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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성녀, 아스트리아와의 약속을 나눈 후 크라슈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바깥은 여전히 수많은 학생이 자신의 단에 들어올 것을 알리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단이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단 하나.

     

   백양단.

     

   다름 아닌 3황녀 시그린 에파니아의 단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듯.

   시그린의 주가는 지금 최고조로 올라간 채 수많은 인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녀석이 최근에 한 게.’

     

   학생과 부교수 사이에 있었던 분란을 해결했다던가.

     

   제니칼렌 부교수 사건 이후 있었던 감정의 벽을 그녀가 해결했다는 모양이다.

     

   더불어 마도구 제작사 로나 임블라이즈 사건 때.

   그녀도 뒤늦게나마 신학관에 나타났었다.

     

   크림슨가든의 종인 타리아가 미레이 베아키스와 교전을 하는 것을 도운 것이다.

   시그린 덕분에 미레이 베아키스는 교수들이 한발 늦은 사이 무사히 정리했다.

     

   더불어 그 뒤에 난리가 난 신학관을 시그린은 적극적으로 수습했다.

   거기에 혹시 모를 부상자를 대비해 학생들을 직접 업어서 데려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신학관 학생들은 그런 그녀의 구호 활동에 크게 감동했다.

     

   ‘지랄하네.’

     

   크라슈는 순간 토가 쏠리는 기분에 입가를 가렸다.

     

   최근 들어 크라슈는 외부 활동이 잦다.

   반면에 외부 활동이 뜸해진 시그린은 내부 활동이 잦았다.

     

   시기적으로 2기생 중 유망주들을 자기 단에 흡수할 기회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일부러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내부 활동을 중점으로 움직인 것이다.

     

   크라슈는 혀 차는 소리를 내었다.

   하여튼, 이런 건 약삭빠르게 하는 여자다웠다.

     

   그렇게 백양단이 열심히 2기생들을 끌어들이는 사이.

   사자단은 반면에 홍보 자리에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자단은 백양단 못지않게 가입 지원자가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샬롯과 함께 크라슈가 있으니까.

     

   시그린의 주가는 분명 올랐다.

   그러나 그러한 시그린의 주가 보다도 더 큰 폭으로 오른 것이 크라슈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은 당연히 그가 속한 사자단을 같이 알렸고.

   그 결과 사자단에도 자연스럽게 2기생이 몰렸다.

     

   2기생의 중심점은 누가 뭐래도 크라슈였기 때문이다.

     

   ‘어쩐다.’

     

   크라슈는 단 자체에는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그야, 아무리 단으로 나뉘어 봤자.

   시간이 흐르면 뛰어난 놈들은 어련히 알아서 창공의 세대에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창공의 세대의 중심점이 되어 가장 앞서 나가는 것은 별개다.

   천추성이라도 별빛이 닿아야 존재를 알릴 수 있지 별빛조차 닿지 않으면 무의미했다.

     

   ‘특히 시그린 쪽으로 들어간 1기생 녀석들은 어떻게든 빼 오고 싶단 말이지.’

     

   크라슈가 그렇게 턱을 쓸던 찰나였다.

   크라슈는 복도 앞에 무언가 거대한 게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야, 고개를 뒤로 젖혀야 걸어오는 이의 머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야아! 드디어 다시 만났구마안!”

     

   그 순간 우렁찬 목소리가 복도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크라슈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잘 알았다.

     

   짙은 녹색의 눈동자.

   몸 위에 그려진 특유의 문신.

     

   프레아의 아이이자 후에 창공의 세대 출신이 될 이.

     

   투제(鬪帝)

   아르솔더 프레아

     

   어째선가 예전보다도 덩치가 더 커 보이는 녀석이 그곳에 있었다.

     

   “아르숄더.”

     

   크라슈와의 전투 이후, 수련하고자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더니.

   아무래도 그걸 끝마치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는 크라슈를 보자마자 옷 사이로 근육을 불끈불끈 보이며 씨익하니 미소를 그렸다.

