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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

        “다들 괜찮으십니까?”

        ​

        “허허, 이 정도는 아침 운동 수준이라네…쿨럭…”

        ​

        내상도 입으신 분이 왜 허세실까.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기침을 하는 장 선배에게서 눈을 떼곤 우리가 만들어낸 지옥을 바라보았다.

        ​

        “…다 죽었군요.”

        ​

        “그래, 우리가 다 죽였다네.”

        ​

        토막 난 시체들. 그리고 게걸스럽게 피를 빨아들이는 모래밭. 사막의 양분이 되어버린 마인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으며 널부러져 있었다. 

        ​

        “…머리를 챙기게나.”

        ​

        백 선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은공, 제가 잘라 오겠습니다.”

        ​

        “그래. 혹시 모르니 조심하고.”

        ​

        무림은 귀식대법인가 하는 죽은 척하기 기술이 있으니 조심해야지. 물론 목경이도 초절정에 이른 만큼 그런 수에 쉽게 걸리진 않겠지만…

        ​

        나는 목경이가 독마의 머리를 자르는 모습을 지켜보다, 염마와 백 선배가 가리킨 마인들의 머리를 잘라 보따리로 감쌌다.

        ​

        보따리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꼴이 끔찍하기 짝이 없었지만, 우리의 전공을 증명할 거리는 필요했기에 나는 대충 어깨에 보따리를 짊어지고 별동대원들을 바라보았다.

        ​

        “이제 한동안 추격은 없을 겁니다.”

        ​

        “한동안?”

        ​

        “맘루크 놈들은 사막에서의 전투에 익숙합니다. 전열을 재정비 후 추격해올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

        “그거참 기운 빠지는 소식이로구나.”

        ​

        “팽 장로님. 그래도 그리 쉽게 따라오진 못할 겁니다.”

        ​

        우리가 그냥 걸어서 도망친 것도 아니고, 경공을 펼쳐서 도망친 거였으니 이 사막에서 우릴 추적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소모될 터.

        ​

        그러니 신속하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몸 성히 청해성에 도착할 수 있을 법했다.

        ​

        “가능하면 수원지를 찾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겠습니다. 지금 가진 식량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

        “하다못해 그늘이라도 있으면 좋겠구나.”

        ​

        “남궁 선배,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그랬으면 좋겠구나.”

        ​

        “에잉, 남궁 놈아. 늙은 티를 내는구나, 고작 이 정도 더위에 질 거라면 여기서 누워버리는 게 어떻겠느냐?”

        ​

        “이보게 팽 장로. 자네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

        나는 실랑이를 벌이는 둘을 내버려 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노란색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저 지평선 너머에 청해성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마 한참을 가야 나오겠지. 

        ​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사막은 정말 끔찍하게 넓었으니.

        ​

        당장 여기서 청해성까지 가는 거리가 한반도 팔도여행을 가는 거리보다 길 거다.

        ​

        끔찍하다 끔찍해.

        ​

        하지만 사막에서 미이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으니, 우리는 부지런히 발을 놀려 사막을 돌파해야 했다.

        ​

        …아니지, 아예 북쪽으로 움직여서 천산을 경유해볼까?

        ​

        문제는 그쪽은 그쪽대로 불안하다는 건데.

        ​

        마교의 전 병력이 야영지로 이동한 건지, 아니면 일부만 이동한 건지 알 길이 없으니.

        ​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사막이 더 안전할 거라는 것이었다.

        ​

        우리에게도 가혹한 환경이라는 건 추격자에게도 가혹한 환경이라는 뜻이니까.

        ​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가는 길에 물 한 모금 마실 연못이라도 있길 빌죠.”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행군을 다시 시작했다.

        ​

        ———————–

        ​

        사막 탈출 나흘째.

        ​

        “벌써 나흘째 연못이 하나도 없구나…에라이. 이러다 인간 육포가 되겠구나.”

        ​

        “입 열지 말게. 있던 물기도 빠져나가니.”

