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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치직, 치지지직……!

         

       상위 차원으로 가는 길은, 솔직히 말해 험난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냇물처럼 잔잔하던 시공간의 흐름이, 어느 순간 거칠게 폭주하는 일은 예사였다.

         

       콰아아아아……!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누구나 경악할 장면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평범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자들이었다.

         

       “멜리나.”

         

       키엘은 멜리나를 돌아보았다. 황제 아리아 또한 멜리나를 바라보았다.

         

       별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지는 분명했으니까.

         

       멜리나를 중심으로 거대한 술식이 피어올라, 상위 차원으로 향하는 [관문]을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안정화시킨다.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내부 공간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느리게 변화시킨다. 순식간에 잠잠해진 풍경을 보며 아리아가 말했다.

         

       [빠르게 가자꾸나. 언제까지고 세계를 속일 수 있을지 알 수 없…….]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쩌적……!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 멜리나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굳어졌다.

         

       시공간이 통째로 뒤틀리고 있었다.

         

       “어째서……?”

       [생자와 망자가 같이 건너가는 탓이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리아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영혼에 불과한 자신과, 육체가 온전한 그들이 같은 방식으로 차원을 넘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으니까.

         

       [아무래도 짐의 길안내는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멜리나여, 이제 길은 네 스스로 찾아내야 할 것 같구나.]

       “……너는 어찌할 생각이지?”

       [윤회의 통로를 이용할 생각이느니라. 그럼 자네들보다 몇 배는 빨리 도착할 것이다. 아무래도 저 통로가 이곳보다 훨씬 안전할테니 말이다.]

         

       세상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황제가 중얼거렸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노라.]

       “…….”

         

       키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오오오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공간. 그 사이에 보이는 자그마한 틈.

         

       아리아는 망설임 없이, 그 틈 사이로 나아갔다.

       

       

       .

       .

       .

       .

       .

       

         

       꿈을 꾸었다.

         

       솔직히 이것이 정말로 꿈인지, 아니면 주마등을 엿보는 것인지 황제 아리아는 알지 못했다. 윤회의 통로를 향해 몸을 던졌던 것까지는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이 풍경은 무엇일까.

         

       적어도 그녀의 기억 중에, 이랬던 회차는 없었다.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낯선 철장.

         

       습기와 곰팡이로 가득 찬 공간에서, 어린 올리비아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자신의 모습이 그 다음이었다.

         

       [전부 다 내 잘못이니까. 그러니까…….]

         

       흐느낌보다는 경련에 가까운 오열.

         

       [……잘가.]

         

       아리아의 눈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탓이다.

         

       “…….”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아리아는 점점 흐릿하게 사라지는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것은 황녀의 마지막이었다.

         

       아니, 자신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0회차의 올리비아에게 모든 능력을 넘긴 황녀는, 기억을 잃은 채로 수백 번의 회차를 거쳐 결국 작금의 자신이 될테니까.

         

       ‘……나도 그렇게 되는가?’

         

       문득 불안해졌다.

         

       고오오오…….

         

       아리아의 상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영혼이 어디론가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

         

       ‘어디로?’

         

       아리아의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

         

         

       툭!

         

       등에서 느껴지는 묘한 촉감에,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아?”

         

       목소리가 나온다. 의념이 아니다. 성대에서 튀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제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마치 덜 자란 아이의 몸을 움직이는 기분. 아리아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눈 앞에 거울이 있었다.

         

       “…….”

         

       아리아는 천천히, 제 얼굴을 더듬었다. 깔끔한 금단발, 현기와 총기로 가득한 눈동자.

         

       ‘갈색이구나.’

         

       다만 눈동자의 색깔은 달랐다.

         

       물론 그것 뿐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다.

         

       손가락이 작다. 키도, 작았다. 기껏해야 너덧 살은 되었을까. 아리아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제 뺨을 마구 주물렀다. 말랑말랑했다.

         

       ‘……오호라. 이것이 환생인가?’

         

       기억은……온전하지 않다. 중요했던 회차들만 제대로 떠오르고, 나머지는 지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흐릿했다. 아리아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환생하고도 모든 회차를 기억하고 있었다면, 정신이 견뎌내지 못했을 테니까.

         

       아리아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 또래의 아이들이 온갖 장난감들을 가지고 마구잡이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검은 머리였다.

         

       ‘온 세상이 키엘의 유전자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그렇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전생을 자각하지 못했던 지난 5년간, 그녀의 정신은 완전히 이 세계에 녹아들어 있었으니까.

         

       ‘그나마 이름은 똑같구나.’

         

       서울 시립 유치원 백합반, 아리아(阿理峨).

         

       ‘높은 곳에서 위엄있게 다스리다’ 라는 뜻이란다.

         

       ‘이름은 잘 지었구나.’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인류만 70억이 넘는 세계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올리비아를 찾아낼 수 있을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툭툭.

         

       그 순간, 누군가 등을 건드렸다. 처음 전생을 자각했을 때 느꼈던 바로 그 감각.

         

       곧장 고개를 돌렸다. 자신보다 키가 조금 큰 남자 아이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호빵처럼 빵빵하고, 토실토실한 얼굴. 나중에 장성한다면 꽤나 준수할 것 같았다.

         

       “……?”

         

       하지만 그 뿐이었다면, 눈을 부릅뜨진 않았을 것이다.

         

       닮았다.

         

       올리비아와, 너무나도 닮았다.

