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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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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조명이 시야를 뒤덮는다. 뇌까지 익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줄기에 신음을 흘리자 머리맡에 서 있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조명을 줄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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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뜰 수 있을 만치 조명이 줄어들었고, 앞을 바라보자 얼굴에 꿰맨 자국이 가득한 남자 한 명이 라이트 따위를 비추며 내 눈 안쪽이요 얼굴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문제 없군.”

    “……누구-.”

    “의사다. 보면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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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을 의사라고 소개한 남성은 그 뒤로도 몇 가지 진찰을 더 하더니, 다 되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를 호출했다. 잠시 후 방안으로 익숙한 사람들이 우수수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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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갈리아와 아일레, 비라 같은 악의 조직 동료들이.

    ​

    “닥터 매지컬메디컬. 치료는 잘 끝났나?”

    “끝났습니다 회장님. 고작 이 정도 부상으로 저를 부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동네 병원 의사도 이 정도는 손쉽게 고치겠더군요.”

    “여는 여의 부하들에게 최고를 붙여주고 싶을 뿐이네.”

    “돈 받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만.”

    “그럼 깎아주겠나?”

    “그럴 순 없죠. 아무튼, 치료는 모두 끝났으니 저는 이만…….”

    ​

    얼굴에 실밥 가득한 사내가 방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세 사람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

    “과, 과학자 씨…… 죄송해요!”

    “……뭐가?”

    “저, 저 때문에…….”

    ​

    아일레는 본인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녀 잘못이 맞긴 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그런 사람 많은 장소로 갈 일도 없었을 테고,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무너진 건물 파편에 맞고 기절하는 일도 없었을 터…….

    ​

    그러나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이 냉철한 이성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런 과학자들은 정치와 감성으로 예산을 따내는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중요한 건 이성이 아니라 공감. 야합과 타협.

    ​

    “─미안. 기절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네, 네에에-?”

    “분명 아일레 네가 같이 마법소녀 코믹 어쩌고에 같이 가자고 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된 거야?”

    ​

    선의의 거짓말. 다행히 아일레는 그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 한 듯 했다. 그녀 뒤에 선 두 사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

    아일레는 입술을 몇 번 붙였다뗐다를 반복하며 들썩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

    “네, 네에에… 과학자 씨는, 과학자 씨는… 샤, 샤워실에서 자빠져서 그렇게 된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지.”

    “기, 기억이 돌아오셨나요!?”

    ​

    아일레일레야…….

    거짓말로 그녀를 위로해주려던 계획은 완전히 박살났다. 기회를 줘도 떠먹지 못 하는 아싸찐따 같으니라고.

    ​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리고 보스를 바라보았다. 레갈리아는 이제 촌극은 다 끝났냐는 듯 눈을 치켜떴다.

    ​

    “과학자. 재미 없는 연기는 거기까지 하지. 할 얘기가 많으니.”

    “예, 보스.”

    “여, 연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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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연기였던 걸 알아차리지 못 한 아일레를 보며 비라가 웃음을 터트리는 가운데, 레갈리아는 내가 기절한 이후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일러주었다. 

    ​

    “납치범들은 모두 빌런 수용소에 집어 넣었네. 아마 앞으로 평생 그곳에서 나오는 일은 없겠지.”

    “아직 애들인데 말입니까?”

    “애들이기에 더더욱. 그만한 능력을 타고나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는 건 갱생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니.”

    ​

    순간이동이라는 희귀한 능력을 타고난 납치범은 그만한 능력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빌런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싹수가 노랗다는 뜻이다. 

    ​

    그리고 범죄자 인권이 피해자 인권보다 더 대단했던 지구와 달리, 이곳에서는 빌런이 되는 순간 영영 나올 수 없는 수용소에서 평생을 썩히게 되는 모양이다. 

    ​

    위험천만한 능력을 가진 빌런들을 굳이 죽이지 않고 가둬놓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히어로에게 살인 면허를 내줄 수는 없었으리라. 당장 빌런과 히어로는 그 능력이 일반인에게 휘둘러지냐 빌런에게 휘둘러지냐의 차이만 존재하지 않던가. 살인 허가증을 들고서 일반인들을 학살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

    “왜 그러지? 아이들에게 동정심 갖는 성격이었나? 그들에게 선처를 바라나?”

    “아뇨. 그럴 리가…… 그냥 가두기만 하다니 너무 친절한 거 같아서요.”

