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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사업? 무슨 사업.”

       “그냥 우리가 사업을 할 때 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만 알아둬.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설명할 테니 먼저 맡긴 의뢰나 잘 수행해.”

       “…알겠다.”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 정보가 들어오는 즉시 저택으로 전서구를 보내도록.”

       “그래.”

       

       할 말이 끝난 우리는 방을 나왔다. 나오면서도 셀다스의 경계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을 무시하고, 술집을 나왔다.

       

       술집을 나오자마자 헬레나가 덜덜 떨었다.

       

       “어서 돌아가셔야 합니다! 만약 소 공작님께서 아시기라도 하신다면…!”

       “호들갑 떨지 마. 그 사람은 공녀님한테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예…?”

       

       헬레나가 어리둥절 고개를 갸웃거렸다.

       

       “됐고. 돌아가기나 하지.”

       

       공작저로 향하는 길에 프란체가 물었다.

       

       “그런데 카자르 유플레인이라는 사람은 누구야? 사업 얘기는 또 뭐고?”

       “카자르 유플레인은 공녀님께서 마법을 익히실 때 꼭 필요한 인물입니다. 사업 얘기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혼자 이상한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지?”

       “다 공녀님을 위해서니 이상한 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는 프란체. 나는 뻔뻔하게 나갔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게 답이야.

       

       “그래, 네가 어련히 잘 하겠지.”

       

       그럼. 내가 알아서 잘 할테니 너는 내 커리큘럼에 따라오면 된단다.

       

       ‘그나저나, 카자르 유플레인을 빨리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를 찾는 이유는 다름 아닌 마법적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상한 남주들만 판치는 ‘로판소’에서 유일하게 유능한 놈이기도 했고.

       

       나중에 있을 계획을 위해 카자르 유플레인을 포섭하는 건 필수적이다. 그리고 아까 만났던 셀다스도.

       

       ‘일단 지금까지는 순조로워.’

       

       나중에 프란체가 마법까지 익히고, 내가 생각한 사업까지 대성공을 한다면 목표까지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면 나를 속박하고 있는 이 노예 각인도 풀릴 것이고, 자유를 되찾음과 동시에 프란체도 기구한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겠지.

       

       완벽한 계획이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리 웃고 있니?”

       “그냥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왕국에 있던 시절이니?”

       “어… 예. 그렇다고 해두죠.”

       

       갑자기 프란체가 시무룩해졌다.

       

       “이제는 기억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 추억이구나.”

       

       뭐지. 왜 내가 위로를 받는 입장이 된 거지. 사실 바렌베르크 왕국에 관해선 별생각 없다. 내가 진 바렌베르크도 아니니까.

       

       그리고 진짜 진 바렌베르크도 왕국에 미련이 없었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프란체가 죽었을 때 왕국 재건을 꿈꾸지 않았겠나.

       

       ‘이 게임의 특성상 이스터 에그나 서브 퀘스트로 넣을 만도 한데.’

       

       오히려 최종 보스로 등장했다. 이것도 프란체와 관련이 있을까?

       

       생각에 시간도 잠깐. 데카르트 공작저의 앞에 도착했다.

       

       “그럼 나는 다시 철창 틈으로 들어갈 테니 헬레나는 알아서 부탁할게.”

       “예.”

       

       오히려 헬레나가 철창 틈으로 들어가고 프란체가 나한테 업혀서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뭔가 이상한데.

       

       ‘알아서 하겠지.’

       

       그녀의 선택이니 존중하기로 했다.

       

       “자, 헬레나. 잘 잡아.”

       “네, 네!”

       

       나는 헬레나를 들쳐 매고 높이 뛰었다. 3m는 훌쩍 뛰어넘는 철창을 넘으며 털썩! 착지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다행히 근처에 누가 있진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프란체가 수풀 사이 벌어진 철창 틈으로 나오고 있었다. 뭔가 다람쥐 같아서 웃겼다.

       

       “뭘 그렇게 보니?”

       

       흙이 묻은 드레스를 탈탈 털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프란체.

       

       “아닙니다.”

       “그런데 헬레나는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니?”

       “아.”

       

       나는 내게 안겨있던 헬레나를 내려놓았다.

       

       “자, 헬레나. 내가 한 말 기억하지?”

       “예, 예!”

