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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집합시간 아침 7시가 가까워지자 모든 나아아 참가자들은 새벽 바람을 뚫고 세트장으로 향했다.

         

       “하아아암….”

         

       “졸려….”

         

       다들 어제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각자 하품을 하며 터덜터덜 걸었다.

         

       나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컨디션이 괜찮았다.

         

       평소 학교와 알바, 집안일을 병행하며 신데렐라 수련법을 혹독하게 거친 내 체력 스탯은….

         

       (체력 : 93)

         

       무려 93이었으니까.

         

       그에 반해 내 옆의 서유진은 체력이 무척 약한 편인지 끙끙 앓으며 겨우 길을 걸었다.

         

       궁금하여 상태창으로 살펴 보니 그녀의 체력 스탯은….

         

       (체력 : 12)

       

       …아주 처참한 수준이었다.

         

       ‘…저거 올리기 전 내 가창력 스탯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서유진의 체력 스탯이 얼마나 쓰레기 수준인지 실감이 나서 안타까웠다.

         

       “으으으…, 여긴 어디….”

         

       그런 그녀가 비몽사몽하여 방향감각도 잃은 채 이상한 곳으로 가려 하자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런가.

         

       어제는 앙칼진 고양이나 다름없었던 그녀가 오늘은 제법 온순….

         

       “근데 누구세…, ………!!”

         

       찌릿!

         

       …한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자마자 눈을 부라렷다.

         

       물론 졸린 눈으로 째려봐봤자 아무런 타격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익, 이이익!”

         

       “…하악질 하지 말고 그냥 따라오기나 하세요. 옆에 있는 논두렁에 밀어 버리기 전에.”

         

       이것은 물론 카메라도 없어서 농담조로 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서유진은 거짓말처럼 눈을 깔고 잠자코 내 뒤를 따랐다.

         

       겁이 난 듯 표정에는 두려움이 만연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오히려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이유 없이 나를 적대시하는 게 짜증이 나면서도 저렇게 속이 훤히 드러나는 모습을 보이면 뭔가 귀엽달까.

         

       그렇게 내가 피식 웃으며 서유진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그때였다.

         

       “언니-! 예린 언니!”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멍-! 멍멍!!

         

       …박유정이 정말 개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언니-!!”

         

       “…어, 그래, 유정아.”

         

       이 아침에도 힘이 넘치는지 내게 달려와 와락 안아 버리는 박유정.

         

       ‘그러고 보니 내 Mbti 첫 번째가 I였지…. 그것도 극I….’

         

       그에 반해 박유정은 극E인 게 분명했다. 고작 하루 만난 사이에 이렇게까지 친화력을 내뿜을 수 있는 걸 보면.

         

       “다시 만나서 다행이에요! 저는 또 오늘 하루종일 언니 못 만나면 어떡하나 했는데!”

         

       “그래, 나도 다시 만나서 좋네.”

         

       온몸으로 나를 끌어안는 그녀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제 하루종일 같이 있어서 그런가 박유정에게 정이 제법 쌓였으니까.

         

       박유정 생긴 게 워낙 강아지 같아 귀엽기도 했다.

         

       이에 나는 나를 안는 그녀를 받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헤헤…, 음?”

         

       박유정은 내 쓰다듬을 받다가 내 왼손이 서유진을 붙잡고 있는 걸 보곤 흠칫했다.

         

       “언니, 저분은…?”

         

       “아, 워낙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손 좀 잡아 주고 있었어.”

         

       “…….”

         

       내 말을 듣자 박유정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어제 서유진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었지.

         

       “…그랬군요.”

         

       그래도 박유정은 금방 다시 표정을 바로 하고 서유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레비 엔터에서 온 박유정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정말 전부터 느낀 건데 박유정의 해맑은 미소는 사람 간의 벽을 허무는데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원래 곁을 쉽게 주는 타입이 아닌데 그녀의 미소에 마음을 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유진은 내 생각보다 더 강적이었는지….

         

       “흥.”

         

       “…….”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는 그 순간 보았다.

