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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그래도 생각만큼 분위기가 어색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평소에도 친한 사이였고, 처음부터 그런 협의를 거친 이유 자체가 서로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이 싫어서였으니까. 남은 파티는 그래도 그런대로 잘 흘러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남다운이 먼저 손을 흔들고 가버린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남들 앞에서 키스하는 것은 쪽팔리지만, 남다운의 경우에는 그 쪽팔림의 차이가 엄청 다르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별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나는 애초에 손아름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도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아, 그런데.”

        

       마침 손아름 생각하고 있는데 손아름이 말을 걸어서 흠칫 놀랐다. 다행히도 케이크를 포크로 자르고 있던 손아름은 그걸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선물은 안 풀어볼 거야?”

        

       “아.”

        

       맞다. 선물.

        

       아까 손아름이 준 선물이 있었다.

        

       다른 세 명이야 아까 파티 와중에 키스하면서 하나씩 받았고, 손아름 건 아직 받아두고 뜯어보지도 않고 있었다.

        

       마침 케이크 조각을 다 먹은 나는 옆에 접시를 살짝 내려두고, 그때까지 풀지 않고 있던 그녀의 선물을 집어 들었다.

        

       정신이 없어서 완전히 잊고 있었네.

        

       얇고 길쭉한 상자였다. 왠지 안에 있는 게 뭔지 알 것 같아.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자, 안에서 꽤 고급스러운 상자가 하나 나왔다.

        

       열어보니 만년필이 들어있었다.

        

       펜이나 샤프, 만년필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연 겉보기와 똑같은 물건이 들어가 있어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뭐랄까, 손아름이 주는 선물다웠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만년필로 공부를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웬만한 물건은 이미 다 가지고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기왕이면 네가 받는 선물 중에서 눈에 띄는 걸로 하고 싶었는데, 그런 걸 생각해봐도 별로 떠오르는 게 없더라.”

        

       “아냐, 고마워. 잘 쓸게.”

        

       나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애초에 아무거나 달라고 한 건 나였으니까. 아무거나 받아도 당연히 기뻐해야지.

        

       “어, 응…….”

        

       나의 말에, 손아름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생일파티가 끝났다. 뭔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일이 커지고, 거기에 이런저런 사건이 또 겹치고 겹쳐서 대체 어떻게 수습할까 걱정했던 적도 있지만……

        

       ……있긴 하지만…….

        

       ……음, 생각해보니까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유진 그룹 내의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한 느낌이고, 나와 안면을 튼 친척들도 많았고. 물론 그 친척 중에 지금까지 얼굴이 정확하게 기억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아직 최나경도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고백받은 애들한테 답하는 것을 그대로 유보해두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일을 겪었는데도, 문자 그대로 ‘단 하나도’ 해결된 일이 없었다.

        

       뭐, 그래도, 방침을 세울 수는 있었다. 완벽히 해결된 일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방향성을 정하기에는 충분한 일도 있었으니까.

        

       일단, 학교 내에서 예사라의 그룹이 형성되었다. 물론 아직 어떻게 써먹을지 정해진 바는 없지만, 이 아이들은 나중에 대학교에 가건, 사회에 나가건 내가 사회 생활하는데 협력자가 되어줄 수 있었다. 이쪽에서 뒤통수 맞지 않도록 제대로 인망을 관리하는 것이 좋겠지만.

        

       친척들의 경우, 내가 상속받을 재산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유진 그룹이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쪽으로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친척들과 이야기한 지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주로 유진 그룹이 어떻고 저쩌고 하는 말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최나경이 없는 지금 실질적인 수장 노릇을 하는 예인혁이 유진 그룹 자체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 나는 그런 분위기를 너무 지나치게 거스르지만 않으면 된다. 그룹을 강건하게 유지하면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취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당장 나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이야기는—

        

       “얘들아, 잠깐만.”

        

       나는 내 침대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하늘, 수아, 소희에게 손바닥을 척 세워 보이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다들 따로 씻었다. 지금까지 나와 같이 씻는 애들은 있어도 나머지 두 사람이 함께 씻지는 않는 이유가 오늘 제대로 밝혀졌으므로, 나는 그 흑심 넘치는 혼욕을 일단 거부했다. 아이들은 낙담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이해해주었다.

        

       문제는, 슬슬 잘 시간이 되니 아주 자연스럽게 내 침대 위로 올라오는 이 아이들이다.

        

       아니, 그보다, 원래는 나, 하늘이, 수아, 이렇게 세 사람이 잤었잖아. 네 명이 다 올라오기에는 아무래도 좁은 침대였으니까.

