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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결국 기나긴 토론은 수아와 내가 키스 한 번만 더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인격이니 뭐니 하는 거 따져봐야 복잡하기만 하고, 그때그때 확인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이유였다.

        

       그때그때 확인하는 게 번거로우면 대체 나랑 몇 번이나 입을 맞추려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긴, 아마 계속 노리겠지.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려고 할지도 모르고.

        

       ……내가 얘들을 지금까지 조금 잘못 보고 있었던 걸까?

        

       “아, 잠깐.”

        

       얼굴을 붉힌 채 내 쪽으로 다가오던 수아를, 하늘이가 멈췄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라의 마음이잖아.”

        

       내 앞에서 지금까지 그런 내용으로 떠들어놓고 잘도 저런 소리가 나오네 싶었다.

        

       나는 한숨 쉬고 싶은 것을 꾹 참고서 말했다.

        

       “너희들이야말로 괜찮아?”

        

       “괜찮냐니?”

        

       소희가 되물어왔다. 나는 잠깐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나 좋아한다면서. 다른 사람이랑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런 취향인가?

        

       ……아니, 그래도 반응을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나서야 하늘이와 소희는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으니까.

        

       “……아.”

        

       자기가 입 맞출 수 있는 기회만 생각하다가, 정작 다른 사람이 키스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가, 서서히 붉어진다. 그리고 이내, 지금까지 내가 그 이야기들을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양손에 얼굴을 푹 묻었다. 둘이 동시에.

        

       “…….”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부끄러울 이야기를 왜 그렇게 당당하게 하냐고.

        

       심지어 이 방에는 우리 넷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인 손아름도 있었다.

        

       아까부터 말이 없는 손아름은,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을 크게 뜨고 나와 다른 아이들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내가 애들 끼고 다니는 것 보고 파렴치하다느니 뭐라느니 했으면서, 정작 이런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흥미가 넘치는 모양이다.

        

       ……그래, 뭐, 흥미가 넘칠 나이이기는 하지.

        

       사실 이 상황에서 제일 기분이 좋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여야만 했지만…….

        

       중간부터 그냥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채로 있었더니 오히려 마음이 잔잔한 호수 같았다. 사실 얘네들이 미성년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쁘고 착한 애들이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 마음이 그대로 이어질지 아닐지도 모르고.

        

       미연시 안에서야 고등학생 때 사귄 애인과 평생 함께 살기도 하지만, 여기는 미연시와 닮은 세계이기는 해도 결국 현실이기도 했다. 이야기의 달콤한 부분만 나오는 게임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그런 타임스킵이나 연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고, 이 몸으로만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게임 속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놓고 살아가는 것 보다는, 그냥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두고 살아가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아니면 나랑 수아가 키스하는 동안 눈이라도 가리고 있으려고?”

        

       “……아니.”

       

       하늘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제대로 봐야 해. 아직 너랑 누가 사귀는 것이 아니니까, 이럴 때 반칙을 저지르는 걸 그냥 모르고 넘어가면 안 되잖아.”

       

       그리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다.

        

       “……그래, 그럼.”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옆에서 계속 우물쭈물하던 수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해도, 될까……?”

        

       “…….”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는 아까부터 조용했다. 어쩌면 눈을 감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내가 수아와 입맞춤하는걸 일인칭 시점으로 적나라하게 보게 될 테니까.

        

       ……굳이 말로 해줄 필요는 없어.

        

       괜찮은 거야?

        

       괜찮을 리가 없잖아.

        

       나의 물음에, 사라는 목소리에 짜증을 한껏 담아서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서 선택지가 있어? 너랑 쟤네들은 친구지만, 나도 쟤네들이랑 친구야. 이제야 진짜 진심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들었는데, 1년도 되지 않아서 절교할 생각은 없거든?

        

       ……그래, 그랬다.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것은, 결국 우리가 모두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고 싶지만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가 파탄 나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들.

        

       그리고 만약 여기서 누군가를 선택해버리면 그대로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가 파탄 날 것을 무서워하는 나.

        

       지금 이 상황은, 서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생긴 상황이었다.

        

       어느새 수아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괜찮은 거지?”

