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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사람을 죽이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법과 윤리, 원칙으로 따져도 사람을 죽이는 건 당연히 안되지만, 내가 말하는 부분은 그와는 다른 부분이다.

     무기를 이용하든 손을 직접 이용하든, 인간이 죽어갈 때의 감촉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아무리 죽음에 의연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죽음을 받아들인 이라고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몸이 본능적으로 죽음에 저항하기 마련.

     이건 개인의 의지가 꺾였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영혼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으나, 몸이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펼쳐서 무조건반사로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다.

     

     근육이 꿈틀거린다거나, 피가 솟구친다거나.

     갓 도축한 소의 살결을 보면 마치 파도가 치는 것처럼 꿈틀거리는데, 살덩어리가 뭉텅 잘려나왔어도 그게 근육에 남아있는 생명활동의 본능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한다면.

     ‘머스킷이 좋지.’

     신체에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고, 멀리서 쏴서 죽이는 쪽을 선호한다.

     시체 치우는 거야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에게 맡기면 그만이니까.

     몸에 남의 피가 묻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몸 안의 것들이 흘러나오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특히 검이든 도끼든 무언가 날붙이를 휘둘러 죽인다면, 살갗과 근육을 자르더라도 그 안에 단단한 뼈에 걸릴 때가 제일 기분이 더럽다.

     칼날과 뼈가 닿는 그 감각이 손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그 특유의 감각이 싫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검을 휘둘러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빠르게.”

     검날에 오러를 담아, 그대로 목을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툭.

     말을 타고 달려오던 기사의 목이 바닥에 툭 떨어진다.

     말은 그대로 놀라서 제자리에 멈춰섰고, 나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올라선 말의 등에서 바로 뒤로 슬쩍 몸을 당겼다.

     푸화아아악!!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튄다.

     잘린 목으로부터 물이 뿜어져나오듯, 피가 분수처럼 튄다.

     “쯧.”

     어떻게 피가 묻지 않도록 조절하기 위해 나름 베는 각도를 사선으로 그었지만, 피라는 게 한 방향으로 튀는 게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적어도 붉은 정장 때문에 피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

     “이걸로 열 셋인가.”

     나는 말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사람 무게가 갑자기 사라져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는 죽이지 않을 거라고 판단을 내린 말이 놀란 건지, 말은 슬그머니 옆으로 물러나며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히히힝.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목이 날아갔던 기사의 몸은 그대로 뒤로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졌고, 그 바람에 또 피가 옆으로 튀었다.

     “나는 말이야, 이렇게 중간에 멈추는 걸 싫어해.”

     오러를 해제한다.

     오러 자체에는 피가 묻지 않지만, 오러 위에 흐르고 있는 피가 오러의 검날을 따라 아래로 툭 떨어지며 흥건하게 바닥에 고인다.

     “하나 죽으면 바로 그 복수를 하겠다고 바로 들어와야지, 그렇게 겁을 먹은 채로 뒷걸음질쳐서야 되겠나.”

     “…이, 괴물같은…!”

     “아아, 눈빛이 딱 그런 표정이군.”

     익숙하다.

     회귀 전, 처형장에서 만났던 수많은 그 충성병자들이 내게 보내던 그 눈빛이다.

     “그 힘으로 제국의 병사들을 죽이는데 사용하지 않고, 왜 우리를 베는데 사용하느냐. 그거지?”

     “……!!”

     익숙해서, 싫다.

     저렇게 누군가에게 특정 삶을 강요하는, 그리고 그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바라보는 눈빛은.

     “이상하군. 왜 항상 지브롤터는 노스트럼을 위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거지?”

     “이, 이 자식…!”

     “그래. 어쩌면, 노스트럼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50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가볍게 검을 휘둘러 잠시 뭉친 근육을 풀어낸 다음, 물러서는 기사들을 향해 내가 먼저 다가간다.

     

     “만일 제국과 왕국이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지금의 지브롤터가 과거처럼 지냈으면 그랬겠지. 아버지가 설령 죽더라도, 그레이 지브롤터가 그 뒤를 이어 협곡에 상주하며 제국군을 상대하는 그런 역사의 반복이.”

     그 반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 뿐만 아니라, 이미 ‘이전’부터 그런 역사의 흐름은 끊어졌다.

     “탓할 거라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탓하라.”

     무능왕 때문에.

     “너희의 군주가 먼저 지브롤터를 배신했는데, 지브롤터가 그에 충성을 바칠 이유는 없지 않겠나.”

     “이, 이 배신자…!”

     “그러니까, 먼저 배신을 한 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니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제국으로 넘어갔다고? 아니야.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는 제국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바라보기 시작한 거야.”

