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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는 걸까요…?”

         

       “제 말만 믿어보세요.”

         

       “하지만….”

         

         

       무연이 손을 올려 문질렀다.

         

         

       “…이렇게 되면 아예 안 보이잖아요…!”

         

         

       손수건으로 가려진 자신의 눈을.

         

         

       갑자기 무슨 짓거리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꽤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서 나온 결과였다.

         

         

       무연은 힘이 강하다, 웬만한 일이면 도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무연은 겁이 많다.

         

         

       왜 무서울까.

         

       눈에 뭔가가 보이면 무서운 법이다.

         

         

       그렇다면 눈을 가리게 하자.

         

       그렇게 되면 무연은 마음껏 압도적인 무력을 뽐낼 수 있다.

         

         

       청각에만 의존해야 해서 무연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방금 무연한테 몰려들던 꽃들이나, 나한테 몰려오던 그 이모티콘 얼굴을 단 꽃들이나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탄튼 씨께서 공격하라고 할 때 싸우고, 아니면 안내하는 대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뜻인가요?”

         

       “정확하게 이해하셨어요.”

         

       “…이건 이것대로 무서운데요….”

         

       “그러면 그 괴물들 눈으로 직접 마주하시면서 싸우실래요?”

         

       “…으으, 알겠다고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떨리는 무연의 손을 포갰다.

         

       떨림이 사라질 정도로 강하게.

         

         

       무연이 놀란 듯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당신을 한 번 배신했어요. 그런 사람을 대체 어떻게 믿으시는 거죠…?”

         

       

       에이, 고작 그런 거 가지고.

         

       살았으니 그만 아닌가?

         

         

       너무 낙천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아무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주의가 되어버렸다.

         

       이것도 모드의 효과일까.

         

         

       “괜찮아요. 제가 당신의 눈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적을 무찌르는 무기가 되어주세요.”

         

         

       우린 손을 마주 잡고 발을 내디뎠다.

         

         

       “그러니까 천천히, 앞으로 가보자고요.”

         

       “…후우, 네.”

         

         

       무연은 한 손으로도 도끼를 들 수 있는 악력을 지녔다.

         

       양손잡이 도끼여도 그녀의 앞에선 한손잡이로 바뀌리라.

         

         

       “앞에 길을 막는 나뭇가지가 있는데 처리해 주실래요?”

         

         

       손에 쥔 도끼를 휘두르자 순식간에 나무가 절단되었다.

         

         

       역시 굉장한데?

         

         

       “자, 친구 이제 네가 나설 차례야.”

         

         

       호주머니를 열자 소외신이 빼꼼 튀어나왔다.

         

         

       “출구는 어디지?”

         

         

       그러자 출구가 아닌 정원사가 있는 방향을 가리킨다.

         

       방금까지만 해도 타살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게 느껴진 능력이었지만, 사용하기 나름 아닐까.

         

       어쨌든 도움이 되긴 했으니까, 보상으로 1시간 정도 쓰다듬어주어야겠다.

         

         

       아닌가.

         

       그래, 어쨌든 죽을 뻔하긴 했으니 30분만 쓰다듬어줘야겠다.

         

         

       “누, 누구에게 말하는 거에요?”

         

       “혼잣말이에요.”

         

         

       어쨌든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일을 진행해보자.

         

         

       소외신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그 꽃들이 무성한 곳까지 가는 과정이 평탄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역시 재능충 기사라서 그런가.

         

         

       눈이 보이는 나와는 달리 무연은 불편할 텐데도 순식간에 감을 잡았다.

         

         

       “…읏, 차.”

         

       “오, 말도 안 했는데 혼자서 피했어!”

         

       “지, 진짜요? 뭔가 있는 것 같아서 피했는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제는 좀 무서울 지경인데.

         

         

       한걸음 내딛으면 빼곡하게 찬 꽃들 사이로 발이 파고들었고, 그때마다 꽃들이 발등을 간지럽혔다.

         

       눈 앞의 정경이 참 아름다웠다.

         

       아마 바닥에 있는 꽃들이 시체만 아니었다면 남들도 우리가 이리저리 뛰어넘고,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거로 생각했을 거다.

         

         

       그렇게 우린 꽃 위를 뛰어나갔다.

         

         

       “탄튼 씨!”

         

       “왜 그래요?”

         

       “이, 이상한 목소리가…. 귓가에…!”

         

         

       시각을 차단했더니, 이제는 청각을 공격하는 건가.