        

       수아의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조금 불안하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는 수아는 누가 뭐라고 해도 미소녀 그 자체였다.

        

       하긴, 이쪽 세계에 와서 나랑 친하게 된 아이 중 미소녀가 아닌 아이가 하나도 없기는 하지만.

        

       이걸 자랑스러워해야 하나…….

        

       과거의 내가 들었다면 기가 찼을 법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럼, 할게?”

        

       그런, 듣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말을 들은 뒤,

        

       내 입술에, 부드러운 것이 와서 겹쳤다.

        

       옆에서 누군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

        

       나와 수아, 둘 중 아무도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저 입술과 입술을 겹치고 있을 뿐, 입을 열거나 혀를 집어넣지는 않는다. 그런 것을 하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이 우리 둘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간 붙어있던 입술이, 서로 떨어졌다. 그저 닿아있었던 것이 아니라, 입술과 입술이 제대로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떨어질 때는 살짝 끈적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수아의 입에 발라져 있던 화장품의 냄새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

        

       천천히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둘의 키스를 본 아이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가장 먼저, 굳이 반응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눈에 선명하게 그려졌던 손아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크게 뜬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할 생각도 들지 않는 모양이다. 태어나서 키스 하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은 얼굴.

        

       ……하긴, 굳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키스하는 것을 볼 일이 잘 없기는 하다. 길거리에서 달라붙어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인들을 우연히 마주치지 않는 이상, 입맞춤은 그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는 것이니까.

        

       게다가 키스하는 사람들이 자기 친구 두 명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했다.

        

       아까 나랑 소희가 키스하는 걸 보긴 했지만.

        

       뭐, 얘가 이렇게 반응할 거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 이쯤 하고.

        

       그다음으로 돌아본 쪽은 소희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의 그 기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소희는 차마 이쪽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질투 때문일까? 아마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시선을 돌린 얼굴이 새빨갛고, 숨이 살짝 거칠다. 두 다리를 딱 붙인 채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소희가 이 중에서 유일하게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양성애자와 레즈비언은 조금 다르려나?

        

       하긴, 양성애자가 자신과 동성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를 완전히 똑같이 좋아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는 남자를 더 좋아하지만, 훨씬 더 높은 기준의 여자도 ‘좋아할 수 있다’는 거지, 아무 성별이나 보고 다 흥분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레즈비언은…… 물론 이성애자 남성과는 다른 점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대가 ‘여자라서’ 좋아한다. 애초에 상대가 남자라면 좋아하지도 않고, 여자라면 기본적으로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상대방이 예쁜 여자라면.

        

       ……물론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니까 만약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면 여자로서 질투할 수는 있겠지만…… 뭐, 남자들도 가끔 그런 생각하지 않는가. 여자친구가 둘이면 좋겠다거나, 미녀 둘이랑 동시에…… 뭐 그런 거. 많으면 더 좋고, 아무튼.

        

       그런 생각까지 든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일단 성적으로 조금 흥분한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뭐, 이것도 그냥 넘어가자. 괜히 건드렸다가 또 기습키스를 당하면 그거대로 일이 꼬인다.

        

       하늘이는…… 하늘이야말로, 그야말로 질투하는 연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뭔가 엄청나게 짜증 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애초에 이거 자체가 합의에 따라 이루어져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것 같은 태도.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말을 했다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쏟아낼까 봐 그런 것이리라.

        

       “……이제 됐지?”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나, 아까 파티 때부터 계속 긴장하고 있어서 많이 지쳤거든? 이제 이런 이야기는 잠시 그만하자. 적어도 오늘은 그만 해도 좋지 않을까?”

        

       내 말에, 아이들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아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뭐, 좋아.

        

       이해해주었다면 그걸로 다행이다.

        

       나는 오늘 한 번도 못 했는데…….

        

       너는 평소에 하잖아. 오늘도 몰래 할 생각이고. 아니면, 오늘은 안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으, 으에…….

        

       의식 안에서도 저런 소리를 내는구나.

        

       “……그럼 일단, 남은 케이크부터 마저 먹자.”

        

       나는 한숨을 푹 쉬고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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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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