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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폴렌타(Polenta)는 옥수수나 보리, 밤, 등에 구하기 쉬운 곡식을 죽처럼 만든 음식을 말한다.

         

       거친 식감이 돋보이도록 만드는지라 먹어보면 겉보기와 달리 식감이 거칠지만, 그 또한 매력이 있다.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들기에 대중적이면서도 돈 없는 서민이 푸짐하게 먹기 좋은 음식이기도 하고.

       허나 잘만 만들면 어느 음식 못지않게 맛있는데다, 얼마 먹지 않아도 포만감도 차오르니 비상식량으로 삼기에도 알맞았다.

         

       무엇보다 죽처럼 먹는 것만이 아니라, 옥수수가루나 보릿가루 등을 좀 더 넣어 굳혀 먹으면 그건 마치.

         

       ‘맛있는 떡이네.’

         

       특유의 거친 식감이 매력적인 쫄깃하면서도 맛있는 옥수수떡이 아닐 수 없다.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와 허브도 몇 개 들어간 건지 심심한 맛도 아니다.

       한 끼 든든하게 해줄 훌륭한 식사였지.

         

       “발상이 좋네, 죽처럼 먹는 것도 괜찮던데, 이렇게 먹으니 색다르고 손이 자꾸만 가.”

       “옛날에 알바, 아니! 여관에서 일하면서 배웠어요. 이렇게 먹으면 맛있어서 저도 자주 해먹어요.”

       “그래? 처음 보는 방식인데, 혹시 어느 여관인지 알 수 있나? 직접 찾아가 먹어보고 싶네.”

       “아, 아마 없어졌을 거예요. 워, 워낙 옛날이라.”

       “그래?”

       “네, 네에!”

         

       ……구라 까고 있네.

         

       거짓말을 할 거면 좀 더 성의 있게 하던가.

         

       ‘얘는 빙의하기 전에 뭘 했는지 몰라도 절대 예체능 계열은 아니겠다.’

         

       그럼 이토록 허접하게 연기할 리 없을 테니까.

         

       ‘얘는 다른 의미로 맹탕이네.’

         

       로맨스 여주인공이라 그런 걸까.

       원래 로맨스 주인공 맡은 애들이 철저한 척 하면서 항상 뒤통수 맞고, 지능이 급속도로 떨어지던데, 얘도 그런 계열인가?

         

       ‘시녀님이랑 맞먹는데, 이건?’

         

       저기 한쪽에서 떡이 맛있다고 급하게 먹다가 목이 막힌 레이라가 물을 찾아 뛰어다니다 바가지에 물을 퍼서 안면을 박아대고 있다.

       그냥 마시면 되지, 꼭 저래야만 하는 걸까?

         

       …뭐, 보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지만, 지인 된 입장에선 타인에게 내보이기 창피하다.

         

       “저, 저기 저분은 괜찮으신가요?”

       “그냥 무시해.”

       “네에?”

       “…신경 안 써도 된다고. 건강 하나는 끝내주니까.”

       “…아, 예에.”

         

       아이린은 눈을 끔뻑거리며 여전히 신기한 시선으로 레이라를 보다가, 이한의 시선을 느끼곤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사채업자한테 돈 빌리러 온 가엾은 중생 같은 모습.

       이를 보며 이한은.

         

       ‘내가 혹시 얘한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했었나?’

         

       새끼 고양이마냥 벌벌 떠는 아이린의 태도에 저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며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 * *

         

       이사떡, 아니 이사 폴렌타를 돌린 이웃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는 아니고, 안면이 없는 것도 아니기에 이한은 그녀에게 차를 권하며 잠시 앉혀두었다.

         

       뭣보다, 아이린 본인 또한 거절하거나 싫은 기색도 아니었고.

       뜻밖에도 기다렸다는 것처럼 자리에 앉은 그녀는 차를 마시며, 가지고 온 폴렌타도 거의 먹은 상태였다.

       적응력이 좋은 모양이다.

         

       허나 그래서일까.

         

       ‘수상한데.’