     

   “크라슈, 나도 예전보다 더 강해졌는데. 다시 한판 해보자고.”

     

   확실히 녀석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

   녀석의 말마따나 수련을 한 보람이 있는 거겠지.

     

   “그래, 그럼.”

     

   그러나 미안하게도 이쪽은 그때보다도 한참 더 성장해버렸다.

     

   그 순간 크라슈의 인영이 흩뜨려졌다.

   아르숄더가 크라슈의 인영을 서둘러 쫓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크라슈의 주먹이 그의 배 바로 앞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견디면.”

     

   그 순간 크라슈의 몸 안쪽부터 무형의 기운이 솟아올랐다.

     

   사계에 의해 세계 침식의 힘마저 아우라로 통일된 그 순간.

   무형의 기운은 이제껏과는 궤를 달리하는 출력을 보였다.

     

   쿵!

     

   그리고 아르숄더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아르숄더의 몸이지만 크라슈의 주먹의 충격에 복도를 날았다.

     

   아르숄더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야, 크라슈의 모습이 안 보인 건 둘째치고, 그가 날린 주먹이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재룡락(災龍落)

   이식(二式)

   력(力)

     

   아우라를 오직 힘에만 집중시켰을 때 나오는 결과물이었다.

     

   아르숄더는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 하고자 몸을 비틀려 했다.

   그러나 크라슈의 주먹은 한 번의 타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쿵!

     

   그 순간 두 번째 타격이 아르숄더를 또 한 번 두드렸다.

   두 번째 타격은 아까보다도 훨씬 더 강력했다.

     

   촌경(寸勁).

     

   크라슈가 무척이나 자주 애용하던 비술이었다.

     

   “커헉!”

     

   연이어진 타격에 아르숄더가 침음을 내뱉었다.

   첫 번째 타격에서도 버티는 것이 아슬했는데 두 번째는 더했으니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쿠당탕!

     

   아르숄더가 낙법조차 하지 못하고, 거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워낙 커다란 몸이라서일까.

   그가 뒹구는 동안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곧이어 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눈에서는 전투의 광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흐, 흐흐, 겨, 견뎠다고.”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이내 흰색으로 까뒤집어짐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크라슈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말로 나름 설득해보겠으나 상대는 아르숄더다.

     

   주먹밖에 통하지 않는 녀석임을 알기에 크라슈는 자비 없이 그를 박살을 내놓은 것이었다.

   저 정도면 한동안 귀찮게 안 하겠지.

     

   그리 생각한 크라슈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아르숄더가 방금 나온 복도 앞.

   거기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크라슈는 천천히 눈초리를 날카롭게 띄웠다.

     

   누군가와 같은 긴 금발의 머리카락.

   그러나 그 누군가보다는 좀 더 여성적인 묘한 얼굴이 있는 중성적인 외모의 남성.

     

   ‘가짜 아서.’

     

   자신을 아서 그라말테라고 속여 라헬른 아카데미를 들어온 이였다.

   그리고 그는 분명 붉은 마녀, 아벨라와 이어져 있는 이이기도 했다.

     

   크라슈와 아서의 눈이 한동안 마주쳤다.

   그 마주침 속, 크라슈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천연덕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아서 그라말테랬나. 아르숄더 녀석이 저렇게 된 건 본인이 원해서였으니까. 괜히 내 탓이라고 하지 마라.”

     

   크라슈와 가짜 아서는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다른 특급반 아이들과는 나름대로 연을 쌓은 크라슈였으나 가짜 아서는 특급반에 속했음에도 주로 혼자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크라슈가 아는 거라곤 가짜 아서가 사자단의 가입 권유를 보류해뒀다는 것뿐.

     

   그러니 크라슈가 최대한 의문스레 가짜 아서를 응시하고 있자 그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예전에 비해 훨씬 강해졌군.”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다.

     

   “어, 일이 많았거든.”

     

   그러니 크라슈도 최대한 의미심장하게 던져줬다.

   가짜 아서로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계가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전이라고 언급하기에는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냐?”

