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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멀쩡한 문이 왜 없어져!”

         

       미치시게는 이를 악물며 마나를 끌어올려 몸을 강화했다. 그리고 마나를 한 바퀴 돌려서 몸의 이상을 없애고 눈을 강화해서 혹시 모를 속임수를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마나를 아무리 돌려도 그의 몸에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눈을 강화해도 사라진 문이 다시 보이는 일은 없었다.

       어둠을 꿰뚫는 눈은 거무튀튀하게 자리 잡은 곰팡이의 역겨운 모습만 자세히 보여줄 뿐이었으며, 마나로 강화된 신체는 금방이라도 튀어 나가야 할 것 같은 고양감과 근질거림을 주었지만, 그의 눈앞의 ‘환각’을 없애줄 수는 없었다.

         

       탈출구는 없다.

         

       “이게 무슨 요악한 속임수냐!”

         

       미치시게는 노성을 터뜨리며 마나를 끌어올려 손끝에 모았다.

         

       칼이 없었기에 그 대용으로 손톱에 마나를 집어넣어 무기 대용으로 사용하려고 한 것이다.

         

       파스스.

         

       그렇게 미치시게는 손톱 끝에 마나를 모으고 그것을 쌓아 올리며 점점 기다란 가시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가시에 살을 붙이듯 마나를 붙이고, 몸 곳곳에 퍼져있는 마나를 끊임없이 공급하며 그 작업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미치시게는 마나로 이루어진 검을 만들었다.   

         

       ‘마나 소모가 빠르다.’

         

       하지만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상태로 억지로 모양만 맞춘 마나로 이루어진 검은 끔찍할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다.

       마나는 제대로 압축되지 않아 그 끝이 날카롭지 못했으며, 마나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어서 조금씩 밖으로 빠져나오며 끊임없이 마나를 소모하게 했다.

         

       미치시게는 약간의 조급함을 가지고 마나로 이루어진 검을 들어 올렸고.

         

       “히야아아압!”

         

       무거운 둔기를 바닥에 내리치듯 있는 힘껏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 서린 마나가 바닥에 닿자마자 클레이모어처럼 수많은 마나의 탄환이 되었고,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가며 그의 눈앞에 있는 벽면에 부딪혔다.

         

       콰과과광!

       

       그렇게 부딪친 마나의 탄환은 벽에 박혀 폭발하였고, 벽의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지하 공간을 뒤흔들어놓았다.

         

       쿠구구궁-

         

       하지만 그런 미치시게의 시도는 헛수고로 끝을 맺었다.

         

       그의 공격은 지하 공간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지게 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결국 그의 목적이었던 ‘문’을 찾지는 못했다.

         

       “히야아아압!”

         

       하지만 미치시게는 포기하지 않았다.

         

       벽은 총 4개.

       그렇다면 공격을 4번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쿠구구구궁-!

         

       그는 마나를 끌어올려 다시 한번 마나의 탄환을 쏘아내었고, 모든 벽을 걸레짝처럼 부숴버렸다.

         

       하지만….

         

       “이런 빌어먹을.”

         

       탈출구는.

         

       없었다.

         

       『 벨 마르두크! 벨 마르두크! 』

       『 사크에아의 축제 아래 사형수가 왕의 자리에 앉으니 그것은 한낱 사형수가 아닌 다른 칭호를 가지게 되었으니! 』

       『 가장 낮은 자에서 가장 높은 자로! 』

       『 가장 쓸모없는 자에서 가장 쓸모있는 자로! 』

       『 아클루 벨 테리에티(aklu bêl terieti)가 말씀하셨다! 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사형수에게 조가네스(Zoganes)의 칭호를 내려 왕과 같은 권위를 휘두를 수 있게 하라고! 』

         

       그리고 그런 미치시게의 헛수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잡음이 섞인 워크맨에서 나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로우스(Lous)의 열여섯부터! 』

       『 다섯의 태양이 떠오르고. 』

       『 다섯의 달이 질 때까지! 』

       『 위대한 조가네스(Zoganes), 사형수에서 왕이 된 위대한 조가네스(Zoganes)시여! 』

       『 조가네스(Zoganes) 히라모토 미치시게시여! 명을 내리소서! 』

       『 왕의 권위를 휘두르고 그 권력의 달콤함을 한껏 맛보소서! 』

       『 육체에 꿀을 넣고 영혼의 살을 찌우소서! 』

         

       서걱!