         

       서유진의 눈이 박유정의 옷에 붙은 E라는 등급으로 향한 것을.

         

       아무래도 그녀는 박유정의 등급이 낮은 것을 보고 그녀를 무시하기로 했나보다.

         

       ‘정말 한결 같이 싸가지 없네.’

         

       하지만 박유정은 서유진의 이런 태도에도….

         

       “하하-! 쑥스러움이 많으신 분이네요!”

         

       너스레를 한 번 떨고는 그대로 아하하 웃어 넘겨 버렸다.

         

       …정말 어마어마한 강철멘탈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둘이서만 손잡으니 질투 나네요. 저도 잡을래요!”

         

       “…앗.”

         

       박유정은 그리 말하며 비어 있는 내 오른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

         

       서유진은 졸린 눈으로 그 모습을 노려보다가 마치 무언가를 뺏기기 싫은 어린아이처럼….

         

       꾸욱.

         

       …조금 아플 정도로 내 손을 강하게 쥐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오히려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얘네 지금 나 사이에 두고 뭐 하냐….’

         

       양쪽에서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끌고 가려는 게 줄다리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휘둘리는 동안 뭔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왠지…, 전생과 현생 통틀어서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동생이 생긴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는 왼손에는 고양이 오른손에는 강아지를 쥔 채로 세트장으로 향했다.

         

       양손에 둘 다 무언가를 쥐고 있어서 그런가 새벽바람을 맞아도 아침이 그리 춥지는 않았다.

         

       지잉-.

         

         

         

         

       **

         

         

         

         

       도착한 세트장에는 나아아 메인MC 한시우와 함께 거대한 스크린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메인 PD가 촬영 시작 사인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한시우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어젯밤은 잘 주무셨는지요?”

         

       “네-!!”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일주일간 연습할 나의 아이돌 아카데미아 테마곡을 공개하겠습니다.”

         

       파앗-!

         

       한시우가 신호하는 것과 동시에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스크린 안에서는 댄서들이 안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잘 봐두십시오, 나아아 테마곡 <We are dreaming idol!>입니다.”

         

       나아아를 직접 보지 않아도 이 노래는 알았다. 나아아는 대한민국에 큰 열풍을 일으킨 프로그램이었으니까.

         

       길거리를 걷다 보면 늘상 한두 번씩 나오는데 모를 리 없었다.

         

         

       -우린 항상 꿈을 꿔.

         

         

       여느 걸그룹의 평균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 난이도의 노래.

         

       하지만 안무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처음 도입부는 대중성을 살린 건지 아니면 낮은 등급의 참가자들을 배려한 것인지 안무 난이도가 높지 않았다.

         

       그런데….

         

         

       -We are dreaming!

         

       -네가 우리를 본 순간.

         

       -우리는 눈을 떠!

         

         

       “…엇?”

         

       “……흐음.”

         

       다음 순간 스크린을 보던 참가자들이 침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센터만 안무가 바뀌었다…?’

         

       그것도 상당히 난해해서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저렇게 되면…, 센터에 들어갈 참가자들에게는 굉장히 높은 수준이 요구될 것이다.

         

       100명의 참가자들 중 센터는 당연히 A등급 연습생들로 이뤄질 터.

         

       ‘A등급은 아무나 안 올리겠다 이건가?’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대부분 B등급 연습생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나는 두껍고도 두꺼운 A의 벽을 어렵게 뚫어내야 할 그들을 보며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B등급 연습생들이 A로 넘어오지 못한다는 것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

       

         

         

         

       테마곡 소개가 끝나고 연습생들은 각자 등급에 따라 맞춤 클래스로 이동했다.

         

       F등급은 F클래스로, B등급은 B클래스로.

         

       당연히 나는 A등급이니 A클래스로 갔다.

         

       그리고….

         

       “예린아, 정신 안 차릴래?”

         

       …지옥이 시작되었다.

         

       “예린아, 이 부분 다시 한번 불러봐.”

         

       보컬 트레이너가 집은 부분은 후렴으로 넘어가는 브릿지 부분이었다.