     

   크라슈는 뭘 안다고 지껄이냐며 도발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래, 친한 사이는 아니지.”

     

   그리고 가짜 아서 쪽도 순순히 동의했다.

     

   어느샌가 가짜 아서는 크라슈의 앞에 도착했다.

   크라슈와 가짜 아서의 눈이 마주쳤다.

     

   크라슈는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짜 아서는 진짜 아서만큼이나 눈에 담긴 의미를 읽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서는 비밀이 많은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신기하긴 하더군. 네가 아우라를 사용하는 때가 올 줄이야.”

     

   다음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는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려던 걸 멈췄다.

   크라슈의 얼굴에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가짜 아서의 얼굴은 변함없었다.

     

   “하긴, 세계 침식의 힘만으로는 부족했겠지. 그때의 너도, 지금의 너도.”

     

   그리고 다음 말만큼은 크라슈를 깊숙하게 찔러 왔다.

   크라슈는 표정이 굳으려는 걸 애써 버텼다.

     

   그때의 너도, 지금의 너도.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가짜 아서는 지금 이리 말하고 있었다.

   수많은 회차 속, 크라슈는 극혈침독을 익혀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룬 적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힘을 얻은 크라슈는 분명히 세계 멸망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서가 회귀를 했다는 건.

   분명 그 회차 속의 크라슈는 결국 멸망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소리였다.

     

   ‘헛소리 마.’

     

   그러나 크라슈의 마음속은 그 사실을 순식간에 부정했다.

     

   크라슈가 만나온 회차의 아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 후드로 인해 회귀가 빼앗겨 버린 아서는 멸망한 세계에서 죽었으니까.

     

   그러니 눈앞에 있는 이놈은 지금 자신을 떠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크라슈가 회귀자인지 아닌지.

   아벨라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크라슈의 내면을 후벼 파보려는 속셈밖에 없었다.

     

   같잖다.

     

   가짜 아서로 이러는 이유는 일부러 크라슈의 성깔을 건드리기 위함이었겠지.

     

   “야.”

     

   그러니 크라슈는 아벨라가 잘 아는 성깔대로 행동해 주기로 했다.

     

   “아까부터 뭔 자꾸 개소리를 처해?”

     

   화르륵!

     

   그 순간 크라슈의 몸에서 흑염이 일어났다.

   사계가 아우라를 세계 침식의 힘으로 치환한 결과,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흑염은 예전보다도 더 거센 열기를 보였다.

     

   이 세상에 크라슈가 아는 아서는 없다.

   그것만큼은 크라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뒤지기 싫으면 시비 그만 걸고 꺼져. 아니면 저 녀석이랑 똑같은 꼴로 만들어 줄 테니까.”

     

   크라슈가 뻗어 있는 아르숄더를 가리키며 경고했다.

     

   고작해야 가짜 아서 따위가 넘보려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가짜 아서는 아르숄더 쪽을 힐끗 보더니 순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후에 사자단에서 보지.”

     

   그리고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가짜 아서는 떠나갔다.

     

   [ 꽤 당했구나. ]

     

   크림슨가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크라슈는 한차례 혀를 찼다.

   기분 나쁜 감정만 잔뜩 남기고, 가짜 아서가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 어쩔 속셈이냐. ]

     

   크림슨가든의 까마귀가 어느새 열린 창문 쪽에 내려앉았다.

   크라슈는 그 방향을 바라보며 변함없는 사실을 내뱉었다.

     

   “정보를 뜯는 건 저쪽만 하는 게 아니야.”

     

   놈은 사자단에 들어오겠다고 했다.

   그 말부터가 이미 일종의 선전포고와 같았다.

     

   그렇다면 와라.

   아주 탈탈 털어서 아벨라 녀석이 무슨 꿍꿍이인지까지 다 털어내줄 테니까.

     

   크라슈가 몸을 돌려 복도 저편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짜 아서가 나아간 방향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길은 오래전부터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나간 복도 위.

   기절한 아르숄더만이 쓸쓸히 복도의 먼지 속을 뒹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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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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