       

       솔직히 너무 경계심이 없어서 수상하긴 하다.

       아니, 생각해봐라.

       그녀와 이한 사이엔 아무런 접점이 없다.

       비록 이한이 아이린 윈들러란 개인을 조사해야 하는 상황이긴 하나, 그건 아이시스와 이한만이 아는 얘기.

         

       한데 그런 감시대상 2호가 갑작스레 그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분명히 전날만 해도 비어 있던 집이었는데, 갑자기 이사를 온 것이니 수상할 수밖에.

         

       경계심이 불쑥 치켜들며 이한은 슬며시.

         

       “아이린 생도, 개인적인 사정을 묻는 건 미안한데 질문 좀 해도 되나?”

         

       그녀를 찔러보기로 했다.

         

       “네에?”

       “허락한 것으로 알지. 왜 이런 후미진 곳에 있는 거지? 아이린 생도라면 기숙사를 이용하거나 그도 아니면 갈라하드 가문이 소유한 저택에서 머물면 될 텐데. 내가 알기론 아카데미 근방 건물의 7할은 갈라하드 가문이 다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만.”

       “…….”

       “난감한 질문이었다면 미안하다.”

       “아, 아니요,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질문인데요, 뭘….”

         

       괜찮다는 사람치고 안색이 그다지 밝지 않은 아이린이었고, 혹시 무슨 속사정이 있나 싶어 이한은 그녀가 모르게 집중도를 높였다.

       안 그래도 조금 전 갈라하드 공작에 관한 정보를 봤지 않은가.

       또 모르는 일이다.

       그녀가 무슨 피해를 입고 있을지.

       아니면 천민 출신이란 이유로 기숙사에서 내쫓긴 것일지도…!

         

       “-기숙사 입주신청기간이 있다는 걸 알기도 전에 신청기간이 끝났고, 갈라하드 공작가 저택은 부담돼서 안 사용하기로 했어요. 솔직히 그 아저씨 밥맛이라서 근처에 있고 싶지 않거든요.”

       “…?”

       “아니, 그 아저씨 진짜 이상해요? 눈빛이 볼 때마다 소름 돋아요! 생긴 건 계집애처럼 생겨가지고, 하는 말투나 행동은 음습하고! 솔직히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냥 준다는 거 다 거절했죠, 괜히 엮이는 건 사양하고 싶고, 또…, 아.”

       “…….”

       “모, 못 들은 걸로 해주실…래요?”

       “…얼마든지.”

       “……감사합니다.”

         

       쌓인 게 제법 많았던 듯하다.

       아무래도 공작에게 반감이 큰 것 같은데.

         

       ‘나, 나름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던 거였네.’

         

       누군가는 어떻게 저게 다 진실이란 보장이 있냐고 할 테지만, 이한은 저게 거짓이나 연기가 아님을 확신한다.

         

       이유?

       그도 그럴 게.

         

       쿠웅, 쿠웅.

         

       심장 소리가 알려주니까.

         

       청진기를 덴 것보다 정확히 가슴의 고동을 잡아내는 청각.

       그는 아이시스조차 감탄한 제 능력을 기꺼이 신뢰할 따름이었다.

         

         

         

       ‘-어수룩하지만 솔직한 애네.’

         

       약간의 대화를 이어가며 이한은 아이린 윈들러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가늠했다.

         

       어설프고도 모자란 면이 있지만, 그건 10·20대 등에게 공통적으로 나오는 증상이다.

       아직 경험과 인간관계의 폭이 좁기에 벌어지는 모자람.

       결코 아이린을 욕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말하는 것이다.

         

       뭐, 좀 어설프고 과하게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주문쟁이가 필수적으로 가진 정신병이라고 여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저 정도면.

         

       ‘주문쟁이치곤 엄청난 정상인이지.’

         

       주문쟁이 9할이 사이코패스인 걸 감안하면, 저건 모난 것도 아니다.

         

       어딘지 마법사에 대한 편파적 시선이 가득한 이한이었으나, 그는 딱히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만난 마법사의 9할이 모두 사이코패스였기에.

