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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파트란 공작은 자신의 앞에서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는 베네딕의 존재가 유쾌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보다도 딸을 사랑하는 베네딕의 앞에서 그의 딸에게 곤경을 선사했는데 어찌 유쾌하겠는가.

   

   “그럼 어디 변명해 보시죠.”

   

   변명인가. 그래도 내가 파트란 가문의 공작이거늘 말이 너무 험하군.

   

   그리 생각하던 파트란 공작이었지만 입 바깥으로 내지는 않았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은 권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설령 권력으로 찍어누르는 게 가능했더라도 공작은 속으로 투덜거리기만 했을 테지만.

   

   “일단 하나만 알아주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내 본의가 아니었네.”

   “타볼 그 녀석을 이 자리에 부르고서 말입니까.”

   “그녀는 우리 딸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준 은인이다. 내가 그녀를 구렁텅이에 떨어트릴 정도로 염치없는 인간으로 보이는가.”

   

   과거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루시 알른이 조이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후로 파트란 공작은 루시라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게 보고 있었다.

   

   어투가 험악할 뿐 행보만 보면 선인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소울 아카데미라는 재능의 각축장에서 1등을 거머쥘 만한 재능을 지닌데다가.

   

   무엇보다 그녀의 딸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럼 왜 이런 일을 계획하신 겁니까.”

   “조이가 그대의 딸을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했거든.”

   

   친분을 쌓는 정도라면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루시는 친하게 지내서 손해 볼 것이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허나 그 정도가 과했다. 조이는 루시 알른이라는 백작가의 영애를 은인 혹은 평생의 친구라 여기고 있었다.

   

   만일 루시에게 해가 가해진다면 귀족으로서의 책무를 내던지고 그녀를 도울 정도로.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떨어지라는 이야기를 하겠나. 그건 명해선 안 되고 명령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랬기에 파트란 공작은 이번 파티에서 일부러 위기를 조성한 후 루시가 거기에 대처하는 것을 보며 그녀라는 사람을 평가하고자 했다.

   

   만.

   

   “예상외의 일이 너무도 많이 벌어졌지.”

   

   수도에서 거의 나오는 일이 없는 1왕자의 갑작스러운 출현.

   

   루시와 1왕자의 신경전.

   

   졸지에 둘이 승부를 내는 자리가 되어버린 축제에서 루시가 1왕자를 상대로 승리한 것.

   

   그 때문에 루시를 향한 타인들의 적의가 한층 더 강해진 것.

   

   여기까진 괜찮았다. 제어 가능한 수준의 오차였으니까.

   

   여러 변수 속에서도 파트란 공작은 무대를 짜내는 데 성공했다.

   

   위기에 조이가 개입할 것이 뻔하니 슬쩍 빼내어 마법으로 묶어둔다.

   

   1왕자와 3왕자에게 양해를 구해 개입하지 말아 달라 부탁한다.

   

   베네딕은 공작 자신이 묶는다.

   

   오롯이 루시 알른이 홀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무대를 만들기 위하여.

   

   “알겠나? 난 처음에 적당한 위기만을 선사할 생각이었네.”

   

   과거 베네딕이 전선을 내달리던 시절. 베네딕과 겨룬 모든 승부에서 패한 탓에 타볼은 베네딕을 향해 깊은 열등감과 적개심을 품고 있다.

   

   그가 유일하게 위안삼고 있는 부분은 그의 아들이 베네딕의 딸보다 낫다는 것.

   

   당연하게도 타볼은 최근 루시의 평가가 올라가는 것을 좋게 보고 있지 않다.

   

   그러니 루시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깎아내리려 할 것이라 파트란 공작은 예상했고, 이를 이용해 루시를 곤경으로 이끌고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 지를 볼 생각이었다.

   

   과거 남을 깎아내리는 것밖에 모르던 아이가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틀렸다.

