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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아르야…!”

       

       레키온의 표정에 안도감이 깃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르는 멀쩡히 내 품에 안겨 있었고.

       

       “네놈…. 아르를 죽이려 했겠다!”

       

       비열한 수법으로 아르의 심장을 찌르려 했던 지부장에 대한 레키온의 분노는 신성력으로 승화되어 폭발했다.

       

       쿠와아아아—

       

       응축되어 터져 나온 신성력의 압력에 지부장의 분신들이 주춤했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은 레키온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파앗!

       

       레키온이 땅을 박차는 동시에 신형身形이 일순 사라지는 듯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지부장의 앞에 나타났다. 

       

       “……!”

       

       파챙!

       

       지부장이 황급히 검을 들어올려 막았지만, 아르가 죽을 뻔해 눈이 돌아간 레키온의 압축된 신성력은 그 검을 단번에 두 동강 냈다.

       그리고.

       

       푸욱!

       

       레키온의 검이 그대로 지부장의 심장을 관통했다. 

       

       지부장이 아르와 나를 찌를 때의 자세와 같은 동작, 그리고 같은 위치였다. 

       

       “쿨럭.”

       

       지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레키온, 그리고 나와 아르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언제부터 분신이었냐고? 아까 네가 분신술 쓰고 흙먼지 휘날릴 때부터였다.”

       

       지부장이 처음 나타났을 때, 마기가 방출되며 풍압이 주변을 휩쓸고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졌었다. 

       

       “넌 시야가 가려진 그 틈을 타서 분신을 십수 개 만들고, 그사이에 완전히 몸을 숨겼지.”

       “…그걸 간파했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건 영업비밀이라.”

       

       영업비밀일 수밖에 없다. 

       이걸 알아차린 건, 「레키온 사가」에서 중간 보스, 즉 지부장들의 패턴 중에 분신 패턴이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무트교 지부장이 이 패턴을 쓸 줄은 몰랐지만.’

       

       원작에서는 바할라크의 추종자들에게서 봤던 패턴이었다. 

       

       ‘아무래도 섬기는 마왕에 따라 달라진다기보다는 그냥 지부장 본인 성향에 따라 마기를 어떻게 발현시키는지가 결정되는 모양이야.’

       

       마법사들이 쓰는 다양한 마법도 결국 똑같은 마나를 가지고 쓰는 것이듯, 마기 자체는 어떤 마왕이 줬든 간에 똑같은 악惡의 기운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나는 놈이 마기를 폭발시키며 폭풍을 일으켰을 때 내가 봤던 익숙한 패턴 중 하나임을 깨달았고.

       

       몰아치는 먼지 폭풍 속에서 아르에게 거의 진짜에 가까운 환영 마법을 쓰게 하는 동시에 나와 아르의 본체는 내 은신 마법으로 꼼꼼하게 숨겼다. 

       

       ‘내 은신 마법이 알렉스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이렇게 난전이 펼쳐지고 있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들키지 않을 정도는 되거든.’

       

       특히 상대가 자신의 은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주변 대기 중에 흐르고 있는 마나의 흐름, 그리고 마기를 뒤섞어 흩뿌려 놓았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그 속에 같이 숨어서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이지.’

       

       게다가 우리는 환영 마법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꽤나 정교한 페이크를 넣었었다. 

       

       바로 내 분신이 마법 영창을 외칠 때마다 아르가 진짜로 그 마법을 구현해서 환영의 손 앞에서 나가도록 연출한 것.

       

       ‘심지어 원래는 내가 외칠 땐 내가 화염 마법을 쓰고, 아르가 외칠 때만 아르가 다른 속성 마법을 써 왔었는데, 이번엔 아르가 전부 다 맡아서 마법을 써 버렸지.’

       

       은신을 한 상태에서 내 분신 쪽으로 젤리를 뻗은 채, 정신을 집중해 무영창으로 마법을 난사하는 아르의 마법 실력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환영 마법을 유지하면서, 환영이 외치는 대로 여러 속성의 마법을 연속해서 번갈아 무영창으로 발현하다니.

       

       이건 제국 최고의 대마법사가 와도 힘든 기예일 거다. 

       

       특히나 따로 연습한 것도 아니고 단시간에 내가 주문하는 대로 바로 바로 수행하는 걸 보면, 진짜 드래곤은 드래곤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역시 우리 아르야!’

       

       우리 뚠뚠말랑야무진 아르.

       

       “쿨럭…. 그럼 아까 했던 말도 설마 페이크였던 건가.”

       “바로 그거지. 내가 완벽하게 속은 척을 해야 네가 모습을 빨리 드러낼 테니까.”

       

       -본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건가…?

       -정답이다. 용을 깨울 자.

       

       나는—정확히는 내 분신은— 우리 동료들을 향해 지부장의 본체를 찾아야 한다고 외침으로써 우리가 속아 넘어갔다고 지부장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마지막에는 아예 헛다리를 짚은 것처럼 연기를 했다.

       

       사람이 뭔가를 깨닫고 생각이 복잡해지는 그 순간을 노리고 드디어 튀어나온 지부장은 모아 두었던 힘을 일시에 쏟아부어 배리어를 연속으로 부쉈고.

       

       결국 나와 아르의 환영을 아주 있는 힘껏 찌른 것이었다. 

       

       “젠장할…. 완벽하게 속았군.”

       

       입술을 짓씹는 지부장의 눈에는 패색이 가득했다.

       

       쿨럭.

