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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9월.

   3월에 입학한 2기생들이 최종 평가를 통과하고 학생단에 소속되는 시기.

     

   이맘때의 라헬른 아카데미 학생들은 무척이나 바쁘다.

     

   2기생들은 소속될 단을 직접 발 뛰어 알아봐야 하고.

   1기생들은 한 명이라도 더 유익한 단원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단은 오직 실적으로만 이루어진다.

   실적을 못 내는 학생단은 해제 경고를 받는 만큼 인재 확보는 그들에게 필수적이었다.

     

   그러니 지금.

     

   “2기생 분들 처녀단은 어떠신가요. 신학의 뜻을 가져보지 않겠습니까?”

   “거해단, 평민분들! 자신의 신분에 개의치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거해단으로 오세요!”

   “마도학 지망생이라면 인마단이다. 정통 있는 마법사를 목표로 하는 이들만 오라.”

     

   저마다의 슬로건을 내밀고, 여기저기서 홍보 행렬이었다.

   덕분에 기숙사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은 매일 같이 홍보 세례를 받아야 했다.

     

   “청춘이네.”

   “그런 소리를 할 때야?”

     

   크라슈는 옆에서 들린 핀잔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태양 빛 같은 머리색을 지닌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신성력 탓에 또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몸인 그녀는 크라슈를 퉁명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성녀 아스트리아 스티그마 프리만.

     

   벨투아와의 일을 마친 후 크라슈는 얼마 못 가서 그대로 뻗어 버렸다.

   그야, 아우라와 세계 침식의 힘은 잠재웠어도 육체가 회복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계에 이른 크라슈는 라헬른 아카데미로 이송되어 아스트리아의 눈총을 잔뜩 받은 채 치료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약속은 지켰잖아?”

   “그거야…….”

     

   만약, 다쳤을 때는 아스트리아를 우선적으로 찾을 것.

   그걸 지키지 않았느냐고 크라슈가 말하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그거랑 별개로 다쳐 오면 당연히 신경 쓰일 거 아니야.”

   “그건 나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왜 가면 갈수록 몸 상태가 더 심해져서 오는 거야? 당신 정도면 공격 하나 안 맞고 대부분은 쓰러트릴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가만 보면 최근에는 누군가한테 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혹사해서 다치는 게 더 많은 거 같은데.”

     

   크라슈가 어디에 갔다 온지 모르는 아스트리아는 의문스럽게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만약 금역에 가서 9성급 침식종과 한바탕하고 왔다고 하면 아스트리아가 소리를 내지르겠지.

     

   “내가 아직 생각보다 약한가 보지.”

     

   이건 크라슈 나름 진심이기도 했다.

     

   한창 익시온이 움직이고 있다.

   녀석들은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세계 침식을 퍼뜨리며 힘을 모으고 있겠지.

     

   ‘그리고 결국 그놈들은 금역까지 건드리게 될 거고.’

     

   그때가 된다면 익시온과는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그런 그들을 상대하기에 크라슈는 아직도 모자란다고 느끼고 있었다.

     

   ‘사계를 얻었으니 이전보다 그릇은 훨씬 커진 셈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모자란다고 드는 생각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 강박증이로군. ]

     

   크라슈의 상태를 눈치챈 크림슨가든이 일갈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건 일종의 강박증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해서라도 강해지지 않으면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야, 천상사강조차 결국 세계를 지키지 못한 게 현실이니까.’

     

   크라슈 입장에서는 강함을 갈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황궁 건도 있다.’

     

   지금 한창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가 열심히 천황 달피론 쥬논과 자리를 주선하고자 뛰고 있을 황궁 건.

   그 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나름대로 힘을 갖춰야 했다.

     

   ‘아벨라는 분명히 황궁과 익시온에 연관되어 있어.’

     

   높은 확률로 그 녀석과 다시 마주하게 될 테지.

     

   아서를 기준으로 뇌가 녹아버린 여자지만.

   그것과 별개로 마법 실력 하나는 세계 제일이라 할만하다.

     

   ‘아벨라가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지.’

     

   그러니 당장 그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수련이 필요한 크라슈였다.

     

   “당신, 또또, 딴생각하고 있지.”

     

   그러자 아스트리아가 크라슈의 어깨를 쿡쿡 찔러왔다.

   자기를 두고, 딴생각 한 것이 심통 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쪽 건도 있긴 한가.

   크라슈는 잠시 시기를 확인했다.