        ​

        백 선배의 말에 장 선배가 입을 다물었다.

        ​

        그의 지적은 타당했다. 괜히 입 열었다 모래바람과 건조한 바람이 입안으로 들어와 입안을 바싹 말려버릴 테니.

        ​

        …그래도 꽤 많이 움직인 것 같은데, 사람 하나 안 보이네.

        ​

        여기 사막을 지나는 행상 정도는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

        아. 청해성에서 막고 있겠구나.

        ​

        뜨거운 햇볕에 며칠 내내 노출되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으니, 당연한 사실도 뒤늦게 떠올리게 된다. 이대로 가면 최초로 사막에서 말라죽은 초절정고수가 될 것 같은데.

        ​

        그렇게 속으로 한탄하며 하염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내 눈에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

        아니, 헛것이 아니라 신기루인가?

        ​

        “은공, 저건…”

        ​

        “신기루인가.”

        ​

        “호수입니다.”

        ​

        목경이의 말에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오아시스를 쳐다보았다. 

        ​

        신기루 원리가 뭐였더라. 빛의 굴절? 어릴 적 학습만화에서 신기루가 어쩌고저쩌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

        너무 낡은 기억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막에서 조난당할 일이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

        어차피 기억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만…일단 오아시스가 어딘가에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문제는 받아들인다 쳐도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야 할 거라는 건데.

        ​

        나는 고개를 돌려 별동대원들을 살폈다. 별동대원들은 애써 아닌 척하고 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으니, 무작정 달려가다 오아시스를 발견하지 못하면 탈진할 수도 있었다.

        ​

        “선배님들. 아마 저 멀리에 호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달려가면 없는 체력도 다 사라질 테니, 천천히 움직이겠습니다.”

        ​

        “알았네.”

        ​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

        다행스럽게도 별동대원들은 인내심 하나는 오랫동안 품고 살았을 노고수들이라 그런지, 내 말에 모두 수긍해주었다.

        ​

        “그럼 가보자.”

        ​

        “예, 은공.”

        ​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신기루를 향해 나아갔다. 마침 청해성이 있는 방향이었으니, 거리적으로 손해는 없다는 점이 나름 우리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

        우리는 점점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멈추어 섰다.

        ​

        “다시 밤이 찾아올 겁니다. 그 전에 호수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아마 힘들 테니 야영 준비를 하겠습니다.”

        ​

        야영이라고 해봐야 그나마 쉬기 좋게 모래를 적당히 파서 쉬는 것뿐.

        ​

        우리는 며칠 간의 경험으로 순식간에 그럴듯한 야영지를 만들어냈다.

        ​

        목경이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

        “허허, 옆구리가 시리구나.”

        ​

        “좋을 때지, 좋아질 때야.”

        ​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

        “자네 도사 아닌가?”

        ​

        “흠흠. 젊을 때 화산을 자유롭게 뛰놀던 매화꽃잎 같은 시절이 있었다네…”

        ​

        젊었을 땐 내가 좀 잘나갔다고 자랑하시는 건가.

        ​

        “에헤이, 백 선배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여인 손 한 번 못 잡아본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데 무슨 소리요?”

        ​

        “그게 무슨 소린가! 나도 젊었을 적엔 인기가 꽤 있었다네!”

        ​

        “하이고, 거 내가 옆에서 다 지켜봤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하시오?”

        ​

        “장무곡 네 이놈, 네 놈이야말로 여자랑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놈 아니더냐!”

        ​

        “뭐요? 난 댁이랑 다르게 기루도 드나들어 본 몸이오!”

        ​

        “이런…”

        ​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는 건가.

        ​

        나는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시키려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

        “…은공, 오늘도 어깨를 빌려도 되겠습니까?”

        ​

        “그래.”

        ​

        내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목경이의 몸이 내 팔에 밀착했다. 눈에 띄게 도드라지는 굴곡은 없지만, 나름대로 푹신함은 갖춘 몸매가 팔에 달라붙자, 숨결이 내 목을 간지럽혔다.

