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9

    <209 – 바꿔치기>

     

    적성평가모자가 오크노디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꼬맹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더 빡빡 닦아요!”

    “이미 바닥에서 광이 날 정도로 닦았다만.”

     

    오크노디는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손가락을 들었다.

     

    “하기 싫으면 말만 해요. 바로 브론즈 교수님네 박스에 돌려보내줄 테니깐!”

    “그, 그것만은 제발 봐줬으면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통을 받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러게 누가 귀한 재료로 낙서나 그리고 놀래요? 소중한 스탯석까지 건드리려고 들고. 모자씨가 사람이었으면 정말 혼쭐을 냈을 거라고요.”

     

    적성평가모자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 혼자만 한 것도 아닌데.

    마나석을 나눠 갖기로 했던 공범도 있다고!

    지 혼자 입 꾹 다물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공범, 응애 만드라고라를 돌아보았다.

    꽃병 속에서 빙글빙글 회오리를 일으키며 놀고 있던 만드라고라가 뭘 보냐고 툭 쏘아붙였다.

     

    “응애.”

    ‘옘병할 녀석.’

     

    적성평가모자가 속으로 흉을 보는 사이, 오크노디도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자는 점점 불안해졌다.

    저 아이, 수다스러운 성격 아니었나?

    전에 강의시간에 봤을 때는 참 밝고 말도 많고 그랬었는데.

    오늘은 딴 사람처럼 조용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너무 무서웠다.

     

    “유리창도 닦아줄까?”

    “아뇨. 그보다 여기 방석 위에 잠깐 앉아보세요.”

     

    올 것이 왔구나.

    가시방석에 앉는 기분으로 착석하는 적성평가모자.

    오크노디가 입을 열었다.

     

    “모자씨가 열심히 청소를 하는 동안 앞으로의 처우를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해봤는데요.”

    “선처 좀 해줄 수 있겠나?”

    “그게 참 귀찮게 됐어요. 모자씨는 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참 많잖아요.”

    “사, 상태창과 기능창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네. 내가 뭘 봤는지도 다 알려주지 않았나.”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해요. 상태창을 열람하는데 드는 1만 포인트 만큼은요.”

     

    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제 내가 손댄 재료값이…”

    “1200포인트어치네요!”

    “휴우.”

     

    8800포인트 어치만큼 목숨에 여유가 남았구나.

    안도도 잠시.

    그 구체적인 수치에 소름이 돋았다.

     

    ‘이 꼬맹이, 물품의 가치를 전부 감별하고 있다고?’

     

    괜히 암흑상인을 친구로 두고 의적에게서 안목키우기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근데 같은 일이 또 일어나고 그럴까봐 이대로 두기엔 막 찝찝하고 그러잖아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하겠네.”

    “신언에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에고아이템 따위한테 신언은 무슨 얼어죽을 신언인가? 신들이 받아주지도 않을 텐데.”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저 몰래 어딘가에 ‘통신’하는 것도 찝찝하고, 상태창은 또 유용하니까. 죽이기도 남 주기도 그러면 처분을 하는 수밖에.”

    “처, 처분!? 설마 그 악마적인 상자를 수제작이라도 해서 날 집어넣을 작정인가…!”

     

    피식. 오크노디가 재미난 농담을 들었다는 것처럼 가볍게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하, 하하. 역시 농담이었지?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네. 착한아이는 그런 짓은 안 하지.”

    “조금 깃들어있는 장소가 달라질 뿐이에요.”

     

    로프를 들고는 칭칭 모자를 묶는 오크노디.

    싸함을 느낀 모자가 발버둥을 쳤지만 브론즈 교수도 공인한 전투력 밑바닥의 모자 따위가 거친 포박을 피할 수는 없었다.

     

    “놔, 놔라! 내게 무슨 짓을 할 셈이냐!”

    “그리 겁먹지 마요. 아프지는 않으니까.”

     

    슥삭슥삭 익숙한 손놀림으로 잉크를 이용해서 벽면에 마법진을 그리는 오크노디.

     

    고작 1학년 따위가 마법진을 그려봤자 얼마나 그리겠냐고 마음의 위안이라도 삼으려던 태도는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마법진에 절망으로 뒤집혔다.

     

    ‘뭐, 뭐냐 이 속도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재능’.

    무에서 유를 바로 창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배움이 있어야 응용도 있는 것이 정상이거늘.

    어찌 마법진은 배운 적도 없을 1학년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속도의 마법진생성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있어. 잠깐이기는 해도 분명히 저 꼬맹이가 학습할만한 마법진이 딱 하나 있다고.’

     

    재능감별모자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 마법진은… 내가 그렸던 마법진!!’

     

    재단의 비상연락망과 통신을 하기 위해 만들었던 마법진을 오크노디는 물끄러미 지켜봤었다.

    시간은 짧다.

    길어야 1분.

    암기조차도 벅찼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완벽한 마법진을 그린다는 것은…

     

    ‘마법진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이해한 건가!?’

     

    단순한 이해가 아니다.