       “행방불명 처리가 되고 싶지 않으면 처신 잘하라고.”

       “물론이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한 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는 헬레나. 그 와중에 인사는 하는구나. 쟤도 좀 웃긴 친구네.

       

       프란체가 눈을 얕게 뜨며 나를 노려봤다.

       

       “바라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 호감이라도 생긴 거니?”

       “그럴 리가요.”

       “전속 시종과 전속 기사의 사이라고 해서 둘이 친해지면 안 된다?”

       

       어째서지. 그냥 친해질 수도 있는 거잖아.

       

       “어…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아니. 명령이니 그냥 듣도록.”

       “아, 예.”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지.

       

       “저택 안으로 들어가시죠. 옷도 갈아입으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 그래야겠어. 수풀을 통과하느라 너무 지저분해졌으니.”

       

       나와 프란체가 저택의 입구로 향하던 그 순간, 대문이 열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프란체를 안고 사각지대로 숨었다.

       

       “뭔데, 무슨 일인데?”

       “누군가 들어왔습니다.”

       “그게 이렇게 숨을 일이야?”

       “혹시 모를 일이니까요.”

       

       나는 눈을 얕게 뜨고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했다. 에덴 데카르트였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맞이하러 온 집사장에게 물었다.

       

       ―프란체 데카르트는 방에 있나?

       ―방에 계십니다.

       ―바로 만나야겠다. 프란체의 전속 시종은 뭘 하고 있지?

       ―조금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 보아하니 방 안에 있는 듯합니다.

       ―그런가. 일단 바로 올라가 보겠다.

       

       ‘저 새끼는 갑자기 왜 프란체를 찾아?’

       

       지금 이 상황에서 다행인 점은 에덴 데카르트가 올 때를 맞춰왔다는 점이고, 다행이 아닌 점은 지금 우리가 아직 방에 돌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망했군.’

       

       나는 프란체에게 말했다.

       

       “에덴 공자가 왔어요.”

       “그게 왜?”

       “곧바로 공녀님을 찾으신답니다.”

       “뭐? 그 사람이 나를 왜?”

       “파혼에 관한 얘기가 아닐까요.”

       

       프란체가 안절부절 떨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방에 들어가려면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음.”

       

       나는 고개를 올려다보며 저택을 살폈다. 프란체의 방은 2층. 창문은 열려있다. 뛰어서 들어가기엔 무리가 아닐 터.

       

       대신 조건이 좀 까다롭다. 에덴 데카르트가 들어와 보는 눈도 많을뿐더러, 여기에서 프란체의 방까지 거리가 좀 있다.

       

       프란체가 옆에서 떨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봤다.

       

       “만약 이번에도 내가 몰래 빠져나갔다는 걸 알면 또 근신형을 내릴 거야.”

       

       이윽고 불안감에 엄지손톱까지 물어뜯는다. 나는 그녀의 입가에 붙은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방법?”

       “근데 좀 머리가 어지러울 수도 있습니다.”

       “무슨 방법이길래 그러니?”

       

       나는 프란체를 들어 안았다.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였다.

       

       “갑자기 뭐 하는…!”

       “쉿. 들릴 수도 있어요.”

       

       나는 에덴 데카르트를 바라봤다. 그가 저택 문을 열고 들어간다. 용건이 용건인 만큼 겉옷을 벗자마자 바로 프란체의 방으로 향할 터. 그 시간은 5분 채 걸리지 않는다.

       

       “공녀님, 꽉 잡으세요.”

       “뭘 하려고…?”

       “소드 마스터의 속도로 달려갈 겁니다.”

       “뭐…?”

       “꽉 잡으시고, 눈 감으세요.”

       

       꽈악. 장딴지와 허벅지의 근육이 팽창하며 공기가 가라앉았다. 그 후, 프란체를 품에 안은 채 진각을 밟았다.

       

       콰앙! 발밑에 균열이 생기며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저택 앞으로 도착했다.

       

       이 짧은 시간 사이에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확인했다. 정원을 손질하고 있는 시종과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종들이 우리가 있던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폭발과도 같은 굉음 때문인 듯했다.

       

       시선이 한쪽으로 몰린 이 틈을 타서 벽을 타고 올라가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털썩! 가볍게 착지까지.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프란체를 바라보니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공녀님. 도착했습니다.”