       

       지부장의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죽어 가는 놈을 향해 말했다. 

       

       “아까 뭐 들어 보니 우리를 하무트의 완전한 부활을 위한 제물로 바칠 거라고 하던데.”

       

       -너희들은 하무트님의 완전한 부활을 위한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너희들은 하무트님의 완전한 부활을 위한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

       

       “그 말은, 이제 우리가 바쳐질 일이 없으니 하무트가 완전하게 부활하지 못한다는 소리겠네?”

       

       우리의 진격을 마물로 늦췄지만, 여전히 마왕이 완전한 힘으로 부활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원래 스토리 상으로도 마왕들이 지금 부활하기에는 시기상조기도 하고.’

       

       다른 마왕들은 어떤지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 마왕들 중에서 완전한 부활에 가장 가까운 건 바할라크일 것이다. 

       

       스토리 상 최종 보스이자, 무시무시한 힘으로 마물의 대군을 이끌고 제국을 침공하는 마왕 바할라크.

       

       지금으로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최대의 적이 바로 그 녀석이다.

       

       물론 하무트도 엄연한 마왕인 만큼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쿨럭…. 크흐….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 내 손으로 하무트님께 더욱 완벽한 부활을 선사해 드릴 수 있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지부장의 죽어 가던 안광이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번뜩였다.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네놈들이 아무리 발버둥친다고 해도 그분에게서 벗어날 수는… 커억.”

       

       푸욱.

       

       그때 레키온이 검을 비틀며 신성력을 쏟아 넣었고.

       

       “크아악…. 크아아아악!”

       

       지부장이 가진 마기가 신성력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며, 곧 지부장은 검은 재가 되어 흩날렸다.

       

       “후우. 어떻게 큰 소모전 안 치르고 빨리 잘 잡았네요. 이게 다 아르 덕분이지. 잘했어, 아르야.”

       “쀼웃!”

       “힘들었을 텐데, 피곤하진 않아? 괜찮니?”

       “쀼우!”

       

       여러 가지 마법을 무영창으로 해냈음에도 아르는 전혀 문제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아르의 턱밑을 살살 만져 주었고, 아르는 기분 좋은 듯 꼬리로 허공을 두드렸다. 

       

       지부장을 마무리한 레키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알고 계셨었다니, 역시 레온 님이시군요. 본체가 은신을 하고 있고, 저희가 상대하던 건 전부 분신이었다니.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러신 것 같더라고요. 저희 분신이 찔렸을 때 외치시던 그 목소리와 표정이 어찌나 처절하고 리얼하시던지….”

       

       -아르야아아아아악!

       

       “근데 그때 저도 심장 같이 찔렸는데 아르 이름만 부르는 건 좀 서운하긴 하더라고요.”

       “…그건 죄송합니다. 아르가 찔린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바람에….”

       “뭐, 괜찮습니다. 덕분에 한 방에 지부장의 심장을 찔렀으니까요. 아마 그때 마무리 못 했으면 또 귀찮은 잔재주를 부렸을 겁니다.”

       

       원작을 했던 기억을 살려 말하자면, 분신 패턴에서 본체를 바로 찾는다 해도 일정 시간 안에 죽이지 못하면 그 분신을 전부 흡수해서 본체가 강화되는 2페이즈 패턴이 나타난다. 

       

       안 그래도 하무트랑 싸워야 되는데 여기서 시간과 힘을 더 소모해서 좋을 건 없다. 

       

       “레키온!”

       “레온 씨!”

       “단장님! 레온 님! 괜찮으십니까!”

       

       지부장이 완전히 죽기 전까지 분신들이 마지막 발악을 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상대하고 있던 실비아와 데보라, 그리고 황실 기사단은 분신이 사라지자 이쪽으로 달려왔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그들에게 방금 일어났던 일과, 미리 은신을 하고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런…! 그걸 바로 간파하셨었다니, 저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역시 예삿사람이 아니로군.”

       “환영 마법에 은신까지…. 황실 직속 마법사들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여러 마법을 쓰는 건 힘들 텐데.”

       “저런 분이 지금까지 용병 신분으로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니….”

       “역시 세상엔 숨은 고수가 정말 많군.”

       

       황실 기사단은 아르를 안고 있는 나를 보며 시즌 3호 재평가를 했다.

       

       ‘사실 이게 다 우리 아르 칭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괜히 나만 머쓱해지네, 이거.

       

       ‘뭐, 조금만 참으면 이제 아르가 진짜 활약할 타이밍이 나올 테니까.’

       

       나는 아르의 뚠뚠한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하. 일단은 어서 계속 들어가 보죠.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요.”

       

       나는 앞장서서 아까 지부장이 걸어 나왔던,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갔다. 

       

       그리고.

       

       최소한의 불빛밖에 비치지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우리가 그곳에 발길을 들이려는 순간.

       

       쿠구구구구구구—

       

       저 멀리 아래쪽에서 땅이 흔들리는 진동과 함께.

       

       “……!”

       “다들 물러서요!”

       

       콰아아아아아—!!

       

       방금 지부장이 뿜어냈던 마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마기가 불기둥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이 마기는…. 설마.”

       

       우리가 황급히 뒤로 물러선 뒤에도 검은 기둥은 구름을 뚫을 듯 점점 크게, 점점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마기의 폭발이 점점 잦아들며, 검은 기둥 사이에서 무언가가 걸어나왔다. 

       

       일렁이는 마기를 두른 그것은 곧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의 용사. 그리고, 최후의 은룡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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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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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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