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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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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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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검게 칠해진 형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어라 글자가 적혀있었지만 읽을 수 없었다. 한글로 [ 자체 검열 ]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아이리스는 한글을 몰랐기에 읽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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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괴이들이 늘어만 갔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외관이 평범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한 꼴을 하고 있었다.
    ​
    ​
    그런 존재들이 제 오빠 곁에 늘어가자 아이리스는 불안감으로 손끝, 발끝이 저렸다.
    ​
    ​
    그녀는 제 오빠의 곁에 찰싹 붙어 경계하는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반응하는 존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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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후 리안은 엉망이 된 강의실에서 그나마 멀쩡한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
    ​
    교수라 불린 괴이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는데 아이리스에겐 그 어떤 의미로도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리안에겐 어떠한 소리로 들리는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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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곁에 딱 달라붙어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즘, 정신이 몽롱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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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안돼, 잠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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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치 수면 약을 먹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게 풀리더니 이내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
    탓.
    ​
    ​
    “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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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건물 밖이었다. 화들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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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더 흐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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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가진 도시는 어느새 반쯤 자연에 잡아먹힌 꼴을 하고 있었다. 그저 망가지기만 했던 자동차들은 녹이 슬어있었고, 부서진 도로에 물이 고여있었다.
    ​
    ​
    여전히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 우중충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고, 그 아래 자리한 뼈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들은 반쯤 무너져 내려 폐허라는 말이 어울렸다.
    ​
    ​
    아이리스가 혼란스러운 심정을 숨기지 못한 채 주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까운 거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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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읏차 -..”
    “…!”
    ​
    ​
    고개를 휙 돌리자 그녀에게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평온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젠 길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곳을 그저 조금 거친 길을 지나가는 것처럼 가뿐하게 넘어 다녔다.
    ​
    ​
    아이리스는 다급히 리안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
    “헉..허억…”
    ​
    ​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리스의 숨을 거칠어졌다. 그런 그녀와 달리 리안은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
    ​
    아이리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더욱 속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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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변은 여전히 낯선 것투성이였지만, 한번 봤던 장소여서 그런지  익숙한 간판이나 건물도 간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덕분에 아이리스는 리안의 목적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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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상한 괴물들이 가득한 건물…’
    ​
    ​
    만약 리안에게 제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면 허리를 끌어안아서라도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손은 그의 옷자락조차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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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가 할 수 있는 건 이를 악물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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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이 거칠어진 탓에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대학교는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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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전보다 더 흉악한 꼴이 된 거대한 식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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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을 전부 삼켜버린 식물은 그사이 얼마나 많은 것을 삼킨 건지 덩굴의 덩치가 두 배는 커져 있었고, 건물 한 층만 한 화려한 꽃이 건물 위로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거기다 덩굴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가시들이 한껏 자라있어 위험한 분위기를 잔뜩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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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륵스륵 소리를 내며 조용히 움직이는 덩굴의 모습에 아이리스는 다급히 리안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거리낌 없는 발걸음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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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익숙한 걸음으로 입구였던 곳으로 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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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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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숨통을 가볍게 끊어놓을 것 같던 가시들이 부드러운 강아지의 털처럼 늘어져 버렸다. 마치 그가 다칠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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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기묘한 이질감과 불길함을 느끼며 리안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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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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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리안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선 순간, 무수히 많은 시선이 두 사람을 잡아먹을 듯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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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다… 괴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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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듯 건물 안은 괴이들로 가득했다. 아이리스는 생리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구역감에 리안의 곁에 서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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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들 좋은 아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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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괴물들이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지 그저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리안을 산산조각 낼 것 같던 괴이들은 뚫어지게 리안을 바라볼 뿐 달려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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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어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길을 터주기까지 했다. 리안은 그 사이를 익숙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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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그들끼리 싸우기라도 하는 건지 끔찍한 비명과 무언가를 씹는 듯한 우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안에겐 그 소리조차 다르게 들리는지 그저 웃으며 “하하, 오늘도 기운차네요.”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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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리안에게 딱 달라붙어 이동하지 않으면 괴물들에게 짓눌릴 정도였기에, 아이리스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리안의 곁에 딱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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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들기 전과 똑같이 리안은 많은 괴이들에게 인사를 했고, 검게 칠해진 괴이를 교수님이라 부르며 전보다 더 망가진 교실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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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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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쓰러져가는 강의실 안엔 단 하나의 책상과 의자만이 멀쩡하게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리안은 익숙하게 그 자리에 앉았다. 아이리스가 앉을 만한 자리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뒤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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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
    쩌적.
    쩌저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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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언가 부서져 내라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이리스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
    ​
    “…!”
   
