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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이름이 같다고 하여서 무작정 단정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만한 단서가 있어서 확신을 지은 것이었다.

       

       지원서에 적힌 전화번호가 같다거나. 자신을 소개하는 문구에서 나온 여러 말버릇이라거나.

       

       무엇보다 본인을 확신하게 만든 것은 이 지원자가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보낸 영상에 묻어난 시선 때문이었다.

       

       무공을 다루는 자는 필연적으로 자기가 다루는 무공을 기점으로 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지금 이 영상도 그러했다.

       

       이 영상을 만든 자는 본인의 움직임에서 바람을 찾고 있었다.

       

       재앙이 눈앞에서 펼쳐졌을 때 그를 부드럽게 넘기는 부드러움과 공세를 몰아칠 적에 이어지는 폭풍을.

       

       하린이라는 무인은 본인이 저 아래에서부터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니 그녀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는 분명 하린의 시선이었다.

       

       내 아래에서 오랫동안 구르다보니 무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는 설아보다도 완숙하지만 편집 실력이 그리 좋지 못하구나.

       

       엄청나게 부족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설아나 엔리의 편집자가 선별해준 다른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일단은 내버려 두고 다른 이들부터 보자꾸나.

       

       어쨌든 지금 이는 어디까지나 면접이다.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지원자들이 보낸 메일을 뒤적이고 난 후 내 감상은 이러했다.

       

       엔리의 편집자가 걸러 준 이들에게는 대개 이유가 있구나.

       

       그리고 지금의 하린만큼 무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이는 거의 없다시피 하구나.

       

       나는 마우스를 툭툭 건드리며 고민을 하다가 설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녀석이라면 지금도 잠에 들지 않았을 터이니.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무슨 일이세요?>

       ‘영상 평가 좀 해주시겠어요? 구체적으론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런 평가는 문외한인 나보다 이 일에 익숙한 이에게 맡기는 것이 낫지.

       

       본인이 무인을 슬쩍 보면 재능을 판별할 수 있듯 영상을 만드는 이들도 비슷한 것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을 하며 설아에게 영상을 보내니 잠시 기다려 달란 말과 함께 침묵이 찾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설아에게 답변이 돌아왔다.

       

       <형편없는 영상인데요?>

       

       안면도 없는 이에 대한 평가치고는 실로 신랄하구나.

       

       아니지. 오히려 얼굴을 모르기에 저리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일단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보여요. 0:20 부분을 보시면…>

       

       설아는 장면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으며 하린이 만들어낸 영상이 얼마나 별로인지 그리고 왜 별로인지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저리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뒷말은 듣지 않아도 뻔하겠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린이는 우리와 함께 할 수 없겠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엔리의 편집자가 걸러 준 이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이에게 내 친히 무를 쑤셔 박아 주는 수밖에.

       

       <그래도 기본적인 센스는 있는 것 같아요.>

       

       허나 그 모든 신랄한 평가가 끝나고서 나온 설아의 답변은 내 예상과 달랐다.

       

       가히 모욕에 가까울 비평을 해놓고 마지막에 괜찮을 것 같다니.

       

       <전문적으로 배우면 훨씬 나아질 걸요?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

       

       ‘설아 씨가 가르치면 어떨 것 같나요?’

       <제가요?>

       

       내 물음에 잠시 채팅을 멈췄던 설아는 10초가 지나고 나서야 답변을 해주었다.

       

       <명령해주신다면 바라시는 결과를 만들어내겠습니다.>

       

       명령이라니.

       

       그 답변에 헛웃음을 흘린 나는 상담해 주어서 고맙다고 답변을 하고서 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외출이라는 단어는 설아에게 무척이나 낯선 단어였다.

       

       요즘 세상은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한 시대.

       

       바란다면 바깥에 나가지 않고서도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으니.

       

       어느 순간 방 바깥으로 나가는 걸 포기한 설아는 자신의 원룸이 틀어박혀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방구석 외톨이인 그녀에게는 집 앞의 편의점을 나가는 것조차 중대하고도 고된 일이었기에.

       

       번화가에 타인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설아에게 해외여행을 나가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결심을 필요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메일로 계약을 끝마치자고 먼저 권유를 했을 설아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현실에서 화령님을 만날 수 있다.

       

       VR아바타 뒤의 숨겨진 그 분을 볼 수 있다.

       

       그 분과 직접 만나 눈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듣고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그녀의 모든 망설임을 날려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횟수로 따지자면 몇 년 만에.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한 외출 준비를 하고서 거울 앞에 선 설아는 자신이 제대로 준비를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크서클이 길게 늘어선 눈동자도,

       

       덮수룩한 머리카락도.

       

       너저분한 후드티에 펑퍼짐한 바지도.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것이 없었다.

       

       화령님을 처음으로 뵈러 가는 건데 이러고 가도 괜찮은 걸까?

       

       그렇지만 집에 이것 말고는 옷이 없단 말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평소에 옷을 좀 더 사두는 건데.

       

       설아는 그리 후회하고 있었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지금 더 이상 망설이면 화령님을 만나러 갈 때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

       

       우상이자 숭배의 대상인 화령님을 기다리게 만든다?

       

       그런 일을 저질렀다간 설아는 자기 혀를 깨물고 말 것이다.

       

       설아는 괜찮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하고 나서 바깥으로 나섰다.

       

       교통수단은 당연히 택시였다.

