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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208화. 귀환 ( 4 )

       

       

       

       

       

       넓디넓은 대륙의 땅.

       

       인간들은 대지의 곳곳으로 퍼져 인간만의 영토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비록 험난한 대자연은 쉽사리 그 품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인간들은 끈질긴 도전과 수많은 희생을 통해 마침내 그들의 영역을 넓혀갔다.

       

       추운 북부에, 마수가 들끓는 해안가에, 울창한 숲까지.

       

       엘프들의 고향이라는 미개척의 정글 같은 일부를 제외한다면, 대륙의 대부분은 인간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인간만이 대륙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쭈언, 쟁?”

       

       두터운 초록색 발이 진흙탕을 밝으며 사방에 흙탕물을 흩뿌렸다. 사방으로 튄 진흙물이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튀었지만, 진흙을 밟은 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쩌언쟁.”

       “주어언… 쟁?”

       

       마찬가지로 흙탕물이 튄 이들 또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들이 굉장히 담대하고 대인배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흙탕물 튄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몸이 더러웠던 까닭이다. 흙탕물이 아니라 진창에서 뒹굴어도 지금이랑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거지 수준이 아니라, 넝마를 걸치고 있는 야생의 무언가였다.

       

       하반신과 상체를 간신히 가리는 짐승의 가죽을 대충 두르고, 씻지도 않는 것인지 팔과 다리에는 갈색으로 말라붙은 핏자국이 가득하다.

       

       화룡점정은 뭔지 모를 것으로 조잡하게 낙서하듯 그린 알 수 없는 문양.

       그들은 조잡한 문양이 그려진 깃대를 자랑스럽게 들고 있었는데, 그나마 그들이 가진 것 중에서 제일 문명화된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야만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다.

       

       야생. 야만.

       그저 더러운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야생은 그저 더럽고 불결한 것이 아니다.

       문명 따위보다 더욱 폭력적이고 강인한 종류의 힘, 그 자체다.

       

       그들의 육체는 야생의 날 것처럼 강인했고, 겉보기에도 강대한 힘을 야만적으로 과시했다.

       

       우람하게 발달한 대흉근과 소흉근이 거칠게 꿈틀거리며 요동치고, 언덕처럼 거대한 굴곡을 만든 이두근과 상완근은 무쇠라도 구겨버릴 수 있다.

       

       더럽고 폭력적이기에 야만.

       거칠고 난폭하기에 야생.

       

       이들은 야만의 자식이요, 야생의 아들이었으니.

       이를 나타내듯 그들의 온몸은 자연의 초록색이었다.

       

       그러한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뭉쳐 무리를 이루었으니, 멀리서 봤다면 마치 초원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전…쟁!”

       

       초록색의 물결을 헤치고 거대한 산과도 같은 이가 걸어 나왔다. 

       주변의 다른 이들도 결코 작은 덩치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달랐다.

       

       우묵한 눈에는 전의가 가득하고, 몸에 흐르는 힘은 태산과도 같다.

       숨길 수 없는 우두머리의 기세.

       

       척.

       

       “전…쟁!!”

       

       우두머리가 허리춤에서 거대한 몽둥이를 뽑아 허공에 휘둘렀다.

       이름 모를 마수의 넓적다리뼈를 그대로 가져다 쓴 몽둥이가 공기를 휘저으며 묵직한 소리를 내뱉는다.

       

       그것이 신호였다.

       

       “쭈언…! 좨애애앵!!”

       “쩌언재앵!!”

       

       우두머리의 신호에 따라, 녹색 물결이 일제히 달려 나간다. 진흙탕을 밟고, 잡초를 짓이기며 전진한다.

       

       그들의 눈에 흐르는 것은 맹목적인 싸움, 그리고 전쟁!

       강한 자가 모조리 빼앗는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

       그리고 그들은 야생과 야만의 자식이었으니.

       

       땡땡땡땡ㅡ!

       

       초록색의 물결이 맹렬하게 몰아치는 곳은, 초라하게 서 있는 목책.

       높게 솟은 망루에서 종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오크다! 씨발, 미친 거지새끼들이 나타났다!”

       

       이제야 발견한 모양. 저 조잡한 목책 너머의 인간들은 그들에게 대항할 수 없다.

       

       돌로 된 벽은 두껍고, 강한 인간이 많다.

       나무로 된 벽은 얇고, 인간들도 허약하다.

       

       우두머리는 오랜 세월을 통해 이 사실을 배웠다.

       

       츄릅.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우두머리가 두툼한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눈앞의 인간들에게 허락된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이거나, 싸우다가 패배하거나.

       

       “전쟁ㅡ!”

       

       오늘 저녁은, 저 마을에서 포식하리라.

       

       

       

       

       

       *****

       

       

       

       

       

       띠링ㅡ!

       

       《잊힌 다섯 종족의 구성원, “밤의 일족”을 획득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상세 정보’를 확인해 주세요!》

       

       《서리고룡, 이베르가 복귀했습니다!》

       

       “오, 이베르 왔네.”

