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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이름?”

       “우응!”

       

       해츨링은 두 손을 꼭 그러모아 쥐었다. 

       내가 안 된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한 듯, 불안한 손을 맞댄 채 작게 꼼지락대고 있었다. 

       

       나는 그런 해츨링의 머리 위에 손을 툭 얹었다. 

       

       “뀨우.”

       

       그리고 부드럽게 머리에서 귀까지 쓸어 준 뒤, 그대로 손을 얹은 채 잠시 입을 다물었다.

       

       “…….”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지어 줄게, 이름.”

       “와아아! 지짜?”

       “그럼, 진짜지.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앉아서 생각해 볼까?”

       “우응! 난 레온이 지어 주는 거면 다 조아!”

       

       해츨링은 정말 기쁜지 내 주변을 돌며 풀숲 위에서 방방 뛰다가, 금방 지쳐 주저앉은 뒤에도 연신 꼬리로 땅을 톡톡 두드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좋아하다니. 괜히 미안하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조금 일찍 지어 줄 걸 그랬나.’

       

       사실 지금까지 녀석의 이름을 짓지 않고 부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처음엔 진짜로 정신이 없어서 지을 생각도 못 한 게 맞긴 한데….’

       

       흔한 대한민국 군필 청년이 자고 일어나 보니 게임 속 세계에 들어와 있고, 곧바로 하무트교 놈들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면 죽는 상황에서 쫓기다가 우연히 드래곤 레어에 들어갔었으니, 처음엔 이름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게다가 그 이후로는 대륙 서부의 숲에 달랑 남겨져 당장 먹을 걸 구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었고.’

       

       하지만, 해츨링이 마법을 배우고 편하게 숲을 가로질러 갔을 때에는 솔직히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이틀차부터는 실제로 이 녀석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도 했었지. 결국 이름 짓는 건 포기하고 얘야, 이렇게 불렀지만.’

       

       변명 같이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해츨링과 너무 깊게 엮이는 게 두려웠다. 

       

       다만, 드래곤이니 후일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 뭐 그런 종류의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그래.

       

       ‘정 들까 봐.’

       

       누군가는 고작 이름 짓는 거 가지고 정이 들고 말고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지금 나는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음에도 이미 요 쪼그만 녀석에게 정이 들 대로 들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는 중이니까. 

       

       하지만.

       

       ‘차이가 나는 건 지금이 아니야. 나중에 헤어졌을 때. 그때 차이를 실감하게 되는 거지.’

       

       만약 내가 해츨링에게 이름을 끝내 지어주지 않고 헤어져 서로의 길을 가게 된다면, 나는 시골 마을에서 유유자적한 생을 보내다가 가끔 ‘그런 쪼그만 해츨링이 있었지’라고 떠올리고는 다시 밭일을 하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은 희미해질 것이고.

       

       그러나 내가 해츨링의 이름을 지어 주는 순간,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기억은 더 이상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그 왜, 유명한 시 하나 있지 않은가.

       

       내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던 시.

       

       내가 비록 개나 고양이를 직접 키워 본 적 없는 랜선 집사지만,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500원을 주고 병아리를 사 와 키운 적은 있었다.

       데려온 지 삼 일만에 죽은 병아리의 이름은 꼬꼬였다.

       나는 지금도 그 행복했던 삼 일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해츨링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걸 피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 임시로 띄워져 있는, 점점 길어지는 해츨링과의 기억들을 선명히 저장하는 저장 버튼을 누르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젠 눌러도 되겠지.’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서로의 영혼을 단단히 잇는 계약을 맺었으니까.

       

       ‘어쩌다 사람 손에 자라게 된 어린 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종족 간 차이를 절감하고 자립하고자 할 거라고 생각했었어.’

       

       그게 아니라도 우리가 쭉 함께할 수 없는 이유는 많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젠 아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없는 수십 가지 이유보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함께해야 하는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이제는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어.’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는 해츨링의 손을 꼭 잡았다. 

       

       “뀨우.”

       

       그리고.

       

       “…….”

       “뀨우?”

       

       잠시 후.

       

       “…근데 진짜 안 떠오르네.”

       

       나는 풀가동되었음에도 아웃풋을 뽑아내지 못해 과열된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레, 레온? 나는 지짜 레온이 지어 주는 거면 다 조아! 쓰러지지 마!”

       

       털썩.

       

       풀숲에 벌러덩 드러누운 나는 생각했다.

       

       역시 이름 짓는 건 어렵다고.

       

       ***

       

       “…….”

       

       나는 몸을 일으킨 뒤, 해츨링의 손을 잡고 말랑한 젤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심신을 안정시켰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 이름이나 지을 순 없지.”

       

       일단 이 녀석은 누가 뭐라고 해도 드래곤이다. 

       

       앞으로 몇천 년은 더 살아갈 텐데, 이름을 잘못 지으면 오천 년 평생 그 잘못 지은 이름으로 살아갈 것 아닌가. 

       

       ‘심지어 사역마 계약을 맺은 이후라 이름을 지어 주면 바꾸지도 못해.’

       

       사역마 계약은 곧 영혼 계약. 

       계약을 맺은 상대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순간, 그 이름은 영혼에 아로새겨진다. 

       

       ‘그리고 한 번 영혼에 새겨진 이름은 설사 계약이 사라지더라도 그대로 남아 있지.’

       

       그래서 레키온 사가에서 사역마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기능을 쓸 때에는 [한 번 정한 이름은 추후 변경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창이 꼭 뜬다. 

       

       ‘그러니 한 번 지을 때 신중해야 돼.’

