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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음… 그러니까 올림픽 대로를 타서…’

       

        채수현은 운전대를 붙잡고는 정신없이 이것저것 따져보는 중이었다.

       

        ‘압구정에서 김포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40분은 넘게 걸릴 것 같은데’

       

        거의 신호를 무시하고 가더라도 시간내에 도착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네비게이션을 찍어보아도 거의 1시간에 가까운 예정시간이었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곧바로 출발.

       

        ‘아 씨. 1시간 걸리는 걸 어떻게 30분 안에 오라고?’

        ‘이 새끼 진짜 도대체 뭔 데?’

       

        확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수 년간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

       

        백지훈이 자신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이거 복수하는 거야? 어? 그치? 나랑 지금 해보자는 거지?’

       

        하지만 채수현은 아주 약은 사람이었다.

       

        ‘흥. 내가… 이번만 한번 살짝 굽혀줄게.’

        ‘아니. 굽혀주는 것도 아니지. 그냥 우리는 대등하게 대화를 나누려는 것 뿐이야.’

        ‘그저 회수를 멈춰달라고 요청만 하면 되니까 말이야.’

       

        미친듯이 운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의 머리 속에는 포인트 회수에 대한 내용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백지훈에게 가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미리 계획을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 만약에 거절하면 오늘 또 한번 대주지 뭐.’

        ‘그리고 특성으로…’

       

        자신의 특성창을 힐끗 바라봤다.

        그리고는 최대한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도대체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좀 멀어져서 그런가…’

       

        분명 수 년간 아주 고분고분했는데.

        자신이 잘 길들여놨다고 확신을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관계가 역전이 된 것 같은 느낌.

       

        채수현은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빠아아앙.

       

        “아!!!! 진짜!!!”

       

        운전을 하다 말고 경적을 울려댔다.

        그녀의 앞에는 빨간 브레이크등을 켠 채로 서행을 하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 씨. 하필 지금 퇴근 시간이라서’

       

        완전히 주차장이 되어버린 올림픽 대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이 아주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오늘만 잘 넘기면 자신의 퍼즐이 다 맞춰진다고 생각 했으니까.

       

        ‘아 씨. 몰라.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녀는 핸들을 확 틀어서는 갓길로 향했다.

       

        ‘누가 뭐라 하든 그냥 지금 이 일이 더 급해.’

       

        이제 남은 시간은 20분.

       

        점점 더 초조함이 그녀를 목 죄어 왔다.

       

        ***

       

        “캬. 벌써 10분 지났네요.”

       

        형석이가 아주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지금 아주 정신없이 운전하고 있을 걸요. 아마 메세지를 보낼 시간도 없을 거예요. 크큭.”

       

        마치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듯이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근데 얘가 진짜로 30분 안에 도착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냥 내가 쓸데 없는 것만 시킨 사람이 되잖아?”

        “에이. 형. 압구정에서 김포까지 지금 이 시간에 30분은 말이 안돼요. 올림픽 대로 생각 해보시라고요. 아주 자동차로 꽉 차 있을 텐데요.”

       

        아주 확신의 표정이었다.

       

        “어차피 30분 안에는 못 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형이 시킨대로 고분고분 말을 따르면서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이느냐 이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우위를 점하는 거고요.”

       

        마치 지금의 상황을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말을 듣고 보니 대충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느낌이 오기는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대충 배워나가는 느낌.

       

        “형이 너무 호구같이 살았던 거라니까요.”

       

        형석이는 호구라는 단어는 살짝 작고 조심스럽게 표현하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왜 그렇게 호구같이 살았는지 모르겠네.”

       

        또 다시 자기 반성.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또 다시 하게 되었다.

       

        “뭐 어쩔 수 없죠. 서큐버스 퀸한테 안 홀릴 수가 있나.”

       

        형석이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툭 내 던졌다.

       

        “서큐버스 퀸?”

        “네. 채수현 헌터 별명이잖아요? 물론 우리들끼리만 부르는 별명이긴 하지만요.”

        “응?”

       

        완전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린데? 서큐버스 퀸이라니?”

       

        서큐버스라는 단어는 남자에게 있어서 그다지 긍정적인 단어라고 볼 수는 없다.

        남자의 정기를 뽑아먹으면서 자기 멋대로 이용하는 년을 좋을리가.

       

        ‘서큐버스?’

       

        “아예 모르셨어요?”

       

        형석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채수현 이 년은 온갖 순수한 척을 다 했었는데.’

       

        물론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그 당시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느끼지도 못했고.

       

        ‘오빠… 저 오빠가 처음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제가 좀 미숙해도 이해해 주세요. 저도 노력해 볼게요.’

        ‘오빠. 저 너무 부끄러운데… 헤헷.’

        ‘아잉. 오빠앙.’

       

        초반을 떠올려보면 서큐버스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연기를 잘 했던 건지.

       

        “어째서 서큐버스인데? 걔 내가 첫사랑이잖아?”

       

        푸흡.

       

        내 말을 듣던 형석이는 마시던 맥주를 내뿜었다.

       

        “무슨 소리에요 형. 한 32번째 정돈 될 거 같은데.”

       

        ‘이 시발.’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속으로 욕이 나왔다.