    ​
    강의실 벽 한쪽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갈라지더니 이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무너진 벽 너머로 바짝 마른 식물의 줄기가 보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말라비틀어진 식물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던 식물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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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
    ​
    깊고 어두운 심연과 닮은 불길함이 느릿하게 몸을 타고 오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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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진 건물 틈 사이로 고요한 침묵이 쏟아져 들어왔다. 
    ​
    ​
    시간이 기분 나쁘게 늘어지는 것만 같았고, 공기는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속에 쌓이는 긴장감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뇌리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
    ​
    쩌적.
    ​
    ​
    “…!”
    ​
    ​
    이번에 들린 소리는 벽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먼 곳, 빛이 스며들어오는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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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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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벽 너머의 아득한 풍경에 그대로 압도되고 말았다.
    ​
    ​
    하늘이, 대지가, 건물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연약한 유리처럼 금이 가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공포 앞에 아이리스는 바짝 얼어붙은 채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
    ​
    ‘안돼… 안돼…! 오빠, 오빠!’
    ​
    ​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을 내지르며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겨우 돌렸다. 책상에 앉아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듣던 리안은 멍한 표정으로 무너져 내린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안돼..!’
    ​
    ​
    평온한 얼굴과 달리 리안의 몸은 온몸에 균열이 생겨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상태였다. 또다시 무력하게 리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아이리스는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필사적으로 그에게 손을 뻗었다.
    ​
    ​
    “…예쁘다.”
    ​
    ​
    리안은 무너진 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주홍빛 종말의 색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주변에 자리했던 무수히 많은 괴이는 ‘세계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절망과 격이 다른 압박감에 박제된 것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
    ​
    드륵.
    ​
    ​
    리안은 종말이 전하는 격이 다른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너진 벽 쪽으로 다가갔다.
    ​
    ​
    그는 멍한 얼굴로 멸망해가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갈라진 그의 몸이 부서져 내라기 시작했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주홍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
    ​
    “…하핫!”
    ​
    ​
    리안은 굉장히 만족스럽게 웃어 보이더니 그대로 잘게 부서져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제 끝을 직감이라도 한 것처럼 느릿하게 제 몸을 내려다보곤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과 똑같이 무너져 내리는 괴이들을 돌아보았다. 
    ​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야 할 것 같네. 다들 좋은 하루 보내.”
    ​
    ​
    평소 인사 끝에 붙이던 “내일 보자.”라는 말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리안의 환한 미소와 함께 세상은 완전히 끝을 고하듯 빠르게 먼지가 되기 시작했다.
    ​
    ​
    리안의 몸이 손과 어깨, 다리부터 무너져 거의 다 사라져갔을 때쯤.
    ​
    ​
    [ 찾았다. ]
    ​
    ​
    “…!”
    ​
    ​
    심장을 철렁이게 할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가 아이리스의 머릿속에 쿵 하고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신성하다 느껴질 정도로 찬란한 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
    ​
    [ 하하하! 그래, 너라면.. 너라면 가능할 거야! ]
    ​
    ​
    무미건조하던 목소리에 점차 웃음과 광기가 차오르더니 이내 환희로 물들었다. 아이리스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 속 너머를 훔쳐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
    ​
    그 순간, 아이리스의 뒤쪽에서 부드러운 손이 머리 양옆을 지나 눈가를 가려버렸다.
    ​
    ​
    “이제 그만.”
    ​
    ​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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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5화 더 올라갈 예정입니다!다음화 보기

‘저게 뭐야?’