     원래는 노스트럼을 등진 채, 제국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었다.

     “제국에 칼을 겨눈 채 살아가는 이의 뒤에 낙서를 하고, 돌을 던지고, 재산을 훔치고, 떠나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웠지.”

     그냥 칼을 겨눈 걸 두고 응원하기만 했더라도 몰랐다.

     “500년 동안 참아온 걸로 이미 충분히 한 국가와 왕조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크윽…!”

     “불만있으면, 막아보든가.”

     가볍게, 앞으로 뛴다.

     말을 타고 도망가기 전, 말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단걸음에 거리를 좁히며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카ㅡㅡ앙!

     “큭…!”

     “그래. 상급기사라면 이 정도는 버텨야지.”

     오러를 해제한 검으로 가볍게 공격하자, 말 위에 타고 있던 기사는 몸을 돌리기 전에 강철로 된 창대로 내 검을 막아냈다.

     “상급에 전신철갑. 심지어 마법으로 강화된 황금갑옷.”

     “이, 매국노 새끼가!!”

     베기에, 분명 쉽지 않다.

     검을 찌르기에도 갑옷 사이사이의 틈이 없다.

     

     ‘오러방출. 진동. 

     그러나 쉽지 않은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날이 잘 들지 않는다면, 오러에 깃드는 마나를 더 많이 불어넣으면 그만이니까.

     푸ㅡ욱.

     검을 사선으로 휘두른다.

     아래에서 위로, 허리부터 반대쪽 갈비뼈 방향을 향해 오러로 만들어낸 칼날을 그대로 휘두른다.

     ‘역시, 조금은 걸리네.’

     갑옷을 자르고, 사슬을 자르고, 살가죽을 지나, 내장을 스친다.

     

     오러의 칼날에 기사의 몸은 어떻게든 순간적으로 오러에 저항하려고 모든 생명력을 한 곳에 집중했고, 칼날이 닿는 부위에 본능적으로 마나를 집중했다.

     척추.

     몸통 절반이 칼날에 베였으나, 척추만 어떻게 버틴다면 후유증이든 뭐든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게 싫다니까.’

     척추 즈음에 한 번 날이 걸릴 때, 그 ‘카샥’하는 듯한 소리가 칼을 타고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싫다.

     싫지만, 어쩔 수 있나.

     칼을 뒤로 빼내고 다시 벨 수도 없는 노릇.

     나는 검을 휘두르던 손 중 하나를 옆으로 살짝 당긴 다음, 칼등을 향해 가볍게 손바닥을 찍었다.

     푸ㅡㅡ욱!

     밀어, 벤다.

     동시에 내 몸이 앞으로 쏠리고, 허공에 잠시 붕 떠있던 내 몸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다.

     “후.”

     인식은 거의 수 분.

     실제로 걸린 시간은 수 초-가 아닌 1초도 되지 않는 찰나.

     나는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앞으로 걸어가, 오러를 털어내고 칼을 허리에 차고 있던 지팡이-칼집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찰칵.

     하고, 이음새가 맞물리는 순간.

     

     푸화아ㅡㅡㅡ악!!

     몸이 반으로 잘린 기사의 몸 단면에서 피가 터져나오고, 그 뜨거운 핏방울이 일부 내 어깨에 스쳤다.

     “휴.”

     머리카락에 닿지 않은 게 천만 다행.

     어차피 옷에 피가 튀고 나면 샤워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샤워를 하러 갈 때까지 머리에 타인의 피가 묻어서 절여진 채로 찝찝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특히 그 피가 굳어서 머리카락이 고정되기라도 한다면 더더욱.

     회색 머리카락이라 검붉은 피가 묻어 붉게 물들기라도 한다면, 그것만큼 보기 싫은 색이 또 없다.

     아버지처럼 선명한 붉은색이라면 모를까, 사람의 피로 물드는 머리카락색은 불길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색이니까.

     “후, 후퇴ㅡㅡ!”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외친다.

     상급 기사 하나가 칼질 한 번에 갑옷 통째로 잘린 것에 겁을 먹은 건지, 이미 내가 달려들기도 전에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고 한다.

     “아, 정말. 쫓아가기 귀찮은데.”

     얼마나 달려가야 할까. 

     달려가면서 베면 피를 그대로 뒤집어써야 하는데.

     ‘이래서 머스킷이 편하다니까.’

     멀리 도망치더라도 제자리에서 그냥 총구만 바꾸며 도망치는 경로를 향해 쏘기만 하면 얼마나 편한가.

     마스터급 경지에 이른 자들에게는 총보다 칼이 더 사람 죽이기 편한 감은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바쁘게 움직이는 건 싫다.

