 있었다.

“그런가?”

리안은 어딘가 고장 나기라도 한 것처럼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전혀 상처받거나, 분노한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양아치들은 모욕이라도 들은 것처럼 분노했다.

리안은 그들이 자신을 기절할 때까지 때리든, 부모를 싸잡아 욕설하든, 그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

오싹할 정도로 기이한 모습에 양아치들은 주춤하며 결국 자리를 떴다.

제스는 너덜거리는 리안의 곁에 쭈그려 앉아 뚝뚝 눈물을 흘렸다. 지독한 무력감에 숨이 막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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