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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벨부르와 법국 사람들이 성 라티나 성당에 대해서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게 되었지만, 내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설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인제 와서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온 말로 확인한다고 해도 그 사실 자체가 내 생각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을 때도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그쪽으로 몰렸었다. 프랑스라는 곳이 유명한 나라이기도 했고, 노트르담 성당 자체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인데다 안에 문화재가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도, 전 세계적인 보도망도 없는 이 세상에서 루테티아의 성 라티나 대성당이 붕괴했다는 소식은 내가 살던 세상보다는 늦게 퍼지겠지만, 결국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갈 거다. 특히 여신교의 입김이 강한 나라를 중심으로.

        

       그리고 그 성당을 부순 주체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 벨부르와 법국 모두 나를 적으로 돌리겠지.

        

       샤를로트도.

        

       루테티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시간은 돌리면 되는 일이고, 최악의 경우 시간을 못 돌리게 되더라도 그냥 나 혼자 뒤집어쓰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게 된 이상, 그 뒤에는 뭔가 신적인 존재의 의도가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의 의미도 그 존재와 연결될 테니까. 마지막에는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안내하면서 진심으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샤를로트를 보고 있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 일말의 망설임이 고개를 들었다.

        

       “루테티아의 치안이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한밤중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는 게 안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말이죠.”

        

       샤를로트의 목소리였다.

        

       “그건 샤를로트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게는 호위가 있으니까요. 굳이 모든 호위를 따돌리고, 다른 친구 없이 혼자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들을 소리는 아니잖아요?”

        

       나는 눈을 굴려서 샤를로트 주변을 보았다. 샤를로트의 바로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확실히 건물 코너라던가, 몇몇 건물의 2층 테라스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긴, 주인의 산책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하면 안 될 일이니까.

        

       나는 호텔에서 앨리스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지만, 아무리 자매라고 해도 함께 샤워실에 들어가서 몸을 씻는 일은 없다. 론다리움에도 대중목욕탕은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용물이 ‘남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보니 여탕에 들어가는 것이 조금……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방을 비우기 좋은 시간은 앨리스가 씻으러 들어갔을 때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으니 앨리스가 눈치챘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앨리스가 당신을 찾더라고요. 머리카락의 물기도 제대로 말리지 않고 호텔 안을 돌아다니면서.”

        

       “…….”

        

       어…… 그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만큼 불안했다는 걸까?

        

       “많이 불안해 보였습니까?”

        

       “글쎄요.”

        

       내 질문에 샤를로트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태도는 당당했죠. 평소의 앨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당신을 찾으러 돌아다니면서도 불안함을 표정 밖으로 내비치지는 않았으니까.”

        

       샤를로트는 어깨를 살짝 움츠려 보이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불안한 감정은 목소리나 표정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죠. 특히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가리라고 교육받은 황족이나 왕족이라면 더. 그런 의미에서 앨리스는 그 감정을 완전히 숨기는 데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려면 적어도 몸단장은 제대로 해야 하는 법인데.”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까?”

        

       “일단은 그렇죠.”

        

       “일단은?”

        

       “사실은 당신이 가진 생각을 단둘이 나눠보고 싶었으니까.”

        

       “…….”

        

       나는 말없이 샤를로트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은 제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감정을 잘 숨기는 사람 중 하나예요. 가끔 보이는 감정은 남들에게 보여도 상관없는 종류의 것들이고, 정작 중요한 순간이 되면 얼굴에서 감정 자체를 빼버리고 행동하죠.”

        

       샤를로트는 내 쪽으로 두 걸음 정도 다가왔다. 골목길 바깥에서 비치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샤를로트 앞으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하지만, 상류사회에서는 단순히 무감정을 연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죠. 진짜 필요한 순간에는 웃기 싫어도 웃고, 울기 싫어도 울고, 별로 화낼 일이 아니라도 진심으로 화낼 줄도 알아야 해요. 그 모든 행위를 몸 깊은 곳까지 새기는 것이, 진짜 귀족이고 진짜 왕족이죠. 그런 의미에서는, 사실 당신의 그 행동은……”

        

       샤를로트는 잠깐 말을 고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금, 의미심장해 보여요. 항상 무표정이니 그만큼 의심받을 기회도 많다는 말이니까요. ‘포커페이스’라고도 하잖아요? 언제나 포커하는 것 같은 무표정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언제나 무언가에 판돈을 걸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샤를로트는 한 걸음 더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래도 아직 조금 멀리 떨어진 거리이긴 했다. 여기서 내가 마구 뛰면 샤를로트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까?

