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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이 싸움에 학생, 어른을 따져…?”

         

         

       아이작의 목소리는 서리처럼 차갑고 담담했다.

         

         

       “그따위로 추켜세워 줄 필요 없어.”

         

         

       제논은 피가래를 뱉어내고 몸을 일으켜 청은발의 소년을 노려보았다.

         

       다리 일부가 얼어 움직임에 지장은 있겠지만 여전히 자신이 아이작보다 우위임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아니면, 학생이라고 죽이기 전에 최소한의 동정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년, 아이작이든.

         

       단련에 들인 세월이 그와 비교조차 안 되는 제논이든.

         

         

       “여기선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결과고, 그게 다야.”

         

         

       어차피 이 싸움의 끝엔 어느 한쪽의 미래가 짓밟힐 뿐이었다.

         

         

       “그 과정이, 뭐가 중요하냐?”

       

       

       …그랬지.

         

       제논의 표정이 풀려갔다. 아이작의 그 몇 마디가 제논의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해주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은 저 소년을 동정했던 걸까.

         

       이미 앨리스를 위해서, 왕국을 위해서, 오늘… 셀 수 없이 많은 희생자를 낳기로 다짐했거늘.

         

       그런데도 이 죄책감을 차마 떨쳐 내지 못했단 말인가.

         

         

       “…네 말대로다, 아이작.”

         

         

       제논은 군모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우스꽝스러운 위선(僞善)도 벗어 던졌다.

         

       자신은 긍지를 버린 기사였다. 그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양심으로부터 등을 돌린 미천한 죄인이었다.

       

       그러므로… 저 소년의 미래를 짓밟는 행위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아야 했다.

         

       이제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입을 열 필요는 없으리라.

         

       제논은 태도 손잡이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다시 전투 자세를 취했다.

         

         

       “…….”

         

         

       아이작은 제논을 주의 깊게 살피며 잔야의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신체가 무겁다. 태도로 위력을 증폭시킨 제논의 냉기에 밀려 서서히 얼어붙고 있는 것이었다.

         

       제논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 봤자 불리해지기만 할 뿐. 하물며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허를 찔러 단숨에 승부를 본다.

         

       아이작은 그리 다짐하고, 바닥을 박차고 제논을 향해 뛰어들었다.

         

         

       카앙!

         

       콰과강!

         

         

       두 남자는 원소 마법을 부딪치며 서로의 무기를 휘둘렀다. 서늘한 한기를 머금은 검격이 허공에 수많은 실선을 그어냈다.

         

       그러다, 제논은 뒤로 빠져 태도를 위로 뻗었다.

         

       묵직한 얼음 마력과 번개 마력이 검날에 스몄다. 이미 [심리 간파]로 제논의 다음 수를 알아챈 아이작은 곧바로 바위 마력이 깃든 얼음의 벽 [화석빙]을 끌어올렸다.

         

       이내, 제논은 태도를 내려 벴다.

         

         

       콰가가강!!

         

         

       전격을 휘감은 차가운 검기가 바닥을 가르고.

         

       수많은 번개가 사슬처럼 휘감기며 지면을 사정 없이 내리쳤다.

         

         

       “……!”

         

         

       [화석빙]이 아이작의 몸을 보호하고 박살 났지만, 갈라진 지면은 순식간에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발 디딜 곳이 사라져 아이작의 몸은 허공을 부유했다.

         

       드넓은 1층 홀로 잔해와 함께 떨어지는 도중, 아이작은 냉철하게 제논을 살폈다.

         

         

       쿠웅!

         

         

       제논이 잔해를 박차고 아이작을 향해 도약했다.

         

       여기가 승부 지점이었다.

         

       아이작은 소리쳤다.

         

         

       “이든!!”

       [구우!!]

         

         

       쿠우우우우!

         

         

       제논이 쥔 기다란 칼날이 냉기와 전격이 서린 궤적을 그려내려 할 때.

         

       1층에서, 바위기둥이 제논을 향해 사나운 기세로 뻗어나갔다. 4성급 바위 원소 마법, [암석 붕괴]였다.