         

         

         

       지능적이라고 해야 하나, 지긋지긋한 놈들이라고 해야 하나.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어요!”

         

       “귀, 귀가아…! 자꾸….”

         

         

       그 목소리들에 집중하지 못하게 무연의 귀에 내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기를 한참 지나고 나서야 저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무연 씨, 이제 멈춰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이명이 심해지는 게 무, 무서워요.”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 말을 믿고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침착하게 제 지시만 딱 들면 됩니다.”

         

         

       정원사가 만들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그 웃는 꽃들이 떼거리로 모여 있었다.

         

       슈퍼 겁쟁이 모드 덕분에 내게는 들리지 않지만, 저것들이 무연에게 정신 공격을 하는 중이겠지.

         

         

       그러면서 무언가를 찾는 듯 어슬렁거리고 있다.

         

         

       아마 찾고 있는 건 나겠지.

         

       고작 나 잡겠다고 문까지 걸어 잠글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있는 곳도 모르고 하니 아예 전 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건가.

         

         

         

       여기서부터는 내가 말 한마디만 실수하면 그대로 우리는 전멸이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뒤, 정신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자마자 외쳤다.

         

         

       “무연 씨, 앞으로 달리면서 도끼를 막 휘두르세요! 앞으로만 가야 해요!”

         

       “네, 네?! 아, 알겠어요!”

         

         

       이제부터는 무연에게 모든 게 달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내 지시에 따라 무연이 무서움을 떨쳐내기 위해서인지 ‘으아아아!’ 같은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근데 왜 도끼를 들지 않는 거지?

         

         

       “어, 어어?!”

         

         

       아니, 왜 저래?

         

       갑자기 못 미더워지기 시작하는데?

         

         

       방금 무연을 믿는다고 해놓고 태세전환이 너무 빠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거는…!

         

         

         

       그 와중에 소리를 질러서일까?

         

       꽃 한 구가 무연을 발견하고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꽃이 줄기를 뻗으면 바로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큰일 나겠다 싶어서 무연을 향해 목청을 높이려 하는 순간.

         

         

       서컹.

         

         

       깔끔하게 썰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그 꽃이 두 동강 나버렸다.

         

       그 뒤로 일어난 일은 거침없었다.

         

         

       동료가 죽어서인지 화난 꽃들은 무연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가 지시해둔 막 휘두르라는 말에 무연은 그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도끼를 내지를 뿐이었고, 달려들던 꽃들은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무참하게 베어질 뿐이었다.

         

       사, 사실은 믿고 있었다고 젠장!

         

       대체 누가 무연을 의심했어?!

         

         

       내 생각이 무색하게도 무연은 목소리와 몸은 따로 놀았다.

         

         

       “어, 어어?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무연도 자기 도끼 끝에 일단 무언가가 베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누, 누군가가 베여서….

         

       미, 미안해요오오오오!”

         

         

       아, 그러고 보니 이 식물들 원본이 시체라고 했었지.

         

       내 눈엔 그저 꽃으로 보이기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지만, 무연이 얼마나 겁이 많은지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로 그치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무연 씨! 옆에, 옆에 와요! 왼쪽!”

         

       “으앗!”

         

         

       나의 지시에 무연은 앞으로 이미 앞으로 내질러진 도끼를 비정상적인 궤도로 꺾어서 그대로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꽃을 베어버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베인 자리 뒤로 나무가 반으로 갈라져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아니, 미친.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도끼가 내질러진 각도 중에서 가장 무게중심이 무거운 방향에서 억지로 도끼를 끌고 와서 옆으로 내지른다고?

         

       그걸 또 0.1초가 아까운 시간 안에?

         

       

         

       “…히끅.”

         

         

       겁이 많다 뿐이지, 어쩌면 나는 터무니 없이 강한 여성한테 지시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겁쟁이가 아니었다면 정원사는 진작에 썰렸을지도.

         

         

         

         

       #

         

         

         

         

       “헉, 헉….”

         

         

       정말 고맙게도 무연은 나의 지시에 계속 따라주었지만, 혼자서 그 모든 적을 무찌르고 있는 만큼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소외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몸짓하는 시점에는 가쁜 숨까지 내쉬고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원사가 부릴 수 있는 꽃의 여분도 다 떨어진 걸까?

         

       더는 꽃들이 보이지 않았다.

         

         

       “무연 씨? 조금만 쉬었다가 갈까요?”

         

       “아, 아니요. 빠르게 가요.”