     “칼을 던지는 것도…호.”

     푸ㅡ욱.

     도망치던 기사의 몸에서 피가 튄다.

     황금으로 물든 갑옷에 붉은색 전염병이라도 생긴 것처럼 피가 튀고, 살기 등등한 얼굴의 남자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제로스 바르셀 후작.”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예.”

     나는 가볍게 칼을 집어넣은 지팡이를 들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무슨 독전관마냥 도망치는 병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자에게 살해당할 것 같지는 않아서.”

     “건방진 녀석….”

     “실력이 되니까.”

     그냥 허투루 하는 소리는 오만하면서도 방자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걸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이가 말한다면 그건 자신감의 표출이다.

     “네놈은 지브롤터가 아니다.”

     제로스 바르셀 후작이 허리에 찬 검을 뽑는다.

     “너는 지브롤터에서 태어난 이단이며, 악귀다. 지브롤터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쓰레기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사람 한 명보다 더 큰 양날대검을 한 손으로 들며 내게 겨누며 분노를 토해낸다.

     “그건 당신들이 멋대로 생각하는 지브롤터가 아닌가?”

     듣는 사람으로서는 기가 막히는 소리.

     “지브롤터에서 태어났다고 모든 걸 노스트럼에 바쳐야 한다. 글쎄. 과연 누가 그렇게 생각할까.”

     “모두가!”

     “그 모두에 일단 나는 뺐으면 좋겠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바르셀 후작. 답답하겠지. 응?”

     

     이미 신념이나 이념, 그런 문제를 떠나서 이건 옹졸한 자존심 싸움이니까.

     “충성을 바친 국왕은 쓰레기고, 왕이 바뀌면 축출당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제국으로 도망치기에는 제국으로 향하는 통로가 마땅찮고.”

     유일한 탈출구가 있기는 하다.

     “한 번, 기회를 주지.”

     나.

     “생각을 바꾼다면 모든 게 달라질 거다. 노스트럼에서 태어났다고 노스트럼에 평생을 충성하겠다는 그 생각을 버린다면 말이지.”

     “…결정했다.”

     바르셀 후작이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네놈을 죽이고, 그 목을 잘라서 전하께 바치기로.”

     “나를 죽이겠다고? 그랬다가는 아버지가 가만두지 않을 걸?”

     “그 아버지라는 작자, 크림슨 지브롤터가 아니라 제국의 황제라도 되나?”

     “…….”

     전혀.

     

     “내가 당신의 손에 죽는다면, 황제는 슬퍼하고 말 걸.”

     고작 이딴 인간에게 살해당했느냐, 라고.

     

     “하루 정도는 말이지.”

     자기 뒤를 이을 가장 완벽한 후계자가 죽었다고 해도, 차선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크림슨 지브롤터가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흐흐흐. 그건 내가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지.”

     제로스 후작이 유리병에 찰랑거리는 희뿌연 액체를 입에 그대로 털어넣는다.

     “고작 18살에 마스터가 되었다고 기고만장하는구나. 내가 오늘, 마스터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

     냄새가 난다.

     캐롤라인에다가 농축한 백은을 섞은 약물의 냄새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미칠듯이 뛰는 심장으로 인해 치사량이겠지만, 마스터는 몸 속에 들어온 피의 흐름을 잘 정제해낸다면-

     “후아아…!”

     신체능력이 수 배는 향상되는, 악마의 약이 되어버린다.

     “크흐흐….”

     “약쟁이 마스터라.”

     가볍게, 허리에 찬 칼 끝에 손을 올린다.

     “이성을 잃은 약쟁이만큼, 상대하기 싫은 게 또 없는데 말이지.”

     차라리 차가운 분노로 덤볐다고 한다면, 예의를 갖췄을 것이다.

     황제는 약에 취해서 싸우지 않기에, 냉정하게 싸우는 마스터를 상대한다는 연습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피가, 식었어.”

     의욕이 꺾인다.

     “그래도 뭐, 한 번 보기나 할까.”

     이미.

     “반쯤 흡혈귀가 되어버리신 우리 제로스 바르셀 후작, 노스트럼 왕국 제1 기사단장님의 실력을.”

     약쟁이 마스터 같은 건, 너무나도 많이 상대해봤기에.

     저 인간은 알까.

     ‘모르겠지.’

     내가.

     ‘회귀자만 아는 비밀이니까.’

     술에 취하고 백은을 빨고 내게 덤비는 누아르를 몇 번이나 상대해봤을까.

     ‘그럼, 미안하지만.’

     잠시, 생각난 김에 화풀이를.

     “몇 번이고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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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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