         

       만약 올리비아가 키엘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면 딱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아리아는 다급히 손을 뻗어 남자아이의 볼을 붙잡았다.

         

       “녀 뉴기야!”

         

       너 누구야.

         

       그렇게 말한 순간, 아리아는 제 혀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애이래? 머야, 이게, 이게……?”

         

       갑작스런 언어능력의 퇴화에 입을 뻐끔거리는데, 남자 아이가 얼굴 앞에 무언가를 내민다.

         

       “이거 머글랭?”

         

       ……과자?

         

       평소라면 절대로 받아먹지 않았겠지만, 작금의 아리아는 달랐다. 정신을 차린 순간, 과자는 식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딸기 맛이 났다.

         

       “리아 쟐 멱는댜!”

         

       아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녀, 이르미 뭐야?”

       “내 이르믈 몰랴?”

         

       정신 나가겠다.

         

       아리아는 일단 이름표부터 확인하려 했다. 아무리 다섯살이라고는 하지만, 전생을 자각한 이상 언어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냐 뎌 걌댜쥬께!”

         

       하지만 미처 이름표를 확인하기도 전에, 남자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 달려갔다.

         

       “…….”

         

       아리아는 그 뒷모습을 홀린 듯 지켜보았다.

         

       단순히 착각이라고 치부하기엔, 풍기는 분위기까지 똑 닮아 있었다. 문득 아우렐리아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올리비아가 뭐로 환생했을 줄 알고?’ 라던 그 말…….

         

       저렇게 어린 아이에게는, 제 간식을 남에게 건네주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이 시켰다거나,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저 아이에게서는 그런 기색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천성이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설령 저 아이가 올리비아의 환생이 맞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에게 전생의 인연이란, 그저 족쇄일 뿐이다.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한들, 성격이 비슷하다고 한들, 그 뿐이다.

         

       기억하는 것도, 살아온 인생도 다르다.

         

       “…….”

         

       그런데, 자신이 욕심을 부려도 괜찮은 것일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참을 망설이던 아리아는 결론을 내렸다.

         

       죽어서, 먼저 떠난 친우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적…….

         

       그 순간.

         

       “와아아아아!”

         

       창 밖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아리아는 홀린 듯 멍한 눈동자로 소년을 보았다.

         

       머리카락 위에 소복히 쌓인 눈송이. 빛이 반사되며, 그 위에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비친다. 그 존재는 소년과 반쯤 이어져서, 찬란한 백발을 휘날리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올리비아?‘

         

       틀림없다. 착각일 수가 없다.

         

       소년의 머리칼에 쌓이는 눈의 양이 많아질수록, 올리비아의 모습 또한 선명해졌다. 그녀는 푸르게 빛나는 눈으로 소년을 보다가, 다시 아리아를 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따스하며, 찬란한 미소는 아리아가 알고 있던 올리비아의 미소 그대로였다.

         

       “……아아.”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리아는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올리비아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더 이상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작은 기적을,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싶었다.

         

       조금만 더.

         

         

       *****

         

         

       “……여기는 어디지?”

         

       미친듯이 울리는 머리를 붙든 채, 키엘은 주변을 살폈다. 사방이 나무로 가득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웬 이름 모를 숲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풍경은 격류에 휩쓸려 사라지는 황제의 모습이었다.

         

       “……어찌어찌 성공은 한 것 같구나.”

       

        멜리나였다.

         

       공간 마법의 권위자였던 그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마력의 흐름도, 대기의 움직임도, 모든 것이 대륙과는 상이했다.

         

       ‘도대체 얼마나 걸린 거지?’

         

       기껏해봐야 며칠 수준이었지만, 자신들이 떠돌았던 곳은 평범한 장소가 아니었다.

         

       시간이 제멋대로 흐르는 차원의 중간 지대.

         

       며칠이 몇십 년으로 불어나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멜리나는 제 몸상태를 점검했다.

         

       적잖은 마력을 대가로 치뤄야 했지만, 이정도는 수용 범위 내였다.

         

       ‘……다행이로구나.’

         

       이제 남은 일은, 아리아와 올리비아가 무엇으로 환생했는지 알아내는 것.

         

       물론 미물로 환생했을 가능성도 있었으나, 왜인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사박.

         

       자그마히 나있는 길을 따라 걸으려던 찰나, 눈 밟는 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사람의 발소리였다.

         

       “…….”

         

       멜리나는 잠시 고민했다. 무시하는 것이 옳을지, 아니면 만나서 정보를 얻는 것이 좋을지. 언어야, 통역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이니.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런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주변 행인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느니라.”

       “……!!”

       “열하고도 팔년이라. 썩 듣기 좋은 어감은 아니다만, 20년을 채우지 않았으니 용서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아리아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이 옷으로 갈아입거라. 백화점에서 사온 옷이느니라.”

         

       ……백화점?

         

       하지만 멜리나는 그 영문 모를 단어보다도, 18년이나 지났음에도 조금도 늙지 않은 면면이 더 놀라웠다.

         

       “다 입고 나면, 올리비아에게 데려다 주겠노라.”

         

       아리아는 그렇게 덧붙이면서 미소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아마 다음화가 진정한 의미로서의 마지막화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Q&A를 받아보려고 합니다 ㅎㅎ.

    궁금했던 점들을 댓글로 달아주시면, 작품 후기에서 성심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

    -아(阿)씨는 한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성입니다. 대략 500여명 정도가 아(阿)씨 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올리비아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처럼 절망버전이 등장할 일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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