        ​

        “은공의 팔을 껴안고 있을 떄면,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어서 기분이 이상합니다.”

        ​

        “그러냐.”

        ​

        “은공은 어떠십니까?”

        ​

        “…글쎄.”

        ​

        나는 볼을 긁적이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목경이의 시선을 피했다. 

        ​

        혜령이의 육탄돌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지만, 목경이가 이런 식으로 달라붙는 건 색다른 느낌이라 적응이 잘 되질 않았다.

        ​

        주기도문을 외워야 할 것 같다고 할까.

        ​

        나는 속으로 주기도문을 외울 준비를 마치고 눈을 감았다.

        ​

        “은공…”

        ​

        “슬슬 자자. 내일도 강행군을 해야 할 테니.”

        ​

        “…예.”

        ​

        우리는 사이좋게 몸에 오러를 얆게 두른 채로 눈을 감았다. 한밤중의 사막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

        여름에는 사람을 산 채로 구워버릴 것 같은 열기로 넘치지만 밤에는 한겨울보다도 추워지는 곳이 사막이었으니까.

        ​

        “은공, 안녕히 주무십시오…”

        ​

        “너도 잘 자라.”

        ​

        ————————

        ​

        보름째.

        ​

        남궁원 장로가 쓰러졌다.

        ​

        원인은 노인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환경과 전투로 입은 내상 탓이었다.

        ​

        “버리고 가게나…”

        ​

        “업히십시오.”

        ​

        “날 업고 갈 수나 있겠느냐. 버리고 가거라.”

        ​

        “아닙니다.”

        ​

        나는 한사코 거절하는 장로를 억지로 업고 몸을 일으켰다.

        ​

        “은공…”

        ​

        “목경아, 주변을 잘 경계해다오.”

        ​

        우린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이대로 싸우면 절정이 뭐냐, 일류한테도 질지 모르는 상황.

        ​

        나는 등을 묵직하게 누르는 무게를 견디며 발을 내디뎠다.

        ​

        슬슬 청해성이 보일때가 되었지만 , 아직도 청해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길을 잘못 들었나?

        ​

        “…도대체 청해성은 어디에 있는 건지.”

        ​

        등에 업힌 남궁 선배의 몸이 뜨겁다. 지쳐 쓰러진 상태에서 사막의 열기를 그대로 쐬고 있기 때문이겠지.

        ​

        “은공, 빨리 찾지 못하면…”

        ​

        “그래도 초절정고수시니 오래 버티시겠지.”

        ​

        이어진 연전에 지치고 다친 몸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쓰러지실 분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평범한 환자보다는 오래 버티리라.

        ​

        문제는 나도 선배를 업고 다니느라 체력소모가 격렬하다는 건데…

        ​

        “은공, 제가…”

        ​

        “아니, 넌 힘을 아껴둬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하니.”

        ​

        “…예, 은공.”

        ​

        내 계산대로라면, 슬슬 청해성이 보여야 할 터. 하지만 아직까지 청해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

        왜일까.

        ​

        방향이 잘못되어서?

        ​

        우리가 너무 느려서?

        ​

        아니면…진법에라도 걸려서?

        ​

        만약 정말로 진법이라면 어떻게 하지? 이미 별동대원 모두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

        아니지, 진법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

        우린…

        ​

        “…은공!”

        ​

        “왜.”

        ​

        “저쪽을 보십시오! 성입니다! 성!”

        ​

        “뭐?”

        ​

        나는 목경이의 말에 깜짝 놀라 목경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

        “젠장, 방향이 어긋난 거였나.”

        ​

        “저흰 살았습니다!”

        ​

        “…저게 신기루만 아니었으면 좋겠네.”

        ​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다가갈 때까지 굳건한 성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

        “아…”

        ​

        “은공?!”

        ​

        내 의식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뜌땨…

    뚜땨아 뚜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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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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