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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7

    잠에서 깨어나니, 어둠으로 가득 찬 풍경이 보였다.

     

     

    황량하고 척박한 지형.

     

     

    멀리까지 뻗어 있는 날카롭게 솟아오른 암석들과 어둡고 불길한 하늘.

     

     

    그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녹색의 오로라.

     

     

    하지만 신비로운 느낌을 뿜어내야 할 오로라에서는 이상하게도 불길한 기운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위쪽으로는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었고, 별빛 사이로 커다랗게 보이는 지구가 보였다.

     

     

    하늘에 보이는 지구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지구가 아닌 것을 명확하게 인지시켜 주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하늘을 올려다보면 왠지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지구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해서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더니, 그 떨어져 내리는 기분의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메마른 대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구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이라도 불러볼까, 하는 생각에 미니 사신 정원을 펼치려고 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거 꿈이구나.

     

     

    내가 이것을 꿈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양의 악의가 뭉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커다랗고 사악해서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악의였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히 예전에도 한 번 느낀 적이 있었던 악의였다.

     

     

    그 악의가 모두 모여들자, 유기적 요소와 무기적인 요소가 혼합된 것으로 보이는 기괴한 오브젝트가 갑자기 형체를 드러냈다.

     

     

    갑자기 나타난 그 오브젝트의 모습은 풍경과 동일한 재질로 이루어진 것 같아서, 마치 어둡고 뒤틀린 땅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불길한 실루엣은 우뚝 솟은 나무나 뒤엉킨 뿌리를 닮아 거칠게 뒤틀렸으며, 실루엣의 꼭대기에는 나를 응시하는 얼굴이 달려있었다.

     

     

    그 오브젝트에게 눈은 없었지만, 분명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나는 그 괴물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제대로 보려고 해도 뿌옇게,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괴물은 선명해졌다.

     

     

    톡톡.

     

     

    하지만 제대로 괴물을 직시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등을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자, 굳은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젓는 푸른 소녀가 보였다.

     

     

    그리고 그 푸른 소녀를 바라보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 버렸다.

     

     

     

    ***

     

     

     

    잠에서 깨어나니 어둠 속에 잠겨있는 격리실이 보였다.

     

     

    내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든 황금 사신의 몸에서 장작이 명멸하고 있었다.

     

     

    마치 잠자는 아기의 숨소리처럼 빛이 조금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곤히 잠든 황금 사신의 볼을 만지작거리면서 불길한 꿈에 대해서 고민했다.

     

     

    푸른 머리칼의 소녀와 정체불명의 오브젝트.

     

     

    내 ‘몸’과 관련이 있거나, 나와 관련이 있겠지.

     

     

    어찌 되었든 나와 관계있는 것은 분명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꿈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고 있었지만,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불길한 존재까지 튀어나왔으니 조금 생각을 달리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특히 꿈에서 본 그 불길한 오브젝트의 모습은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았는데,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회색 사신일 때 본 것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분명 인간이었을 시절에 본 오브젝트겠지만, 이상하게도 어렴풋이 본적이 있었다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아서, 조금 짜증이 났다.

     

     

    그 짜증을 풀 겸, 곤히 잠든 황금 사신의 조그마한 손바닥을 잡고서 들어 올렸다.

     

     

    황금 사신은 나처럼 한번 잠들면 웬만해서는 깨질 않았기에 이런 장난을 치기 좋았다.

     

     

    황금 사신의 팔다리에 테이프를 붙여서 벽에 고정해 버렸다.

     

     

    곤히 잠든 채, 마치 X 표시처럼 벽에 달라붙어 있는 황금 사신을 보니 조금 짜증이 가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히히.

     

     

    아무래도 나와 관계가 있어 보이는 의미심장한 꿈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봐야 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달과 눈동자를 모으는 것이겠지.

     

     

    달과 눈동자를 모으면 모을수록 무언가가 바뀌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문제는 달과 눈동자가 어디 있는지, 혹은 어디서 나타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답이 없네.

     

     

    ‘엄마…….’

     

     

    그때 침대에 누워있던 다른 황금 사신이 입을 냠냠거리며 내 머리카락을 끌어안았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꾸는지,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황금 사신은 잠꼬대로 내 머리카락을 입에 잔뜩 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

     

     

    내 머리카락을 먹는 황금 사신을 벽에 장식하려고 들어 올리는 순간, 해결 방법이 떠올랐다.

     

     

    ‘미니 사신들의 모험을 활용하면 되는 것 아닐까?’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애착 인간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미니 사신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미니 사신들에게 무언가를 강제로 시킬 필요도 없었다.

     

     

    후후, 역시 나는 똑똑하단 말이야.

     

     

    결국 나는 세희 연구소에 누워서 푸딩을 먹고 있으면, 미니 사신들이 달과 눈동자를 찾아주는 완벽한 시스템!