    “……자네가 말하니 뭔가 무서운데. 그 이상은 말하지 말아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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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갈리아의 말을 들은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제아무리 대기업 회장이라지만 아직 어린아이 아닌가. 애가 듣기엔 조금 자극적인 내용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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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침대에 몸을 기대며 비라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내게 할 말이 남아 있어 보이는 듯한 그녀를.

    ​

    “비라 씨? 비라 씨는 왜 왔습니까?”

    “아니, 나는…….”

    “경호에 실패한 호위니까 잘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저기, 그러니까…….”

    ​

    내 말에 정곡이 찔린 건지, 비라는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제대로 된 말을 입에 담지 못 했다. 냉철하게 말해서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활기찬 인싸였던 그녀가 아일레마냥 쭈그리가 된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어째선지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녀를 더 괴롭히고 싶기까지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씹새끼(교수)도 아니고.

    ​

    “왜 그러세요? 표정 푸세요. 누가 보면 제가 잘못한 줄 알겠네요.”

    ​

    실시간으로 썩어가는 비라의 얼굴을 보며, 내가 너무 심했나란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러나 반성은 하지 않는다. 다음 번에도 그녀를 놀릴 기회가 있으면 양껏 놀려줄 생각이다.

    ​

    그러나 그녀가 영 표정을 풀지 않자, 레갈리아도 나를 따라 비라를 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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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 비라가 이번에 실수가 있긴 했지만─ 그녀가 결코 부족한 호위는 아닐세. 오히려 이번 일로 인해 더욱 반성하고 정진하겠지. 여가 보증하겠네.”

    “알고 있습니다. 보스. 그렇지 않고서야 보스가 제 호위로 그녀를 보내지는 않았겠지요.”

    “그런데 이번 사태로 여가 잘못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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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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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라가 충격을 받아 절망에 빠진 가운데, 나랑 레갈리아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 마구 웃음을 터트리는 우리를 본 비라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닫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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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비라를 마주보며,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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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요. 비라 씨. 너무 놀리고 싶은 표정을 짓기에 그만…….”

    “……아니. 틀린 말은 안 했잖아? 그래. 다 내가 못 나서 그렇지. 팔다리 없던 장애년이 팔다리 다시 달았다고 신난 게 죄다 죄야.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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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 이야기 나누던 비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내뱉기 시작했다.

    슬슬 분위기가 싸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레갈리아는 그런 분위기를 얌전히 두고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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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라, 그만하게. 그러다가 과학자가 호위용 안드로이드라도 만들면 어쩌려고 그러나? 자네가 할 일이 없어질 텐데.”

    “아, 넵. 아가씨. 그런데 제아무리 에이트라고 해도 그렇지, 그런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그래.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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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의혹이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마주보았다.

    ​

    “그런 걸 만들리가 없잖아요. 노동법 위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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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역시 그렇…… 뭐?”

    “아니, 무슨 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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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법 위반이요. 로봇이 인간 일자리를 뺏게 만드는 건 인권 침…… 아.”

    ​

    말을 꺼내던 나는 뒤늦게 이곳이 지구가 아니었음을, 그리하여 그런 법규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그런 로봇을 아무런 규제 없이 만들 수 있단 뜻이었다.

    ​

    그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의 시선이 점점 더 차갑게 변해갔다. 제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하는 노동자의 살기 어린 눈빛이었다.

    ​

    ‘안 만든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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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국의 노동자들에게는 다행히도 나는 그런 로봇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만들고자 한다면야 기껏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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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신용품 정도지.’

    ​

    ​

    * * *

    ​

    ​

    몸을 지킬 수 있는 호신용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성능? 물론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성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실용성과 은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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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한 자루 들고 다니다가 누가 접근할 때마다 쏴죽이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나? 그랬다간 미치광이로 찍혀서 유치장 신세를 진다는 게 문제였지.

    ​

    그러니까 호신용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리 사용해도 사회의 지탄을 받지 않는 실용성이요, 그 다음은 누가 보더라도 호신용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은밀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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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봐도 위협적으로 보이는 물건이라면 상대방도 그 물건을 먼저 빼앗거나 제거할 테니까. 상대방이 보더라도 별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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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나 팔찌가 제격이지.’

