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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생각보다 조용한데요.”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니 긴장을 늦추면 안 됩니다. 여긴 놈들의 본거지라는 걸 기억하십시오.”

       “혹시 압니까. 알고 보니 지금도 이중 결계 속에 갇혀 있는 것일지.”

       

       처음 결계 안에 들어왔을 때, 아르를 제외하면 마기 냄새조차 맡지 못했었다.

       

       그러니 적이 또 어떤 함정을 파 놨는지, 꿈 속의 꿈처럼 결계 속의 결계인지 어떤지 알 수 없는 게 사실.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하긴 했다.

       

       ‘아르야, 지금도 결계 속에 있는 것 같아?’

       

       내가 속으로 묻자 아르는 고개를 저었다. 

       

       ‘지굼은 갠차나. 근데 쩌기 성 안에는 엄청 고약한 마기가 이써. 조심해야 대.’

       

       아르가 아니라고 했으니 일단 결계 속 결계일 가능성은 낮고.

       

       확실히 저쪽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긴 했나 보네.

       

       우리가 차근차근 마을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온 만큼,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을 터.

       

       ‘이제 이쪽에서 믿을 건 신성력 스탯이 대폭 오른 레키온과, 천 년의 힘을 개방한 아르의 합작이겠군.’

       

       나는 큰 임무를 앞둔 아르에게 힘내라는 의미로 뚠뚠한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아르는 잠시 동안 뀨우 소리를 내며 내 손길을 받고 있더니, 쓰다듬는 손길이 멈추자 손으로 내 손가락 하나를 꼬옥 잡았다. 

       

       놀랍게도, 내 손가락을 꼭 쥔 아르의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속으로 물었다.

       

       ‘아르야, 무섭니?’

       

       아르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르 안 무셔.’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 보며 각오하듯 말했다.

       

       ‘아르는 멋진 드래곤이자나. 삼쵼이랑 황실 기사단 앞에서, 그리구 레온이랑 온니 앞에서 용맹한 모습 보여줄 고야. 구러니깐 하나도 안 무셔. 아르는 잘할 수 이써.’

       

       아르의 보석 같은 붉은 눈동자는 결연했다.

       

       그런 아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르의 마음에 있는 깊은 용기를 생생하게 느낀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아르야….’

       

       아르가 ‘아르 안 무셔’라고 하며 막상 그때가 되면 무서워한다거나 하는 일은 지금까지 꽤나 많았다. 

       

       하나도 안 무섭다며 천둥번개가 쳤을 때 삐꾹, 하고 딸꾹질을 하고 내 품에 들어와 달달 떨었을 때는 또 얼마나 귀여웠는지.

       

       하지만, 이렇게 아르가 깊은 진심으로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선언한 건 어쩌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몰랐다. 

       

       그전까지 하던 말이 그냥 무서워하고 싶지 않다는, 희망 사항을 이야기한 거라면 지금 아르가 한 말은 ‘꼭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아르 잘 할 수 이써, 라는 마지막 말에 담긴 깊고 진한 감정이 계약자인 나에게는 가감 없이 그대로 닿았다.

       

       ‘그래, 아르야. 아르는 잘할 수 있어. 나도 아르를 믿어.’

       

       그런 아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계약자로서의 무한한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 

       

       말로는 누구나 ‘그래, 아르를 믿어. 아르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할 수 있지만.

       

       진짜로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순수한 믿음을 영혼 깊이 닿도록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계약자인 나밖에 없다. 

       

       ‘실제로 난 아르를 믿고 있기도 하고.’

       

       이 마음에 거짓이 섞인다면 아르도 어차피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나는 아르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직접 아르에게 말했다.

       

       “가자, 아르야. 넌 잘할 수 있어.”

       

       내 말을 들은 아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쀼우!”

       

       아르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마주 웃었다. 

       

       ***

       

       지부의 성까지 가는 길에는 정말로 별다른 장애물이 없었다. 

       

       마물이 갑자기 튀어나오지도 않았고, 마기가 섞인 마법이 날아오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불안할 정도였다. 

       

       심지어 성문을 지키는 인원도 없었다.

       

       “하압!”

       

       형식상 잠겨만 있는 성문을 레키온이 베었고.

       

       드넓은 성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

       “휑하군요.”

