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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EP.209

     

   나는 메시지를 받은 이후, 동굴을 기점으로 16층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동굴 내부에는 딱히 특별하다고 할 만한 장치나 요소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순수하게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안전한 장소’ 정도의 의미가 있었을 뿐, 이곳은 공간마저 적당히 좁은 평범한 동굴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안전한 베이스캠프가 마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조금 더 아늑한 공간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것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공수해 오면 되는 일이니 그게 걱정될 것은 없었다.

     

   동굴의 탐색을 마친 나는 출구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동굴 내부가 좁은 만큼 출구를 찾는 일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고 나는 어마어마한 양의 덤불을 헤치며 빛이 들어오는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와우?”

     

   은밀한 공간.

     

   동굴을 빠져나온 내가 본 것은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듯한 아름다움을 가진 고아한 숲속이었다.

     

   덤불 너머에는 작은 폭포가 흐르고 있었다.

   덤불이 이곳에 근접한 존재들의 시야를 가리는 용도라면 폭포는 동굴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원천 차단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덤불이 폭포 소리를 줄여주고 있었구나.”

     

   이 정도면 거의 탑이 나를 위해 마련한 맞춤형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무협지에 나올 법한 은거기인이 거주하거나 폐관 수련을 위해 사람들이 찾는 신비로운 장소.

     

   주변에는 처음 보는 종류의 꽃이 다양하게 피어 있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풀이 스치는 자박한 소리가 기분을 평화롭게 만들었고 나는 그 나쁘지 않은 감각에 이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갔다.

     

   사박.

   사박.

     

   나는 마치 설계된 계단처럼 적당한 높이로 정리된 바위를 하나씩 밟아가며 폭포가 있던 베이스캠프에서 벗어났다.

     

   ‘섬멸’이라는 주제로 임무를 받은 게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여유를 즐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가야 하는 길은 결국 피로 점철된 가시밭길이었으니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휘이잉-

     

   “……”

     

   그렇게 도달한 곳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그 아래로 날개가 달린 짐승들이 먹이를 찾으려 공중을 배회하고 있었고 그 너머의 장소에는 거대한 탑들이 마치 세상을 지배하듯 수많은 성과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나, 둘…… 수를 보니 성좌들의 머릿수랑 관련이 있는 것 같네.’

     

   한 채만 있어도 위압감이 느껴질 법한 거대한 건축물이 열 채가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절벽 아래로 내려갈 길을 찾기로 했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끝날 임무가 아닌 이상, 주변 지리 정도는 익힐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확실한가?”

     

   김시인을 적대하는 성좌들이 모인 만신회의.

     

   거대한 원탁에 모여 앉아 백요의 설명을 듣고 있던, 거구의 남자가 무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중원 무림인의 흑의를 입은 남자의 물음에 백요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허나 그의 눈빛이 두렵다고 가만히 입을 다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위압감은 둘째치더라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잘 아는 백요였기에 그는 자신이 긴장했다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며 말을 이었다.

     

   “내,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그 눈빛이며 기세로 봐서는 지금쯤 16층에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니까?”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가 16층을 재도전했다라……”

     

   흑의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원탁에 앉은 인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전설이나 신화 따위에 나오는 요괴들로 구성된 성좌들의 집단.

     

   만신전 성좌들의 전투력을 믿지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시인이라는 존재의 의외성은 튜토리얼에서부터 충분히 봐 왔기에 어느 정도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놈의 상태는 어떻던가?”

   “그……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녀석은 봉인이 풀려 있던 상태였어. 나는 분명 봉인을 건드린 걸 느끼고 찾아갔던 건데. 김시인이 둘이었단 말이야.”

     

   “같은 존재가 둘이었다?”

     

   백요의 말을 들은 흑의의 남자가 고개를 까딱이며 흥미롭다는 듯 반응했다.

     

   “다른 시간선의 존재로군.”

   “응? 혼돈. 뭐라고 했어?”

     

   “흔하지는 않지만 탑에서 간혹 볼 수 있는 경우다. 모든 세상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탑의 오류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흑의의 남자, 혼돈이라 불린 그들의 대표는 자신이 탑을 처음 오르게 되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탑에 도전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탑이 만들어 낸 존재. 어쩌면 다른 세상에서 소환된 것일지도 모르는 존재.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플레이어라 불리는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던 자신과 어느 순간 탑을 오를 자격을 얻어 이 세상에 진입한 자신의 상황이었다.

     

   ‘튜토리얼 더미라 불렸던가.’

     

   처음에 그는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탑을 오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격을 얻어 ‘혼돈’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요괴라 불리며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요괴, 흉수, 괴물 등.