       

       문득 스미스 잡화점의 손녀딸 벨라가 해츨링을 부르던 애칭이 떠올랐다. 

       

       -우와! 아저씨랑 용용이 왔다!

       

       ‘용용이라고 했었지.’

       

       분명 귀여운 이름은 맞고, 나 역시 듣고 해츨링 녀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절대로 평생 쓸 이름은 아니지.’

       

       예를 들어 나는 아무리 이름이 ‘김용용’으로 정해진다고 해도 기껏해야 백 년 살고 끝이지만….

       

       ‘이 녀석은 나중에 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불러 일으키는 거대한 고룡이 될 테니까.’

       

       용용이(4529세/고룡) 같은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쯤 되면 오래전 영혼에 새겨진 이름 정도는 스스로 탈피할 수 있을 만한 힘과 격을 가지게 되긴 하겠지만….

       

       ‘이 녀석 성격이면 내가 지어 준 이름을 또 그렇게 쉽게 버릴 것 같진 않다는 말이지.’

       

       지금도 내가 지어 준 이름이면 다 좋다며 기대에 찬 눈을 끔벅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후우.

       

       나는 진지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전생의 판타지 소설, 영화, 게임에서 본 수많은 간지 나는 이름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키온 사가」에서 사용되는 이름들과 최대한 비슷한 풍의 이름을 골라냈다.

       

       그중에서도 레키온 사가 속 서적에 기록되어 있던 고룡 및 엘더 드래곤의 이름을 참고해 머릿속에서 조합해 보거나 이름의 뜻을 고려해 골라내 보기도 했다.

       

       “쀼우우.”

       

       그리고 해츨링의 손을 통해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과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지금부터 미래에까지 이 녀석에게 어울릴 만한 이름을 다시 골라냈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결국 눈을 떴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고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아르젠테.”

       

       내 손을 꼭 잡고 기다리고 있던 해츨링이 그 이름을 따라 말했다. 

       

       “아르, 젠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언어로 ‘은빛의’라는 뜻이야. 은빛으로 빛나는 비늘을 가진 너랑 어울릴 것 같아서 골랐어.”

       

       애매하게 다른 언어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언어란 게 내가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선택했던 프랑스어였으니까.

       

       ‘프랑스어로 Argente. 물론 프랑스 본토 발음으로 읽은 게 아니라 보통 로마자 읽듯이 읽은 거지만.’

       

       마침 「레키온 사가」의 고룡 중 ‘알젠’이라는 이름을 가진 드래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던 게 기억나서, 그것도 참고해 정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아르젠테가 전체 이름이지만, 부를 때는 애칭으로 ‘아르’라고 부를 수도 있어.”

       

       매번 이 귀여운 녀석을 진지하게 ‘아르젠테’라고 부르는 것도 매치가 잘 안 되니 애칭을 정하면 좋을 텐데, 마침 앞 두 글자를 따면 애칭도 적절히 어울리게 완성된다.

       

       “스미스 잡화점 손녀딸 벨라 있지? 그애도 이사벨라에서 두 글자를 따 와서 애칭으로 부르는 거거든. 우리도 그렇게 하는 거지. 부르기도 편하고, 정감 가게.”

       

       잡화점에서 잠깐 놀면서 친해졌던 벨라의 이름이 나오자 해츨링의 귀가 쫑긋 섰다.

       

       ‘설명은 해 줬고, 이제 이게 녀석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되는데.’

       

       아무리 내가 지은 거면 다 좋다지만, 그래도 본인 맘에 꼭 드는 이름이면 더 좋지 않겠는가. 

       

       평소 게임을 할 때 캐릭터 생성 화면에서 최소 1시간 이상을 보내며 고민하는, 작명 센스가 지지리도 없는 나였기에, 나는 조심스레 해츨링의 표정을 살폈다.

       

       “아르잰때. 아르.”

       

        해츨링은 내가 지어 준 이름을 혼자서 발음해 보았다. 

       

       그리고, 곧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폴짝 뛰어 안기며 외쳤다. 

       

       “아르잰때! 아르! 마음에 드러!”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우응! 너무 조아! 고마어, 레온!”

       

       해츨링은 아예 내 가슴을 딛고 올라와 내 얼굴에다 자신의 뺨을 마구 비볐다. 

       

       이러다 뺨이 닳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내가 해츨링의 몸통을 잡아 간신히 떼어내자, 녀석은 여전히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구, 이짜나.”

       “응?”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가 싶어 나는 살짝 긴장했다.

       

       “나는 레온이 그러케 열심히 고민해서 지어 줘서, 더 고마워써!”

       

       해츨링은 해맑게 웃으며 덧붙였다.

       

       “레온이 지어 준 이름, 평생 소중히 하께!”

       

       나는 그 해맑은 웃음을 보며, 긴장이 사르르 녹는 것을 느꼈다. 

       

       ‘정말 맑구나.’

       

       나는 아까 아르젠테의 이름이 ‘은빛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은 아르젠테라는 프랑스어에는 두 번째 뜻이 있다. 

       

       ‘은방울 소리처럼 맑은.’

       

       그 뜻이야말로, 아마 지금의 녀석에게 가장 어울리는 뜻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에게 마주 미소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사역마의 이름이 「아르젠테」로 설정되었습니다.]

       [사역마에게 진명眞名을 부여했습니다.]

       [특성 「신뢰의 계약」의 특수 조건을 달성하여 부가 효과가 개방됩니다!]

       

       내 눈앞에 메시지가 주르륵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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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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