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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레힐리스는 드래곤이다.

       

       비록 심성은 여리고 순하지만, 그녀가 품은 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는 레드 드래곤. 분노한다면 그 어떤 다른 드래곤들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레드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지금.

       레힐리스는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

       

       […….]

       

       평화롭던 숲은 더 이상 없었다.

       곳곳에 타오르는 불 때문에 숲이 타들어가고, 수많은 동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녀는 발치에 놓인 다람쥐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주고, 차가운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피처럼 붉은 머리 색.

       이지를 잃은, 뜨거운 흥분이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한없이 역겹기만 하다.

       

       인간은 늘 그래왔다.

       스스로의 탐욕을 위해, 다른 동식물들의 안위 따위는 봐주지 않는다.

       

       모든 인간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만난 모든 인간들은 하나같이 탐욕적이고 욕망이 가득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만 주었다.

       

       그리고 레힐리스는.

       자신에게 피해를 준 이를 그냥 보내줄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죽어.]

       

       순식간에 그녀의 입에서 모인 화염이 숲을 휩쓴다. 이미 놈이 숲을 완전히 휩쓸어 흙더미만 남은 곳이었기에, 불을 쓰는 것에 있어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하핫.”

       

       델티안이 빙긋 웃으며, 몸을 비틀어 피해낸다.

       

       그와 동시에 옆에 있는 나무를 밟으며 드래곤을 향해 돌진했다. 레힐리스의 새빨간 눈동자가 그를 향한다. 세로로 갈라진 포식자의 눈동자.

       

       델티안은 피가 더 끌어오르는 걸 느끼며 검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핏빛 기운을 머금은 검이, 드래곤의 꼬리에 막힌다.

       

       하지만 상정 범위다.

       곧바로 대검을 회수하며 놈의 꼬리를 붙잡고 위에 올라탔다.

       

       재빠르게 균형을 잡고, 마치 곡예를 부리듯 꼬리를 타고 달려가 놈의 목덜미를 향해 검을 찔렀다.

       

       [베리어.]

       

       “큭?”

       

       그 순간 생긴 푸른 보호막.

       그것이 델티안을 강하게 밀쳐냈다.

       

       나무에 몸이 부딪치며 숲이 산산조각난다.

       

       그러나 그는 아랑고하지 않은 채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일어났다. 이러면 이럴 수록, 점점 피가 끌어오른다.

       

       그가 고개를 들어올려 레힐리스를 바라본 순간.

       이미 그녀는 드높은 창공에 날아올라, 브레스를 모으고 있었다.

       

       짙은 붉은색의 화염이 넘실거리며 그녀의 입에 모여든다. 한눈에 보더라도 압도적인 수준.

       

       하지만.

       

       “공격한다고 대놓고 홍보하는 거냐?”

       

       저딴 동작이 훤히 보이는 공격 따위.

       

       맞아주는 머저리 따위는 없다.

       델티안은 곧바로 땅을 박차 드래곤을 향해 뛰었다.

       

       마치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델티안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튕겨나가며 순식간에 공중에 있던 레힐리스의 눈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이윽고 브레스가 닿지 않는 녀석의 머리 위로 올라가려는 순간.

       

       [멍청한 놈.]

       

       쿠우우웅——!

       

       엄청난 중력이 델티안의 몸을 잡아끌었다.

       

       그의 몸이 땅에 곤두박질친다.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늦었다.

       

       그의 움직임을 찰나라도 막은 그 순간.

       이미 그녀의 브레스는 그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피하는 건 늦었다.

       델티안은 핏빛의 기운을 더욱 끌어올리며, 브레스를 향해 대검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기운이 폭발하며 주변을 휩쓴다.

       레힐리스는 하늘에 고고히 떠올라 가만히 흙먼지를 내려다 보았다.

       

       가공할 만한 파괴력이었다.

       어지간한 마을 하나는 초토화 시킬 위력.

       

       그걸 정통으로 맞았기에 멀쩡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순식간에 흙먼지 속에서 붉은 참격이 쏘아졌다.

       

       그걸 곡예하듯 우아하게 피해낸 레힐리스는, 곧바로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허공에 붉은 마법진이 복잡한 수식을 채워나가며 만들어지고, 모든 선들이 전부 이어진 순간.

       

       [헬파이어.]

       

       콰아아아앙!

       

       또 한 번 거대한 마법이 놈을 향해 쏘아졌다. 검붉은 불기둥이 순식간에 대지를 휩쓴다. 녀석은 여전히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레힐리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기감을 넓히며 주변을 찾는 그 순간.

       

       “나 찾아?”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녀가 뒤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안 되지, 안돼.”

       

       델티안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꼬리를 발로 짓밟았다.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발목이 뒤틀릴 것 같았으나, 모든 오러를 발목에 집중하는 것으로 버텨내며 몸을 비틀었다.

       

       그의 몸이 공중에서 유려하게 회전하며, 수많은 참격을 쏘아냈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쏘아진 참격.

       레힐리스는 그 참격의 목적을 알아챘다.

       

       오로지 숲을 모두 파괴한다는 의도만이 가득한 공격.

       

       레힐리스는 그를 공격하는 것 보다도 마나를 끌어모아 숲을 보호하는 것에 사용했다.

       

       숲을 전부 뒤덮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의 장벽이 붉은 참격들을 모두 막아냈다.