    비교대상이 되는 마법진을 머릿속에 새겨놓고 끊임없이 분리 재조합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마법진을 수백 수천 장을 펼쳐내야 가능한 재주다.

    천재라는 이름은 이렇게까지 두려운 것이었나?

    그런 게 정녕 인간에게 가능한 일인가?

    눈으로 보고도 머리로 온전히 실감하지 못했던 천재라는 이름의 무거움이 비로소 실감된다.

     

    “짜잔. 완성!”

    “그런데… 그 마법진이 어디에 쓰는 마법진인가?”

    “정신교환 마법진!”

    “정신… 뭐?”

    “안에 들어가면 꼭 반성해야 해요. 알았죠?”

    “아니… 정신교환은 대상이 없으면 펼칠 수가 없는 마법진인데? 양면작용이라니, 이대로라면 멀쩡한 벽에다가 교환을 걸고 끝나지 않는가!”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교환대상이 여기 안에 있거든요.”

     

    마법진에 달칵 들어가는 스탯석.

    능력치 하나가 영구적으로 상승할 정도로 강한 마나가 담긴 스탯석이 동력원이 되어 마법진을 본격적으로 가동시켰다.

    파아앗

    눈부신 빛과 함께 정신이 뽑혀나간다.

    속수무책으로 정신이 모자에서 딸려나옴을 느낀 직후, 모자는 자신의 시야가 급격히 넓어지고 몸은 극도로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이, 이건!? 벽 속이잖아!!”

     

    그와 동시에 그가 오래도록 깃들었던 모자는 슬며시 눈을 뜨더니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었다.

     

    에고아이템, 어둠의 적성평가모자.

    에고아이템, 대답하는 문.

     

    두 에고아이템의 자아가 서로 교환되는 순간이었다.

     

     

    * *

     

     

    근심걱정만 안겨주는 모자씨와 달리, 대답하는 문은 중간고사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시험방식이나 출제범위를 알려준 것이 고마워서 꺼내드렸어요!”

    “나, 기뻐… 평생을 육신도 지니지 못하고 건물 벽이나 넘나들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 문은 쉽게 꺼내주면 안 된다.

    시험문제를 알려주는 유익한 도구이니 1학년 내내 알차게 써먹어야 한다는 점이 주 이유이긴 한데.

    다른 이유도 있다.

    어느 부분에서든 툭 튀어나오는 억까패턴이 문에도 달려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문에 깃든 에고는 불운한 사고로 인해 벽에 갇힌 재학생이다.

    이것이 억까를 당하면 봉인된 악마로 정체성이 180도 뒤집힌다.

    불쌍하다고 꺼내줬더니 제 손으로 악마를 풀어준 셈이 되는 것이다.

     

    ‘근데 머 나야 암흑마나가 많으니까 오히려 좋지!’

     

    암흑마나는 더 많이 지닌 존재가 더 적게 지닌 존재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벽 안에 갇혀서 마나도 못 모으고 쩔쩔 매던 악마 따위는 오히려 수족처럼 부려먹는다.

     

    “많이 힘들었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앞으로는 제가 있는 곳이라면 같이 다닐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

    “근데 저는 왜 도와주셨던 거예요? 원래는 헤스티아랑 더 친하셨잖아요.”

     

    2대 모자씨는 능글맞은 아저씨의 목소리를 지닌 1대 모자씨와 달리, 조심스럽고 차분한 톤의 여자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숙사의 다른 학생들이 오크노디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들을 엿들었어.”

    “저에 대해서요?”

    “재단이 아이를 어떤 식으로 학대하며 길렀을 지에 대한 정황증거. 기분 나쁜 아이라며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던 뒷담. 그런 것들.”

    “흥. 약한 것들이 하는 소리는 듣지 마요.”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오크노디는 정말 강하네… 나라면 울어버렸을 텐데.”

    “운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렇지. 그걸 알았다면 학생시절의 나도 벽에 갇히지 않고 아카데미를 졸업할 수 있었을 텐데…”

     

    오. 이번 <대답하는 벽>의 거주민은 학생이었나보다.

    가장 범용적이고 안전한 확률이 당첨됐다.

     

    “도움을 받아 방금 막 빠져나온 처지에 조금은 염치없게 들리겠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말해보세요.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도와드릴 용의는 충분히 있어요! 저도 모자씨의 도움으로 상태창이 보고 싶을 때 자유롭게 보고 싶으니까요.”

    “내일 두 번째 보호자 면회가 있어. 면회장에 날 같이 데려가줘.”

    “앞으로는 모자를 계속 쓰고 다닐 생각이었으니 상관없기는 한데… 왜요?”

     

    혹시 탈출시도라도 하려는 건가?

    그건 좀 곤란한데.

     

    “알아보고 싶어서. 재단의 사람들이 소문처럼 그렇게 끔찍한 존재들인지 아닌지.”

     

    탈출은 무슨, 도와줄 생각뿐이었네.

    나쁜 생각부터 떠올린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좋아요! 근데 조나가 보면 달라진 걸 눈치 챌지 모르니까 소리는 내지 말아주세요.”

    “그럴게. 목적은 의사소통이 아니라 재단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