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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8

   Ep.208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라는 것이 있다.

     

   간혹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났던 사람은 핸들을 잡아도 그것을 당길 수 없고,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갇혀 어둠의 공포를 맛본 사람은 좁은 공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통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너는 포기하는 거냐?”

     

   나의 말에 김시인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더 이상 탑을 오를 생각이 없냐고 물은 거야.”

   “지금까지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거지? 그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너는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광적인 비애가 뒤엉켜 있다.

   극한의 공포를 느낀 자가 가지게 되는 절망과 자포자기. 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눈은 저런 패배자의 눈이 아니었다.

     

   “네가 말했지. 우리는 책임자이지 방관자가 아니라고.”

   “……”

     

   “네 말대로야. 우리에게는 세상을 등에 메고 그들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고 그들이 쓰러졌을 때, 그들을 일으켜 세울 사명이 있지.

     

   지키는 것은 우리의 역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때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지. 남은 것에 감사하며 그 뒤로 이어질 난관을 피해 갈 줄도 알아야 해.”

     

   하지만 과연 포기하는 것이 정말 그들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지킨다는 것이 무엇이지?”

   “뭐?”

     

   “네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탑을 오르지 않겠다고 선택한 건지 물은 거다.”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패배와 절망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우리가 탑을 오르는 것을 포기하면 나를 따르고자 했던 자들이 내가 그들을 지켰다고 생각할까?”

     

   그런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탑을 올라왔고 도전과 포기 중 어떤 것이 더욱 정답에 가까운 선택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왕이 나아가지 않으면 신하들은 앞으로 나설 수 없어. 아무리 큰 소망이 있든, 얼마나 거대한 야망과 꿈이 있든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그들의 세상도 끝이야.”

     

   포기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패배 또한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지도자는 그래야 했다. 놓을 줄 아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

   이끌어야 하는 존재가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그들의 희망이 된다.

     

   우리는 도전하는 도중 난관을 만난다면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길이 막혔다면 손이 부르트고 피가 터져 나와도 길을 만들어야 했다.

     

   나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

   나는 그대들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삶은 짧아. 그리고 어깨는 무겁지.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좌절해서는 안 돼. 그저 목표를 달성할 수단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 목적으로 가는 길이 지옥 끝이라면 그 목적으로 달리던 도중에 쓰러져 죽어야 해.”

     

   공포와 맞서 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

   화신들이 쓰러졌을 때 그들을 일으키는 것이 곧 나의 역할이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너는 최선을 다 했으니 강요는 하지 않을게.”

   “……뭐?”

     

   “뒤는 나한테 맡겨라. 꽤 멋진 결말을 보여 줄 테니까.”

   “……”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나의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창을 읽어 내려갔다.

     

   [축하합니다. 15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16층부터는 성좌들 간의 간섭이 가능합니다.]

     

   [탑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나아가십시오.]

   [탑의 끝에 도달한 자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두렵지 않나?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억겁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김시인이 나의 눈을 응시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나를 따라와 준 동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탑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지.”

     

   탑 오르기를 포기하려 했다면 10층을 클리어했던 그 순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더 이상 목숨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은 채, 아우트라나를 돌아보며 진 하트와 같은 화신들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신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포기한 결심.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었어?”

   “……”

     

   나의 말에 그가 입술을 깨물며 나의 눈을 피했다.

     

   파지직-!

     

   허공에 스파크가 일며 같은 장소에 푸르스름한 포탈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16층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 탑의 정상으로 갈 유일한 통로가 나의 눈앞에 있었다.

     

   저벅.

     

   나는 두렵지 않았다.

   아니… 이 탑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포기하게 될 나의 모습이 오히려 더 두렵다.

     

   포기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가다 죽어도 좋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결의인가.”

   “뭐 그렇다고 해 두자.”

     

   나는 평행세계의 나에게 짧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고통을 받아왔던 자.

     

   이제는 만나지 못할 나와의 작별이었다.

     

   ***

     

   만신전이라 명명한 성좌들의 구역.

     

   “끄으윽!”

     

   그곳에 생성된 큼지막한 포탈이 맹수의 눈빛을 가진 백발의 아이 하나를 뱉어냈다.

   비틀거리던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의 아래로 작은 피 웅덩이가 고인다.

     

   “젠…장…! 그 자식 봉인된 것이 아니었나…?”