       

        “32번째?”

       

        ‘뭐야? 존나 걸레년 이었어?’

       

        내 정신은 완전히 넉다운이 되어서 거의 산산조각이 나버린 상황이었다.

       

        “네… 일단 제가 아는 사람만해도 그 정도라서 실제로는 더 될지도 모르겠네요. 모르셨구나…”

       

        형석이는 내가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슬금슬금 눈치를 챙기기 시작했다.

       

        처녀인 줄 알았던 전 여자친구가 사실은 걸레였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당연히 화가 나지 않을 남자는 없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분명 내가 사귀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절대로 많은 나이가 아니었는데’

       

        완전히 대 환장 파티.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오빠…나한테는 오빠가 첫사랑이야. 알지?’

        ‘나는 오빠한테 모든 걸 줬어. 그러니까 오빠도 나에게 모든 걸 주면 좋겠어.’

        ‘우리 영원하자. 처음이자 끝사랑이면 좋겠어.’

       

        나에게 흘렸던 말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지금와서 보면 분명한 개 구라다.

       

        “하… 그래서 이 걸레년은 별명이 왜 서큐버스 퀸인데?”

       

        상당히 짜증나기는 했지만 물어볼 것은 물어봐야 했다.

       

        “뭐… 그야…사귀는 남자의 정기를 완전히 쏙 빼먹으니까요. 걔랑 사귄 남자들 일주일이면 피골이 상접한 채로 완전히 모든 걸 탈탈 털렸거든요. 남자 바꾸는 주기가 아주 예술이었는데…”

       

        계속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며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뭐 아무래도 좆같기는 해도 전 여친이니까 그러는 것 같았다.

       

        “야. 형석아. 그냥 다 얘기 해봐. 짜증나니까. 어차피 이 년한테 남은 마음 1도 없다. 이 개같은 년은 도대체 어떻게 나에게 이런걸 다 숨길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

       

        ‘혹시 특성인가?’

       

        문득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뭐 그래서 채수현한테 걸린 남자는 완전 푹 빠져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다들 그랬거든요. 모두들 알게모르게 채수현 헌터를 슬금슬금 피했죠. 괜히 당할까봐. 물론 그 맛은 짜릿하다고는 하지만…”

       

        형석이는 입맛을 다셨다.

        자신도 당해보고 싶다는 듯이.

       

        “근데 너는?”

        “하… 저 모쏠이잖아요. 저한텐 관심없어 보이던데요.”

       

        아쉽다는 듯한 반응.

       

        ‘허허…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군…’

       

        부러워 해야하는 건지 애매했다.

       

        “그래서 이 년은 도대체 뭘 하고 다녔던 건데?”

        “뭐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죠. 남자 정기 빨아먹고 다니면서 거의 일주일만에 해골처럼 만들어 버렸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다들 그냥 입을 꾹 닫고 모르는 척 했거든요. 자기도 당할 수 있으니까.”

       

        ‘도대체 얜 뭘 하고 다녔던 거야? 그리고 나는…?’

       

        당연히 여기까지 얘기를 들으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멀쩡했으니까.

        형석이의 말을 들어보면 채수현과 사귀었던 남자는 아무리 건장하고 근육질의 사내였다고 하더라도 일주일이면 멸치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형은 그래도 다행이에요. 다들 놀라긴 했죠. 일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아주 쌩쌩하게 다니셨잖아요.”

       

        형석이도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흠흠… 이건 좀 민망하긴 한데…”

       

        살짝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채수현 헌터랑 하루에 몇 번이나 하셨어요?”

       

        보통이라면 살짝 곤란할만한 질문.

        뭐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아니다.

       

        “12번? 15번도 했던 것 같은데…”

        “흐에엑..”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을 기대하던 형석이는 뒤로 몸을 자빠트렸다.

       

        “역시. 서큐버스는 서큐버스네요. 아니 형. 그러면서 단 한번도 의심을 하지 않으셨던 거에요?”

       

        아주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

       

        ‘쓰읍. 그러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생각이 차단이 되어있던 것처럼.

        생각해보면 완전 이상하기는 하다.

       

        “어휴. 형 말고 다른 애들도 다 비슷하게 말하더라고요. 물론 다른 애들은 대부분 일주일도 못 버텼지만요. 하루에 12번은 말이 안되잖아요.”

       

        형석이 말을 듣고 나니 완전히 이상했다.

        그런데 그 이상한 것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 나는 채수현에게 완전히 걸려들었던 것 같다. 정말 수년간 단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이 없다니. 그 자체가 이상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상태였던 거지?’

       

        마치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 상황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를 빡대가리라고 느끼게 만드는 이상한 힘.

       

        ‘분명 채수현… 뭔가 있다.’

        ‘이 시발년.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조금씩 확신이 들고 있었다.

        뭔가 내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뭔지 모르지만 꼭 밝혀내고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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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배신당했지만 괜찮습니다ㅎㅎ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he one who boosted your rank. Yet you stabbed me in the back? Fine. Goodbye. I'm taking it back. You're finished now. Thanks to you, I now have an abundance of skill points for a prosperous hunter life. But... after spending some of those points, the S-Ranks are starting to get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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