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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브웁?! 붑! 부우욱…! 븝…!!”

         

         사력을 다해 버둥거리는 팔은 호레이쇼의 머리와 어깨를 미친듯이 퍽퍽 내려쳤고, 더 이상 지면에 닿지 않는 발도 무자비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강이를 마구 걷어찼다.

         하지만 단련되고, 관리되고, 개조된 용병의 육체는 허약한 중년 브로커의 반항 정도는 우습다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선심 쓰듯이 호텔 방 잡고, 음식이나 좀 시켜주면 내가 헤벌레~ 해서 상전으로 받들어 모실 줄 알았어? 응? 이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의뢰나 제대로 파악했는지 걱정되는데… 그냥 댁 좆 돼보라고 버려 두고 나도 꺼져줄까?? 응??”

         

         호레이쇼의 분노는 불처럼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고 집요하며 동시에 끈끈했다.

         그저 유별나다고 여겼던 그의 초록색 사랑이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일종의 맹독이다. 목표한 사냥감을 한두 번 놓치더라도 결국엔 숨통을 끊어내는 집념의 상징.

         

         이대로는 진짜 큰일난다. 턱이나 진행해야 할 의뢰, 둘 중 한 쪽은 무조건 박살 난다는 걸 인지한 브로커의 시선이 그나마 논리적인 오멘에게 향했다.

         

         까드득…!!

         

         “흥! 보직신청을 수락하고, 방 안으로 들여보낸 건 그쪽 아닌가? 용병이 중개인을 고를 수는 없으니 중개인이 용병을 고르는 건 당연한 건데… 이제 와서 책임전가를 하려는 건 너무 추하군. 선택을 했으면 얌전히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합성육에 붙은 장식용 뼈까지 호쾌하게 씹어 먹은 오멘이 마스크를 다시 장비하면서 구조를 거부했다. 논리와 근거는 충분하지만…… 왜 이 인간병기까지 은근슬쩍 나와 호레이쇼 편을 들어주는 걸까.

         …만약 임무를 맡게 된다면 기대에 꼭 부응해야지.

         

         “부우웁!!”

         

         이번에는 차선책, 방 안에서 그 누구보다 편히 쉬고 있던 도미노에게 도움을 청했다.

         

         “……뭐, 그녀가 마켓 ID도 없는 건 좀 놀랐지만…. 일부러 현장에서 브로커에게 그걸 부탁한다는 건, 추천인도 없이 스스로 코드를 찾아서 블랙 마켓에 입성한 거니까 자질은 증명했다고 생각해. …아니면 혹시.”

         

         흡사 시체처럼 누워있던 도미노의 상반신이 벌떡 일어났다. 퀭한 두 눈이 남자를 응시했다.

         

         “용병 측의 정당한 요구를. 마음대로 묵살해도 된다고 여기는 건가…?”

         

         “붑?!”

         

         흐물흐물 풀어져 있던 동공이 수축하고, 잭나이프의 날이 유달리 번들거린다.

         마지막 구조선도 실은 해적선이었다는 걸 자각한 브로커의 얼굴로부터 땀이 뚝뚝 떨어졌다.

         

         결국 파르르 떨리는 브로커의 시선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나에게 향했다.

         

         “……?”

         

         아니, 다시 보니까 다른 용병들도 어느새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나 호레이쇼는 아까 까지의 정색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마냥 싱글벙글한 표정인 게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부터 내가 이 사태의 주모자가 된 건데요?! 야!!

         

         “…그 정도면 이미 충분히 요점을 이해하셨을 것 같은데. 슬슬 일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예입!! ……아이보리 누님께 감사해라, 이 어설픈 새끼야.”

         

         “으헉?!”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쿠당탕! 하고 브로커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붙잡혔던 하관은 빨긋빨긋하고 사지는 덜덜 떨리는데도, 그는 눈치껏 손발을 움직여 블랙 마켓 ID 작성에 착수했다.

         

         삐빅…!

         

         [ BMHA-7JWE7IOk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 현재 진행 중이신 임무가 있습니다. 작전 구역을 이탈하실 경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부과되니 주의 바랍니다. ]

         

         서류가방에서 꺼내진 휴대용 스캐너가 손목의 바코드과 생체정보를 읽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시야에 블랙 마켓 전용 ID와 코드, 전용계좌까지 개설 완료되었다는 알람이 표시되었다.

         

         “……ID 발급과 이번 임무에의 고용 모두 끝났네. 그리고… 임무 설명 말인데….”

         

         한층 조심스러워진 목소리와 함께 내 앞 테이블에 노트북이 놓였다. 그 화면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의뢰 개요 대신, 이중 삼중으로 암호화된 문서 파일이 떠올라 있었고.

         

         “이 씹새끼가 진짜…!”

         

         “부탁이니! 솜씨를 보여주게. 어차피… 이게 실패하면 난 죽은 목숨이니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네….”

         

         “…좋아요.”

         

         남자의 목소리에서 짙은 체념을 읽어낸 호레이쇼가 소리치던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내 패를 보여주긴 조금 무섭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직접 겪어본 장본인도 있으니 딱히 완벽한 비밀도 아니었다.

