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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

         

         

         교회엔 4가지 특성이란 것이 있다. 교회 대속성이라 불리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율법을 의미한다.

         

         각각 통일성, 보편성, 지성성, 사도전래성이라 불리우는 이 네 특징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이단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

         

         공의회란 이런 대속성을 정의하고 신앙의 방향에 지침을 내리기 위해 시행되는 행사다. 오랜 교회 역사 속에서도 단 7차례의 전례만 있는, 대단히 권위 높은 의례였다.

         

         공의회가 열릴 시점에 모든 교회의 교인들, 즉 세속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할 일을 멈추고 숨을 참는다.

         

         

         “마지막 공의회는 172년 전에 열렸지요.”

         “음.”

         “그 시기에 세속 왕가는 29개였습니다.”

         “…29개?”

         “네. 마왕이 발호하기 전까지 170년간 세속 왕가가 21개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뜻을 혹시 이해 하시겠습니까?”

         

         

         8개 국가가 2년 안에 멸망했다.

         

         성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공의회가 신앙의 방향성을 확립하는 의례라는 점을 말씀 드렸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신앙의 방향성에 어긋나는 세태가 있었다는 뜻이고… 공의회가 끝나는 날 8개 세속 왕가에 대파문령이 시행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모든 왕가는 대관식에서 교황, 또는 그에 준하는 추기경들에 의해 직접 세례받곤 한다. 이는 세속 왕가들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행사다. 같은 신앙인들끼리는, 전쟁은 가능해도 정복은 불가능해진다.

         

         어떤 경우에도 왕가를 완전히 해체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승리해도, 국경을 넓히고 불평등한 조약을 강요하더라도. 왕가는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

         

         일종의 상부상조였다. 교황청은 군대 없이도 세속 왕가의 분쟁을 조율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고, 세속 왕가들은 문명 사회 내에서 거의 절대적인 영속성을 부여 받으니.

         

         따라서.

         

         

         “대파문령이 시행되었을 때, 이단으로 판명된 8개 왕가는 즉시 모든 인접국들의 침탈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항복과 협상 따윈 없었지요. 배교자들과 협정을 맺는 것은 그 자체로도 지옥에 떨어질 죄악이니까.”

         

         

         마음껏 뜯어먹어도 오히려 배교자를 대적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득뿐인 전쟁이다. 세속 왕가들은 어떤 거리낌 없이 이웃을 잡아먹고 살을 찌웠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 제 8차 공의회의 선언은 그때와 같은 피바람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공의회가 개최된 이상, 누군가는 반드시 이단 선언을 받게 될 테니까.

         

         

         “신성력이 사라진 사태로 개최된 것이 아닌가?”

         “당연히 그렇지만, 신성력이 사라진 원인을 누군가에게 돌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단의 죄악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신의 사랑을 잃었노라고. 참으로 타당한 의견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건 베올그린의….”

         “쉿, 형제님. 언제나 듣는 귀를 의식하셔야지요.”

         

         

         성녀는 이반을 가볍게 나무라며 성경을 덮었다. 기차는 깊은 밤의 산간 지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공의회의 의제는 매번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당대 교황 성하의 가르침으로 ‘올바른 신앙’을 키워 나갔죠. 이는 교황의 무류지권이라 불렀는데…. 집중 안 해요?”

         “교황을 암살하면 되나?”

         “엔리케 자매님이 매일 하는 소리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요. 과연 정신이 나갈 것만 같습니다.”

         

         

         성녀는 반쯤 졸고 있던 이반을 타박하며 말을 이었다.

         

         

         “무류지권. 즉 가르침에 오류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제란 곧 만백성의 스승이고, 교황은 곧 모든 사제들의 스승이니까…. 씁, 그래요. 결론만 말하자면 교황 성하께서 ‘쟤 이단’ 선언을 하면 그 나라가 망한다는 말입니다. 됐죠? 무작정 쓸 수 없는 권한이지만, 근거만 충분하다면 굉장히 막강한 권한이기도 하고요.”

         “그럼 굳이 우리가 갈 필요가 있나? 결과만 받으면 그만인 것을.”

         “제게도 무류지권이 있습니다. 형제님. 교황은 교리의 스승이고, 저는 신앙의 스승이거든요.”

         

         

         이 시점에서 이반은 굉장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기억하는 성녀의 모습은 대개 전장에서 마족을 불태우거나 불탄 사람을 되살리는 쪽이었지, 무슨 대단한 신앙을 포교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던 탓이다.

         

         그 시선에 성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신성력이 있던 시절, 제가 제일 강했어요.”

