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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슬라그보르트 제과 공장의 전체적인 모습은 하나의 커다란 성과 같았다.

       첨예하게 솟은 굴뚝들은 첨탑들을 연상케 했고, 창문이 없는 높은 외벽은 돌로 쌓은 성벽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공장에 정말로 창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건물 외장재로 쓰인 금속판들이 은빛 광택을 내는 덕에 그사이에 끼어있는 유리창들을 알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금속판들은 종이 한 장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그 이음매가 빈틈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거기에는 단 한 장의 평평한 금속판도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금속판들은 크고 작은 각도들로 굽어 있었다. 덕분에 공장의 외벽은 마치 반죽을 주물러 놓은 것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그것은 일필휘지로 그려낸 글씨처럼 각진 곳도 끊긴 곳도 없었다.

         

       그 극단적인 곡선미는 효율이나 성과를 중시해야 할 공장 건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공장단지와 외부를 차단하는 담벼락이 없는 것도 그랬다. 어린아이도 뛰어넘을 수 있을 높이의 울타리와 정문의 커다란 아치문은 그저 경계를 나타나는 표식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곳을 순찰하는 경비원조차 없었다.

         

       이런 개방적인 근무환경은 제과사들이 계속해서 창의적인 물건을 개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공장장 역시 평소에는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맘때가 되면 그는 가시철조망과 무장경비대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됐다.

         

       할로윈 축제가 열리는 10월.

       이 한 달 동안 공장은 한 가지 행사를 열었다. 바로 괴물 분장을 하고 공장을 찾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과자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물론 나눠준다고는 해도 낙점을 받은 상품이거나 악성 재고가 대부분이었다.

       11월이 넘어가면 부동항을 찾아 전 제국의 물류가 예테린푸르크로 몰려들기 때문에 미리 창고 정리를 할 겸 진행하는 행사였다.

         

       공장장도 그러한 행사 자체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괴물 분장을 하고 무리 지은 아이들이 얼마나 대담해질 수가 있는지가 두려울 뿐이었다.

         

       어제 벌어진 일만 해도 그랬다.

       10월이 시작된 지 하루 만에, 벌써 사건이 몇 개나 터졌다.

         

       초콜릿 중탕기에 빠져버린 아이로 시작해서, 독성을 중화하지 않은 원료를 훔쳐먹다가 병원에 실려 간 아이, 자기가 키우던 다람쥐가 소각장에 빠졌다고 냅다 뛰어들었던 아이, 압착기에 빨려 들어가 하마터면 납작한 포가 될 뻔한 아이 등.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 같은 하루였다.

         

       가뜩이나 서커스 그랑프리다 뭐다 해서 도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이 더 흥분해서 날뛰는 것 같았다.

         

       우리 때는 그런 천방지축들은 그 자리에서 엉덩이를 까이고 맞았는데 말이지.

         

       공장장은 선을 지킬 줄 알았던 과거의 어린이들-그가 어렸을 때를 말한다-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남은 4주 동안 아이들이 또 어떤 사고를 칠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가 통근용 마차에서 내렸을 때, 자신을 둘러싸는 기자들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드디어 사망자가 나온 건가 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즈음에 기자들이 공장 주변을 얼씬거리는 것도 연례 행사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앞에 선 인파는 평소의 몇 배 이상이었다. 뭔가 대형 사건이 터진 게 분명했다.

         

       기자들은 그가 마차에서 채 내리기도 전에 몰려와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말인가요?”

       “진짜입니까?”

         

       다짜고짜 사실을 따지고 드는 것은 기자의 전매특허 중 하나였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의표를 찌르기 좋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하찮은 수작에 걸려들 정도로 공장장이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침착하게 질문을 회피하며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기자들도 답답했는지 먼저 패를 깠다.

         

       “혹시 저번에 베가스 경매에서 구매하신 물건이 그것입니까?”

       “물건의 진위는 어떻게 감정했습니까?”

       “공작님께서 오늘 이곳을 방문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장장은 그제야 사건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뭔지는 모르지만 지금 기자들이 공장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여기 일 때문이 아니었다. 이 공장의 주인인 슬라그보르트 공작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는 기자들 대부분이 가슴에 ‘대회 특파원’ 명찰을 달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봤다. 이 사람들은 서커스 그랑프리를 취재하기 위해 파견된 기자들이었다.

       그런 단서들을 바탕으로 그는 ‘베가스 경매’라는 단어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공작님이 뭔가 또 사들인 모양이군.’

         

       슬라그보르트 공작은 자타가 공인하는 서커스 마니아였다. 그에게 서커스와 관련된 희귀한 소장품들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저께 갑자기 이곳을 또 방문하신다고 하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 공장 한구석에 마련한 전시실에 애장품을 추가하실 모양인 듯했다.

         

       “비키시오!”

       “모두 물러나시오!”

         

       제복을 입고 검을 찬 군인들이 공장 안쪽에서 나왔다.

       공작의 사병들이었다.

       그들은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을 밀어내며 공장장을 건물 안쪽까지 정중히 모셨다.

         

       공작의 젊은 비서가 그를 반겼다.

         

       “공장장님.”

       “어떻게 된 일이오?”

         

       비서는 고개를 내저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소문이 새어나갔나 봅니다. 공작님이 손에 넣으신 물건에 대해서는 원래 손님들이 모두 도착하면 밝히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소. 어차피 10월은 이런 달이니까. 그런데 그 손님들이라는 건 누구요?”

       “그건……아, 저기 오는군요.”