         

         

       무서운 곳에 있을 바에는 차라리 빠르게 탈출하자는 의견인가.

         

       나도 한 겁쟁이 하기 때문에 무연의 의견에는 적극 공감하는 바이긴 했다.

         

       내 눈에는 그 어떤 것도 무서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무연 씨, 일단은 걸어도 될 거 같아요. 이제 적이 없어요. 진정하고 잠시 재정비를 하죠.”

         

       “네, 네. 알겠어요.”

         

         

       눈을 가리고 있는 무연은 내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던 만큼 흥분한 기색을 순식간에 가라앉혔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걸어가기를 몇 분.

         

       그런 시간이 지속할수록 무연의 어깨가 점점 떨리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나의 지시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이사이에 사람의 목소리가 아예 안 들리니 조금 겁이 나는 게 없지 않아 있겠지.

         

         

       조금 대화나 해볼까.

         

         

       “그러고 보니까, 백가면 선배? 라는 말도 그렇고, 무연 씨 가명도 그렇고. 그런 가명은 어떻게 지어지는 거예요?

         

       제가 알기에는 무신이라는 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무연 씨는 발음이 비슷해서, 그쪽이랑 관련이 있는 건….”

         

       “네에?! 그걸 어떻게… 읍.”

         

         

       …어.

         

       무연은 어디 가서 절대 도박 같은 건 하면 안 될 사람 1등 후보였다.

         

         

       제 딴에는 말하면 안 되는 사실을 말한 듯 입을 가렸지만, 이미 다 들어버려서 소용없었다.

         

       아니다, 지금이라도 못 들은 척하면….”

         

         

       “아, 아하하. 저는 그냥 추측만 했을 뿐이지, 무연 씨께서 인정하는 것 같은 말은 전혀 못 들었….”

         

       “이미 다 들었잖아요!”

         

         

       아하.

         

       안타깝게도 내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

         

       너무 티 나게 말해버렸나.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무연도 결국 체념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 말을 하면 못 미더우시겠지만 저희 아버지의 이명이 무신이었어요.”

         

         

       역시, 커뮤니티에서 무신의 딸이라고 불리기에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굉장하셨어요. 모두가 두려워하는 외신을 그냥 동네 마실 나가듯이 나가셔서 무찌르고 다니실 정도였죠.

         

       탄튼 씨도 아시겠지만, 설산 원정 때 기사들 대부분이 사망했죠.”

         

         

       설산 원정이라. 그건 처음 듣는데?

       

         

       “그래서 기사들은 제가 그 영광을 따라가길 바라요.

         

       하지만, 저는 그럴 자격이 없어요.

         

       전 외신과 마주 보는 것이 불가능한 겁쟁이, 반푼이니까….”

         

         

       슬픈 이야기의 도입부 같은 이야기를 하려 하길래 집중해서 들으려고 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그럴 수는 없었다.

         

         

       소외신이 내 눈앞에서 갑자기 멈추라는 듯이 발버둥을 치며 날았으니까.

         

         

       “무연 씨, 잠깐만요.”

         

       “네, 네?”

         

         

       딱 멈추자마자 소외신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왜 그렇게 난리를 쳤는지 알 수 있었다.

         

         

       사슴 가면.

         

       우리가 찾고 있던 정원사가 나무에 팔을 대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무연은 그 압도적인 기운을 바로 느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원사가 저기에 있나요?”

         

       “네.”

         

         

       겁먹은 것 같은 태도와는 별개로 도끼는 손으로 꽉 움켜잡은 것이 각오한 모양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섭지 않은 법이었으니까.

         

       앞이 안 보이는 두려움을 외신의 두려움이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무연 씨, 지금 정원사….”

         

         

       벌어진 일은 순식간이었다.

         

         

       “어?”

         

         

       땅바닥에서 올라온 줄기들이 무연을 휘감고 저 멀리 떨어뜨려 버린 것이었다.

         

       기지를 발휘해 나와 손을 떨어뜨린 무연 덕분에 나는 무사할 수 있었다.

         

         

       “신기해. 따로 호신을 위한 물건도 없는 주제에 정신이 멀쩡하다니, 정신력이 유독 강한 건가?”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 정원사가 날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도 형체가 멀쩡해. 아무리 그녀의 추종자라도 내가 오는 것만으로 꽃이 될 텐데.”

         

         

       손가락이 내 팔을 내려와 무연을 잡고 있던 손을 쥐었다.

         

         

       

       “너, 대체 뭐야?”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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