         

       “…나를 지켜봐 줘-!”

         

       “아니지, 아니야! 하아…, 설아, 네가 한번 해볼래?”

         

       이 지옥의 이름은 이른바 비교 지옥이었다.

         

       “나를 지켜봐 줘-!!!”

         

       “그렇지! 여기서는 이렇게 설이처럼 확 지르면서 극적인 느낌을 줘야 된다니까?”

         

       “…죄송합니다.”

         

       A클래스의 문제점은 바로 나와 유 설 단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밖에 없으니 트레이너들은 당연히 우리 둘을 비교해서 볼 수 밖에.

         

       물론 춤 스탯은 내가 유 설보다 조금 높았기에 기교와 경험이 떨어진다는 점 외에는 그녀에게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가창력이었다.

         

       아무리 스탯을 올렸다고 하지만…, 내 가창력은 65다.

         

       그리고 유 설의 가창력은 99.

         

       가창력 65가 낮은 스탯은 아니지만 유 설과 비교하니 하늘과 땅 차이처럼 느껴졌다.

         

       근데 사실 이것도 처음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트레이너들도 내 가창력과 유 설의 가창력 간의 차이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예린아, 이 부분에서 박자가 반박자 빨랐던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아. 우리 다시 한번 해볼까?’

         

       처음에는 나와 유 설의 가창력을 비교하지 않고 내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김예솔 트레이너 님. 잠시 보시죠.’

         

       갑자기 메인PD가 보컬 트레이너를 밖으로 따로 데리고 가 이야기를 나눈 후….

         

       ‘…예린아. 쌤 말 이해 못 하겠어? 설이처럼 하라고! 설이처럼!’

         

       갑자기 나와 유 설을 비교하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제작진 놈들.

         

       이대로 순탄하게 흘러가면 방송으로 쓸 게 없으니 나와 유 설을 비교하라는 주문을 한 게 틀림없었다.

         

       “하아…, 조금 쉬었다 하자.”

         

       보컬 트레이너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내게 미안하다는 듯한 기색의 눈빛을 한 번 보내고 밖으로 나갔다.

         

       지잉-.

         

       카메라는 나와 유 설 둘밖에 남지 않는 연습실을 찍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 설이 내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아….”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쌤도 분명 잘되길 바라고 하는 소리일 테니….”

         

       “감사합니다.”

         

       유 설이 힘내자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말했다.

         

       “저희 쌤이 오기 전에 같이 연습 좀 더 할까요? 브릿지 부분이 어려우셨죠? 제가….”

         

       그때였다.

         

       “잠시 테이프 좀 갈고 하겠습니다.”

         

       제작진이 카메라를 내리자 유 설도 당연하다는 듯 몸을 뒤로 뺐다.

         

       “…….”

         

       A클래스가 힘든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유 설.

         

       이 사람 앞과 뒤가 너무 다르다.

         

       카메라가 돌 때 안 돌 때 사람이 확 달라지는 것이었다.

         

       지금도…, 내게 브릿지를 가르쳐 준다 할 땐 언제고 카메라를 내리니 바로 몸을 뒤로 물리지 않는가.

         

       “……하.”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따질 수 없었다.

       

       괜히 말싸움 했다가 혹여 그 모습이 찍히기라도 하면 곧바로 방송에 내보내져 몰매를 맞을 테니까.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트레이너의 비교, 제작진의 억까, 유 설의 차가움 속에서….

         

       그저 다른 A등급 연습생이 탄생하기를 기다리는 것뿐.

         

       ‘서유진이어도 좋으니 제발….’

         

       매 순간 틱틱대고 까칠한 서유진이어도 괜찮으니 제발 다른 A등급 연습생이 와달라고 나는 빌었다.

         

       그리고 이런 내 기도가 닿은 걸까.

         

       “여러분, 새로운 A등급 연습생이 탄생했습니다.”

         

       “……!”

         

       제작진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새로운 A등급의 탄생을 알렸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리고 새로운 A등급이 누군지 본 나는….

         

       “……엇.”

         

       …그대로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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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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