       “뭐…?”

       

       프란체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본다. 프란체의 방이었다.

       

       “어떻게 한 거니…?”

       “소드 마스터에게 불가능한 건 없습니다.”

       “허…….”

       

       풀썩. 안고 있던 프란체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러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중심을 잃었다. 나는 프란체의 팔을 잡으며 부축했다.

       

       “어… 고마워.”

       “아닙니다.”

       

       프란체가 머리를 부여잡고 중심을 되찾았다. 아무래도 머리가 어지러운 듯했다.

       

       “후우, 헬레나는 문 앞에 있으려나?”

       “확인해보고 올까요?”

       “일단. 그전에 일단 옷도 갈아입어야 해. 바닥 청소를 좀 해주렴.”

       “예. 근데 갈아 입으시려면 시종의 도움이 필요하신 거 아닙니까?”

       “움직이기 편한 복장이 따로 있어서 문제는 없어.”

       “예.”

       

       내가 문을 열고 나가려던 그때였다.

       

       ―문을 열어라.

       ―어… 그게… 소 공작님…….

       

       에덴 데카르트가 문 앞에 도착해있었다. 헬레나가 말을 더듬으며 시간을 끌어주는 거 같긴 한데.

       

       뒤를 돌아봤다. 아직 바닥에 흙먼지들은 남아있고 프란체는 옷을 꺼내고 있다.

       

       ‘시간을 더 끌어야 해.’

       

       일단 헬레나의 대처를 믿어보기로 했다. 저 흙먼지를 치워야 하기에.

       

       눈썰미가 좋은 에덴 데카르트라면 저걸 보고서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다. 그냥 먼지도 아니고 명백한 정원의 흙이었으니까.

       

       ―왜 문을 열지 않지? 프란체가 어디로 나간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문을 열어라. 내 시간은 소중하다.

       ―그것이…….

       

       좋아, 조금만 기다려. 나는 손으로 흙먼지들을 구석으로 모았다. 그러던 도중. 프란체가 말했다.

       

       “뒤돌아보면 안 된다.”

       “예?”

       “나 지금 옷 갈아입고 있으니까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아, 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냐? 누군 지금 급하게 흙먼지 치우고 있는데.

       

       그렇게 서둘러 흙먼지들을 손으로 모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프란체의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됐어. 준비 끝이야. 문을 열렴.”

       “예.”

       

       덜컥.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에덴 데카르트와 헬레나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밖에서 소란이 들려서 이쪽에서 문을 열었습니다만….”

       “안에 있던 건가. 근데 왜 문을 열지 않았지?”

       “어…… 그게…….”

       

       헬레나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뭐, 왜. 그렇게 쳐다봐도 나오는 거 없어.

       

       ‘그래도 가벼운 쉴드 정도는 쳐줄까.’

       

       나는 에덴 데카르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헬레나가 이제 막 들어온 시종이라 일이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찌릿. 에덴 데카르트가 눈을 얕게 뜨며 나를 째려본다.

       

       “너는 가끔 주제를 모르는 것 같군. 노예라는 신분을 잊은 건가?”

       “아닙니다. 헬레나와 다소 친분이 생겨 그녀가 혼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없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발걸음을 뗐다.

       

       “안으로 들어가지.”

       “예.”

       

       나는 에덴 데카르트의 등을 바라보며 따라 걸었다. 프란체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채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소 공작님? 무슨 일이신지요?”

       “페르시아 공작가와 파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요?”

       

       에덴 데카르트가 프란체의 앞에 앉았다.

       

       “우선 데카르트 공작가에서 양도했던 광산 사업 건을 다시 받아왔다. 합의되지 않은 파혼인 만큼 손해 배상도 받고 왔지. 아, 그리고 데카르트 공작가를 모욕했다는 거로 돈을 더 받아왔다.”

       

       페르시아 공작가에서 돈을 뜯어왔다는 소리만 하네. 대체 얼마나 뜯어낸 거야?

       

       “좋은 소식이네요. 그런데 그게 저를 직접 찾아오실 이유는 아니실 텐데요.”

       “너에게 전할 소식이 따로 있다.”

       

       에덴 데카르트는 품속을 뒤지더니 인장이 찍힌 서신 하나를 꺼냈다.

       

       “너의 새로운 혼처 명단을 추려서 가져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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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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