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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아니라는… 말씀은…?”

         

        “그런 이슈가 될 만큼 큰 범죄를 저지른 놈들은 따로 연합 재판소로 넘어갑니다. 거기서 판결이 나오는 거에 따라 형이 집행되고요.”

         

        연합 재판소.

         

        이 이름은 이전 회차마다 꾸준히 등장했기에 알 수 있었다.

         

        연합.

         

        지구에서 탑으로 소환된 각기 다른 나라의 존재들이 서로 협력하기 위해 설립한 중립 단체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탑 내 하나의 국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체계가 거대하게 잡혀있는 집단이라고 말하면 편했다.

         

        탑에 살던 원주민들은 그런 ‘연합’을 보고 제국이라고 칭할 정도니까.

         

        각 국가에 지배자를 두고, 그 지배자들을 총괄하는 하나의 거대한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개의 국가가 하나의 집단처럼 작용하기에, 연합에는 다양한 기능들이 존재했다.

         

        범죄 쪽도 마찬가지.

         

        여타 다른 모든 국가처럼 재판소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범죄의 처벌은 그 어느 국가들과도 달랐다.

         

        “그 형의 집행이라는 건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강아현이 물었다.

         

        무언가 대강 예상하고 있는 듯한 눈을 가진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해야겠다는 듯이 물어왔다.

         

        그리고 그 답변은 빠르게 돌아왔다.

         

        이곳 모두의 만족감을 충족 시켜주는 답변이었다.

         

        “최소 사형이요.”

         

        “최소라고 하면…?”

         

        “말 그대로 무조건 죽여요. 바로 죽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고문하다 죽이는 경우도 있고.”

         

        “…”

         

        고문.

         

        그 말에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고문이라는 단어에는 많이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인 그들이었으나, 이곳에 와서 그 인식이 많이 바뀌었을 테니까.

         

        “아마… 이 설 정도면 최소 고문형 일거에요…”

         

        “그렇군요.”

         

        그곳에서 대답한 건 강아현 그녀뿐이었다.

         

        이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쓸쓸한.

         

        그런 감정이 언뜻 최서안에게 비쳤기 때문에.

         

        그녀의 표정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의심.

         

        그리고 약간의 안도감.

         

        약간의 기대.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여럿이 침묵하는 발소리만 남은 그곳에서.

         

        그렇게.

         

        조용한 밤이 지나갔다.

         

        ***

         

        최서안을 따라 광장의 길을 가자 나온 건, 하나의 엄청나게 커다란 건물이었다.

         

        인천 공항보다 거대해 보이는 회색빛 성.

         

        중세 시대의 성과 현대의 건물을 7대 3으로 섞은 것 같이 생긴 판타지 형태의 건물이 우리를 반겼다.

         

        연합 훈련소.

         

        튜토리얼에서 막 탈출한 신입들을 한데 모아 훈련을 시키는 곳이었다.

         

        탑에 막 입장한 뉴비가 이 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어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모아서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이들이 생긴다면 길드가 컨택을 해서 제대로 그 뉴비를 키워주는 것이었다.

         

        이것이 연합의 룰.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서로 간의 의견 충돌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공평하게 룰을 설정한 것이었다.

         

        미래가 좋아 보이는 신입이 컨택이 온 길드 중, 직접 원하는 길드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

         

        그 룰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당연코 이시현과 박지원일 수밖에 없었다.

         

        13일이라는 최단 기록에 최대의 인원을 데리고 클리어한 인물들이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최서안은 운이 좋은 것이었다.

         

        우선적으로 이들에게 가장 먼저 눈도장을 찍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

         

        본래라면 15일 이후에나 튜토리얼이 클리어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대부분의 길드는 15일 째부터 튜토리얼 게이트가 생성되는 그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튜토리얼이 클리어되는 것을 염두하고, 튜토리얼 시작 10일 차가 되는 시점부터 의무적으로 하나의 길드가 그 앞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그렇게 돌아가며 담당하기에, 이번 차시는 최서안이 담당하는 영광 길드가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길드장이 직접.

         

        이유는 간단했다.

         

        길드원들이 첫인상이 중요하다며 당부를 했기에, 최서안의 성격상 그것을 거부하지는 못했고.