아이리스는 검게 칠해진 형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어라 글자가 적혀있었지만 읽을 수 없었다. 한글로 [ 자체 검열 ]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아이리스는 한글을 몰랐기에 읽을 수 없었다.

리안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괴이들이 늘어만 갔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외관이 평범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존재들이 제 오빠 곁에 늘어가자 아이리스는 불안감으로 손끝, 발끝이 저렸다.

그녀는 제 오빠의 곁에 찰싹 붙어 경계하는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반응하는 존재는 없었다.

이후 리안은 엉망이 된 강의실에서 그나마 멀쩡한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교수라 불린 괴이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는데 아이리스에겐 그 어떤 의미로도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리안에겐 어떠한 소리로 들리는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을 흘렸다.

그의 곁에 딱 달라붙어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즘, 정신이 몽롱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아… 안돼, 잠들면…’

마치 수면 약을 먹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게 풀리더니 이내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탓.

“헉…!”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건물 밖이었다. 화들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시간이 더 흐른 건가?’

망가진 도시는 어느새 반쯤 자연에 잡아먹힌 꼴을 하고 있었다. 그저 망가지기만 했던 자동차들은 녹이 슬어있었고, 부서진 도로에 물이 고여있었다.

여전히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 우중충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고, 그 아래 자리한 뼈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들은 반쯤 무너져 내려 폐허라는 말이 어울렸다.

아이리스가 혼란스러운 심정을 숨기지 못한 채 주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까운 거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읏차 -..”

“…!”

고개를 휙 돌리자 그녀에게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평온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젠 길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곳을 그저 조금 거친 길을 지나가는 것처럼 가뿐하게 넘어 다녔다.

아이리스는 다급히 리안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헉..허억…”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리스의 숨을 거칠어졌다. 그런 그녀와 달리 리안은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아이리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더욱 속도를 올렸다.

주변은 여전히 낯선 것투성이였지만, 한번 봤던 장소여서 그런지  익숙한 간판이나 건물도 간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덕분에 아이리스는 리안의 목적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이상한 괴물들이 가득한 건물…’

만약 리안에게 제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면 허리를 끌어안아서라도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손은 그의 옷자락조차 잡지 못했다.

아이리스가 할 수 있는 건 이를 악물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길이 거칠어진 탓에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대학교는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아이리스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전보다 더 흉악한 꼴이 된 거대한 식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을 전부 삼켜버린 식물은 그사이 얼마나 많은 것을 삼킨 건지 덩굴의 덩치가 두 배는 커져 있었고, 건물 한 층만 한 화려한 꽃이 건물 위로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거기다 덩굴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가시들이 한껏 자라있어 위험한 분위기를 잔뜩 풍겼다.

스륵스륵 소리를 내며 조용히 움직이는 덩굴의 모습에 아이리스는 다급히 리안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거리낌 없는 발걸음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가 익숙한 걸음으로 입구였던 곳으로 향하자.

스르륵.

사람의 숨통을 가볍게 끊어놓을 것 같던 가시들이 부드러운 강아지의 털처럼 늘어져 버렸다. 마치 그가 다칠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리스는 기묘한 이질감과 불길함을 느끼며 리안의 뒤를 따랐다.

“…!”

그녀가 리안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선 순간, 무수히 많은 시선이 두 사람을 잡아먹을 듯 쏟아졌다.

‘이게 다… 괴물이라고?’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듯 건물 안은 괴이들로 가득했다. 아이리스는 생리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구역감에 리안의 곁에 서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다들 좋은 아침이에요!”