         “아하.”

         “그래요. 신성력의 크기가 곧 신앙의 크기라고 해석이 가능하던 시절이니까요. 그 때에 받은 주의 크나큰 사랑으로 제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요.”

         “그럼 지금은….”

         “예, 교리는 사라지지 않았으되, 신앙은 사라진 상황이니. 성녀라는 직위에 더 이상 무게감이 없다 할 수 있겠지요.”

         

         

         성녀의 말에 이반은 자세를 바로하며 물었다.

         

         

         

         “모든 신성력이 사라진 시점에서 그건 곧… 교회의 권위 자체에 타격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지요?”

         “그렇다면 세속 왕가에 이단 선언을 하더라도, 그 무게가 전과 같지 않을텐데.”

         “아아, 형제님이 이제야 교회의 정치에 대해 이해를 해주셨군요. 참으로 그렇습니다.”

         

         

         성녀는 짧게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저는 신성력을 잃어 평사제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되었고, 교황 성하께선 더 이상 이단 판정으로 대파문령을 과거처럼 사용하실 수 없게 되었으니. 자, 이제 교회의 무게추가 어디로 쏠릴 지 아시겠나요?”

         “아니.”

         “저도 모르겠습니다!”

         

         

         장난하는 건가? 이반이 성녀를 바라보자, 성녀는 베시시 웃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요. 누구에게 선을 대야 할지,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애초에 저들이 대립을 하고 있기는 한 건지. 대립하고 있다면,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왜 대립을 하고 있는 건지…. 교회는 전례 없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신성력이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네에, 그러니 교황 성하께선 권위가 건재함을 알리시어야 하지요. 교회 내부의 권위를 잡고 다시금 신앙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건, 교황이 권력지향적인 탓이 아니다. 교황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것은 곧 모든 사제들의 권위가 바닥에 뒹군다는 의미이며, 그건 곧 모든 세속 사회에 퍼져 있는 신앙인들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교회는 무력으로 군림하는 단체가 아니었으므로.

         

         

         “엔리케 자매님과 나누신 말씀을 전해 들었지요. 맞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교회 전체를 위해 선택하실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성녀를 파문하는 것이 되겠지.”

         

         

         자고로 어설프게 난동을 부리는 이들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사회 정의의 금도를 넘어서서 난동을 부리는 미치광이에게 섣불리 다가가는 이는 없는 법.

         

         교황이 성녀를 파문하고 교회 내부에 칼질을 시작한다면, 세속 왕가는 지금의 교황을 두려워할 것이다.

         

         신성력의 유무와는 상관 없다. 교리가 사라진 것이 아닌 이상. 신성력이 없다 한들 ‘믿는 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백성이므로.

         

         연합 왕국의 모든 국가들은 단일종교를 믿고 있다. 한 군주가 지배하는 백성보다 더 많은, 그 어떤 군주보다 많은 백성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교황에게, 그것도 분노에 눈이 뒤집어진 교황에게 누가 감히 섣불리 칼을 겨누겠는가.

         

         권위가 공포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공포가 곧 권위다. 신성력이 사라진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권력이다.

         

         

         “그럼 대체 왜 공의회에 참가하는 거지? 지금 가서 자리를 채워봐야, 이단으로 몰려 죽을 일만 남은 것이 아닌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누가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모를 상황’이라고. 그러니, 저는 제 ‘무류성’으로 교황 성하를 파문할 계획입니다. 혼란 속에서, 교회는 동력을 잃어버릴 겁니다.”

         

         

         마치 아침 메뉴를 고르는 듯한 평탄한 어조로, 성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미 준비는 끝내 놓았지요. 주께서 내리신 마지막 계시, 그래요. 형제님이 그리도 아끼시는 예브게니 노비코프 카람진, 그 학생을 예언자라 공표했습니다.”

         

         

         세상의 신앙인들에게 환멸을 느껴 사랑을 거두어간 주께서, 그럼에도 마지막 애정을 담아 내린 계시라.

         

         그것을 말하는 이가 성녀인 이상 그 파급력은 당연히 적지 않을 것이라서.

         

         

         “예언이란 이루어지기 전까진 음모론에 불과하지요.”

         “파트리시아.”

         

         

         이반은 저도 모르게 도끼를 쥐었다. 유진이 말한 예언은 모두… 용사 파티의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었으니.

         

         그의 예언이 이루어져야 돌아가는 계획이란 것은 곧, 전대 용사 파티가 하나 이상 죽어야만 입증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반의 눈을 바라보며, 성녀는 말을 맺었다.

         

         

         “가장 먼저 드로안이 무너질 겁니다.”