       

       사람들로 드글거리는 대중교통은 설아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택시 기사가 제발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며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기를 수십 분.

       

       설아는 화령이 이야기했던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말이라서 그런걸까.

       

       번화가의 카페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앉을 자리나 있을까 싶은 풍경에 패닉에 질려버린 설아는 다급히 카페 바깥으로 빠져나와 심호흡을 했다.

       

       바깥에도 사람이 많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숨 쉴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어떡하지.

       

       <카페 안에 자리가 없는데요.>

       

       어제 화령이 만든 그녀와 편집자가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안에 자리 잡아 뒀는데! 어디 계세요? 데리러 갈게요!>

       

       이 활발해 보이는 사람이 이미 도착해 있단 말이야?! 이 단톡방이 만들어진 것은 어제 새벽 즈음이었다.

       

       그 때부터 단톡방 대화의 비중 중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던 활발하고 말 많은 사람이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고?

       

       다른 사람은.

       

       화령님이나 다른 편집자님은 이 자리에 안 계시는 건가?!

       

       설아는 저 사람과 단둘이 이야기하는 걸 상상하다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고 구원을 찾아 헤맸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반응이 없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는 거지?

       

       “저기요.”

       

       설아가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해결책을 찾던 때에 누군가가 설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나다 유리에 머리를 박은 설아가 고통을 호소하자 미안함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나요?”

       “아뇨. 괜찮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무의식중에 사과를 하던 중 설아는 문득 이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하단 생각을 했다.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이 사람 화룡무인 유저인가?

       

       “화령님의 편집자로 오신 분 맞죠?”

       “네에.”

       “안녕하세요. 이하린이라고 합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화령님이 좋게 봐주셔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잘 부탁 드릴게요!”

       

       하린의 인사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을 하던 설아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떠올렸다.

       

       “냥냥.”

       “네?”

       “당신 진짜 아저씨가 아니라 여고생이었어요?”

       

       말도 안 돼.

       

       인싸 향기를 풀풀 풍기는 이 활발한 여성 분이 어렸을 때부터 무협겜에 미쳐 살던 그 냥냥권법이라고?!

       

       예전에 플레이 타임으로 나랑 비빌 수 있을 정도로 게임에 몰두했던 그 사람이 아저씨가 아닌 여고생이었단 말야?!

       

       너무도 큰 충격에 설아는 자신이 무례한 발언을 내뱉는다는 것도 모르고 무심코 본심을 말해버렸다.

       

       그리고 나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튀어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설아가 슬며시 눈치를 보자 하린이 웃음을 흘렸다.

       

       “저 아시는 거 보면 화룡무인 유저이실텐데 그러는 그 쪽도 여성 화룡무인 유저시잖아요?”

       “그야 전 아싸고 히키고.”

       “그게 뭐가 중요해요! 여기서 그 희귀한 화룡무인 여성 유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닉네임이 어떻게 되세요?! 아니지. 성함을 여쭤봐야 하나?”

       

       너무도 밝아서 정화될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 하린의 모습에 설아는 어버버거리다가 더듬더듬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박설아라고 합니다. 게임 닉네임은 나설이에요.”

       “…나설님? 엑. 나설님이 진짜 여성분이셨나요?!”

       “그…런데요.”

       “화룡무인에서 살다시피 하시길래 당연히 보이스 체인져쓰는 남자일 줄 알았는데!”

       

       진짜 여자 분인 줄 몰랐다고.

       

       진작에 알았다면 미리 연락을 해봤을 거라고.

       

       지난번 게임 상에서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린은 설아를 반가워했다.

       

       게임의 일은 게임의 일이고 현실의 일은 현실의 일이라는 듯이.

       

       허나 설아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다른 한 분은 설아가 익히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편집자다.

       

       그러니 어제 화령님이 보내주었던 그 쓰레기 같은 영상은 하린이 보낸 것일 터.

       

       부족한 실력을 지닌 주제에 화령님과 가까이 있단 것만으로 편집자가 되겠다고?

       

       대체 당신이 뭐기에 화령님에게 그렇게 애정을 받는 거야?

       

       당신이 무어가 그렇게 뛰어 나기에.

       

       “나설님?”

       “아. 넵. 왜요?”

       

       이런 질투심은 설아의 마음 속에서 맴돌 뿐 입 바깥으로 튀어나오진 못했다.

       

       결국에 설아는 VR이란 벽이 없으면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는 방구석 외톨이였던 것이다.

       

       “조금 있으면 화령님이랑 다른 편집자분도 온다고 하시니 일단은 안에 들어가있죠?”

       “ㄴ… 네.”

       

       커피를 시키고 나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하린의 이야기를 설아가 일방적으로 듣고 있던 중.

       

       하린이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요!”

       

       신이 나선 손을 흔드는 하린의 시선을 따라 설아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카페 입구에서 이 쪽으로 걸어오는 여성을 본 순간 설아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세상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눈동자도.

       

       너무도 검어서 빨려들어갈 듯한 흑색의 눈동자도.

       

       비단결 같은 검은 색 머리카락도.

       

       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도.

       

       어느 하나 VR에서 보던 화령님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어서.

       

       설아는 VR속의 화령님이 그대로 현실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될 지경이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차마 현실의 뺨을 후려칠 자신은 없었던 설아는 자신의 뺨을 꼬집는 것으로 그를 대신했다.

       

       분명히.

       

       아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라가 단톡방을 만드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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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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