       

       집 나갔던 이베르가 돌아왔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온 것인지, 이번에는 밤의 일족을 주워 온 모습.

       

       어째 이 녀석은 나갔다 올 때마다 뭘 하나씩 물고 들어오는 것 같은데.

       저번에는 엘프였고, 이번에는 밤의 일족이라니.

       

       ‘이쯤 되면 이베르를 밖에 돌아다니게 하면 알아서 다른 종족도 찾아오는 거 아니야?’

       

       합리적인 의심이다.

       어차피 이베르가 여기서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쿨타임 돌 때마다 엉덩이춤 추면서 버프 주는 것밖에 없기도 하고. 

       

       “…그냥 계속 밖에 돌아다니게 해야 되나?”

       

       – 흠칫.

       – 《삐, 삐이익?! 삐, 삐이익!》

       

       지친 듯 비틀비틀 날아가던 응애 이베르가 어째서인지 화들짝 놀라며 화면을 바라봤다.

       마치 내 말이 들리기라도 했다는 반응.

       

       – 씰룩씰룩!

       – 《삐, 삐. 삐익! 삐, 삐- 삑!》

       

       갱도 앞으로 날아간 이베르가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곧장 버프가 들어가서 드워프들의 일 속도가 비교도 할 수 없게 빨라진다.

        

       ‘버프가 쏠쏠하니까 그냥 두자.’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 어린 녀석한테 계속 출장 나가게 하는 것도 못 할 짓이다.

       

       출장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또 출장을 보내?

       나였으면 바로 상사 뚝배기 날렸다.

       

       “근데 내 말이 들리… 는 건 아니겠지?”

       

       이베르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는데, 진짜 내 말이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못 들을 이유도 없지.

       

       당장 이 게임이 다른 세상이랑 연결되어 있는 마당에 뭔들 불가능하겠는가.

       

       슥, 스윽.

       

       ‘앞으로는 게임 하면서 말도 조심해야겠네.’

       

       새로 잡아 온 노예, 아니 일꾼들이나 확인해야지.

       

       《밤의 일족 :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밤의 일족은 천부적인 암살자입니다. 동시에 긍지 높은 귀족이기도 하죠. 이들은 그 어느 때라도 귀족의 사명을 다할 것입니다.》

       

       《상태 이상 : 없음.》

       

       《특성 : 낮에는 모든 능력치가 소폭 감소(일시적), 밤 혹은 그림자에서는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

       

       심플하게 좋은 특성이다.

       

       강화에 따른 조건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드워프나 엘프도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버프가 들어가는 형식이었기에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낮에 들어가는 능력치 감소도 그림자에 들어간다면 무시할 수 있는 종류로 보인다.

       이 정도면 진짜 전투원으로 쓰는 편이 이득인 것 같은데.

       

       ‘그런데 뭐가 허전한데. 뭐지?’

       

       …잠깐 손을 멈추고 생각해 봤다.

       

       엘프 잡아 왔을 때는 새로운 건물도 해금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왜 밤의 일족은 아무것도 없지?

       

       “어?”

       

       진짜 그렇네? 얘네들은 왜 건물이 아무것도 안 열리는 거야?

       

       곧장 손가락을 움직여 건물 리스트를 확인했다. 길게 쌓인 건물 리스트를 쭉 내리면서 확인해 봐도, 새로 해금됐다는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 굉장히 당황스러운데.

       

       “어, 저기. 케넬름? 도대체 이게 뭔… 경우인지 난 모르겠는데.”

       

       새로운 일꾼이 왔는데 숙소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이 상황.

       

       화면에는 양 떼처럼 한곳에 모여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밤의 일족이 보였다. 

       그러보니 밤의 일족은 사회성이 밑바닥을 찍은 찐따 종족이었다.

       

       ‘숨을 곳이라도 만들어 줘야겠네 이건…’

       

       ‘차원 관문’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없는데 이렇게나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보는 내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 쿵! 쿵, 쿵!

       

       건물 리스트에서 적당히 싼 건물 몇 개를 해금해서 녀석들 주변에 세워줬다.

       곧장 초원에 우후죽순으로 솟아나는 빈 건물들. 임시로 세운 거라서 싼 오두막 몇 개만 만들어줬다.

       

       – “히, 히이익…! 지, 집이! 따따따땅에서어…!”

       – “아아아안으로, 들어갈래애…! 이이이이제는 무, 무리이…!”

       

       굴을 발견한 토끼처럼 후다닥 뛰어 들어가는 녀석들. 하얀 머리카락이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더니, 두 녀석이 따로 빠져나왔다.

       

       – 꾸벅.

       

       화면을 향해 의젓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다. 남자와 여자 한 쌍이다.

       사회성 제로인 녀석들 중에서 그나마 정상에 가까운 녀석이 있다니, 감격일 따름.

