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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EP.207

     

   콰르릉-!

     

   거대한 경복궁이 삽시간에 무너지자 깨져 버린 기왓장과 나무 파편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어, 어어?!”

   “시인 씨는? 젠장!”

     

   굉음과 함께 땅이 진동하자 위태롭던 성벽이 충격으로 무너지며 2차 피해를 발생시킨다.

     

   그 상황을 모두 지켜본 오지훈과 남궁천호가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고 박조철은 금방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발을 동동 굴린다.

     

   드드드득-!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모든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전부.

     

   그렇게 목조 건물이 무너지며 생긴 잔해가 파도처럼 퍼져나가고 이윽고 주위가 잠잠해지기 시작할 무렵, 세 사람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으로 뛰어들었다.

     

   “여기 어디쯤이었는데…!”

     

   박조철의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쌓여 있던 크고 작은 파편을 굴착기마냥 파헤치기 시작했다.

     

   손톱이 부러졌다. 날카로운 나무 조각들이 그의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맺혀도 세 사람은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참.

     

   어디선가 들려온 낯선 소리에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후두둑-

     

   멀지 않은 곳의 잔해가 들썩이며 먼지가 일어났다.

   하지만 마냥 그것을 반가워하기에는 그들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기억이 있었다.

     

   “조심해… 성좌 놈일지도 모른다.”

   “나도 알아.”

     

   세 사람이 잔뜩 경계를 한 채, 반응이 일어난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른 세계의 김시인이 아닌 성좌가 저곳에서 나타난다면 이번에 놈과 싸워야 하는 것은 이곳의 세 사람.

     

   하지만 다행히도 땅을 박차고 나온 것은 하얀 갈기의 늑대가 아닌 김시인을 옆구리에 끼고 나타난 김시인이었다.

     

   ***

     

   ‘큰일 날 뻔했다.’

     

   봉인되어 있던 김시인을 억지로 잡아당겨 끌어내고 탈출까지 감행하는 건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것도 짐이 없어야 가능한 일.

   기절한 녀석을 옆구리에 끼게 된 이상 자그마한 상처는 피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큰 피해 없이 이곳을 탈출한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성과가 아닌가 싶다.

     

   “괜찮으십니까?!”

   “성좌는? 쓰러뜨린 건가?”

     

   멀리서 나를 발견한 세 사람이 크게 소리치며 이곳으로 달려온다.

   먼지 쌓인 옷과 피가 맺히고 뒤집어진 손톱, 걱정이 가득한 그들의 눈빛을 보니 김시인을 구한 게 썩 나쁜 판단이 아니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성좌는 해치웠어. 여기 김시인은…… 봉인에서 깨어났으니 금방 깨어날 것 같네.”

     

   나의 말에 바닥에 뉘인 김시인을 보던 세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평생의 숙제처럼 여겨졌던 김시인의 탈환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니 그들 또한 뒤늦게 후련함이 몰려온 탓인 것 같았다.

     

   “고맙…… 아니, 감사합니다. 시인 씨를 구해주셔서…”

   “답지 않게 존댓말이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냥 말 놔.”

     

   박조철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나는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들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바닥에 눕혀둔 김시인의 상태.

   바닥에 쪼그려 앉아 그의 상태를 체크하던 남궁천호가 뭔가 낌새를 느낀 듯, 고개를 들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으으……”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김시인이 악몽이라도 꾸는 듯, 움찔거리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 그의 신음이 들리자마자 세 사람은 재빨리 그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말을 걸기 시작했다.

     

   “시인 씨! 정신이 듭니까?”

   “아, 아니지! 일단 물이라도! 지훈 씨!”

     

   김시인이 깨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가 눈을 뜨는 동시에 묘한 괴리감 같은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똑같다.’

     

   평행세계의 나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물론 거울 속의 나와는 달리 이 김시인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심호흡을 할 뿐이었지만.

     

   “……”

   “깨어나셨군요! 걱정했습니다!”

     

   세 사람이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김시인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참.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답답함을 못 이겨 그에게 먼저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야.”

   “……”

     

   “너, 내가 맞아?”

   “……넌 도대체 뭐야? 왜 나랑 똑같이 생긴 거지?”

     

   목소리마저 똑같은 내가 있으니 기분이 더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녀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는 사실.

     

   다시 입을 닫기 전에 이 세상에 대한 정보와 다음 층에 대한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너다. 정확히는 평행세계의 너라고 해야 하나?”

   “도대체 그게 무슨……”

     

   “나도 자세한 건 설명 못해. 탑이 이상한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그건 맞는 말이군.”

     

   평행세계의 나는 생긴 것만 비슷하지 나와 성향 자체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뭔가 더 딱딱한 말투를 사용했고 눈빛에는 여유가 없다.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도 나와 비슷한 결인 것 같았지만 음의 기운이 밀집되어 있을 뿐, 양의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다시피 했다.

     

   “이제야 느끼는 건데 너는 나랑 좀 다른 것 같네. 지나 보낸 시간이 다르긴 한가 봐.”

   “……그런가?”

     

   마력이나 힘은 봉인이 풀린 이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뭐랄까……

     

   “근데 왜 겁에 질린 것 같지?”

   “……”

     

   목소리와 눈빛에 희망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허무와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느껴질 뿐.

     

   건물 잔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나를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은 탓인지 일어서는 것부터 불안정한 느낌이었지만 나는 굳이 그를 제지하거나 부축하지 않았다.

     

   “……평행세계에서 온 너는 지금 몇 층에 머물고 있지?”

   “여기가 내 15층이야.”

     

   “나와 같군.”

