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9

    “휴우…….”

     

    ‘공부’를 마치고 나온 루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바로 한숨을 쉬었다.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바닥, 그리고 흩뿌려진 과자 부스러기.

    오늘도 루크는 파이리스를 부른다.

     

    “파이리스!”

     

    그러자 한편에서 과자를 집어먹으며 돌아다니던 파이리스는 냅다 도망쳤다.

    루크의 목소리에 섞인 약간의 분노를 읽은 탓이리라.

     

    원래 목소리에 약간의 노기를 담아 외치는 것은 파이리스를 부를 때 꽤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녀석도 혼나기 싫은 감정이 커지고 있는 것인지, 혼날 것 같으면 그대로 도망치는 것은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다.

     

    “파이리스! 대체 왜 정리가 안 되는가? 내가 누누히 말하지 않았느냐! 물건은 다 제자리에 두라고!”

     

    아무리 혼내도 파이리스에게는 제자리에 정리하는 습관이 생기질 않았다.

    결국 왜 혼나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파이리스는 되물었다.

     

    “제자리에 뒀어! 거기가 걔네들 자리야.”

    “몇번을 말하나, 제자리는 원래 있던 자리라고!”

    “응……. 원래 있던 자리 맞는데?”

    “그러니까, ‘원래’라는 건 태초의 상태에 있던 자리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미치겠군, 정말로.”

     

    파이리스는 고대정령으로서, 인간의 정신과 심리와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공간과 시간개념을 갖고 있었다.

    파이리스에게 ‘제자리’, ‘원래 있던 장소’를 물으면 어차피 온 세계를 이루는 물질인 마나가 그 어떤 물질로든 제작되어 수많은 시간에 걸쳐 어디든 존재했을 것이니, 어디에 두든 결국 그 자리가 ‘원래 존재했던’자리가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령들에겐 모든 사물이 제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정 시간에 대한 개념을 박아넣고 싶어도 도저히 쉽지 않다.

     

    파이리스는 아직도 시간의 개념을 파악했다기 보다는 간신히 시계를 읽고 시간을 숫자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라, 정확히 1시간 전이라는 개념을 여전히 모른다.

    그나마 어제와 오늘, 아침이나 점심 같은 대략적이고 포괄적인 범위적인 시간은 파악하고 있으나, 정확하게 꼬집어 어떤 한 순간을 물으면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루크는 이제 파이리스가 제자리에 정리를 할 거라는 희망을 버리곤 다른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과자라도 제자리에 앉아서 먹으란 말이다. 네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가 발에 다 묻잖느냐!”

     

    루크는 파이리스에게 보란 듯이 발을 살짝 들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것이 밟혀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안 그래도 연구가 좀체 진척되지 않아 살짝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인데, 과자 부스러기가 그 감정에 기름을 붓고 있다.

     

    하지만 파이리스는 자신의 말에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바닥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과자 부스러기는 그대가 치우거라. 나라고해서 항상 청소가 좋아서 하는 줄 아느냐? 어이, 파이리스. 듣고 있는 게냐?”

    “응!”

     

    우렁차게 대답한 파이리스는 곧바로 루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 으앗!?”

     

    그러자 발에 붙은 과자 부스러기를 향해 불평을 토하며 한 발로 서있던 루크는 힘 없이 파이리스에게 밀려 넘어졌다.

    다행히 뒤에는 소파가 있었기에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꼬리를 딱딱한 바닥에 깔아뭉개 버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소파라고 완전히 충격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꼬리뼈를 타고 올라오는 묵직한 통증에 루크는 소리를 질렀다.

     

    “지, 지금 무얼 하는 겐가!”

    “언니 발에 과자, 치울게.”

    “뭐, 뭐라고?”

     

    파이리스는 이내 루크의 발을 들었다.

    혹시 부스러기를 치우기 위해서일까?

    하지만 루크는 발의 신경을 간지럽히는 감촉에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바로, 파이리스가 자신의 발바닥을 핥기 시작한 것이다.

     

    소파에 쓰러트리고 양손으로 자신의 발목을 하나씩 쥐어서.

     

    그 의도는 정말이지 단순했다.

     

    발바닥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핥아먹겠다는 의도였을 뿐이다.

    마치 과자를 다 먹고 난 뒤 손가락을 빨아먹는 것 처럼.