         

         손바닥을 펴, 노트북 자판에 가볍게 접촉한다. 그 다음 눈을 감는다.

         

         일반적인 해커라면 열 손가락을 모두 이용한 현란한 타법으로 좌중을 제압했을지도 모르나 내 해킹은 그런 표준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 지금 뭐하자….”

         

         

         피부로부터 신호가 방출되고 닫혀 있던 머리속의 스위치가 활짝 열린다.

         다시 눈을 뜨자… 풍경은 일변, 호텔 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드넓은 서재가 나타났다.

         

         접속이 성공적인 걸 알았으니 이 다음은 암호화된 파일의 해독과 수색.

         슬쩍 뽑아낸 책-정보-들을 대충 훑어보면서, 서재의 중앙에 도도하게 떠있는 프로텍션이 잔뜩 걸린 책에게 다가간다.

         

         어비스 다이브를 썼냐고? 에이 설마.

         아무리 능력을 증명한다고 마음먹었어도, 몸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무방비 하게 그런 필살기를 쓸 정도로 난 미치지 않았다.

         

         전날 호레이쇼의 사이버웨어에 거짓 신호를 보내서, 직접적으로 해킹하지 않고도 이상작동을 유발했던 것도 다 나름의 연구에서 파생된 테크닉이다.

         

         닥터 마카로비치의 연구 주제는… 여신. 그가 가상세계의 절대자를 만들고 싶었다면 그 연구는 분명 성공했다.

         

         이건 내가 태어난 연구소의 데이터 뱅크를 날려버리고, 하인리히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임시 사이버웨어 샵을 운영하면서 완성한, 이 세계에서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해킹 스킬. 아니, 오히려 일반적인 방법은 전혀 할 줄 모른다.

         

         코딩을 따로 배운 적도 없는 ‘나’는 심상을 제어해서 환경을 만들고, 완벽하며 유일무이한 천재로 설계된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계산해서 찰나의 전기신호 교류로 치환한다.

         

         어비스 다이브의 시간 가속과 일반 해킹의 접근성, 양측의 장점만을 취해서 극대화한 이 스킬이 실전에서 어디까지 먹힐지는 나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게 지금 내가 가진 최고의 권능이자, 허락된 힘인 이상 호락호락하게 내 전장에서 질 생각은 없다고 선언해 두겠다…!

         

         “……으엑?!”

         

         후두둑…!

         

         패기로운 다짐이 무색하게, 무심코 펼친 책에는 끔찍한 이미지 데이터들이 있었고… 벌레-바이러스-도 한 무더기나 쏟아졌다. 미친놈이 업무용 컴퓨터에 도대체 뭘 들고 다니는 거야…!

         

         신발로 마구 밟고 서재바닥을 조종해서 전부 삭제해버린다. 역시 남의 컴퓨터는 함부로 막 찾아보는게 아니다.

         

         “후… 좋아.”

         

         마침내 도달한 보안 파일로 양손을 뻗는다.

         내 뇌만 고생하긴 존나 억울하니, 노트북의 연산장치에도 일감을 왕창 하달한다.

         

         암호화에 사용된 구조와 언어를 해독한다. 잘린 부분을 이어 붙이고, 막힌 부분은 얌전히 우회한다.

         다른 해커들이 듣는다면 게거품을 물겠지만… 선물상자나 삼각김밥의 포장지를 뜯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순서를, 희미하게 빛나는 길을 따라서 막힘없이 진행한다.

         

         그렇게 체감 시간으로는 1분, 현실 시간으로 2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접속을 끊고 노트북에서 빠져나왔다.

         

         

         “…는 행동이지? 실력을 보여달라니… ”끝났어요.” …까?”

         

         노트북 화면에서 파일이 열리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홀로그램으로 임무 내용이 송출되었다.

         

         “해킹, 끝났다고요.”

         

         [ 의뢰인 :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 ]

         [ 작전명 : 살찐 쥐를 잡아와라(Fat Rat Heist). ]

         

         “……대단하군.”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진 마술에 좌중이 놀란 것도 잠시, 세부적인 지시사항과 타겟에 대한 정보가 밑으로 쭈우욱 나열됐고 그걸 본 용병 셋의 표정이 아주… 심각해졌다.

         

         섹터가 어쩌구… 추출(Extraction) 계획이 저쩌구… 퇴로와 병력은 이렇게…. 뭔가 중요한 것들이 많이 써져 있었지만 전문적인 군사용어가 너무 많아서 나로서는 알아먹기 힘들었다. 브로커가 직접 해줄 설명이나 들어야지.

         

         …하지만 그 전에, 그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그… 브로커 씨?”

         

         “? 뭔가.”

         

         “……. 일할 때 쓰는 노트북에, 털 복슬복슬하고… 노출이 많은 동물 영상은 가급적 안 넣고 다니시는 걸 추천 드려요. …바이러스가 잔뜩 나와서 다 지웠어요.”

         

         “!!!!!!!!”

         

         22세기에도 그다지 메이저 하다고는 말하기 힘든 취향을 들킨 중년의 입이 뻐끔거리다가… 이내 닫혔다.

         

         그 당황이 부끄러움 때문인지… 유실된 자료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 졸려 죽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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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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