         

       미치시게는 그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참지 않았다.

       그는 워크맨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온 시점에서 그곳을 향해 뛰어들어 아직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마나의 검을 휘둘러 그것을 잘게 잘라버렸다.

         

       그러자 플라스틱 쪼가리에 불과했던 워크맨과 테이프는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고, 조금 전까지 그의 신경을 거스르게 했던 역겨운 소리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렇게 다시 찾아온 끔찍한 침묵 속에서, 미치시게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건 함정이야. 함정이라고. 이 모든 게 함정이야.”

         

       그는 아주 더럽게 걸렸다면서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렇게 욕설을 내뱉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덫을 밟은 동물은 곧 찾아올 자신의 미래를 알아차려도 그것을 바꿀 수가 없다.

         

       『 한때는 왕이었던 종이 질문을 올리나니, 위대한 조가네스시여! 』

       『 무엇을 원하십니까? 』

         

       소리는 미치시게의 헛된 발버둥을 비웃듯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부서진 워크맨은 꿈틀거리며 다시 제자리에 붙어서 테이프를 재생하였고, 이제는 울퉁불퉁 부서져 버린 벽에서는 물감이 번져나가듯 곰팡이가 번져나가며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번져나가는 곰팡이 사이사이로 군데군데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람의 얼굴의 형태가 되었다.

         

       눈이 없는 얼굴이 말했다.

         

       『 산해진미를 드리오리까? 』

       『 반짝이는 금을 뿌린 음식이 있습니다. 』

       『 달콤한 꿀을 넣은 음료가 여기 있습니다. 』

       『 태양의 정원에 열리는 보석 열매가 있습니다. 』

         

       사람의 몸 크기를 훌쩍 넘을 거대한 얼굴이 말했다.

         

       『 여자가 필요하십니까? 』

       『 한때는 왕이었던 종의 애첩을 안으십시오. 』

       『 왕의 자리를 얻었으니 그 여자 역시 당신의 것입니다. 』

       『 열락을 즐기는 것은 당신께 주어진 마땅한 권리입니다. 』

         

       가느다란 얼굴이 말했다.

         

       『 오락을 원하십니까? 』

       『 온 세상의 오락이 이곳에 있습니다. 』

       『 전사들이 싸우는 것을 보여드리오리까? 』

       『 아름다운 여자들의 공연을 보시겠습니까? 』

         

       그리고 테이프가 말했다.

         

       『 아아, 조가네스시여! 조가네스시여! 』

       『 위대한 조가네스 히라모토 미치시게시여! 』

       『 원하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받아 몸을 찌우고! 』

       『 오물이 묻은 영혼을 비대하게 만드소서! 』

       『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니! 』

       『 마침내 축제의 끝에 다가올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소서! 』

       『 으뜸신이자 마법과 주문의 신! 』

       『 우주의 창조자! 폭풍우를 부르는 위대함! 』

       『 곡식 한 알에서부터 세상의 규칙까지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자! 』

       『 벨 마르두크의 이름으로! 』

         

       얼굴이 말했다.

       테이프가 말했다.

       벽이 말했다.

         

       너는 제물이라고.

         

       “빌어먹을!”

         

       너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고!

         

       “빌어먹으으으으을!”

         

       미치시게는 다시 한번 마나를 끌어올려 칼을 뽑아냈다.

       그리고 발작하듯 뛰어다니며 테이프와 얼굴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삐이이이이-

       둥-

       두두둥-

       둥-!

         

       조각으로 잘린 워크맨은 마치 원래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다시 붙어서 음악을 재생하였고, 마나의 성질을 바꿔서 태워버려도 액체처럼 변했다가 다시 워크맨의 형상을 이루었다.

       얼굴 역시 그어진다고 한들 물을 베는 것처럼 순식간에 들러붙어 그 자리를 메꾸었고, 더 기괴해진 형상으로 계속해서 음성을 내었다.