     

     

    뭐라도 말하려 했지만 파이리스의 혓바닥은 상상 이상으로 간지러웠다.

    이미 꼬리에서 올라온 충격과 더해져 순식간에 루크의 머리를 때린다.

    루크는 간지러움 때문에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가까스로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흐읏, 핫! 하! 간지럽, 잖느냐……! 제발 그만 두거라!”

     

    하지만 파이리스는 멈추지 않았다.

    루크의 목소리에서 아주 약하지만 ‘기쁨’이 섞여있다고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분명히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는가?

     

    웃음소리는 보통 행복하면 나는 것이고, 행복해지면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파이리스는 발을 핥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루크는 외친다.

     

    “그만, 그만! 거긴 더러운 곳이니까 그만 핥으란 말이다!”

    “더럽지 않아, 언니의 것인걸.”

    “그건 무슨……!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게야!”

     

    잘은 몰라도, 뭔가 해서는 안되는 말 같은 느낌이다.

    루크는 힘껏 발버둥쳐 보았지만 몸에 완전히 적응한 파이리스의 힘은 이제 서클이 안정화되었을 뿐으로, 마력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자신이 뿌리칠 수 없었다.

    때문에 루크의 발은 파이리스가 만족할 때 까지 핥아지고 말았다.

     

    ——–

     

    결국 발이 파이리스의 침 범벅이 되고 나서야 겨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루크는 다시 과자를 먹기 시작한 파이리스를 보며 생각했다.

    이러니 요즘 파이리스를 향해 훈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런 비 상식적인 짓을 아무런 생각 없이 저지르고 있으니, 어찌 훈계를 하지 않겠는가?

    과거에는 자신이 분명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몇 마디만 하면 별 탈 없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주던 파이였는데, 요즘은 머리가 커서 그런지 한마디로 말을 끝낼 수가 없다.

     

    “파이리스, 더러운 걸 핥았으니 당장 이를 닦아라.”

    “시-러. 이 닦으면 과자 못 먹잖아. 다 먹고 닦을래.”

    “그대는 뭘 안 먹는 시간이 거의 없잖나!”

    “그럼 안 닦을래-.”

     

    그러면서 보란듯이 과자를 입에 집어넣는 파이리스.

    그 모습을 보니 살짝 열이 받는 루크였다.

    꿀밤이라도 놓아주고 싶었지만, 그게 별다른 체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루크는 그저 감정을 속으로 삭힐 뿐이다.

     

    이런 순간이 되면 자신이 좀 더 감정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이 느껴지긴 하다.

     

    ‘감정……. 이것이 정말로 긍정적인 변화가 맞는 것인지…….’

     

    감정은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반대로 기분 나쁜 것을 더 기분 나쁘게 느껴지도록 한다는 부정적인 면도 겸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양날의 검과 같다.

     

    그렇다보니 위험부담을 조금이라도 제거하는 것을 선호하는 마법사들 중에는 감정을 죽이는 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미 심장을 쥐고 있는 서클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서도.

     

    “자꾸 그렇게 이를 안 닦으면 이가 썩는다.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어.”

    “나중은 몰라-!”

    “이를 제대로 닦지 않으면 맛있는 걸 더는 못 먹게 될 지도 모르는데?”

    “음-. 맛있는 거 이미 먹고 있는 걸-.”

     

    파이리스는 루크의 충고에도 아랑곳 않고 이닦기를 거부하며 과자를 집어먹는다.

     

    역시 지금의 파이리스는 ‘나중에’가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저러다가 이가 썩어서 아픔이 느껴지면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테지.

    치통은 정령에게도 꽤 새롭고 신선한 감각일 것이다.

     

    이 시대의 치과를 한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하지만 녀석이 순순히 치과 진료를 받으려 할까?

     

    ‘글쎄, 그건 아닐 것 같군.’

     

    정령화로 도망이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결국 파이리스에게 현재 자신의 몸은 그저 물질계에서 놀기 위한 일종의 장난감이나 다름이 없으니, 미래의 삶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것 따위에는 별로 감흥이 없는 것이다.

    결국 못 쓰게 되면 이차원 속에 버려버리고 불러내지 않으면 그만.

    마치 못 입는 옷을 옷장 속에 처박아두는 것 처럼 말이다.

     

    하필이면 그 모습이 자신과 닮은 형태라서인지, 여러가지로 정이 들었다는 것이 문제지만.