   “너도 꽤나 고생 했겠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따라온 세 사람을 바라봤다.

     

   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조각을 바라보는 듯한 무미건조한 눈빛. 애정은커녕 일말의 의리 따위도 없는 그의 표정에 세 사람이 몸을 움츠린다.

     

   “혹시 나에 대해 이 사람들이 어디까지 설명했지?”

   “네가 탑을 오르면서 독박을 쓰고 있다는 정도? 그리고 15층을 클리어했을 때, 위층의 성좌들이 쳐들어와서 봉인됐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나의 말에 그가 숨을 들이키며 흐릿해지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그의 목소리에서 차가운 냉기가 느껴진다는 착각이 들었다.

   앞으로 할 말이 가볍게 던질 발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 그의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느껴진다.

     

   “더 이상 탑을 오르지 마.”

   “……왜지?”

     

   “불가능한 일이니까. 도전하는 것은 너의 자유지만, 만약 나의 말을 무시하고 다음 층을 향한다면 너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그의 눈빛이 나를 향한다.

     

   봉인이 풀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일까.

   조금 전 하늘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비가 그의 눈을 적셔서 그런 탓일까.

     

   그의 눈은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보다 붉게 보였고 그런 김시인의 모습을 처음 본 세 사람 또한 당황하며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16층에 올랐었다. 여기 있는 화신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

     

   김시인이 박조철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저희는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앞으로 있을 이야기는 격이 부족한 자들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있을 테니 천천히 대화 나누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조철은 남은 두 사람을 이끌고 스카이 게임즈의 빌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녀석이 다시 나를 바라봤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거 거짓말이지? 격이 부족한 사람 어쩌고 한 거 말이야.”

   “맞아. 눈치가 빠르군.”

     

   “나는 너니까.”

   “크큭… 크흐흐……”

     

   나의 대답에 김시인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한참을 끅끅거렸다.

     

   그렇게 이게 미친 건가 싶을 무렵.

   녀석이 웃을 힘도 떨어졌는지 슬그머니 주변에 있던 큼지막한 파편에 주저앉았고 그런 그를 보며 맞은편 바닥에 자리를 잡아 편안하게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하아……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탑을 오르지 말라고 한 거?”

     

   “그렇군.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나? 너는 나잖아?”

   “어이가 없네. 별말도 안 하고 낄낄거리더니만 진짜 미친 거냐?”

     

   “미쳤다라……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아니, 미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일 지도 모르고.”

     

   의미심장한 듯 말했지만 나는 그의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녀석 또한 더 이상 말장난을 할 생각은 아니었던지 순순히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16층에서 나는 미래를 봤다.”

   “……미래?”

     

   “성좌들 중에는 별의별 신기한 놈들이 다 있지. 아마 나와 너의 시간이 비슷하다면 전투 계열의 성좌가 대부분이었겠지만 그 외에 이상한 초능력을 가진 놈들도 존재한다는 말이지.”

   “이상한 초능력이라…… 적들 중에 미래를 보여주는 능력을 가진 놈이 있었다는 말인가?”

     

   “정확해. 그리고 나는 나의 세상과 내가 파멸하는 미래들을 보게 되었다.”

   “……”

     

   말을 이어가는 그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지 눈을 지그시 감는다.

   파멸의 미래를 봤다는 그의 말. 하지만 그런 말로 나를 납득시키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탑을 오르지 말라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꿈처럼 봤다는 이유만으로?”

   “고작이 아니다. 조금 전의 세 사람은 성좌들이 쳐들어온 이후의 기억이 왜곡된 것 같지만 나는 당시에 우리를 습격한 모든 성좌를 쓰러뜨렸었다.”

     

   그는 15층에 왔던 성좌들과의 싸움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주변에 불을 다루던 성좌.

   갖가지 질병을 다루던 성좌와 무공을 사용하던 자.

   짐승의 형태를 취한 괴물과 날개를 달고 해골마를 타고 있던 기사.

     

   인간의 형태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김시인이라는 성좌를 견제하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왔고 그는 자신의 화신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적을 쓰러뜨리고 당당하게 16층으로 가는 포탈을 얻어냈지.”

     

   하지만 문제는 그가 수많은 성좌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오만에 빠졌다는 것.

     

   “16층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진실이었다. 15층에 내려온 것들은 성좌가 아니었어. 그저 16층 이상을 다스리는 성좌들이 보낸 화신의 일부였을 뿐.”

   “……”

     

   “나는 그들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그들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와 함께 탑을 오른 사람들이 죽는 미래를 수백 수천 번 반복해서 봐야겠지.”

     

   그렇게 성좌들의 장난감이 되어 고통을 받던 나날.

   도대체 무슨 영문이었는지,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모를 어느 날에 그는 성좌들에게 봉인되어 다시 15층으로 쫓겨났다.

     

   “아마도 탑을 더 이상 오르지 말라는 경고가 분명했다. 나 따위는 언제든 죽일 수 있으니 감히 세상의 비밀을 탐하지 말라는 경고.”

     

   김시인이 떨리는 주먹을 주체하지 못하며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백성이 위기에 빠지면 성좌의 화신들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화신이 위기에 빠지면 성좌가 그들을 구원한다……”

   “……”

     

   “하지만 성좌가 위기에 빠지면 누가 우리를 구원하지?…… 탑? 이 세상을 창조한 절대적인 누군가? 아니, 그딴 건 없다. 우리는 책임자이지 방관자가 아니니까.”

     

   나는 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반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되는 두려움. 언제 죽을지 모르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하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인 이유에는 다른 의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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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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