     

   아이가 손으로 야외에 세워진 하얀 기둥을 만질수록 새하얗던 주변이 붉게 채색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그 모습을 아니꼽게 본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홉 꼬리의 백요께서 여덟 꼬리의 백요가 되셨군요.”

     

   소매가 땅에 닿을 듯, 하늘하늘한 백의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

   반쯤 놀리는 듯한 말투에 아이가 으르렁거리며 그녀를 쏘아봤고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등 달린 흑색 날개를 움직여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드디어 미친 거냐? 애 취급도 정도 것이지.”

   “후훗. 그나저나 17층이라도 도전하셨던 건가요?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치면 되셨을 것을…… 당신답지 않군요. 가여워라……”

     

   여인의 말에 아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대놓고 피해를 당한 그를 놀리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

     

   하지만 여인이 놀라웠던 것은 이어진 아이의 반응이었다.

     

   “젠장……”

   “……어? 왜 화를 안 내지? 이 정도 시비 걸었으면 보통 막 짐승으로 변신하면서 털 바짝 세우고 대들어야 하는데?”

     

   아홉 꼬리의 백요. 어딘가에서는 구미호라고도 불리는 아이는 여인이 알기에 이렇게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닥치고 빨리 만신회의를 소집해라. 급한 일이니 당장!”

     

   “어머, 까칠하셔라…… 근데 내가 왜요? 지금 당신이라면 내가 충분히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인의 말에 백요가 인상을 찌푸렸다.

   가끔 이런 식으로 농담을 던지는 여자긴 했지만 지금 들으니 기분이 나쁜 것을 넘어 소름이 끼치기 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끼리 서열 다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봉인이 풀렸다.”

   “……네?”

     

   “아니, 이게 봉인이 풀렸다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군.”

   “혹시 저 모르는 사이에 15층에 다녀오셨어요? 당신 순서도 아니었잖아요?”

     

   “누군가가 봉인을 건드렸다. 그래서 포탈을 열고 확인차 15층으로 갔는데…… 면목 없군.”

   “……당장 성좌들을 불러 모을 게요.”

     

   여인이 흑색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준비 자세도 잠시, 어마어마한 광풍을 일으킨 그녀가 자리에서 사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필코 죽여야 한다. 그때는 방해가 있어서 실패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남은 아이의 혼잣말이 바람이 잠잠해진 만신전의 공간을 작게 메아리쳤다.

     

   ***

     

   띠링.

     

   [이곳은 탑의 16층 만신전입니다.]

     

   눈을 뜬 나는 혹시 모를 위험에 바짝 긴장하며 곧장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새카만 어둠 뿐.

   그나마 느껴지는 습한 향과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아니었다면 내가 죽은 것일까 착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

     

   마력을 퍼트려 탐색을 시작하니 내가 포탈을 열고 나온 장소가 축축한 바위로 이루어진 동굴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천장에서부터 종유석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 동굴 벽을 타고 흐르는 거칠거칠한 석회수와 바닥을 이루는 축축한 이끼들.

     

   서서히 암순응이 진행되며 눈이 밝아지니 주변의 경관이 점점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적진에 던져 넣지는 않는다는 건가?”

     

   이전 층에서 내가 했던 말들을 종합해 보면 이곳은 나에게 적대적인 수많은 성좌들이 존재하는 위험한 장소였다.

     

   나름 적진에 떨어진 것이라 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걱정했던 것보다 평화로운 안전지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띠링.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의 나의 역할.

   하지만 나의 눈앞에 떠오른 임무를 읽으며 나는 상당히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

   『16층 – 만신의 적』

     

   성좌 : 없음

   주제 : 섬멸

   난이도 : S+

     

   설명 : 이곳은 당신을 적대하는 성좌들이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발견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공격을 가할 것이며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적대 세력 ‘만신전’을 조심하십시오. 원한다면 그들과 협력할 수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임무 : ‘만신전’의 척결 / 핵심 성좌의 사망 또는 항복

   제한 : 제한은 없습니다.

     

   보상 : 만신전의 격

   실패 페널티 : 당신에 대한 처분은 만신전이 선택할 것입니다.

   —

     

   성좌들과의 본격적인 싸움. 이 넓은 땅에서 적을 찾아 섬멸하고 그들을 굴복시켜야 했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띠링!

     

   [당신을 돕고자 하는 조력자들 존재합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임무를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띠링!

     

   [조력자들에게 탑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당신을 도울 것인지 말 것인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이것이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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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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