    ​

    그러나 남자가 팔찌를 끼고 다니는 건 퍽 게이 같은 짓인 데다가, 비싸 보이는 물건이라면 빼앗길 가능성도 있었기에 제외했다. 남은 건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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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콤마 초 단위로 시간을 정밀하게 알아낼 수 있는 시대에서도 시계는 애용받았다. 강도요 납치범들도 인질에게서 휴대폰을 빼앗았으면 빼앗았지 시계를 뺏거나 하지는 않는다.

    ​

    즉, 호신용품으로서 제격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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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위험한 건 순간이동이지. 이건 필수로 막아야 하고.’

    ​

    다행히 순간이동을 막아낼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 실증했다. 에밀리아 교수가 발견한 양자 공간 접힘 현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

    과거, 에밀리아 교수는 양자의 파동 간섭을 이용하면 공간이 접힌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뒤이은 물리학자들은 그 현상을 연구해 공간 이동을 막아내는 기술을 만들어냈으며 내가 납치범을 상대로 사용했던 공간통제술이 바로 그것이다.

    ​

    ‘배리어는…… 공격 한 번 막아낼 정도면 되려나.’

    ​

    순간이동을 막아낼 수 있다면야 내가 공격을 막을 필요는 없었다. 비라가 있었으니까. 비라의 초능력은 악의 조직 최고의 방패. 인류 최고봉 수준의 능력이었다. 그녀가 못 막는 공격은 호신용품 수준으로는 막을 수 없으리라.

    ​

    그리고 그런 그녀가 못 막는 공격을 대비하겠다고 매일 답답하게 슈트 같은 걸 입고 다닐 생각도 없었고.

    ​

    그러니까 공격은 한 번 막을 정도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반격. 그러니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

    나는 이 부분에서 고민했다.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맞춰야하는가.

    ​

    “으음…….”

    ​

    비라의 방어막을 일격에 뚫을 수 있을 정도? 각하. 그만한 출력을 시계만한 소형기로 낼 수 있을 리 없다.

    ​

    아일레가 맞고 아파할 정도? 각하. 아일레는 마법소녀 복을 제외하면 일반 여고생에 불과하다. 여고생이 전차만큼 강하다곤 하지만 초능력이 실재하는 이 세계에서 그녀를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

    그러니까 결국 내가 실험해야 하는 건…….

    ​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는 거냐? 과학자.”

    “예, 뭐.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

    나는 갈름 앞에 서서 자그마한 권총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손바닥 안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 나중엔 시계 안에 넣을 테지만 위력을 시험할 목적인 지금은 쏘기 좋은 형태로 만들었다.

    ​

    그리 만든 총기를 갈름에게 겨누자, 갈름은 어디 쏴보라는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

    “고작 그 정도 장난감으로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리가─.”

    ​

    피이잉-!

    권총에서 쏘아져 나간 광선이 갈름의 복부를 꿰뚫고 지나간다. 

    갈름은 멍하니 구멍 뚫린 제 배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런 갈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

    “쏩니다.”

    “……아니, 이미 쏴놓고서.”

    “아파서 못 참겠다. 이쯤이면 제압되겠다 싶을 때 얘기해주세요.”

    ​

    나는 화력을 올린 새 권총을 꺼내들었다. 구분하기 쉽게 아까 전보다 살짝 더 커다랗게 만든 권총을. 여전히 손바닥만한 크기이기는 했지만 갈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

    “흐, 흐흐- 그래. 고작 이 정도로는─.”

    ​

    피유웅-!

    ​

    “……장난감치곤 조금 매콤-.”

    ​

    피이이잉-!

    ​

    “아니, 말은 하게─.”

    ​

    지이이잉─.

    어느덧 손바닥 크기를 벗어난 총기를 겨누자, 갈름은 그건 좀 위험할 것 같다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

    “─항복.”

    “아, 죄송. 이미 눌렀는데.”

    ​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총을 발사했다. 갈름의 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과연 버티지 못 하겠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갈름은 입에 거품을 물고서 쓰러졌다.

    ​

    쓰러진 그의 입에 빨간약을 흘려 넣어주는 동시에, 나는 어느 정도 화력으로 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지 확신했다.

    ​

    ‘처음 크기면 되겠네.’

    ​

    그가 방심하고 있었다곤 하지만, 한 방 맞고 꼼짝도 못 하던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사실 그때 이미 화력이 충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

    그냥 한 번 쏴보고 싶었다.

    절대 사심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퍼리사랑꾼님
우연_866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질문에 관한 건 작중 내용으로 모두 설명되었으리라 믿고 나머지는 독자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앞으로도 더 재밌는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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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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