         

       비서가 광장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공작의 문양을 단 다섯 대의 마차가 줄지어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비서가 신호하자 군인들이 밖으로 달려 나가 재빨리 마차를 호위하는 대형을 펼쳤다.

         

       마차들은 공장 정문 바로 옆에 정차했다.

       마부가 문을 열자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 모여있는 기자들은 모두 공연 잡지나 문화부 쪽의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차 안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황금 카니발.

       은막 서커스.

       샛별 서커스.

       파파엘 서커스.

       원더스타인 서커스.

         

       다섯 군데 모두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의 참가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차에서 내려 서로를 알아보고는 반가움을 표했다.

         

       카렌은 평소처럼 마야에게 달려가 그녀를 품에 꼭 안았고, 엘라는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쭈뼛거리고 있는 루엘로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원더스타인은 아르노, 미노바, 홉스와 인사를 나누었다.

       홉스는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도 한 번 만났지만, 저번 무도회에서 그의 동생을 구해준 이후로 제대로 인사를 나누게 됐다.

         

       50대인 아르노, 30대지만 기혼자인 미노바와 다르게 40살이지만 남자들하고 주로 어울려온 홉스는 어딘가 철이 덜 든 구석이 있었다.

       짓궂은 형처럼 그에게 흔히 총각들끼리 하는 농담을 자주 던지곤 했다.

         

       그는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살피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안 보는 동안 총각 딱지 뗐군.”

       “……그걸 얼굴만 보고 알 수 있습니까?”

       “크하핫, 보기보다 순진하네. 그렇게 대답하면 적어도 동정이었다는 건 맞는다는 거잖아. 그 얼굴을 가지고 이 나이까지? 그래서 누구랑 잤어?”

       “좀 조용히 하시죠.”

         

       원더스타인은 행여나 자신들의 대화를 엘라와 마야가 들을까 그녀들을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그걸 본 홉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설마 이 새끼…….”

       “이상한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질문 좀 안 하면 안 됩니까?”

       “뭐 어때, 남자들만 있는데.”

         

       홉스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바로 옆에 선 아르노를 훔쳐봤다.

       그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지금까지 혼자 고고하게 서 있던 남자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남자는 생긴 것보다 별 볼 일 없다네, 홉스 단장. 여자들에게 최면이나 걸고 다니는 인간이니까, 후후.”

         

       지몬 마기어의 말에 미노바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생트집 잡지 마쇼, 로드 판타스틱. 원더스타인 단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오. 겉보기보다 건실한 청년이오. 같은 단장끼리 예의를 지킵시다.”

         

       로드 판타스틱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딱 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범죄자는 역시 범죄자가 옹호해야지. 이 업계가 원래 근본 없는 인간들이 많기는 했지만, 주먹 쓰던 건달이나 최면술로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놈에게 내가 같은 단장 대접을 해줄 거라 여기면 곤란하네.”

       “뭐야!”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둘 사이에 흐르는 적대감이 아이들에게까지 전염되었다.

         

       루엘로는 아빠가 또 사고 칠까 봐 그의 다리를 잡고 벌벌 떨었고, 엘라는 감히 원더스타인을 욕한 로드 판타스틱과 그 뒤에 서 있는 레이나를 노려봤다.

         

       이제 막 기자들을 모아 그들을 소개할 참이었던 공작의 비서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 광대 놈들은 안 된다니까. 감히 누구 초대를 받고 온 줄 아는 거야?’

         

       다행히 그가 나서기 전에 아르노가 상황을 수습했다.

       그는 여기 있는 서커스단 사람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다. 그가 점잖게 타이르자 지몬도 미노바도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원더스타인은 지몬이 오늘 유독 까칠하게 나온다고 생각했다.

       드래프트 건으로 인해 확실히 원한을 가질 만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갑자기 시비를 걸어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공작의 비서는 그들을 뒤에 나란히 줄 세우고 기자들 앞으로 나섰다.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들 계시겠지만, 공작 각하께서 얼마 전에 귀중한 물건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환상의 13번’에 대해서.”

         

       그의 선언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환상의 13번은 극작가 크리스티앙이 남긴 13번째 극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공식적으로 12개의 극본을 남겼던 그였지만, 사망 직전에 완성하고 미처 발표하지 못했던 13번째 극본이 있다는 소문은 업계에서 유명했다.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것이 드디어 발견되다니.

       공장 앞은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드, 들었어? 크리스티앙이래! 그 크리스티앙의 13번째 극본!”

         

       그중에 엘라만큼 흥분한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옆에 선 원더스타인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는 그녀가 크리스티앙의 엄청난 팬이었음을 기억했다.

         

       기자들은 준비했던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 그걸 어디서 입수하셨습니까?”

       “진위는 정확히 판별된 겁니까?”

       “내용을 언제 공개하실 겁니까?”

         

       공작의 비서는 침착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했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오래된 관물함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생전 5인방 중 한 명인 우르수스와 극작가 크리스티앙은 친분이 깊었다는 걸 여러분들도 알 겁니다.”

       “아직 감별사의 정밀 평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작님은 그것이 진짜라고 확신하고 계십니다.”

       “공작님께서는 그것의 내용을 세간에 공개하기 전에 두 눈으로 공연을 직접 보길 원하셨습니다.”

         

       앞의 두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던 기자들이 마지막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공연을 직접 보기를 원하신다니?”

       “말 그대로 극본을 최초로 연기하는 것을 볼 권리는 오롯이 공작님 혼자 누리시겠다는 말입니다.”

         

       공작의 비서는 뒤에 있는 다섯 서커스단의 10명의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는 분들은 바로 그것의 공연을 부탁드리기 위해 모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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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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