         

       찰나간 제논은 1층에서 자신을 향해 마법을 시전한 작은 골렘을 발견했다. 아이작이 미리 소환해 대기시켜 놓았던 바위 골렘 사역마, 이든이었다.

         

         

       “칫!”

         

         

       제논은 능숙한 솜씨로 검의 궤도를 틀었다.

         

       번개가 몰아치는 차가운 검기가 [암석 붕괴]를 덮쳤다.

         

         

       콰아아앙!!

         

         

       제논을 향해 뻗어오던, 마력 밀도가 높은 바위기둥이 폭발하듯 박살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아이작의 노림수는 [암석 붕괴]로 역공하는 것이 아닌, 제논의 시선을 잠시나마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

         

         

       제논은 두 눈을 희번득 떴다.

         

       마법에는 대항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상시 술식을 연산해 놓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아이작이 마법을 발동한다면 반사적으로 마법을 퍼부어 상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이 사용하려는 건 마법이 아니었다.

         

       잔야의 지팡이가 아이작의 손을 떠나 1층 홀로 떨어졌다.

         

       아이작은 이든이 [암석 붕괴]를 발동했을 때부터 양손으로 무언가를 거머쥐며 휘두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황옥빛 바위 마력이 척척 뭉쳐간다.

         

       제논은 본능에 의지해 태도를 휘두르며 아이작에게로 고개를 비틀었다.

         

         

       콰아악!!

         

         

       “끄허억!!”

         

         

       그보다 먼저, 바위 대검이 제논의 복부에 휘둘러졌다.

         

       순간 내장이 터지고 뼈가 박살 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검격의 반동으로 황옥빛 바위 마력이 화려하게 터져 나갔다.

       

       직격. 아이작의 뛰어난 신체 능력을 십분 발휘한 회심의 일격이었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제논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다.

         

       외벽이 강력한 결계로 보호되고 있었기에 벽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아이작은 얼음 미끄럼틀을 만들어 타고 내려가 여유롭게 지면에 착지하고, 암철검을 어깨에 걸쳤다.

         

       평소대로였다면 바위 마력을 휘감은 암철검을 한 번만 휘둘러도 손이 석화됐겠지만.

         

       [대 인간 전투력]으로 능력치가 상당히 올라가 있던 덕분에 손가락 끝이 돌이 된 것 외에는 멀쩡했다.

         

         

       “허억…!”

         

         

       제논은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렸다.

         

       방심했다.

         

       아이작에게 숨겨진 무기가 있다는 건 예상하고 장검 수준의 거리까진 계산하고 있었지만, 저런 바위 대검이 숨겨진 전력일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니…, 방심한 게 맞는 걸까.

         

       사실은 느끼고 있었다. 아이작의 순간적인 판단 능력은 이미 제논 자신의 전투 경험을 웃돌고 있었다는 것을.

         

       정확하게는 [심리 간파]의 도움이 컸으나.

         

       이를 알 리 없었던 제논은 벽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은 채 아이작의 자질에 말없이 경탄할 뿐이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애써보지만 일으켜지지 않았다. 몸이 지나치게 무거웠다. 고개를 숙이자 석화되어 버린 박살 난 복부가 보였다.

         

       잇달아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금방이라도 의식이 멀어질 것만 같았다.

         

       황색으로 빛나는 아이작의 눈동자가 제논을 향했다. 아이작의 등 뒤로는 신비로운 바위 고리가 둥둥 떠다녔다. 오른손에 쥔 바위 대검, 암철검의 방어 능력인 [암식]이었다.

         

       아이작은 제논에게 다가갔고.

         

       제논은 포기하지 않고 얼음 원소 마법, 번개 원소 마법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를 아이작은 가볍게 피하거나 마법으로 상쇄하거나 대검으로 튕겨 냈다.

         

       치명상을 허용해 버린 탓에 제대로 된 연산을 할 수 없었던 제논의 공격을 막아 내기란, 아이작에겐 무척 간단한 일이었다.

         

         

       “으욱…!”