         

         

         그 어떤 신성력도 지니지 않았음에도, 그러나 여전히 성녀는 신을 대신하여 선고하듯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엔리케 자매님이 큰 곤경에 처해지겠지요.”

         “파트리시아. 제정신이냐?”

         “누구도 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혼란은 필요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연착륙.”

         

         

        -쿠구궁—.

         

         

         기차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반은 여전히 같은 자세에서 성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성력이 없는, 더 이상 사람의 앞날이 수많은 ‘신’들에 의해 놀아나지 않을 세상을 위해. 베올그린 형제님이 뜻하신 바가 이것이었지요. 동의합니다. 주께서 진정코 전능하신 분이시라면, 그리고 그 분이 진정코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면, 주께선 기꺼이 사람의 세상을 놓아주셔야 합니다.”

         

         

        -쿠구구구—!!

         

         

         기차의 진동이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반은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우거진 험준한 숲을 짧게 노려보았다.

         

         

         “그러니 발생할 혼란은 필연이라. 하지만 필연 또한, 예상하고 있다면 대비할 수도 있는 법이니. 형제님. 제 소명은 이제 하나랍니다. 세상에 더 큰 혼란과 분란이 생기기 전에, 가장 빠르고 단호하게 멈춰 세우는 것.”

         “교황을 이단으로 선포한다는 것이?”

         “예, 교황 성하께서 저를 이단으로 선포하시려는 것이 교회 내부의 연착륙을 위해서라면, 제가 하려는 일은 세상 전부의 연착륙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파티는….”

         “죽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존재는 지금도 마족들을 막아서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니. 형제님께서 가르치고 계신 저 귀여운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할 때까진, 우리들은 아직 살아 있어야만 합니다.”

         

         

        -끼이이이익—.

         

         열차가 차선을 넘어 탈선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이반은 망설임 없이 성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곧, 쿠웅. 충격과 함께 열차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성녀는 그 혼란 속에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예브게니 형제님의 그 ‘예언’이 틀린 것이 있더군요.”

         “…뭐지.”

         “교리 전쟁. 미래에 일어날 수많은 혼란 중 하나라고 꼽힌 그것이요. 그건 미래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녀는 이반의 뺨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베올그린 형제님의 계획이 성공한 순간부터, 이미 일어나고 있었던 일이지요.”

         “하나만 묻지.”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부디.”

         “아직도 우린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켜내며 나아가야 한다고 믿나?”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그리 믿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요.”

         

         

         이반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차 테러는 자작극인가 교황의 사주인가?”

         “성하께서 직접 사주한 것은 아니겠지만,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형제님께 동행을 부탁했고요.”

         “여기서 살아남아서 공의회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뜻이군.”

         “험난할겁니다. 이게 끝이 아닐 테니까.”

         “익숙하다.”

         

         

         이반은 열차가 넘어지는 충격을 최대한 분산하며, 성녀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

         

         

         차선을 탈선한 열차는 긴 궤적을 그리며 숲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근방을 감시하고 있던 사내가 짧게 턱짓했다.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들이 숲 속에서 하나 둘 나타났다.

         

         먹칠을 해 놓아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지 않는 날붙이들이 드러났다. 가장 앞에 선 사내가 짧게 말했다.

         

         

         “수급을 반드시 취해와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내들은 일제히 모로 넘어진 기차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철컥.

         

         

         한 사내가 기차의 창을 뜯어냈을 때.

         

         

        -타앙—!!

         

         

         총성과 함께 사내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베올그린 사후 시간 순으로 정리하자면.

    1) 교황 : 신성력이 사라진 시점, 성녀의 이단 판정을 위해 공의회를 소집.
    2) 성녀 : 같은 시점, 이단 판정을 예상하고 유진을 성자(예언자)로 추대. 공의회 참가 후 교황에게 이단 선고를 계획.
    3) 교황 : 성녀의 성자 추대(시성)을 인지하고, 공의회에 참석하려는 성녀의 계획을 간파. 성녀 암살 시도.
    4) 성녀 : 교황이 암살 시도를 할 것임을 예상하고 이반에게 동행을 요청

    5) 이자벨 : 이반과 동침을 계획.
    6) 엘피헤라 : 이자벨의 계획을 역이용할 계획 수립.
    7) 루시아 : 위와 같음.
    8) 에시디스 : 저녁 메뉴 고민중

    9) 이반 : 머리 아픔.

    으로 간추릴 수 있겠습니다!
    은유가 많은 파트라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지나가고 본격적인 에피소드에 풀어 갈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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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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