     

   “아스트리아, 곧 신들의 축제가 열리는 날이지.”

   “응? 그렇지. 얼마 전에 프리만을 다녀온 이유도 축제 예행 연습 준비 탓이었으니까.”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올해의 추수를 내려주신 신들께 감사를 올리는 신들의 축제.

     

   해마다 열리는 이 축제는 올해도 프리만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렇게 잠깐 비운 틈에 미레이 베아키스 추기경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마도구 제작사 로나 임블라이즈와 추기경 미레이 베아키스가

   세계 침식자, 흑마녀로 인해 종이 된 사건.

     

   사건을 밝힌 결과.

   흑마녀가 사람의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종을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덕분에 세계는 대대적인 흑마녀의 수색에 들어갔다.

     

   그야, 세뇌는 그만큼 위험한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흑마녀 쪽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하기 힘들어졌다.

     

   아무리 그녀라도 세계 전체가 들고일어나 이 잡듯 수색하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당분간은 흑마녀 대신 다른 세계 침식자들이 움직이겠지.

     

   “거기에 돌아오자마자 당신은 일부터 맡기고 있고.”

   “그건 할 말 없긴 한데. 그걸 해결해줄 수 있는 게 너밖에 안 떠오르더라.”

   “어, 흐응, 흥, 그렇다면야.”

     

   왜인지 다시 기분이 좋아진 아스트리아였다.

     

   ‘이 녀석 가면 갈수록 감정이 오락가락하지 않나.’

     

   성녀인 녀석이 괜찮을지 생각하고 있으니 아스트리아가 헛기침했다.

     

   “그래서 그거 때문에 당신한테 부탁 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프리만 쪽에서 당신을 영웅처럼 추대하고 있는 건 알지?”

     

   그야, 잘 안다.

   녀석들은 미레이 쪽 이야기를 어떻게든 덮어 버리고자 일부러 크라슈를 띄우고 있었으니까.

     

   크라슈도 거기에 관해 딱히 제지해두지 않았다.

   크라슈의 이름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익시온은 크라슈를 함부로 건드리기 꺼림칙해 할 테니까.

     

   무엇보다 이름값이 올라가면 창공의 세대 중심에 서기도 더더욱 쉬워진다.

     

   “그래서 이번 축제에 당신을 초청하는 게 어떠냐는 말이 나오고 있어. 프리만이 내세운 새 영웅이니까. 발하임 쪽에도 연락을 넣는다는 말이 있더라.”

     

   아무리 크라슈를 영웅으로 추켜세웠다고 한들.

   프리만도 혹시나 발하임의 신경을 거스를까 봐 사전에 발하임의 동의를 구하려는 모양이다.

     

   발하임 쪽에서는 그다지 문제없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발하임은 오직 실력 지상주의다.

   발하임 내부적으로도 가주 자리를 두고, 가신들의 신경전은 꾸준히 있긴 하나 결국 실력이 전부인 세계.

     

   그러니 직계의 실력과 전적을 드높일 수 있는 상황을 구태여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 그래서 당신 생각은 어때?”

   

   

   

   

     

   아스트리아는 슬쩍 떠보듯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크라슈가 부디 이번 축제에 같이 와줬으면 하는 미약한 바람이 있었다.

     

   새 영웅으로 추대된 크라슈다.

     

   크라슈는 이미 진작부터 차세대를 이끌 유망주로 점찍어 놓아져 있던 만큼.

   프리만에서는 그를 적극적으로 쓰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프리만의 간판과도 같은 아스트리아와 함께 두려고 하겠지.

   그래야 성녀와 영웅의 관계를 비출 수 있으니까.

     

   아스트리아도 그 사실을 알고, 크라슈에게 슬쩍 권유한 것이다.

     

   “신들의 축제라…….”

     

   크라슈는 잠시 동안 팔짱 낀 팔을 검지로 천천히 두드렸다.

     

   크라슈가 아스트리아를 힐끗 보았다.

   크라슈가 구태여 신들의 축제를 언급한 건 따로 있었다.

     

   그야, 이번 축제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들의 축제 이후 성기사 디오나 스텔라 및 반대파와 함께 혁명을 일으키는 시기.’

     

   원래대로라면 성기사 디오나가 아스트리아의 새장의 족쇄를 부숴내고자 혁명을 일으킨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아스트리아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새장을 벗어났고,

   성배에 관해 프리만 신성 왕가와 직접 담판을 벌였다.