         

         

       제논은 바닥에 피를 토해냈다. 졸음이 급격히 몰려오는 탓에 시야마저 흐려지고 있었다.

         

       아이작은 제논 앞에 이르러 무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전력은 제논이 우위였다.

         

       하지만 지금, 피를 쏟으며 전투 불능 상태가 된 건 제논 자신이었다.

         

         

       ‘경이롭군….’

         

         

       어째선지 제논은 아이작에게서 열등감도, 분노도 아닌, 동경심을 느꼈다.

         

       검을 쥐고 단련하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 비쳐 보였다. 하지만… 이 소년은 자신 따위보다 훨씬 강해질 남자였다.

         

       문득 이 소년의 미래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건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이라고, 제논은 생각했다.

         

         

       “…내 패배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이 사내의 미래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왠지 모를 후련함이 한데 뭉치고.

         

       비릿한 쇠맛이 혀 끝에 맴돌며, 씁쓸한 감정이 헛웃음으로 튀어나왔다.

         

       마지막으로, 제논은 울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마지막 상대가 너라서 다행이군…. 썩 나쁘지 않은 기분….”

         

         

       퍼억!

         

         

       “푸헉!”

         

         

       다짜고짜 아이작은 돌려차기로 제논의 머리를 후려쳤다.

         

       제논은 그대로 옆으로 엎어져 정신을 잃어 버렸다.

         

         

       “시끄러워.”

         

         

       아이작은 패배자에게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왠지 감상에 빠져 있던 모양인데, ‘어쩌라고’라는 생각밖에 더 들지 않았다.

         

       암철검은 바위 마력의 형상으로 바뀌어 아이작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그의 눈동자는 칙칙한 적색으로 돌아갔고, 등 뒤에 머무르던 바위 고리도 사그라졌다.

       

       

       [Level Up!! Lv이 125로 상승했습니다!]

        

       [스탯 4를 획득합니다!]

         

         

       “좋았어.”

       

       

       아이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했어, 이든.”

       [꾸우!]

         

         

       아이작은 이든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작은 골렘 이든은 오른팔을 번쩍 들며 호응했다.

         

       이후, 아이작은 이든을 역소환했다.

         

         

       “…아, 맞다.”

         

         

       발걸음을 옮기기 전, 아이작은 떠올렸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제논을 이기면 드랍되는 아이템이 있었다.

         

       아이작은 기절한 제논의 제복을 빠르게 벗겨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오.”

         

         

       게임에서 봤던 대로 회복 포션이 담긴 작은 유리병 10개를 찾아냈다. 하트 왕국에서 조달된 포션으로, 효과가 상당히 뛰어났다.

       

       치유 마법만큼은 아니지만, 유사시에 쓰기 좋은 회복 아이템이었다.

         

       그것을 하나 마셨다. 단맛에 가까우나 밍밍했고,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에 강한 쓴맛이 올라왔다.

         

       아이작은 얼굴을 찡그렸다.

         

         

       “전리품은 가져간다.”

         

         

       나머지 포션은 여분으로 챙겼고, 잔야의 지팡이와 재해의 검집도 회수했다.

         

       돌이 된 손가락 끝이 차츰 회복되어갔다. 통증도, 제논의 냉기 탓에 얼어붙었던 신체 일부도 점점 나아졌다. 회복 속도가 기대 이상으로 빨랐다.

         

       아이작은 계단을 뛰어올라 갔다. 어서 앨리스를 만나러 가야 했다.

         

         

       “…….”

         

         

       바르토스관 1층 홀에는 잔해 더미와, 제복이 벗겨진 채 초라한 모습으로 기절한 제논만이 남겨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령월 님 200코인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ㅠㅠㅠㅠ 재밌게 읽어주신다니 제가 더 고마워요..! 좋은 글이라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을 적어야 할 텐데..!!ㅠㅠ 노력하겠습니다!
    망고성애자 님 주6회 연재주기 기대하신다며 3코인 후원해주셨습니다! 최대한 연재주기 지키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chaoszero 님 아무 말 없이 500코인 후원해주셨어요!! 부족한 사람에게 이런 애정을 주시니 정말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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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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