       

       “헤.”

       

       델티안의 송곳니가 드러난다.

       그는 씨익 웃으며, 허공을 박차며 돌진했다.

       

       그가 마치 붉은 유성처럼 쏘아진다.

       아주 찰나의 순간, 그는 레힐리스를 번개처럼 베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촤악!

       

       유의미한 상처는 아니었다.

       녀석을 둘러싼 비늘이 워낙 단단했기에, 아주 살짝 상처를 입힌 것에 불과했지만.

       

       “내가 이겼네?”

       

       레힐리스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기괴하게 웃었다.

       

       그의 검은 마검.

       그 중에서도 피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특성을 지녔다.

       

       그리고 그 마검이 삼킨 피는, 마검이 바스라지는 그 순간 까지도 대상의 피를 계속해서 갉아먹는다.

       

       […….]

       

       레힐리스는 상처를 보았다.

       

       분명 작은 상처였다.

       고작 피 한 방울 흘릴 정도로 작은 상처.

       

       하지만 놈의 검에 닿은 순간, 레힐리스는 이변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온몸의 혈액이 요동친다.

       진작에 응고 되었어야 할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린다.

       

       상처가 점점 벌어진다.

       지금은 자그마한 상처였으나, 계속해서 시간이 흐른다면 상처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를 증명하듯, 점점 피가 흘러내리는 양이 많아졌다.

       

       하지만.

       

       [고작 드래곤이 마검 따위에 당할 줄 알았느냐?]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비늘들이 비틀린다. 순식간에 배열을 달리한 비늘들이 강제로 그녀의 상처를 봉합한다. 강철 보다도 강력한 강도를 자랑하는 비늘들이 상처를 꼬매듯 압박하자, 계속해서 피가 흐르던 상처가 봉합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방책.

       아직도 마검의 영향으로 피가 날 뛰고 있었다.

       

       ‘1시간 정도인가….’

       

       그 안에 놈을 끝내야 한다.

       레힐리스는 눈을 빛내며 마나를 끌어모았다.

       

       현재 그녀가 아는 가장 강력한 마법.

       메테오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발현된다.

       

       “완성하게는 안 두지.”

       

       델티안이 그 마법진을 보며 달려든다.

       다시 한 번 땅을 박찬 그가 레힐리스를 향해 쏘아졌으나, 같은 방식을 두번이나 당하진 않는다.

       

       “크윽?”

       

       다시 한 번 강해지는 중력이 델티안의 몸을 끌어당긴다. 순식간에 전신을 압박하는 거대한 중력. 마치 이대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짓눌려버릴 것 같다.

       

       다만 익숙했다.

       고작해야 중력을 조작하는 것 따위로, 그를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푸욱!

       

       마검을 다리에 꽂아넣는다.

       붉게 빛나는 마검이 주인의 피를 탐하고.

       

       그 피를 본질적으로 바꾸었다.

       조금 더 타락하고, 조금 더 사악한.

       인간이라기 보단 마족에 더 가까운 신체로 그를 강제로 변환시켰다.

       

       마족이 지닌 특성 중 하나.

       마법에 대한 영향을 적게 받는다.

       

       그를 통해 델티안은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며 검을 휘둘렀다.

       

       여기까지가 1초.

       아주 짧은 시간에 벌어진 그 모든 사건들.

       

       그 안에 저렇게 마법진이 복잡한 마법을 완성시킬 리 없다. 

       

       그리 확신한 델티안이었으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마법의 종주이자, 세계의 조율자였던 드래곤의 위엄을.

       

       [메테오.]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새빨간 불꽃을 머금은 운석이 대지를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델티안은 웃었다.

       

       저 드래곤이.

       메테오를 진짜로 떨어트릴 리가 없었으니까.

       

       그토록 숲을 보호하려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저런 메테오를 숲 한 가운데에 떨어트린다?

       

       적어도 이 주변 지형은 모두 박살날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저걸 쓸 리가 없지.’

       

       이미 메테오를 본 순간 델티안은 숲을 향해 달려가던 중이었다.

       

       울창한 숲을 끝없이 달려, 다리를 다친 동물들이 쓰러져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다면.

       저 멍청한 드래곤은 메테오를 쏘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레비티, 응용.]

       

       낮게 읊조린 목소리.

       

       그 순간.

       

       “…아?”

       

       델티안은 세상이 기울어진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야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자신의 몸이 중력을 역행하여, 다시 그가 원래 있던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

       

       마족의 피로 저항하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차이였다.

       자신의 몸을 휘감는 어마어마한 중력에 델티안은 소름이 돋았다.

       

       마법을, 응용할 수 있었단 말인가?

       

       애초에 마법은 정해진 규율을 통해 마나를 흘려넣어 발현시키는 것이었다. 설령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식이 변한다면 마법이 발동하지 않을 뿐. 새로운 방법으로 마법을 응용하려는 시도는 수많은 세월동안 이어져왔으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 드래곤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성공했다.

       

       델티안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운석이, 태양을 가리며 그를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친놈.”

       

       그 아득히 넓은 숲의 전체가, 거대한 베리어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가 온힘을 다해 두들겨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베리어가.

       

       그가 검을 들어올린 순간.

       

       콰아아아앙!!

       

       압도적인 질량이, 대지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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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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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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