     

     

    고민을 모두 덜어낸 나는 격리실에서 잠을 자는 미니 사신을 하나씩 집어 들어서 테이프로 벽에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벽화를 꾸미는 것처럼 다양한 자세를 취한 미니 사신들이 벽면에 배치되었다.

     

     

    특히 미니 사신 활용 방안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준, 머리카락을 먹었던 황금 사신은 눈에 잘 띄는 중앙에 붙여주었다.

     

     

    그렇게 하나둘, 미니 사신들을 옮겨 붙이다 보니, 어느새 내 침대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던 미니 사신들을 모두 벽에 붙일 수 있었다.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살짝 뒤로 물러선 뒤, 내가 만든 예술 작품을 감상했다.

     

     

     

    ***

     

     

     

    늦은 아침 세희 연구소 안뜰, 예린은 간식이 잔뜩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미니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오브젝트 협회에서는 마포구를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이제 마포구는 사람과 오브젝트의 공존 여부를 실험하는 최초의 자리가 되었다고 봐야겠군요.]

     

     

    황금 사신이 잔뜩 출몰하는 마포구에 대한 뉴스였다.

     

     

    결국 오브젝트 협회는 마포구를 격리하거나,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아마 격리도 퇴치도 불가능한 오브젝트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겠지.

     

     

    정작 마포구 사태의 원인인 회색 사신은 뉴스에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안뜰에서 미니 사신들과 놀고 있었다.

     

     

    보통 회색 사신은 누워서 쉬는 게 보통이었지만, 오늘은 꽤 열심히 놀아주고 있었다.

     

     

    아마 아침에 미니 사신들을 박제 나비들처럼 테이프로 전시해 버려서 그런 거겠지.

     

     

    [일본에서 ‘안전하다’고 평가되었던 특급 오브젝트, 붉은 번개의 섬의 안전 평가를 철회했습니다.]

     

    [붉은 번개의 섬은 현재 일본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원인 불명의 실종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마포구의 이야기가 끝나자, 일본에서 벌어진 흉흉한 이야기가 뉴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려 만 명 단위의 사람을 집어삼키는 무서운 오브젝트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본은 정말 힘들겠네. 사신이가 없으니까 말이야.’

     

     

    예린은 푸딩을 황금 사신과 나눠 먹으면서,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맑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녀는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는 날이야.’

     

     

    사실 오늘만 재수가 없었다고 하기도 좀 그랬다.

     

     

    이 미궁 오브젝트 섬에 납치된 순간부터 운이 좋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일본 근해에 갑자기 생겨난 오브젝트 섬.

     

     

    인간이 접근할 수도 없고, 미사일이나 포탄으로 공격하는 것도 불가능한 오브젝트.

     

     

    다행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 무해하다고 알려진 오브젝트.

     

     

    모두 그렇게 생각했었고, 소녀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저런 대단한 오브젝트는 나랑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소녀는 이렇게 오브젝트에게 납치를 당해버렸다.

     

     

    지금도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집에서 누워서 잠들던 순간의 기억이 이토록 생생했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지.

     

     

    과연 사람들은 그 무해해 보이던 섬이 사실은 일본 전역에서 무작위로 사람을 납치하는 오브젝트라는 사실을 밝혀냈을까?

     

     

    그랬으면 돌아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겼을 텐데…….

     

     

    “하아.”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소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산산조각이 나버린 검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미궁 앞 노점상에서 이 검을 1/3 가격으로 샀을 때만 해도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검은 가짜였다.

     

     

    약간만 강한 힘을 가해도, 박살 나버리는 가짜 검.

     

     

    그래도 무기를 수리할 수 있는 접착제를 살 때만 해도, 그렇게 운수가 나쁜 날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망가진 검을 수리할 수 있는 접착제라니!

     

     

    이거라면 검을 수리하고 제대로 된 미궁 모험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시.

     

     

    접착제도 가짜였다.

     

     

    노점상 아저씨가 말했던 것처럼 산산조각이 난 검을 접착제로 붙이고 태양 빛에 한 시간 동안 말렸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태양 빛이 모자라서 제대로 안 고쳐지나 싶어서 계속 화분 위에 얹어두고 있었지만, 내심 알고 있었다.

     

     

    그 접착제도 사기라고.

     

     

    하지만 처음 산 무기를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계속 말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얼기설기 고쳐진 검도 박살 나버렸다.

     

     

    하늘에서 화분을 향해 떨어져 내린 정체불명의 까만 오브젝트에 의해서.

     

     

    “하아. 불행해.”

     

     

    소녀는 잔뜩 모았던 돈도 모두 잃어버렸다.

     

     

    정말로 한 발짝도 움직이기 싫을 만큼 우울했지만, 소녀는 이를 악물고 숙소를 나섰다.

     

     

    아무리 우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미궁에서 나는 식물들을 채집해야, 먹을 음식과 숙박비를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힘없는 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소녀의 뒤로, 작고 빠른 검은색 오브젝트가 뚜방뚜방 따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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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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