        

       ……아, 그렇구나.

        

       소희는 나를 좋아한다.

        

       당연히 내가 다른 애들과 침대를 함께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그래서 밤이면 밤마다 침대로 기어들어 온 거고.

        

       그래 놓고 밤에 화장실 갔다가 헷갈려서 들어왔다고 한 건가.

        

       어쩐지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더라.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건 좀 그렇지 않니? 아니, 물론 너희들은 좋아서 그러는 거겠지만.”

        

       내 말을 듣고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아이들을 보고, 나는 뒷말을 황급히 붙였다.

        

       “……그러니까, ‘친구라서’ 같이 잤던 건 아니라는 거잖아. 너희들 다.”

        

       “어…….”

        

       “으…….”

        

       “아…….”

        

       그렇지.

        

       아무래도 엄청나게 야릇한 생각으로 같이 잤던 거겠지. 여기서 네 사람이 같이 자면 딱 달라붙어서 잘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고 있는데 이상한 짓을 할 애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의도가 너무 불순하다.

        

       “이것도 키스랑 똑같은 경우야. 다 떨어져서 자자.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이 너무 불리하잖아.”

        

       “사라야…….”

        

       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매번 같은 곳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다른 침대에서 자다가 내 침대로 들어오던 소희였기에 조금이라도 불만을 느끼고 있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물론 나는 그 이유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내가 소희를 찌릿, 째려보자, 소희는 얼른 자기 입을 막았다.

        

       “……우리, 중립을 지킬 때는 철저하게 지키자. 하나라도 무너지기 시작하면 친구 관계도 끝이잖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이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 소리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었다. 이쪽 세상으로 오고 나서 사귄 이 친구들은, 이제는 헤어지기엔 너무 친해졌다. 관계가 파탄 나면 나는 분명 깊게 낙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리가 부족한걸.”

        

       하늘이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사실, 이 중에서 두 명은 돌아갈 집이 있고, 나머지 한 명은 굳이 여기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애니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이유는 없지만, 이제는 이 넓은 방 안에 얘네들이 없으면 너무 허전할 것 같아서, 나는 굳이 그 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소희가 가지고 온 침낭 있잖아. 오늘은 그걸로 잘 거야. 침대는 추가로 주문하면 그만이고.”

        

       소희가 자는 침대도 하루 만에 왔었으니, 나머지 침대들은 양혜인에게 말해두면 우리가 학교 간 사이에 다 와 있을 거다.

        

       “차라리 내가 바닥에서 잘게.”

        

       하늘이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러면 결국 누군가가 내 옆에서 자게 되잖아.”

        

       나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 주인은 너잖아. 그렇게 바닥에서 자는 건—”

        

       나는 열변을 토하는 하늘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그냥 여기서 자고 가는 손님일 뿐인데…….”

        

       지긋이.

        

       “그, 그래도 이 방은 너의 방이니까, 너가 침대에서 자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긋이.

        

       “…….”

        

       결국, 하늘이는 나의 시선에 포기한 모양이었다.

        

       “자, 그럼 이제 알았지?”

        

       나는 세 사람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규칙을 정했으면, 기왕이면 제대로 지키자.”

        

       세 사람은 조금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손아름은 저택을 빠져나오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택 안에서 있었던 일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택 자체의 크기도, 하루 만에 유니폼을 만들어 입히는 수완도, 그리고 파티의 규모도. 상상하던 생일파티와는 아주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라와 나머지 세 사람의 관계.

        

       이야기는 계속 들었지만, 직접 보는 것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게다가…….”

        

       손아름은 쿵쿵 뛰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까부터, 진정이 안 된다.

        

       케이크를 나누어 먹을 때는 정말 들키는 줄 알았다.

        

       “왜, 왜 이러는 거지…….”

        

       사실 이런 감정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것은, 사라가 손아름의 사과를 받아준 뒤부터였다. 그 뒤로는 계속 사라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겨우겨우 마음먹고 여기까지 와서야 웃는 얼굴로 선물을 건넬 수 있었는데.

        

       사라가 다른 아이들과 입맞춤하는 모습을 보니—

        

       “아냐.”

        

       손아름은 걸음을 멈췄다.

        

       “이건 그냥…… 친구로서의 감정이니까.”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쉰다.

        

       흥분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아까는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미처 지적하지 못하고 넘어갔지만,

       

       사라의 인격이니 뭐니 하던 말들은 대체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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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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