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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대신, 조건이 있어.”

        

       내가 성당을 치는 것을 허락해준 대신, 앨리스는 조건을 붙였다.

        

       “오늘 당장 가는 건 곤란해. 기껏 다 같이 왔잖아. 기왕 온 거, 편하고 즐겁게 지내다가 마지막에 실행하기로 하자.”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덧붙였다.

        

       “네 능력이 어떻건, 못 돌리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추억이라도 만들어두는 게 좋지.”

        

       앨리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가면녀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냥 마음 놓고 털어보았겠지만, 혹시 우리가 사건을 벌이는 도중에 가면녀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니까.

        

       성당 안에 지보가 있을까? 그럴 가능성 자체는 낮다고 생각했다. 원작에서도 성당에서 지보가 나오지는 않았다.

        

       성당 안에 있는 것은 병력이 숨어있는—게임에서 던전 역할을 하는—지하 기지와, 그 기지 깊숙한 곳에 있는 온갖 보고서였다.

        

       법국으로 곧장 보고서를 옮길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자료를 취합하고 결론을 뽑아낼 공간은 필요했으니까. 게다가 원작에서 법국은 벨부르와 손잡고 있기도 했고.

        

       지금까지 가면녀는 지보가 있는 곳, 혹은 지보가 나타날 곳에서만 등장했으므로 성당에서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나대로 준비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기차에 몰래 숨겨온 무기를 다시 모으고, 브라우닝이 만들어준 그 오버 테크놀로지 엑소슈트를 조립하고, 탄을 정리하고, 무기를 선정하고…… 너무 급하게 나서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간을 좀 들여서 제대로 된 준비를 하는 쪽이 좋겠지.

        

       내가 선선히 대답하자, 앨리스는 안심했다는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아, 그럼. 준비는 나도 도와줄 테니까, 적어도 애들이랑 있을 때는 조용히 있기로 하자.”

        

       앨리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친구들과 있는 것은 나에게도 도움이 꽤 되었다.

        

       샤를로트는 성실하게 우리를 여기저기 데려다 주었다. 덕분에 루테티아에서 중요한 곳의 위치는 잘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에서 성 라티나 대성당까지의 거리나, 그 주변에 있는 경찰이나…… 뭐 그런 것들.

        

       “산업 시설이 들어오게 된다면 루테티아의 일부 구역이 허물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아름다운 곳이기는 하지만 현대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죠.”

        

       샤를로트는 종종 씁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론다리움도 마찬가지야. 여기저기 공장이 생기고, 가스관이 들어서고…… 솔직히 루테티아의 공기는 조금 부럽네. 제도 중심가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깨끗한 공기니까.”

        

       앨리스가 그렇게 맞장구를 치자, 샤를로트는 깜짝 놀랐다.

        

       “지금 루테티아를 보고 부럽다고 하신 건가요?”

        

       그 말에 앨리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딘가 아련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표정이었는데, 샤를로트의 그 말에 정신이 확 들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바뀐 앨리스의 표정을 딱 한 글자로 표현하자면, ‘흥!’이었다.

        

       “그래도 편한 곳은 론다리움이지. 솔직히 살아가기 편한 곳이긴 하잖아?”

        

       “살기 ‘좋은’ 곳을 생각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겠죠.”

        

       그렇게 재반박하는 샤를로트에게, 앨리스는 굳이 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결국 루테티아도 시간이 지나면 산업화의 물결이 들이닥칠 거고, 이렇게 좋은 공기를 마시기는 여러모로 어려워질 거다.

        

       그렇게 되면 루테티아는 결국 론다리움보다 현대화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이류 도시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앨리스도, 샤를로트도,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하긴, 앞으로 도시가 어떤 식으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

        

       성 라티나 성당은 내가 칠 생각을 하고 말고를 떠나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수준의 위치는 아니더라도, 법국을 제외한 곳에 지어진 성당중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었다. 그리고 방문하는 신도 수로 따지면 이곳이 제일 많다. 당연히 벌어들이는 성금도 법국의 그 어떤 성당보다 많았고.

        

       성지로서도, 실리로서도, 이곳은 법국에게 굉장히 중요한 곳이었다.

        

       뭐, 위치는 벨부르에 있었고, 일단 여길 지은 국가도 벨부르이긴 했지만.

        

       “아름다워…….”

        

       샤를로트의 말에 언제나 틱틱거리며 반응하던 앨리스도, 이 성당의 내부에 들어오고 나서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을 정도로, 성당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하얀 돌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세워진 벽이나, 온갖 색을 섞어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나.

        

       그리고 천장에 그려진 아름답고 웅장한 그림이나.

        

       여신교의 많은 부분을 기독교에서 따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두 종교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게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여신교 경전의 내용은 대부분 그리스 로마신화의 내용을 유일신교의 내용으로 바꾼 듯한 내용이었다.

