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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재주꾼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사람 중에 극작가 크리스티앙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그가 업계에서 가지는 위상은 컸다.

         

       그러나 그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만큼 그는 수수께끼의 존재였다.

       대외적으로 드러난 건 크리스티앙이라는 필명 하나뿐, 생김새는 물론 성별이나 나이 등 알려진 것이 없었다.

         

       애초에 크리스티앙이라는 것도 세상이 제멋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30여 년 전, 당시 마차 회사들은 마차 여행자들을 위해 간단한 정비 지식과 지도를 실은 소책자를 배부하고 있었다.

         

       그중 ‘크리스티앙’이라는, 지금은 망하고 없는 마차 회사는 소책자에 각지의 볼거리를 소개하는 코너를 실었는데, 거기서 활동한 익명의 평론가가 바로 현재 크리스티앙이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산업 혁명 이후로 대중 예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귀족 예술의 위치가 위태로워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재주꾼들의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상류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마술사와 하류층을 관객으로 둔 곡예사들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마술사들은 곡예사들을 저잣거리에서 싸구려 재주나 펼치던 자들이라 우습게 여겼고, 곡예사들은 마술사들을 없는 실력을 고급스럽게 포장해 귀족들의 비위나 맞추는 자들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의 공연에 대해 근거도 없는 폄하가 만연하던 시절에 크리스티앙이 나타났다.

       그는 두 집단의 공연을 같은 관점에서 바라봤다.

         

       지금까지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작정 중도적인 기준만 내세워서 양 진영으로부터 빈축만 사고 끝났다.

         

       그런데 크리스티앙의 평론은 그것들과 그 궤를 달리했다.

         

       그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가 공연에 미치는 영향과 그 과정에서 무엇이 더해지고 버려지는지 그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이 본 공연이 어떠한 뿌리에서 시작해 어떠한 가지를 통해 뻗어 나와 어떤 꽃을 피웠는지를 기술하고, 그리고 거기서 발아한 씨가 개척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의 글은 정확하고 날카로우면서 공연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었다. 혹평받은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의 글에는 탄복할 정도였다.

         

       그의 평론이 명성을 떨친 덕에, 마차 회사에서 공짜라 끼워주는 안내 책자에 불과했던 그것은 회사가 망하고도 독립적인 공연 비평 잡지로 발전했는데, 그 이름만은 바뀌지 않고 남아 오늘날의 <크리스티앙 가이드>가 된 것이다.

         

       크리스티앙 가이드가 일개 잡지 주제에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별을 부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크리스티앙이 가지는 명성의 힘이 일부 작용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명성을 얻은 평론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극본을 써내기까지 했다.

       그는 매년 하나씩 극본을 세상에 내놓았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총 12개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 그가 쓰고 미처 발표하지 못한 13번째 극본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재 슬라그보르트 공작의 응접실에 모인 곡예사들 앞에 놓인 것이 바로 그 소문만 무성하던 ‘환상의 13번’이었다.

       거기 모인 사람 모두가 그 종이 뭉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로드 판타스틱은 초청받은 사람 중에 그 소식을 미리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황금 카니발은 공작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었고, 그는 공작 쪽 사람을 통해 어젯밤에 미리 언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극본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재빨리 할 말을 정리해 공작 앞에 나섰다.

         

       “저희를 부르신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크리스티앙의 원작이라면 곡예사가 소화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티앙의 작품들은 세상에 공개되고 나서 무수히 많은 판본으로 각색되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도 안 됐다는 걸 생각하면 각색된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인기 있는 작품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긴 했지만, 문제는 정작 그의 원작이 상연된 횟수는 각색판에 비해 매우 적었다.

         

       이는 크리스티앙의 원작이 내포한 어려움 때문이었다.

       그의 원작은 배우에게 연기와 노래뿐만 아니라 곡예 역시 요구했다.