         

        그 덕에 최서안은 누구보다 빠르게 이들을 맞이하여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힘은 대단하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처음 본 이를 어미라고 여기는 ‘각인’처럼.

         

        튜토리얼이라는 알을 깨고 탑이라는 세상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뉴비들과의 첫 만남.

         

        즉, 각인을 무의식에 박아넣을 수 있는 것이니까.

         

        더군다나 이 튜토리얼 팀은 한국인.

         

        그녀 역시 한국인이었다.

         

        물론 탑 내에서는 언어가 자동으로 번역되며 통일되기 때문에 언어적 장벽은 없지만, 문화적, 인식적 차이가 나는 외국인들과 어색하게 지낼 바에야 처음으로 만나게 된 한국인이 훨씬 더 익숙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운이 정말 좋은 것이었다.

         

        “이시현입니다.”

         

        지금 단상에 나와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저 여자에게 가장 먼저 눈도장을 찍은 그녀였으니까.

         

        ***

         

        훈련소에 들어온 지 한 달 하고도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더 정확하게는 1달하고도 17일.

         

        튜토리얼이 완전히 끝나는 30일까지의 기간을 기다렸기에 17이라는 시간이 더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튜토리얼 클리어에 성공한 나라는 총 다섯.

         

        13일차 한국 총합 114명.

         

        17일차 미국 총합 62명.

         

        18일차 중국 총합 68명.

         

        25일차 일본 총합 34명.

         

        30일차 독일 총합 1명.

         

        도합 279명이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탑에 대한 간단한 기초 지식과 생존술, 전투술을 배웠다.

         

        말 그대로.

         

        딱 전투 상황에서 1초 만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만 훈련시키는 것이 끝이었다.

         

        어디까지나 뉴비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명분에 불과했다.

         

        진짜는 그 훈련 기간 동안 누가 가장 두각을 드러내느냐.

         

        그것을 길드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으로 자신을 빛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남들의 앞에서 얼마나 대단한 기교를 보여주는가.

         

        검술.

         

        마법.

         

        그 어떤 것도 상관 없으니 최선을 다해서 길드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빛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순서가 지나가고.

         

        박지원의 차례가 찾아왔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박지원이 이시현에게 물었다.

         

        그에 대한 이시현의 대답은 즉답.

         

        할 수 있었다.

         

        당연했다.

         

        박지원.

         

        그녀는 재능이 부족하지도 않을 뿐더러 수백 회차 동안 남들의 앞에서 빛을 냈으니, 이번에도 잘할 것이 분명했다.

         

        “시현 씨의 대답을 들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네요…”

         

        -“다음 훈련생. 앞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지원을 부르는 목소리.

         

        그녀는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으며 이시현을 한 번 바라봤다.

         

        이내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많은.

         

        정말로 수 많은 탑 내의 강자들이 뉴비들을 쳐다보는 그곳에서.

         

        후웅-!

         

        후웅-!

         

        박지원은 자신만의 검무를 춤추며 보여줬다.

         

        [상태창]

         

        [이름: 박지원]

         

        [레벨: 19]

         

        [성별: 여]

         

        [성좌: 칠색의 천신]

         

        [칭호: 튜토리얼의 기사]

         

        [특징: 정의, 고독, 자신감, 의리]

         

        [특성: 중첩, 흡기]

         

        [근력(최상): 26.1]

         

        [민첩(최상): 26.1]

         

        [마력(상): 23.2]

         

        [지력(중상): 17.4]

         

        [정신력(최상): 26.1]

         

        [총평: 무예에 있어서 굉장히 뛰어난 재능입니다! 자신의 힘을 갈고 닦는다면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시현, 그녀보다는 아니었지만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은 그 능력치와 재능이 그녀를 빛나게 만들었다.

         

        이곳에 와서 배운 정말 기초적인 검술이자 검무를 선보였지만, 그것 만으로 그녀는 찬란하게 빛났다.

         

        그렇게.

         

        -“박지원 훈련생의 시연을 마치겠습니다.”

         

        그녀의 검무가 끝났다.

         

        -“다음 훈련생. 앞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사실상 무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시현의 차례가 되었다.