     

   즉, 디오나가 반대파와 함께 손을 잡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파는 여전히 존재하겠지.’

     

   반대파는 성녀라는 존재 자체를 탐탁지 않아 하고 있다.

     

   성녀란 존재는 신성 왕가가 오직 프리만의 상징적인 존재를 만들기 위해 공적으로 만들어낸 인조품이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녀는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녀를 이 세상에서 지우고, 진정으로 신의 뜻을 따르는 교리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의 뜻은 개뿔이.’

     

   세계가 멸망하는 시점에도 아무것도 못 하던 놈들을 신이라 숭상하는 것이 우습다.

   신과 신성 왕국을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하는 크라슈지만 아스트리아는 별개다.

     

   크라슈는 회귀 전, 그녀에게 목숨을 크게 빚졌으니까.

   아직도 자신에게 모든 신성력을 퍼붓고, 스스로 소멸한 그녀가 생생하다.

     

   ‘디오나가 반대파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반대파는 움직이겠지.’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에게 디오나라는 억제가 없다.

   디오나라는 억제가 없다는 건 그들의 표적에 아스트리아도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

     

   크라슈에게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이 갈게.”

   “어, 정말?”

     

   아스트리아의 얼굴에 단번에 화색이 돌았다.

   크라슈가 같이 가준다고 하니 순순히 기뻐한 것이다.

     

   “그래, 예전에 지켜 주기로 약속했잖아. 축제 정도는 편하게 돌 수 있게 해줄게.”

   “당신, 반대파 소식을 눈치챘구나.”

     

   역시 아스트리아도 그쪽에 관해 알고 있었나.

     

   “디오나가 귀띔해줬어. 자기한테 반대파의 제안이 왔었다고 말이야.”

   “디오나 쪽은 뭐라 대답했는데.”

   “그야, 거절했지. 그런 짓을 했다간 내 처지가 오히려 난처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디오나가 없다고 한들 포기하지는 않은 모양이야. 그들의 목표는 신성 왕가 자체를 새롭게 개편하는 거니까.”

     

   아스트리아는 살짝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거기에 미레이 베아키스 추기경도 연관되어 있어.”

   “미레이 베아키스가?”

   “디오나가 조사해본 바로 반대파의 중심점 중 하나가 테르사다 베아키스야.”

     

   테르사다 베아키스.

     

   신성 왕국의 대주교이자 차기 교황 후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

   무려 천하십강 중 한 명이자 성왕(聖王)이라는 별칭까지 지닌 자다.

     

   그는 미레이 베아키스의 아버지 되는 사람으로서 신성 왕국의 기둥 중 하나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원래 반대파에 테르사다 베아키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텐데.’

     

   테르사다 베아키스는 딱히 반대파 소속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반대파에 소속되었다는 건.

     

   ‘바뀌었다.’

     

   어쩌면 이번에 벌어진 흑마녀의 종 사건이 영향을 끼친 걸지도 모른다.

   추기경까지 오른 미레이 베아키스를 사형하려고 마음먹었을 신성 왕가에 불만을 가진 걸지도 모른다.

     

   신성 왕가와 교단은 별개니까.

   이참에 신성 왕가와 교단을 아예 분단시킬 속셈일지도 모르고.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해졌다.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아스트리아가 없었더라면 알 수도 없었던 이야기였겠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의자를 조금 당겨 앉았다.

     

   “그래서 보디가드 역할은 톡톡히 해주는 거지?”

   “걱정하지 마라.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해줄 테니까.”

     

   그래도 나름 아스트리아를 지킬 수 있을 만큼은 강해졌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자 그녀가 주위를 슥슥 둘러보더니 또 한 번 의자를 더 당겨 앉았다.

     

   “……그럼 혼자 오는 거지?”

   “그거야, 그렇겠지. 다들 바쁠 시기니까.”

     

   다들 한창 훈련에 박차를 가할 시기다.

   크라슈의 경우에야 일과 훈련을 병행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별개다.

     

   하물며 신성 왕국에 가는 일.

   신성 왕국 소속이 아닌 이들 처지에서는 상당히 난처한 부분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가급적이면 혼자 움직일 생각이었다.

     

   “좋아. 그럼 됐어.”

     

   아스트리아는 그걸로 만족한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따라 유달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녀였다.

     

   ‘테르사다 베아키스가 반대파라.’

     

   프리만 쪽에 상당히 거친 바람이 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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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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