리안은 괴물들이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지 그저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리안을 산산조각 낼 것 같던 괴이들은 뚫어지게 리안을 바라볼 뿐 달려들지 않았다.

도리어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길을 터주기까지 했다. 리안은 그 사이를 익숙하게 지나갔다.

종종 그들끼리 싸우기라도 하는 건지 끔찍한 비명과 무언가를 씹는 듯한 우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안에겐 그 소리조차 다르게 들리는지 그저 웃으며 “하하, 오늘도 기운차네요.”말할 뿐이었다.

이젠 리안에게 딱 달라붙어 이동하지 않으면 괴물들에게 짓눌릴 정도였기에, 아이리스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리안의 곁에 딱 달라붙었다.

잠들기 전과 똑같이 리안은 많은 괴이들에게 인사를 했고, 검게 칠해진 괴이를 교수님이라 부르며 전보다 더 망가진 교실로 들어섰다.

“…”

다쓰러져가는 강의실 안엔 단 하나의 책상과 의자만이 멀쩡하게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리안은 익숙하게 그 자리에 앉았다. 아이리스가 앉을 만한 자리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뒤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쩌적.

쩌저저적.

무언가 부서져 내라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이리스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

강의실 벽 한쪽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갈라지더니 이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무너진 벽 너머로 바짝 마른 식물의 줄기가 보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말라비틀어진 식물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던 식물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깊고 어두운 심연과 닮은 불길함이 느릿하게 몸을 타고 오르는 것만 같았다.

무너진 건물 틈 사이로 고요한 침묵이 쏟아져 들어왔다.

시간이 기분 나쁘게 늘어지는 것만 같았고, 공기는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속에 쌓이는 긴장감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뇌리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쩌적.

“…!”

이번에 들린 소리는 벽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먼 곳, 빛이 스며들어오는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말도… 안돼…”

아이리스는 벽 너머의 아득한 풍경에 그대로 압도되고 말았다.

하늘이, 대지가, 건물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연약한 유리처럼 금이 가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공포 앞에 아이리스는 바짝 얼어붙은 채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안돼… 안돼…! 오빠, 오빠!’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을 내지르며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겨우 돌렸다. 책상에 앉아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듣던 리안은 멍한 표정으로 무너져 내린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돼..!’

평온한 얼굴과 달리 리안의 몸은 온몸에 균열이 생겨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상태였다. 또다시 무력하게 리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아이리스는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필사적으로 그에게 손을 뻗었다.

“…예쁘다.”

리안은 무너진 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주홍빛 종말의 색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주변에 자리했던 무수히 많은 괴이는 ‘세계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절망과 격이 다른 압박감에 박제된 것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드륵.

리안은 종말이 전하는 격이 다른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너진 벽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멍한 얼굴로 멸망해가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갈라진 그의 몸이 부서져 내라기 시작했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주홍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핫!”

리안은 굉장히 만족스럽게 웃어 보이더니 그대로 잘게 부서져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제 끝을 직감이라도 한 것처럼 느릿하게 제 몸을 내려다보곤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과 똑같이 무너져 내리는 괴이들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야 할 것 같네. 다들 좋은 하루 보내.”

평소 인사 끝에 붙이던 “내일 보자.”라는 말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리안의 환한 미소와 함께 세상은 완전히 끝을 고하듯 빠르게 먼지가 되기 시작했다.

리안의 몸이 손과 어깨, 다리부터 무너져 거의 다 사라져갔을 때쯤.

[ 찾았다. ]

“…!”

심장을 철렁이게 할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가 아이리스의 머릿속에 쿵 하고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신성하다 느껴질 정도로 찬란한 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 하하하! 그래, 너라면.. 너라면 가능할 거야! ]

무미건조하던 목소리에 점차 웃음과 광기가 차오르더니 이내 환희로 물들었다. 아이리스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 속 너머를 훔쳐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아이리스의 뒤쪽에서 부드러운 손이 머리 양옆을 지나 눈가를 가려버렸다.

“이제 그만.”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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