     

   그들이 성좌가 되는 과정은 이러했지만 자신의 첫 탄생을 떠올릴 만큼 높은 격을 쌓은 존재는 만신전에서는 ‘혼돈’이 유일했다.

     

   “도깨비. 지금 정찰 상황은 어떻지?”

     

   혼돈의 물음에 침입자의 수색을 담당하던 쌍둥이 도깨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돈을 바라본다.

     

   “나한테 물은 거야?”“나한테 물은 거야?”

   “누구든.”

     

   “만신전 너머에 북벽까지 부하들을 보내놨어!”

   “날 줄 아는 놈들로 보내놨으니 그 근처에서 소환됐으면 소식은 금방 올 걸?”

     

   이매와 망량.

     

   기존에는 네 쌍둥이의 도깨비였으나 탑을 오르는 과정에서 둘이 죽고 둘만 남게 된 그들.

     

   하나가 죽을 때마다 형제의 힘과 이름을 이어받은 그들은 이곳에서 서열 2위라 불릴 정도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저 호승심 강한 놈들이 고분고분한 것도 신기하단 말이지…’

     

   백요가 그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침음했다.

     

   도깨비라는 특성상 그들은 자신들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았다.

   상대와 싸워 패배하기 전에는 결코 상대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저 둘을 명령하는 혼돈이 얼마나 강한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계속해라. 그리고 김시인을 발견하는 즉시 나에게 보고해라.”

   “알겠어! 근데 만나면 내가 먼저 싸워 보면 안 될까?”

   “백요 꼬리가 하나 떨어진 걸 보니 그 녀석한테 한 번 죽었던 모양인데! 나도 궁금해!”

     

   그들의 말을 들은 백요가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인상을 찌푸린다.

     

   “닥쳐. 다음에는 내가 죽여 버릴 수 있으니까.”

     

   자신의 힘을 꼬리의 마력으로 제어하고 있던 그.

   꼬리가 잘릴 때마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었지만 스스로가 통제되지 않으니 조심하던 것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 하나를 잃을 줄은 몰랐다.

     

   “에이! 한 번 졌으면 그냥 진 거지!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

   “그래! 강자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재밌는 일이지. 하핫!”

   “이 새끼들이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냐? 한 번 해보자는 거지?”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다른 요괴들은 만신전 내에서 다시 서열 정리가 되는 거냐며 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지만 대표인 혼돈은 그들의 싸움을 그저 즐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만.”

     

   뚝.

     

   그의 한마디에 낄낄거리던 요괴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가벼운 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김시인이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그들 모두에게 악재였다.

     

   이 넓은 탑에서 김시인의 16층이 만신전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인연이든 악연이든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뜻했다.

     

   그리고 튜토리얼에서부터 탑을 오르던 플레이어들.

   특히 지구라는 좌표를 장난감마냥 유희 거리로 삼았던 그들이었기에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강해지는 것이 썩 유쾌한 소식은 아니었다.

     

   “일단 우리의 목표는 김시인을 찾는 거다. 그리고 놈을 발견하면 만신전에 보고하도록. 만약 싸워야 한다면 최대한 큰 소리로 싸워서 위치를 알려도 좋다.”

     

   혼돈의 말에 만신전의 성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응답했다.

   하지만 그때, 그들 중 하나가 손을 들었고 이곳의 모두가 바라고 있던 하나의 요청을 올렸다.

     

   “혹시 필요하면 본체로 돌아가도 됩니까?”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거대한 괴물이었던 그들.

   탑을 오르며 협력이 필요해진 그들에게, 이성이 날아가고 본성만이 남게 되는 본체로의 변신은 함부로 행해서는 안 될 하나의 불문율이었다.

     

   “필요하다면. 하지만 이성을 되찾지 못하면 내가 직접 목을 쳐주지.”

   “하핫!”

     

   그의 대답에 요괴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만신전의 혼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탑을 오른 이후로 억제된 삶을 살던 몇몇 요괴에게 있어 자유는 목숨과도 바꿀만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여…… 너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혼돈은 단신으로 만신전과 맞서 싸웠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번만큼은 그의 목숨을 확실히 거둘 것이라 다짐하며.

     

   ***

     

   내가 처음 발을 들인 곳은 탑과 그나마 근접한 외곽의 한 마을이었다.

     

   나의 임무는 적들을 섬멸하거나 그들의 항복을 받아 내는 것.

   하지만 16층의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나마 대표가 있을 법한 탑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웬걸.

     

   ‘……너무 평화로운데?’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까 고민하고 숨어든 마을에는 위협은커녕 이종족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그저 땅을 일구며 조용히 마을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적들이 요괴라는 설명이 있었기에 굳이 아침에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하게 된 마을은 일에 치여 살던 서울과 비교해도 평화로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변방의 시골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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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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