       

       ‘얘네들은 왜 건물이 안 열린 걸까…’

       

       당장은 그게 제일 문제다.

       

       새로운 일꾼이 왔는데, 뭔가 새로 해금된 건물이 없으니.

       

       …진짜 뭐 어떡하지?

       

       

       

       

       

       *****

       

       

       

       

       

       똑똑-

       

       집무실을 정중하게 두들기는 노크 소리.

       재상이 낮고 조용하게 말했다.

       

       “폐하,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황제의 위엄이 장엄하게 양각된 문 안쪽에서 남성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게.”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재상은 조심스럽게 집부실 내부로 들어갔다. 잘 관리된 문은 한치의 삐걱거리는 소음 없이 부드럽게 제 몸을 움직였다.

       

       재상의 손에는 ‘1급 정보’라고 적힌 서류가 들려 있었다.

       

       힐끗 재상의 손을 바라본 카이사르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재상이 직접 전달해야 할 정도의 정보가 있단 말인가.

       

       바삐 움직이던 만년필을 내려놓은 카이사르 황제가 재상을 똑바로 바라봤다.

       

       “말하시게. 좋은 소식인가? 아니면, 나쁜 소식인가.”

       

       되도록이면 좋은 소식이기를 바랬다.

       북부 원정대에서 기사들이 돌아온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거늘, 또 무슨 기묘한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좋지 못한 소식입니다.”

       “여섯 신 맙소사… 어서 줘보게.”

       

       원정대에서 돌아온 기사들이 채 여독도 풀지 못했거늘. 카이사르는 참담한 심정으로 종이를 건네받았다.

       

       빼곡하게 적힌 서류에는 정갈한 필체로 딱딱 필요한 정보가 보기 좋게 적혀 있었다.

       카이사르의 눈이 천천히 서류를 훑다가,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오크의 공격이라…? 벌써 날짜가 그리되었나?”

       “예, 폐하. 슬슬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였으니, 녀석들이 움직이면서 미리 식량을 비축하려는 듯하옵니다.”

       “허어. 그 거지들이 또 지랄이구나.”

       

       황제의 입에 담기에는 굉장히 저속한 단어였지만, 재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도 거지라는 단어가 딱 맞는 말이었기 때문.

       

       “오크들이 변두리 마을을 습격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기사들을 파견해서 싹 죽여버리고 싶군.”

       “허나, 폐하. 그리되면…”

       “알고 있네. 그냥 해본 말이야. 한 놈이라도 죽이면, 눈을 뒤집고 제국으로 몰려오겠지. 그런 일은 사양하고 싶군.”

       

       오크.

       

       인간과 함께 이 대륙을 살아가는 불편한 동거인 중 하나.

       온 대지가 그들의 영토라 선언하고 하늘을 천장 삼아 온 대륙을 누비는 방랑하는 자들. 

       

       제국의 입장에서 그들은 마치 메뚜기떼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지나간 마을이며 도시에는 온 식량이 싹 사라졌으니까. 이게 메뚜기 떼가 아니면 뭐겠는가?

       

       “하아. 이번에는 얼마나 식량을 요구하던가? 또 몇 백 수레를 요구하면 이번엔 진짜 모가지를 쳐버릴지도 모르는데.”

       

       오크를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오크들은 거지처럼 지내는 주제에, 뭔 동료 의식이 그렇게나 강한지.

       

       오크를 죽인 자에게는, 또 집단에게는 반드시 피의 복수를 하기로 유명했다.

       수 십의, 수 백, 수 천이 죽더라도 동포의 복수를 이루어 낸다.

       

       참으로 귀찮기 짝이 없는 성질인 것이다.

       

       전쟁을 각오하면 토벌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전쟁에는 많은 피와 돈이 흐르는 법.

       조금 귀찮더라도 오크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편이 더 싸게 해결됐다.

       

       “폐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서류의 밑을 조금 더 보시지요.”

       “흠?”

       

       카이사르의 눈이 서류의 하단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파르르 떨렸다.

       

       꿈뻑꿈뻑하고 눈을 몇 번 감았다가 뜨더니, 이윽고 현실임을 받아들였다.

       

       “허어. 이게 정말인가?”

       “…예.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입니다.”

       

       카이사르가 두 눈을 몇 번인가 문질렀다. 깊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하필이면, 하필이면ㅡ”

       

       신성 로마니안 제국의 둘도 없는 우호국이자, 대륙 신앙의 중심지, 성도.

       그 순백의 도시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신의 사도들이 거주하고 있다.

       

       용사 케니스, 용 사냥꾼 프리가, 수호자 이스칼 그리고…

       

       “악마 살해자 한스…”

       

       오크들이 인질로 붙잡은 마을은.

       한스의 고향 마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스의 화려한…? 과?거…!! 과연 데모닉 피셜 기생오라비의 과거는 어땠을지…!! 저 또한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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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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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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