         

       지저에서 올라온 존재가 내는 듯한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를.

         

       『 조가네스시여. 첫 번째의 태양이 떠올라있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

         

       그리고 이러한 기괴함에 대항하듯 미치시게는 한껏 소리를 질렀다.

         

       “개자식들! 빌어먹을 놈들! 내가 이런다고 죽을 것 같아-!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너희 뜻대로는 절대! 절대로 죽지 않아!”

         

       죽지 않는다!

         

       죽을 수 없다!

         

       절대로! 절대로 죽지 않는다!

         

       “죄도 없는 내가 왜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야 한다는 것이냐!”

         

       불합리하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죄?

       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 조가네스시여. 당신께서는 손에 피를 묻혔기에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

         

       손에 피가 묻었다고?

         

       “그게 뭐! 그게 뭐 문제란 말이냐!”

         

       동물?

       그깟 동물 죽인 게 뭐 큰 문제라고!

       그냥 심심해서 죽인 것도 아니고 마나를 얻기 위해 제물로 바친 것이지 않은가!

         

       그냥 고기를 먹기 위해 도축하는 것이랑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사람?

         

       애초에 그가 죽인 것도 아니다.

       초대 야태도아랑류 당주가 죽인 것이다.

       미치시게가 한 것은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것뿐!

         

       게다가 애초에 그게 왜 죄가 된단 말인가.

       잡일이나 하는 인부 몇 죽인 게 뭐 그리 큰 죄인가?

       그것도 그냥 칼을 시험하기 위해 사람을 베는 츠지기리(辻斬り)를 한 것도 아니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인 것인데!

         

       “나는 죄가 없어!”

         

       게다가 그게 야태도아랑류가 시현류에서 갈라져 나왔을 적의 이야기이다. 수십 년이 흘렀고, 법적으로도 죄를 물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죄가 없었다.

       죄가 있다고 한들 씻어지고도 남았다.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남의 위에 서고! 그거랑 내가 하는 것이 뭐가 다르지? 뭐가 다르냔 말이야!”

         

       그는 자신의 결백을 소리높여 주장했다.

       그 말에는 진심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으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었으니까!

       결백했으며, 한 점의 부끄럼이 없었으니까!

         

       『 첫 번째 태양. 첫 번째의 요구. 』

         

       그리고 그러한 진심에 곰팡이로 만들어진 얼굴은 호응해주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기계가 속삭이는 것처럼.

       혹은 오랫동안 정치판에서 구르고 구른 신하가 정중함을 가죽처럼 뒤집어쓰고 조롱하듯이.

       그가 말한 말 일부만을 끄집어내어 ‘요청’으로 둔갑시켜버린 것이다.

         

       『 조가네스께서 이르시기를 동물을 죽이고 그것을 먹는 것을 원하였으니. 』

       『 마땅히 동물을 죽여 그 피와 고기를 바쳐 배를 채우게 해야 옳으리라. 하니 조가네스를 섬기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든 종은 그 요구에 따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동물을 데려와 그 배를 가르고 토막을 내어 고기를 보기 좋게 자르고. 』

       『 상처를 내어 그 피를 잔에 담고 거기에 꿀을 넣어 달콤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음료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

       『 가장 귀한 부위는 그 열기가 식기 전에 금으로 만들고 보석을 장식한 쟁반의 위에 올려 대령을 해야 할 것이니라. 』

       『 그러니 종이여, 오라. 』

         

       드르륵.

       드륵.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음악 사이로 곰팡이의 얼굴이 서사를 읊듯이 웅장하게 말하였고, 그리고 그 뒤를 잇듯이 어둠 속에서 바퀴가 돌바닥에 닿으며 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곳곳에 자리 잡은 어둠 사이로 사람의 발이 보였고, 사람이 이끄는 수레가 보였다.

         

       수레에는 송아지 하나와 금쟁반이 가득하였고.

         

       “여기 종, 우치카와 료스케가 조가네스의 명을 이행하기 위해 수레를 가지고 왔나이다.”

         

       그것을 끄는 이는 멍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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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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