     

    루크가 파이리스를 설득하기 위해 새로운 말을 내뱉으려던 순간, 뒤에서 예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 또 파이리스랑 싸우니?”

    “아, 언니. 이건 싸우는 게 아니라, 훈계를 하고 있었던 거에요. 얘가 이를 닦으려고 하질 않아서…….”

    “으흠, 그래?”

     

    예르나는 루크의 한 손에 쥐어있는 칫솔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리스가 이를 요새 잘 안 닦기는 하지, 상당히 깔끔한 걸 좋아하는 루크는 그런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할 거고.

    게다가 항상 모든 걸 들쑤시고 다니며 뛰어다니길 좋아하는 파이리스와, 별로 뛰어다니는 걸 선호하지 않으며 조금은 얌전하게 호기심을 발산하는 루크는 성격도 거의 정반대였다.

    그래서 평소에도 여러가지를 핑계로 자주 다투곤 했다.

    주로 루크가 파이리스를 향해 잔소리를 하는 형태이긴 하지만.

     

    그런데 예전엔 그럭저럭 말로 잘 타이르고 넘어가던 일도 요새는 종종 화를 내곤 하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그것이 ‘사춘기’때문이었다니.

     

    “루, 혹시 있잖아…….”

    “네?”

     

    예르나는 루크에게 묻기 전, 다이튼이 한 말을 떠올려보았다.

     

    ‘사춘기인 애들한테는 혹시 사춘기니?라고 바로 물어보면 안된다고 했었지…….’

     

    애초에 사춘기인 아이들은 자신이 사춘기인 줄은 모를 것이고,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의 행동을 단순한 말 몇마디로 무시해버리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예르나는 조금 우회적으로 물었다.

     

    “혹시 요즘 들어 많이 감정이 예민해지고, 그러니?”

    “네? 아……. 그건…….”

     

    루크는 순간 굳어버렸다.

    예르나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에 신경을 쓸 정도까지 자신이 감정을 받아들인 것인가 해서.

    분명 이상함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 까지만 바랬는데, 지금은 도를 지나치고 만 모양이다.

    감정이란 이토록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 이상으로는 감정을 받아들여선 안 될 것 같았다.

    마법사로서는 지금도 충분히 감정적이니까.

    때문에 루크는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음, 그렇구나.”

     

    루크는 순순히 자신이 사춘기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 루크에게도 제안을 하는 것이 좋겠지.

     

    “루, 혹시 너도 이제 자신만의 방이 있으면 좋겠어?”

    “네?”

     

    루크는 생각했다.

    자신만의 방이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그런 걸 마다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만약 자신에게 방이 생긴다면 일단 여러가지 행동에 관해 자유도가 생긴다.

    예를 들어 그동안 예르나 몰래 화장실에서 하던 마법 연구는 방에서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각종 재료 둘 때도 용이할 것이고, 영약을 제조하고 숙성시킬 때도 분명히 큰 도움이 되겠지.

    어째서 갑자기 방에 대해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크는 바로 대답했다.

     

    “그야 당연하죠!”

    “역시 그렇지?”

     

    예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물으시는 거죠? 이 집에는 따로 방이 없잖아요?”

    “아, 그거 말인데. 음……. 이사를 가는 게 어떨까, 해서.”

    “이사요?”

    “그래, 이사.”

     

    이사라, 그건 나쁘지 않다.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 이 집은 다른 아이들의 집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질이 좋다고 볼 수는 없는 곳이었다.

    자신이 비교하는 대상이 재벌가 아이들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그렇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예르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언니한테 이사를 갈만한 돈이 있었나요?”

    “음, 그거 말인데…….”

     

    예르나는 오늘 데이트에서 다이튼과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대출을 받아야지.”

     

    하지만 알아본 집값이 당연히 싼 것은 아니다보니, 자신만 대출을 해서 이사를 하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다이튼과 함께 대출을 받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서류상으로 ‘부부’가 되면 일단 자산과 수입이 두배가 되는 것이니까 빌릴 수 있는 한도가 그만큼 늘어나서 집을 새로 구할 수 있는 정도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말인데……. 루크, 이름은 어떻게 할래? 성으로는 리스핀드가 좋아, 아니면 게네퍼가 좋아?”

     

    “뭐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주 격정적인 편이었네요!!

    근데 저 삽화에 뜬금없이 발을 너무 열심히 그려버림…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