         

        마지막.

         

        이전의 검술, 마법의 시현 모두 그녀를 위한 빌드업이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의도적인 순서 배치.

         

        그녀는 그저 무덤덤하게.

         

        단상으로 나아가 그 위에 섰다.

         

        523번.

         

        수백 회차도 더 해본 그것이었기에.

         

        이시현은 그저 덤덤히 마법을 담아 검무를 펼쳤다.

         

        물론.

         

        그걸 보는 이들은 전혀 덤덤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

         

        여긴 어딜까.

         

        잘 모르겠다.

         

        깨어나니 이상한 감옥같은 곳에 묶여 있었다.

         

        감옥이 맞나?

         

        잘 모르겠다.

         

        내가 24년 동안 갇혀있던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으니까.

         

        어.

         

        그럼 나 또다시 감옥에 들어온 건가?

         

        어어.

         

        왜지?

         

        분명 형량은 다 채웠는데.

         

        잘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보였다.

         

        하나같이 때가 탄 누런 옷을 입고 여기저기 누워있거나 앉아있었다.

         

        중간 중간 외국인도 보였다.

         

        뭐지?

         

        나는 기억을 더듬어 봤다.

         

        마지막 기억은…

         

        아 맞아.

         

        이빨 삼키다가 정신을 잃었지.

         

        중간중간 정신이 날아갔는데도 또렷하게 기억이 남았다.

         

        아.

         

        으.

         

        많이 많이 아팠다.

         

        정말로 많이 아팠다.

         

        손톱을 뽑는 것보다 더.

         

        이번에는 기절도 제대로 못해서 너무 아팠다.

         

        히히.

         

        그래도 지금 멀쩡한 거면 다행인 거 아닐까.

         

        잘 모르겠다.

         

        뭔가 내가 속죄를 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니까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근데 내가 뭘 잘못했더라…?

         

        어…

         

        아무튼 나는 잘못한 게 맞을 것이다.

         

        내가 잘못을 안 했다면 이런 일이 나한테 발생할 리가 없잖아.

         

        너무 아픈데.

         

        히히.

         

        그래도 지금은 안 아파서 다행인가.

         

        어떻게 보면 감옥이 훨씬 나은 것 같다.

         

        이렇게 가만히 갇혀있을 때면 누군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없어서 괜찮았다.

         

        히히.

         

        밥도 꼬박 꼬박 나오고.

         

        물론 밥은 맛이 없었다.

         

        뭔가 사료? 같은 걸 줬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차라리 건강한 밥 나오던 교도소가 더 나으려나.

         

        아니.

         

        아니야.

         

        그래도 여기에는 나를 괴롭혔던 사람은 없잖아.

         

        예를 들면… 그래 박진환 같은 사람 말이야.

         

        내 눈 앞에서.

         

        소리도 없이.

         

        갑자기 머리와 목이 분리된 채로.

         

        피를 뿜으며 죽었던 그 박진환 말이다.

         

        아.

         

        으.

         

        또 생각하니까 속이 울렁거렸다.

         

        사람이 죽는다는 거.

         

        생각보다 많이 거북했다.

         

        비린내도 나고.

         

        모습이 끔찍하기도 하고.

         

        처음에 사람들이 괴물에게 죽을 때도, 범죄자들과 생존자들이 싸우다 죽을 때도.

         

        너무 끔찍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하하.

         

        서아를 구해주고 싶어도 나는 아무것도 못했고.

         

        오해 받고.

         

        나는 참 멍청한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가 더 좋은 걸 수도 있었다.

         

        적어도 누군가랑 이야기하며 내가 멍청하다는 걸 표현하지 않아도 되니까.

         

        원래 말하는 것 자체도 많이 어려워 했고.

         

        그래도 서아가 괴물한테 잡아먹히기 전에 괴물을 물리친 건 잘한 거겠지?

         

        히히.

         

        아무튼.

         

        그래서 나는 감옥에 있을 때도 독방이 좋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혼자서 있을 수 있으니까.

         

        아프지 않아도 되고.

         

        혼자서 생각만 할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지금도 비슷해서.

         

        그거 하나는 좋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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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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