         

       예를 들어, <울펜슈타인 백작>에서 하녀가 흑마법사의 실에 묶여 조종당하는 연기를 하는 장면이라든가 <과자 굽는 왕녀님>에서 스승 제과사와 제자 왕녀님 간의 갓 구운 과자 저글링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즉, 크리스티앙은 배우에게 연기자, 가수, 곡예사로서의 기량을 모두 요구했다.

       당연히 그걸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곡예를 펼치는 장면을 배우가 따라 하기 쉽도록 바꾸거나 아예 삭제해버린 각색판이 범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현재 크리스티앙의 작품을 원작자의 지도도 없이 대본만 가지고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 4곳밖에 없을 겁니다. 풍부한 인재의 풀 덕에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모으기 쉬운 바퀴의 서커스. 연기, 노래, 곡예 모든 것을 일류 수준으로 익힌 레카체프 25, 6대 극장 중 하나인 ‘크리스티앙 기념관’. 그리고 ‘제가 이끄는’ 황금 카니발.”

         

       로드 판타스틱은 자신이 단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지닌 인스피라들을 활용한다면 단원들을 모두 레카체프 25 이상의 기량을 발휘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곳에 모인 다른 곡예사들을 바라보며 콧수염을 씰룩거렸다.

         

       “저희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굳이 수준 미달인 자들을 끼울 필요가 있을까요? 특히, 저 둘은 심하게 떨어지는데요.”

       “뭐라고?”

       “웃기고 있네!”

         

       미노바와 엘라가 동시에 소리를 빽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차력사이자 가수라는 걸 까먹었나? 나도 10대 시절에 크리스티앙 원작을 연기한 적 있어!”

       “우리가 뭐가 부족하다는 거야?”

         

       로드 판타스틱은 두 사람을 향해 온갖 경멸의 표정을 던지며 짧게 혀를 찼다.

         

       “실력의 문제가 아닐세.”

         

       그는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고 공작을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각하, 환상의 13번의 초연 공연자는 분명 업계에 이름을 남길 겁니다. 몇 달은 화젯거리가 되겠죠. 하지만 분명 질투하는 자들도 나올 겁니다. 그들은 공작님이 감상하신 초연의 가치를 깎아내리려 들 겁니다. 감히 크리스티앙의 작품을 비판할 수 없을 테니, 그것을 연기한 자들에게 그 화살이 돌아가겠죠. 저 두 서커스단이 집중적인 대상이 될 겁니다. 과거에 뒷골목 깡패였다든가, 끔찍한 괴물들을 부리는 노예 상인이라든가. 그렇게 크리스티앙의 이름이 더럽혀지면 그를 사랑하시는 공작님께서도 심기가 상하지 않겠습니까?”

         

       공작은 그의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크리스티앙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찔러 들어오다니 괜찮은 공격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비서를 불렀다.

         

       “환상의 13번의 복사본을 배부해주게.”

         

       비서가 공작 앞에 놓인 것과 같은 종이 뭉치 10개를 들고 와 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곡예사들은 그것을 받자마자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로드 판타스틱도 공작을 설득하려던 것을 잊고 대본을 읽는 데 빠져들었다. 오직 마야만이 조금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것을 읽었다.

         

       크리스티앙이 쓴 13번째 극본의 이름은 <다섯 곡예사>였다.

       그 줄거리는 이랬다.

         

       수도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상경한 시골 영주의 딸이 당시 피바람이 몰아치던 궁정에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던 왕실극단의 광대를 얼떨결에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제목이 왜 ‘다섯 곡예사’냐고 하면, 그녀와 엮이는 다섯 명의 10대 곡예사들이 이야기의 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사는 왕위계승권자.

       적국의 의뢰를 받고 궁정에 잠입한 암살자.

       귀족이나 왕족과 끈을 만들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야심가.

       스승이 대신들을 가지고 농담하다가 목이 잘린 뒤로 무대에 서는 일을 겁내는 제자.