         

       모두 그의 손에 죽긴 했지만.

         

       “으, 응!? 가, 갑자기 웬 오한이….”

       “오두막이 춥나? 이해 좀 해줬으면 좋겠군. 아직 보수가 안 된 곳이 많아서 그럴 거다.”

       “아, 괜찮아요. 그보다 교관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렇게 가까이에 살게 됐으니 자주 얼굴을 뵙겠네요.”

       “…나도 잘 부탁하지, 아이린 윈들러 생도.”

         

       먼저 내미는 호의 어린 손길.

       이한은 주문쟁이와 손을 잡는 경우는 주문쟁이의 손을 망치로 부수거나 횃불로 불태울 때 한정이었거늘, 이렇게 정상적으로 손을 마주잡게 되니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의 손을 잡는 감상이 왜 이따위냐고?

       주문쟁이에게 남녀 따지면 안 된다.

       얼마나 지독한 것들인데.

         

       사실상 마법사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성적 매력이 반감되는 그녀였고. 더 나아가 미친 공작의 수양녀, 혹은 친딸일지도 모르니 매력 반감은 더욱 심해져 마이너스로 전환된다.

         

       엮이면 엮이는 대로 그것도 안 좋은 애니까.

         

       ‘심성은 착해, 심성만….’

         

       마이너스에 아무리 플러스를 곱해서 플러스는 될 수 없는 법이었다.

         

       ……무엇보다.

         

       ‘…미친놈, 사람을 얼마나 깔아놓은 거야?’

         

       양부란 녀석이 워낙 정신병자인지라, 마이너스는 더욱 늘어갈 뿐이었고,

         

       쯧!

         

       오두막 주변으로 늘어나는 은밀한 기척과 냄새를 느끼며 기어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는 혀를 찼다.

         

         

       ─피 냄새를 잔뜩 묻히고 다니는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걸 환영하는 집주인은 없을 터이니.

         

         

         

       한편, 아이린 윈들러는 갈수록 긴장감이 커져 몸이 굳어졌다.

         

       ‘내,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이린아 힘내! 어떻게든 기사님한테 호감을 얻는 거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기사 교관의 곁으로 이사 가라고 온종일 떼를 쓴 통에, 어쩔 수 없이 이사마저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래도 거짓말은 안 했다.

       기숙사 못 들어간 것도 그렇고, 공작 그 인간이 싫다는 것도.

         

       다만, 좀 더 좋은 집을 못 간 것이 불만스러울 뿐이었지.

         

       자긴 오두막 취향이 아니라, 그냥 방음 잘 되고 청소도 해주는 고급여관에 머무는 게 편리하고 좋았는데.

         

       이러한 그녀의 심경을 알기 때문일까.

         

       아이린은 미안한 내색을 보였으나….

         

       [미안해, 그래도 정말 좋다. 저 근육 좀 봐! 어쩜 저렇게 조각 같지? 아니다! 돌로 조각한 것도 저것보단 못할 거야!]

         

       미안함은 한 순간일 뿐.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변태가 여기 있었다.

         

       ‘…저질.’

         

       [호, 혹시 실수인 척 하고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돼? 나 꼭 저 근육을 느끼고 싶어!]

         

       ‘…내 사회적 위신을 땅바닥에 처박으라는 말을 쉽게도 하는구나.’

         

       [사회적 위신보다 근육이지!]

         

       ‘……닥쳐.’

         

       차마 욕설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내 머리 속 유령의 미친 발언에 아이린은 한숨을 토하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러면서도 슬쩍 그녀는 저도 모르게 기사 교관의 몸을 봤다.

       가슴 부근이 파인 반팔 티셔츠만 입은 그였고, 몸의 윤곽이 선명히 보이긴 했다.

         

       계속 근육, 근육거리며 대놓고 말하는 유령 탓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며.

         

       ‘화, 확실히 눈이 호강하긴 하네.’

         

       이심전심.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7년간 어울리다보니 음식이나 옷 취향마저 엇비슷해지고 만 그녀였다.

         

       …남자 취향까지도.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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