        

       하긴, 여기서는 굳이 도망갈 필요도 없다.

        

       “제가 수상해 보인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단은 대화를 이어가자고 판단한 내가 물어보자, 샤를로트는 웃었다.

        

       억지로 웃거나, 다른 감정을 섞거나, 뭐 딱히 연기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으니 어쩌면 진심이었을지 모르겠다. 바로 조금 전에 ‘귀족이나 왕족은 다른 감정을 연기해야 한다’라고 했으니 마냥 믿기는 조금 그렇지만.

        

       하지만…… 샤를로트가 저렇게 소리 내서 웃는 것을 내가 본 적이 있던가?

        

       “바로 조금 전까지 그렇게 말했잖아요. 솔직히, 그 나이에 그런 전적을 가지고서도 언제나 무표정을 유지하는 사람을 두고 아무런 의심도, 경계도 하지 말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죠.”

        

       “…….”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샤를로트를 가만히 바라보자, 샤를로트는 살짝 눈을 돌려서 내 시선을 피했다.

        

       음.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의심받고 있었다는 말인가.

        

       하긴 생각해보면 이상하지도 않다. 다른 애들이야 아무리 강해도 어른들만큼 강하지는 않다. 기사단이 달려들면 무력화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나는…… 내가 느끼는 ‘나의 능력’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능력’은 다르다. 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수를 하고, 그 실수 하나하나를 수정하여 최고의 결괏값만을 뽑아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언제나 한 번에 최고의 결과만을 뽑아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총 한 발 맞지 않고 수백 명을 상대하고, 단신으로 전선을 붕괴시키고. 처음 들어가는 미로 같은 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만 바로 찾아내고.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존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면, 나라도 의심하고 경계할 거다.

        

       하지만 내 앞에서 샤를로트가 보인 행동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샤를로트는 우리 주변을 알게 모르게 감싸고 있는 경호원들에게 눈짓했다. 경호원들은 처음에는 몸을 움찔거리며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샤를로트가 가만히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자, 결국 자리를 비웠다.

        

       그래도 근처에 있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우리의 말소리는 듣지 못하겠지.

        

       경호원들을 물린 샤를로트는 내 쪽으로 다시 몇 걸음 다가왔다. 역시 딱 붙어있다고 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을 뻗으면 상대의 어깨를 툭툭 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는 했다.

        

       이쯤 되니 샤를로트의 표정이 아까보다도 훨씬 잘 보였다.

        

       샤를로트는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말을 고르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샤를로트는, 조금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사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말을 골랐다. 샤를로트의 이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러십니까.”

        

       그래서 내가 꺼낼 수 있었던 말은 그런 별것 아닌 말뿐이었다.

        

       “아카데미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당신을 경계했어요. 처음 당신들에게 곧장 말을 걸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고, 루테티아에 온 앨리스에게 독대를 신청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하고 샤를로트는 덧붙였다.

        

       “……당신들은 저를 그저 친구로 대해주셨죠. 그건,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어요. 서로 바라는 것 없이 그냥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거. 저는 국왕 폐하의 유일한 딸이고, 자매도 없었으니까요. 저한테 말을 거는 귀족들은 모두 저를 왕족으로서 대했죠. 그러니, 네,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 이상하지만, 저는 저와 동등한 위치에서 당당하게 말을 걸어줄 사람을 처음 만난 셈이니까요.”

        

       샤를로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앨리스와 당신뿐만이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만난 아이들 모두. 그저 마음을 놓고 평범하게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이제야 알았으니까.”

        

       어…….

        

       아니, 잠깐만.

        

       “앞으로도, 당신과 계속 친구로 지내고 싶어요. 그럴 수 있도록, 부탁할 수 있을까요?”

        

       아.

        

       이건 반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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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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