       “성 안까지 들어왔는데도 이렇게 고요하다니.”

       “대체 무슨 속셈이지?”

       “어떤 함정일지 감도 안 오는군.”

       

       우리는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조심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나 나아갔을까.

       

       “잠깐. 저 앞에 뭔가 있습니다.”

       

       커트 브륀이 멈추어 서서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과연 저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뭐지?”

       “한 명…?”

       “아마 지부장일 겁니다. 지난번 지부에서도 비슷한 로브를 쓰고 있었죠. 왜 혼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검은 로브를 쓴 채 여유롭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 

       어느 정도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모두 전투 준비.”

       

       레키온이 나지막이 말하자, 모두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고.

       

       “쀼웃.”

       

       아르도 내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라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했다. 

       검은 로브를 쓴 자는 적당한 거리에서 멈추더니, 잔뜩 긴장한 채 전투 준비 자세를 취한 우리를 향해 웃었다.

       

       “하하하하! 드디어 도착했구나. 용사, 그리고 용을 깨울 자. 거기다 황실 기사단까지…. 아주 구성이 호화로워.”

       

       놈은 마치 잘 차려진 디너 세트의 구성을 평가하듯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좋다! 너희들에게 보여주마! 하무트님께 직접 하사받은 나의 힘을!”

       

       그의 외침과 함께 짙은 마기가 방출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마기를 방출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풍압이 주변을 휩쓸었고, 흙먼지가 마구 일어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곧 흙먼지가 잦아들었을 때.

       

       “……!”

       “……!”

       “이건….”

       

       우리의 눈앞에는 십수 명에 달하는 지부장이 서 있었다. 

       

       지부장들(?)은 일제히 손을 치켜들며 말했다. 

       

       “너희들은 하무트님의 완전한 부활을 위한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너희들은 하무트님의 완전한 부활을 위한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너희들은 하무트님의 완전한 부활을 위한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

       

       “윽, 시끄러워.”

       

       데보라가 눈을 찌푸렸다. 

       

       후우욱.

       

       들어올린 지부장들의 손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모여들더니, 곧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대체 뭐 하는 짓거리지? 환영 마법인가?”

       

       환영 마법에 해당하는 클로닝(Cloning, 분신)은 똑같은 복제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이지만, 당연히 환영 마법인 만큼 실체가 없어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마기로 이루어진 검을 쌍수에 든 지부장들은, 그런 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즉시 우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전투 개시!”

       

       레키온의 외침과 함께 나와 아르를 제외한 모두가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곧 지부장들과 이쪽 파티가 정면에서 맞붙었고.

       

       채채챙!

       채앵!

       

       기사단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오러와 지부장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마기가 충돌하며 스파크가 튀었다.

       

       “미친…. 이건 또 뭐야?”

       “이쪽은 진짠데?”

       “이쪽도 마찬가지야!”

       “실체가 있는 환영 마법이라고…?”

       

       여러 명으로 몸을 나눈 것이 페이크의 일종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황실 기사단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지부장의 분신 하나 하나가 황실 기사단에게 크게 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황실 기사단과 맞붙으면서도 저 정도 무력이라니.’

       

       검술, 그리고 경험 면에서 황실 기사단은 분명 상대를 압도할 터.

       

       하지만, 지부장의 분신들은 그 부족한 검술 실력과 경험을 아주 단순하게 힘과 민첩한 움직임, 즉 깡 스탯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마기로 육체를 강화해서 싸우고 있는 거야.’

       

       저 정도가 되려면 보통 수준의 마기로는 불가능할 터. 

       

       하무트에게 직접 힘을 받았다더니, 단순한 허풍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무식한 싸움이 언제까지 통할 것 같으냐!”

       “하아아압!”

       

       역시 경험이 풍부한 황실 기사단답게, 그들은 곧 변칙과 합동 공격으로 돌파구를 찾아냈고.

       

       푸욱!

       

       “커억.”

       

       결국 지부장 하나의 심장을 찔러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이런 분신들 따위가!”

       

       데보라도 빈틈을 찾아내 공략해 나갔고.

       실비아는 원래부터 잘하고 있었고.

       그리고 레키온은, 황금빛 오러로 처음부터 분신 두세 명을 꾸준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흐아아압!”