        

       여신을 따르는 신도들과 그들을 반대하는 존재들의 대전쟁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어떤 꽃이 붉은색인 이유, 어떤 나무의 잎이 널따란 이유 같은 것도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참고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는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뜻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듯이, 이쪽 세계의 경전도 그러했다.

        

       물론 역시 그 똑같은 현대 사회에서 그렇듯 경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맹신하는 이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흐응.”

        

       샤를로트가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근처에 있는 소피아도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는 그러면 곤란한 거 아니냐? 그래도 일단은 위장 신분인데.

        

       “그런데 샤를로트는 여신교는 아니잖아?”

        

       그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샤를로트를 향해 클레어가 물었다. 순간 샤를로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확실히, 샤를로트는 종교가 없다. 벨부르 왕실은 일부러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으니까. 그 사실 자체가 법국과 이야기를 할 때 나름대로 협상 요소가 되기도 하고, 벨부르 전체가 법국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설정집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신교를 믿는 왕도 있었다지만, 그런 왕도 일단 공식적으로는 무교라고 주장했다는 모양이다.

        

       “그, 그래도 이 교회의 양식은 벨부르 양식이니까요!”

        

       클레어는 딱히 대단한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듯 샤를로트의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성당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그 어떤 기계도 없었던 시절이잖아.”

        

       레오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저 조각 하나하나를 손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소리고.”

        

       “그냥 깎아 만든 것이 아니랍니다.”

        

       레오의 말에 샤를로트 대신 소피아가 대답했다.

        

       “건축가와 노동자 모두가 신심 깊은 신도였으니까요. 정을 망치로 두드릴 때마다 여신님에게 기도하고, 붓질 한 번 할 때마다 기도했으며, 벽에 작게 쓰인 경전의 단어 하나하나를 새길 때도 똑같이 기도하며 새겼다고 하죠.”

        

       이야기를 듣는 모두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했다. 심지어 이곳을 소개해주었던 샤를로트의 시선도.

        

       하지만 소피아는 그걸 제대로 느끼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만큼 신이 났다는 소리겠지.

        

       “그래서인지, 이 건물은 법국에서 성직자들이 관여해 세운 건물만큼이나 신성력을 머금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성력은 성직자만 못하지만, 그 진심 어린 신심이 모이고 모여서 일부러 축복을 내린 수준만큼이나 강한 신성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요. 그야말로 기적이죠.”

        

       덤으로 그런 신심 깊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벨부르가 여신교 탄압을 막 그만두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벨부르 사람들이 모여서 지은 건물이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건물을 지을 때 벨부르 왕가는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법국이라는 나라가 확실하게 세워지기도 전의 일이었기에 법국이 지원하지도 못했고, 이 성당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졌던 성 라티나는 성당이 세워지기 10년 전에 이미 화형당했다.

        

       성당이 지어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고 한다. 지어지는데 든 돈은 모두 순수하게 신도들이 모은 돈이었고, 모여든 인부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법국에서 법국 땅도 아닌 이곳을 성지로 삼아서 중요한 곳으로 보는 이유는 신도의 수 때문이기도,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여신교에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피아가 이 자리에서 그 모든 설명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배경을 알고 있을 샤를로트의 표정은 조금 미묘해졌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저 조금은 경외심을 담아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으니, 그렇게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가지는 않았지만.

        

       “…….”

        

       하지만 그 와중에 미묘한 시선을 나에게 보내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제국의 정당한 후계자이신 앨리스 팬그리폰 되시겠다.

        

       ‘이런 역사 깊은 곳을 파괴할 생각이라고?’

        

       그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아서, 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 부순 뒤에 돌려놓겠다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sorka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예전에 연중성녀 쓸 때만 하더라도 제가 그 소설을 완결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끝까지 무료연재를 했던 이유도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그렇게 했던 거고요. 처음 쓰기 시작했을때만 해도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알아보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글 쓰는 동안 많은 분들이 저의 소설을 읽어주시는 걸 보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이 소설만큼은 확실하게 끝까지 써보자, 이것도 못하면 앞으로 글 쓸 생각은 하지말자… 결과적으로 여러분 덕분에 끝까지 쓸 수 있었고, 나름대로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게도 연중성녀가 조금 특별한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아무래도 처음 제대로 끝까지 써본 글이니까요.

    그 뒤에도 언제나 같은 마음입니다. 이번 소설도 끝까지 쓰자, 한 번 완성시켜보자,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오늘도 이렇게 글을 써서 올릴 수 있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몇 편이고 쓰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글들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쓰는 글들을 먼저 제대로 끝낼 줄 알아야겠지요. 이번 글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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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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