   

   타볼이 알른 가문에 지닌 적의가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왕국 기사단장으로 재직하며 정치에도 익숙할 놈이 그런 미친 짓거리를 할 걸 어찌 예상하겠나!”

   

   루시의 수상에 의혹을 제지하는 것은 분명 루시의 명성을 끌어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허나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건 수상을 결정한 파트란 공작가를 비난하는 것이었고.

   

   알른 가문에 시비를 거는 것이었으며.

   

   루시 알른에게 패배한 1왕자의 상처를 다시 한 번 끄집어내는 일이었으니까.

   

   정신이 나가고서는 선택하지 않을 수였으나 타볼은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게 기점이었지. 그 후로 내가 생각지도 않은 온갖 변수들이 튀어나오더군.”

   

   성녀의 개입. 1왕자의 움직임. 공작의 마법을 풀어낸 조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대는 이미 공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거겠지.”

   

   루시 알른이라는 신성이 지닌 빛은 진짜였다.

   

   자신을 향하는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당당함.

   

   거대한 위기가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재밌어졌다는 듯 웃는 그 기개.

   

   3왕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증언 속에서 증명된 압도적인 재능.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용병단장과 알른 영애의 대담이었어.”

   

   루시가 수많은 던전에 대한 지식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된 대담.

   

   공작 가문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많은 던전을 머리에 담고 있는 파트란 공작이지만 그 대담에서 튀어나오는 던전은 어느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공작이 들어본 적 없는 이름마저도 튀어나왔다.

   

   허나 루시는 그 모든 던전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뿐일까. 심지어 그녀는 그 모든 던전의 구조. 던전에서 출현하는 마물. 존재하는 함정. 공략법까지도 암기하고 있었다.

   

   던전 공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용병단장마저도 머리를 싸매야 겨우 떠올리는 내용들을 말이다!

   

   “중간에 용병단장이 오히려 조언을 구한 경우도 있었지?”

   “예. 그랬죠.”

   

   그런 식으로 공략하는 게 가능한 거냐며 경악하는 용병단장의 모습은 파티장에 있던 이들의 눈에 새겨졌다.

   

   “그녀는 위기 속에서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증명했네. 스스로가 지닌 능력과 가치를 말이야.”

   

   이전에 별은 밤하늘이란 장막에 숨어 스스로가 지닌 빛을 감추었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장막을 거두고 모습을 드러낸 별은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별을 흐리게 보일 정도로 밝은 빛을 내뿜었으니.

   

   그 발광을 보고 있던 많은 이들이 그 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리라.

   

   “딸 사랑이 결실을 맺었군. 베네딕. 축하하네.”

   “저희 딸의 칭찬은 감사드립니다. 파트란 공작. 허나 그것은 그것이고 이번 일은 이번 일이겠지요.”

   “음? 내 분명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나.”

   “어쨌든 제 딸을 일부러 위기에 몬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웃음으로 사람의 심장을 멎게 할 수 있을 듯한 베네딕의 표정에 파트란 공작은 다급히 루시를 위해 준비해 둔 여러 선물을 이야기하는 걸로 그 분노를 잠재웠다.

   

   다만 제프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제안은 칼같이 차단당했다.

   

   *

   

   어떻게든 연설을 회피하는 데 성공한 나는 당초의 계획대로 구석에 박혀 있을 생각이었다.

   

   당초의 계획대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이 시간을 넘기려 했지.

   

   안타깝게도 내 계획은 처음부터 박살이 나버렸다.

   

   여러 사람들이 굳이 구석까지 찾아와서는 내게 관심을 표한 것이다.

   

   “과거 베네딕 경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를 갚아보려 했는데 오히려 여러 정보만 받고 말았군요.”

   

   그 시작을 끊은 것은 발톱 용병단의 단장이었다.

   

   과거 용병단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베네딕이 도움을 주었단 말로 어미를 뗀 그는 후일 용병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이야기해달란 말과 함께 떠나가 버렸다.