       빈민가의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 되는 일은 뭐든지 하는 어린 가장.

         

       개성적인 여섯 캐릭터가 엮어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흥미진진했다.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것이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를 세운 여섯 명에서 가져온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극본을 원작 그대로 연기하기 위해서는 ‘다섯 곡예사’를 맡아줄 줄타기, 땅재주, 길들이기, 힘자랑, 쏴의 기술을 익힌 다섯 명의 10대 곡예사가 필요했다.

         

       그제야 그들 다섯 명은 자신들이 왜 초대받았는지 깨달았다.

         

       줄타기의 레이나.

       땅재주의 카렌.

       힘자랑의 루엘로.

       쏴의 마야.

       길들이기의 엘라.

         

       그들이 이번 극의 주역이었다.

         

       로드 판타스틱은 미노바의 딸이 어째서 힘자랑에 들어가는지 따지자 그녀가 직접 나서서 그의 금속 지팡이를 엿가락처럼 휘어버렸다가 잡아당겨서 펴 보였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순간적으로 들썩였다는 걸 눈치챘다.

         

       “다른 도시에서 그녀가 보인 활약을 듣고 초대한 걸세.”

         

       지몬은 어안이 벙벙해져 자신의 금속 지팡이가 접혔던 부분을 살폈다.

         

       “5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빠졌지 않습니까?”

         

       원더스타인의 지적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주인공의 역할이 가장 까다롭지. 그녀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영주의 딸이지만, 다섯 곡예사로부터 기술을 배워가면서 성장하네. 즉, 다섯 가지 분야에 골고루 능한 사람이어야 그 ‘나아지는 연기’를 할 수 있지.”

         

       엘라와 레이나가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여기 모인 10대 중에 그런 사람은 둘밖에 없었다.

         

       공작은 비록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을 짐작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맡아주면 좋겠네. 내가 보기에 그게 더 잘 어울려. 주인공은 내가 따로 불렀네. 다섯 분야에 모두 뛰어난 적임자지.”

         

       응접실의 한쪽 문이 열리면서 레카체프의 교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학교에서 부른다고 아침만 먹고 급히 나갔던 그녀가 여기에 있다니.

         

       “클라라 양.”

       “엇, 단장님! 단장님이 여기 웬일이세요?”

         

       그녀는 그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제 혼절했던 터라 그들이 공작의 초대장을 받았다는 것을 미처 듣지 못했다.

         

       잠시 소동이 있었다.

       설마 레카체프의 수석이었던 클라라가 원더스타인 서커스에 들어갔으리라고는 다들 상상 못 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곡예사로 입단한 것이 아니니 그들이 모를 만했다.

         

       “끙. 우리 딸에게 시비 걸던 애가 ‘그 클라라’였다고?”

         

       미노바는 복잡한 표정으로 자기보다 10살은 넘게 어린애한테 이를 갈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수석은커녕 그냥 평범한 18살짜리라고 해도 어딘가가 모자라 보였다.

         

       “이익, 너는 그때 그 이중인격 계집애!”

       “죄, 죄송했어요, 언니…….”

         

       그렇게 자리는 아르노가 환상 담당으로 왔다고 소개받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이번 연극에는 소품도, 배경도, 의상도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유일한 관객인 공작은 눈이 보이지 않았다. 환상은 오롯이 연기자들의 몰입을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굳이 그들 정도나 되는 곡예사를 부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공작은 그것까지 양보하기는 싫었다. 크리스티앙의 초연을 실력도 없는 자들에게 시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인 일이었다.

         

       그는 어차피 공연을 제대로 즐기기 힘든 처지였다.

       그렇기에 ‘다섯 곡예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미래의 유망주들을 추린 것으로 그는 만족했다.

         

       “그럼 잘 부탁하네, 곡예사 제군들. 필요한 건 뭐든 비서에게 요청하게.”

         

       공작은 정말 기대된다는 미소를 지으며 비서의 부축을 받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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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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