       

       레키온이 신성력을 담은 홀리 블레이드로 지부장 둘을 순식간에 처치했다. 

       

       “플레임 샷!”

       “쀼—.”

       “윈드 블래스터!”

       

       우리도 최대한 동료를 휘말리게 하지 않는 선에서 단일 대상 마법을 쏴 지원 사격을 해 나갔고, 지부장은 하나둘씩 쓰러져 검은 마기로 산화했다.

       

       하지만 그렇게 승기를 잡나 싶었던 순간.

       

       “젠장, 분신이 또 나타났어!”

       “점점 늘어나는데!”

       

       기존에 우리의 머릿수와 비슷했던 지부장의 숫자는 어느샌가부터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금세 거의 삼십에 다다랐다. 

       

       “이렇게 해서는 끝이 없어.”

       “본체를 찾아야 돼!”

       

       환영 마법이든, 실체가 있는 분신이든 간에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본체를 찾는 것뿐.

       

       나는 앞쪽을 향해 외쳤다. 

       

       “분신들 중 가장 강한 놈을 찾아요!”

       

       분신이라는 스킬의 특성 상, 분신은 본체만큼의 힘을 절대 발휘할 수 없다. 

       

       즉, 저 중에서 가장 강한 놈.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죽지 않은 놈을 찾으면 본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

       

       하지만.

       

       “젠장, 구분을 못 하겠는데?”

       “검술은 형편없는 주제에, 죄다 힘은 비슷하게 세!”

       

       후방에서 지원 사격을 하는 내가 전장을 둘러 봐도, 특별히 강한 개체 혹은 한 번도 죽지 않은 개체를 골라 내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 분신이 일정 숫자를 넘어간 순간부터는 어떤 놈이 어떤 놈인지 기억해 두고 추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뭐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 빠르게 움직여 대니.’

       

       하지만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초기부터 한 번도 죽지 않고 쭉 살아남은 분신이….

       

       “쀼웃!”

       

       그때 아르가 외쳤다. 

       영창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소리였다. 

       

       아르는 ‘레온! 몬가 이상해! 아르가 꼐속 보구 있었는데 맨 첨에 있던 지부장은 방금 다 주거써!’라고 말하고 있었다. 

       

       “뭐라고?”

       

       그 말을 들은 내 입이 벌어졌다. 

       

       “잠깐, 설마.”

       

       분신은 본체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건 아마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모두의 힘이 비슷하다?’

       

       그럼 답은 하나다. 

       

       “본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건가…?”

       

       그리고 그 순간.

       

       “정답이다. 용을 깨울 자.”

       

       그 낮고 스산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미친! 배리어!”

       

       나는 황급히 뒤돌며 배리어를 시전했다.

       

       “쀼우!”

       

       아르 역시 곧바로 내 배리어 안쪽에 최상위 방어 마법 중 하나인 ‘앱솔루트 배리어’를 소환했다. 

       

       하지만.

       

       쩌저저적!

       

       지부장 본체가 가진 마기를 한곳에 모아 내지른 검의 끝자락은.

       

       파창—

       

       내 배리어는 물론 아르가 시전한 앱솔루트 배리어마저 완전히 부숴 버렸다. 

       

       “삐유우우우!”

       

       아르가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려 떨어졌고, 나는 그런 아르를 잡아 품에 꽉 안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푸욱—

       

       지부장의 검끝이 아르를, 그리고 내 심장을 관통했다. 

       

       “아르야아아아아아아악!”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레키온은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데보라, 황실 기사단원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미친.”

       

       나와 아르의 심장을 성공적으로 찔러 죽여 기뻐해야 할 지부장은, 똥 씹은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왜냐하면.

       

       “분신은 너만 쓸 수 있는 줄 아냐?”

       

       지부장이 찌른 나와 아르의 환영이 그 자리에서 흩어져 사라졌고, 근처에 은신을 하고 있던 내가 아르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거 단검 계열 수련해서 은신 스킬 얻어 놓은 보람이 있긴 있네. 그치 아르야?”

       “쀼우!”

       

       나는 아르와 마주보며 씩 웃은 뒤, 레키온에게 외쳤다.

       

       “용사님! 여기 본체 찾아 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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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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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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