   

   베네딕이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은혜가 크기는 했나봐. 자길 조무래기라고 부르는 데도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말야.

   

   발톱 용병단장이 별 문제 없이 대화를 끝마쳤단 사실이 기점이 된 것일까.

   

   그 뒤를 잇듯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1왕자의 미움을 샀을지도 모르는 내게 관심을 표하는 건 괴짜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이었으니까.

   

   이 중에서 후자는 메스가키 어투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버렸고 전자는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든 간에 제 할 말을 내뱉곤 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미와 예술의 신을 모시는 사도였다.

   

   “오오! 여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계시는 알른 영애시여! 제가 감히 말을 거는 것을 물어보는 것을 부탁받는 것을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이딴 소리를 지껄인 녀석은 얼빠 여우와 비슷한 부류였다.

   

   “저기 닥쳐줄래?♡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마저 역겨워서 토가 나올 것 같거든♡”

   “오오. 목소리마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니. 이 녀석은 얼빠 여우보다 더한 작자였다.

   

   대놓고 매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칭송할 때는 솔직히 기겁했어.

   

   게임 속에서도 나름 비중 있게 나오던 놈이라 정상과는 저만치 떨어져있는 놈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모니터 너머로 보는 거랑 실물로 보는 거에는 많은 차이가 있더라.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녀석의 목적이 내게 찝쩍대는 것이 아니란 거였다.

   

   미와 예술의 사도는 얼빠여우와는 다르게 자신에게 변태적인 행동을 해주길 바라지 않았다.

   

   그 대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내 미를 칭송해도 괜찮을 지에 대해 물을 뿐.

   

   정신 나간 변태와 길게 이야길 나누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충 허락을 해주고 녀석을 떠나보냈지.

   

   한 사람을 제외하면 무해했던 무리가 지나간 후에 다음으로 나를 찾아온 것은 정치적인 의도를 지닌 녀석이었다.

   

   스스로를 세르란 공작가의 사람이라 소개한 그는 말로는 이번 축제에서 보인 위용이 대단했다거나. 방금 전 타볼의 앞에서도 기개 있었던 모습이 대단했다거나. 아카데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으나 그 의도는 하나였다.

   

   자신의 무리에 날 끌어들이려는 것.

   

   이 남자는 처음 무리와는 다르게 상당히 질척거렸다.

   

   메스가키 스킬의 매도를 참고 견디면서까지 내게 달콤한 말을 속삭여댔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열이 받아서 얼굴이 시뻘개진 상태에서까지 날 회유하려하는 것이.

   

   허나 할배의 입장에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거라. 여아야. 네가 능력을 입증했음에도 넌 여전히 안에 품기엔 부담스러운 존재다. 그대의 적이 너무도 많거든.

   1왕자, 왕국 기사단장, 이 안에 머무는 여러 적의를 감당하려는 놈이 있겠느냐?

   이런 놈은 셋 중 하나지. 네가 적의를 감당할 가치가 있다 여겼거나. 적의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나. 아니면 적의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거나.>

   

   할배는 말했다. 주변에서 이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라고.

   

   한심함. 경멸. 비웃음. 그것들은 내게 향하던 것과 비슷한 종류였다.

   

   <저를 보아하니 이 놈은 후자인 듯 하구나.>

   ‘어떡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 뿐이니.>

   ‘쫓아낼 방법은 없어요?!’

   <그냥 꺼지라고 해도 괜찮다. 그래도 별 문제 없을 것이야.>

   

   그런 건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괜히 시간 낭비 했잖아요!

   

   작은 여자애한테 관심을 보이는 페도 변태에게 선사해 줄 매도를 준비하던 그 때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르란 사 공자. 제 친구에게 무슨 볼 일 이시죠?”

   

   조이는 얼굴을 가린 부채 너머로 직설적인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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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링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멋지게 위기를 빠져나온 루시의 모습이 멋있었을까요?
앞으로도 재밌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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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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