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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본래 허리까지 내려왔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바닥까지 흘러내릴 정도로 길어져 있었다.

         

       7년.

         

       육체와 정신은 7년이라는 세월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냈지만, 머리카락만큼은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사르륵.

         

       잠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너머에는 매일 같은 인물들이 나타났지만, 단 한 번도 지루하고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으음, 아무래도 마력 회로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청탑주가 그것도 몰라?]

       [딴지걸지 말고 아라미스나 도와주자고. 스승님의 마법을 복원하는 게 쉬울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후후. 드디어 드래곤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줄 때가 왔구나.]

         

       제자들을 보고 있을 때면 흐뭇했고.

         

       [크하하하하! 본좌가 너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았노라!]

       [그거 물고기 아니라 인어야 등신아.]

       [……인어?]

         

       무왕과 에스티를 보고 있을 때면 미소가 피어올랐으며.

         

       [우리는 잘 살고 있으니까, 이제 네 인생 살아. 이 빌어먹을 자식아.]

         

       아우렐리아의 말을 들었을 땐,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씁쓸함과 기쁨.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 카인과 엎치락뒤치락 하면서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땐,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나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면에 희미하게 비치는 꼴은, 게임 속으로 처음 떨어졌을 때의 모습과 꽤나 비슷했다.

         

       푸른 눈, 그리고 백발.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머리카락의 길이와, 성숙해보이는 정도의 차이랄까.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작금의 외형이 내게 아무런 위화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내 몸이었던 것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럽기 그지 없었다.

         

       문득 예전에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올리비아’에게, ‘날 데려온 건 역시 너였나?’라고 물어봤을 때의 기억이.

         

       그때 ‘올리비아’는 이렇게 답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요. 과거와 현재가 꼬리를 물었을 때부터, 정답은 존재하지 않게 되였으니.]

         

       이제서야 그 말뜻을 깨달았다.

         

       나는, 한 때 올리비아였다.

         

       이 몸에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던 것도, 마력을 처음부터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것도, 회귀자들과 심적으로 가까워진 것도.

         

       전부 그것 때문이었다.

         

       “…….”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알지 못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떠나왔으면 안됐던 것일까. 어떻게든……그 세계에서 연명했어야 했던 걸까.

         

       ‘……모르겠어.’

         

       무엇이 옳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에.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회귀자들을 지켜보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라는 인간이, 처음으로 비롯된 세계가 그곳이었기에.

         

       ‘올리비아’가 아닌, 내가 그것을 바랬기에.

         

       그들과의 인연을, 이대로 끊어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어느 순간부터, 속죄는 다만 바램이 되었기에.

         

       보고, 보고. 또 보았다.

         

       “……리브가를 보고 싶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눈 앞에 펼쳐졌던 풍경이 천천히 바뀌어갔다. 눈 앞의 화면은 어느새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단순히 비추어 주는 것을 넘어, 마치 내가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준다.

         

       눈이 소복히 쌓인 산. 사제복을 입은 여인이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옮길 때가 되었지요.’

       ‘옮겨도 될까? 올리비아는 이곳에 묻히기를 바랬잖아.’

       ‘카인 님. 이곳은 너무 춥고, 너무 좁습니다. 비록 언니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는 하지만, 저는 언니의 마지막이 이렇게 초라하게 기록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동의해. 올리비아 얘는 소박해도 너무 소박했으니까.’

         

       ‘아우렐리아 님. 가능하시겠습니까?’

       ‘얼추 될 것 같아. 보존술식도 새겨 놓았으니 앞으로 오백 년은 멀쩡할거야.’

       ‘그거 말고, 공간 전이 말입니다.’

       ‘흠, 그건 해봐야 알 것 같은데. 굳이 이 공간을 통째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저희만 볼 수는 없으니까요.’

         

       아.

         

       올리비아는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보았다. 익숙하기 그지 없는 장소였다.

         

       이 세계에 처음 떨어지고 나서, 제자들을 처음으로 가르쳤던 장소. 멜리나와 함께 살았던 공간이자, 온갖 추억으로 가득한 뜻깊은 곳.

         

       아우렐리아는 어울리지 않게 다소곳한 자세로 서 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서 있다. 리브가가 직접 깎아낸 것이다.

         

       잔잔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 조각상은, 올리비아와, 아니. 나와 똑 닮아 있었다.

         

       ‘성녀. 네가 이렇게 손재주가 좋은 줄은 몰랐네.’

       ‘나도, 나도 하나만 만들어줘!’

       ‘나중에 카인님 것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흠, 본좌의 것도 하나 부탁하겠다. 절대로 똑같이 만들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야. 너는 그런 부탁할 시간에 밖에 나가서 얼음이나 쪼개 와. 슬슬 부족해지려고 하니까.’

       ‘알겠다…….’

         

       무왕은 발을 질질 끌며 바깥으로 나갔다. 에스티는 그런 그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제 할일에 열중한다.

         

       경건하기 그지 없는 얼굴로, 추모석에 이름을 적었다.

         

       [올리비아]

         

       ‘글씨를 잘 쓰시는군요.’

       ‘……한 때 공주였으니까.’

         

       에스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펜을 내려놓았다. 안절부절 못하던 카인이 외쳤다.

         

       ‘나도 적을래!’

       ‘안 돼. 원래 추모석에는 이름만 적는거야.’

       ‘하지만……너무 휑한데. 저렇게 큰 비석에, 이름만 달랑 적혀 있으니까……너무 쓸쓸해보이잖아.’

       ‘넌 그냥 낙서하고 싶은거잖아.’

       ‘아닌데. 진짜 아닌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리브가가 미소지었다.

         

       ‘적고 싶으시다면 적으셔도 됩니다.’

       ‘정말?’

       ‘네.’

         

       카인이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글자를 적어내려갔다.

         

       [나의 첫 번째 친구]

         

       삐뚤빼뚤했지만, 누구 하나 비웃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 아우렐리아조차, 멍하니 그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

         

       ‘너도 적을거야?’

       ‘…….’

         

       아우렐리아는 조심스레 펜을 넘겨받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천천히 글자를 새겨나갔다.

         

       [영원을 함께한 벗]

       

       에스티도.

       

       [나의 구원자]

       

       무왕도.

       

       [가장 유능한 마술쟁이]

         

       무왕이 리브가에게 펜을 건넨다. 그녀는 올리비아의 조각상을 한 번 쳐다보았다.

         

       [가족]

         

       ‘가자.’

         

       아우렐리아의 말과 함께, 무왕이 조심스레 올리비아의 조각상을 들어올렸다. 카인은 추모석을 들어올렸다.

         

       ‘어디에 놓을 계획이지?’

       ‘언니가 태어나신 곳에 놓을 생각입니다.’

       ‘……시작의 도시?’

       ‘네.’

       ‘정작 그 도시 사람들은 올리비아가 누군지 모를 텐데도?’

       ‘이제부터 알게 만들어야지요.’

       ‘그 대답, 좀 마음에 드네.’

         

       아우렐리아는 바닥에 진을 그린다. 공간을 이동하려는 것이다.

         

       파아아앗…….

         

       잠시 후, 희미한 빛이 그들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리브가는 양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부디 언니의 앞길이 평안으로 가득하기를.’

         

       그리고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홀린듯,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는 멍하니 입을 벌리다가, 천천히 미소를 피워올린다.

         

       리브가의 얼굴에 더 이상 슬픔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 만남을 허락해준 신에 대한 감사와, 오랜 재회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할 뿐.

         

       리브가는 아이처럼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환하고, 싱그럽게.

         

       행복하게.

         

         

       화면이 흔들린다.

         

       눈꺼풀을 감았다 떴을 때, 나는 예의 그 공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눈가를 손끝으로 훔쳤다. 눈시울이 벌게져 있었다.

         

       슬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기쁘고, 고마웠다.

         

       어디선가 올리비아가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만,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삶을 기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지켜보았다.

         

       “……아……아아.”

         

       그 보상을, 마침내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아니.

         

       올리비아는. 가슴을 꽉 쥐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그들은 나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겠지만, 더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워하겠지만, 행복했던 때의 추억도 동시에 떠올릴 것이다.

         

       “아아……아아아아…….”

         

       한참동안 눈물을 쏟아내던 올리비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귀환하시겠습니까?]

         

       올리비아가 푸른 균열을 향해 손을 다가가려던 그 순간.

         

       쿵……!

         

       누군가가, 균열 너머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올리비아는 저 너머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쿵……!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아스모데우스와 싸우기 위해, 외부와 격리하는 결계를 만들었을 때…….

         

       쩌저적……!

         

       올리비아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균열이 찢어졌다. 그 너머에, 정장을 입은 키엘이 있었다.

         

       그의 뒤에서, 멜리나가 올리비아를 향해 웃었다.

         

       “리비야.”

       

       황금색의 눈동자.

         

       “그새를 못참고 울었느냐?”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서…….”

       

       달려가 멜리나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멜리나는 미소를 지었다.

         

       키엘도, 아리아도 미소지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새도 없이, 올리비아를 끌어안았다.

         

       행복하기, 그지 없는 얼굴로.

         

       

       

       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는 이번화를 끝으로 완전한 결말에 도달했습니다.

    7월 12일부터 2월 13일.

    217일간의 여정이었네요.

    이전 화에서 남겨주신 질문들과, 감사 인사는 작품 후기에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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